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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의지할 것인가(삼상 23:19-20)

19 그 때에 십 사람들이 기브아에 이르러 사울에게 나아와 이르되 다윗이 우리와 함께 광야 남쪽 하길라 산 수풀 요새에 숨지 아니하였나이까 20 그러하온즉 왕은 내려오시기를 원하시는 대로 내려오소서 그를 왕의 손에 넘길 것이 우리의 의무니이다 하니

다윗이 십이라는 지역에 도피하였을 때, 그곳 사람들이 그 사실을 사울에게 알렸습니다. “다윗이 우리와 함께 광야 남쪽 하길라 산 수풀 요새에 숨지 아니하였나이까?” 시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히브리 사람들의 특징인데, 이들은 다윗이 숨어 있는 곳을 사울 왕에게 알렸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갈렙 족속이었고, 유다 지파와는 아주 가까운 관계에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아마도 다윗은 그러한 이유 때문에 그곳으로 숨어 들어갔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사울에게 밀고한 것입니다. 이러한 경험이 다윗의 삶 가운데 자주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 41편과 69편에서 한탄하는 시를 쓴 바 있습니다.

“내가 신뢰하여 내 떡을 나눠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시 41:9) “내가 나의 형제에게는 객이 되고 나의 어머니의 자녀에게는 낯선 사람이 되었나이다.”(시 69:8) 한 마디로 믿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고백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진실로 의지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뿐이라는 사실을 실감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시 62:1-2)

우리는 사람을 신뢰할 수는 없습니다. 성경은 사람을 신뢰하지 말라고 권고합니다. 물론 사람을 항상 의심하며 살아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믿고 사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그 누구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이며, 오직 주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도다.”(시 118:8-9) 힘깨나 쓰는 사람들이나, 돈 좀 있는 사람들을 믿을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소망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잡기 위해서 출동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하나님은 다윗을 지켜주셨습니다. 블레셋 군대가 마침 이스라엘을 침략하는 바람에 사울은 물러서야 했습니다(삼상 23:27).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 146:3-5)

다윗은 자신이 믿었던 십 사람들에 의해 밀고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이러한 일은 예수님의 생애 중에서 한 사건을 떠올리게 합니다. 예수님은 성만찬의 자리에서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신뢰하여 내 떡을 나눠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시 41:9) 이 고백은 다윗의 고백이자, 예수님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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