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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이방인의 기도

지성이면 감천이 아니다

– 이국진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마 6:7-8)

2.4.1 이방인의 기도신학(祈禱神學)

예수님은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치면서 이방인처럼 기도하지 말라고 가르치셨다. 도대체 이방인들이 어떻게 기도하길래 그렇게 기도하지 말라고 하셨는가? 중언부언하지 말라고 할 때, 사용된 헬라어 단어 바탈로게세테(βατταλογήσητε)는 신약성경에서 오직 단 한번만 사용된 단어(hapax legomenon)이기 때문에 정확한 뜻을 규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본문은 그 말의 의미를 뒤에서 설명해주고 있다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즉 말을 많이 하는 것이 바로 중언부언하는 것의 의미이다.

이방인들의 생각은 기도의 응답을 이루기 위해서는 말을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방인들의 생각에는 기도의 응답의 열쇠가 기도하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도를 성의 없이 할 경우에는 신의 응답을 기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열정적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예를 우리는 엘리야 선지자와 대결했던 바알 선지자들에게서 발견한다. 그들은 하늘에서 불이 내리기를 위해서 기도하였는데, 열정으로 따지면 최고의 열정으로 기도를 그들의 신에게 올렸다. 하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그러자 그들은 기도의 수위를 한 층 더 높였다. 제단 주위에서 뛰놀면서 기도를 드린 것이다. 그래도 응답이 없었다. 그러자 옆에서 엘리야 선지자는 그들의 신학(神學)을 조롱하면서 말했다. 더욱 큰 소리로 부르짖어보아라. 너희의 신이 왜 응답이 없는가? 혹시 묵상 중에 있는지, 잠깐 나갔는지, 혹은 잠이 들었는지 모르니 더욱 큰 소리로 외쳐야 한다고 조롱했다. 이 모든 이야기의 배경에 이방인의 신학이 깔려 있다. 이방인의 신학에 의하면 신은 기본적으로 응답을 잘 하지 않는 신이고, 그런 신의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열심히 부르짖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소위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는 식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께 그렇게 기도할 필요가 없다고 하셨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방인들이 생각하는 그런 무심한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기본적으로 기도를 안 들으시려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의 신음소리조차도 귀를 기울이고 계신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떠들어야만, 소리를 질러야만, 말을 많이 해야만 들으시는 하나님이 아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이방인들이 그러하듯이 말을 많이 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기 전에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 줄 이미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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