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 쉬지 말고 기도하라

– 이국진

기도의 응답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을 때, 우리는 그 이유가 충분히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마음을 바꿀 때까지 충분히 기도해야 하는데, 그 정도까지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도의 응답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킬 때까지 기도해야 하는데, 아직 그 정도의 수준까지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도의 응답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40일간의 금식기도, 100일간의 새벽기도, 또는 1,000번의 예물을 연속적으로 드리면서 드리는 기도하는 방식을 채택하기도 한다.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그러한 정성을 다하면서 기도할 경우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말이다. 또는 서원을 하면서 기도하기도 한다. 염치없이 하나님께 달라고만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제스처를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얻고 싶은 마음에서 말이다. 성도들 사이에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더 많이 기도하라는 권면은 당연한 권면처럼 들린다. 마틴 루터가 하루에 3 시간씩 기도했다는 이야기에 감동을 받고, 하루에 몇 시간씩 기도한다는 고수들 앞에서는 고개가 숙여진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기도를 많이 해야만 하나님께서 들으실 것이라는 생각은 이방인들의 생각이라고 하시면서, 이들의 기도를 배우지 말라고 하셨다. 그리고 아주 짧은 기도를 가르쳐 주셨다(마 6:9-13). 하나님은 우리가 간구하기 전에 이미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를 알고 계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응답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가장 좋은 것을 주려고 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오해하지 말라. 기도가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이방인들처럼 기도를 많이 해야만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지만, 동시에 항상 기도해야 한다고 가르치셨고(눅 18:1-8),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권면하셨다(살전 5:17). 예수님은 항상 기도하셨다. 예수님은 기도하면서 하루를 시작하였고, 매 순간마다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으며, 위기의 순간에도 하나님께 매어달리셨다. 바울 사도는 선교 여행을 하면서 늘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그의 앞길을 인도해줄 것을 간구했고,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기도했으며,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달라고 반복해서 기도했다. 다윗은 무슨 일을 하기 전에 항상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실 것을 바라면서 말이다. 하나님은 존재하시고 전능하신 분이시며 또한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와 같은 분이라면, 우리는 기도라고 하는 방식으로 늘 대화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시카고에 살고 있는 우리 큰 딸이 아이폰 페이스타임으로 엄마에게 매일 전화해서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는 것처럼 말이다.

큰 아이가 매일 전화하는 이유는 적어도 100번 정도 전화해면 엄마가 나에게 유산을 물려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다. 자꾸 전화해서 조르고 또 조르면 엄마와 아빠의 마음을 바꿀 수 있다는 확신에서 전화하는 것이 아니다. 그 아이가 전화하는 이유는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이다. 오늘 하루 일어났던 일들을 이야기하면서 대화를 하는 가운데 위로를 받기도 하고, 필요한 것이 있다고 요청하면 돈을 보내주기도 하고, 그저 삶을 나누기 위해서 전화하는 것이다. 어떤 것은 우리가 반대할 경우가 있다. 딸아이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이 다를 때, 딸아이는 몇 번 떼를 쓴다. 자신의 생각대로 해달라고 말이다. 그럴 때 인간인 우리는 우리의 생각이 잘못되었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을 바꾸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딸아이는 몇 번 반복해서 조르다가 자신의 생각을 바꾼다. 자신의 생각보다 부모의 생각이 더 옳다는 믿음에서 말이다. 부모가 반대하는 것은 자신이 덜 졸랐기 때문이 아니라, 부모가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께 세 번 졸랐다. 제발 자신의 육체의 고통을 없애달라고 말이다. 자신이 육체적으로 고통스러운 것도 힘들었지만, 이러한 육체의 고통 때문에 선교사역이 지장 받는 것이 너무나도 힘들었다. 그러니까 정욕적인 생각만으로 구하는 기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거기서 바울 사도는 기도를 중단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후 12:9) 아버지의 뜻을 알게 된 바울 사도는 오히려 감사하면서 자신의 약한 것을 자랑할 수 있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은 24시간 내내 단 한 순간도 중단함이 없이 기도만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럴 수도 없거니와 그렇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도 않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은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기도하고, 기도할 용기가 나지 않을 때에도 기도하고, 응답이 없는 것처럼 생각될 때에도 기도하라는 의미이다. 우리 딸아이가 기쁜 일이 있어도 전화하고, 힘든 일이 있어도 전화하고, 언제나 전화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이다.

이 글의 주소: http://iwbs.org/?p=227

목차로 돌아가기

다음 글 읽기 – 3.1 그물의 비유

이전 글 읽기 – 2.4.1 이방인의 기도신학(祈禱神學)

[저작권 안내: copyright information] 이곳에 수록된 내용은 이국진 목사의 저작물입니다. 이 내용을 책으로 출간하여 판매할 수도 있지만, 이 시대의 상황을 고민하며 심사숙고한 후에 온라인으로 공개하여 일반인들이 마음껏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누구든지 이곳에 있는 내용물을 비영리적인 목적으로 마음껏 사용하도록 허용합니다. 이 글을 통해 유익을 얻었다면, 웨스트민스터 사역에 적은 금액이라도 구독료 개념으로든 선한 사역 후원의 개념으로든 후원을 해주신다면 감사할 뿐입니다. 기업은행 304-082989-01-013 (웨스트민스터)

 22 total views,  1 views today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항목은 *(으)로 표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