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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가일이 나서다(삼상 25:14-31)

14 하인들 가운데 하나가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에게 말하여 이르되 다윗이 우리 주인에게 문안하러 광야에서 전령들을 보냈거늘 주인이 그들을 모욕하였나이다 15 우리가 들에 있어 그들과 상종할 동안에 그 사람들이 우리를 매우 선대하였으므로 우리가 다치거나 잃은 것이 없었으니 16 우리가 양을 지키는 동안에 그들이 우리와 함께 있어 밤낮 우리에게 담이 되었음이라 17 그런즉 이제 당신은 어떻게 할지를 알아 생각하실지니 이는 다윗이 우리 주인과 주인의 온 집을 해하기로 결정하였음이니이다 주인은 불량한 사람이라 더불어 말할 수 없나이다 하는지라 18 아비가일이 급히 떡 이백 덩이와 포도주 두 가죽 부대와 잡아서 요리한 양 다섯 마리와 볶은 곡식 다섯 세아와 건포도 백 송이와 무화과 뭉치 이백 개를 가져다가 나귀들에게 싣고 19 소년들에게 이르되 나를 앞서 가라 나는 너희 뒤에 가리라 하고 그의 남편 나발에게는 말하지 아니하니라 20 아비가일이 나귀를 타고 산 호젓한 곳을 따라 내려가더니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자기에게로 마주 내려오는 것을 만나니라 21 다윗이 이미 말하기를 내가 이 자의 소유물을 광야에서 지켜 그 모든 것을 하나도 손실이 없게 한 것이 진실로 허사라 그가 악으로 나의 선을 갚는도다 22 내가 그에게 속한 모든 남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아침까지 남겨 두면 하나님은 다윗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23 아비가일이 다윗을 보고 급히 나귀에서 내려 다윗 앞에 엎드려 그의 얼굴을 땅에 대니라 24 그가 다윗의 발에 엎드려 이르되 내 주여 원하건대 이 죄악을 나 곧 내게로 돌리시고 여종에게 주의 귀에 말하게 하시고 이 여종의 말을 들으소서 25 원하옵나니 내 주는 이 불량한 사람 나발을 개의치 마옵소서 그의 이름이 그에게 적당하니 그의 이름이 나발이라 그는 미련한 자니이다 여종은 내 주께서 보내신 소년들을 보지 못하였나이다 26 내 주여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주도 살아 계시거니와 내 주의 손으로 피를 흘려 친히 보복하시는 일을 여호와께서 막으셨으니 내 주의 원수들과 내 주를 해하려 하는 자들은 나발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27 여종이 내 주께 가져온 이 예물을 내 주를 따르는 이 소년들에게 주게 하시고 28 주의 여종의 허물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반드시 내 주를 위하여 든든한 집을 세우시리니 이는 내 주께서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심이요 내 주의 일생에 내 주에게서 악한 일을 찾을 수 없음이니이다 29 사람이 일어나서 내 주를 쫓아 내 주의 생명을 찾을지라도 내 주의 생명은 내 주의 하나님 여호와와 함께 생명 싸개 속에 싸였을 것이요 내 주의 원수들의 생명은 물매로 던지듯 여호와께서 그것을 던지시리이다 30 여호와께서 내 주에 대하여 하신 말씀대로 모든 선을 내 주에게 행하사 내 주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실 때에 31 내 주께서 무죄한 피를 흘리셨다든지 내 주께서 친히 보복하셨다든지 함으로 말미암아 슬퍼하실 것도 없고 내 주의 마음에 걸리는 것도 없으시리니 다만 여호와께서 내 주를 후대하실 때에 원하건대 내 주의 여종을 생각하소서 하니라

나발을 죽이러 다윗이 온다는 소식은 곧 나발의 진영에 들리게 되었습니다. 나발의 하인은 이 상황을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에게 알렸습니다. 그러자 이 긴박한 상황에서 아비가일이 직접 나섰습니다. 아비가일은 이 문제를 놓고 남편과 상의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아주 긴박한 상황이라서 내부적으로 논의하고 대응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우선 선조치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또는 나발이 말이 통하지 않는 완고한 사람이었기 때문이거나, 또는 대화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나중에 아비가일이 한 일을 나발이 포도주에서 깨어난 후에 들었다는 표현(삼상 25:37)으로 보아 그런 상황이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또한 종은 주인에 대하여 불량한 사람으로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상기시켰습니다(삼상 25:17).

아비가일은 다윗에게 나아가 자비를 구하였습니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음식을 준비하고 다윗을 맞이하러 나가서 다윗의 마음을 누그러뜨렸습니다. 나발은 감사를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아비가일은 고마움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나발은 자신의 손으로 모든 것을 이룬 것이라 생각했지만, 아비가일은 다윗의 고마움을 인정하고 그 용사들에게 음식을 대접할 수 있었습니다. 지혜로운 누구일까요? 겸손한 자가 지혜로운 것입니다. 우리의 힘으로만 살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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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대부분의 우리들은 나발처럼 생각하면서 삽니다. 내가 수고하고 내가 땀을 흘려 모든 것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께서 돕지 않았다면, 우리들의 수고가 헛될 수밖에 없음을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시 127:1). 그렇다면, 우리가 이렇게 숨을 쉬고 살고 여러 가지를 누리며 살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아야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볼 줄 알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반면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이 모든 것을 이룬 것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입니다.

나발의 경우 당장 심판에 직면합니다. 다윗이 군사들을 이끌고 와서 공격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들의 경우에는 당장 심판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일관적으로 우리에게는 심판이 있을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멀리 타국에 갔던 주인이 돌아와 종들과 회계할 때가 있는 것처럼, 신랑이 와서 신부를 데리고 갈 때가 있는 것처럼, 추수할 때가 있는 것처럼, 반드시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다윗의 일행을 막아선 사람이 아비가일입니다. 잘못은 나발이 했는데, 아비가일이 엎드려 용서를 구하였습니다. 반드시 나발에게 속한 모든 남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아침까지 남겨 두지 않겠다고 하면서 달려 온 다윗을 멈추게 한 사람이 아비가일입니다. 이와 비슷하게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에서부터 우리를 구원하신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잘못은 나발이 했는데 대신에 엎드린 아비가일처럼, 아무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의 은혜 때문에 우리가 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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