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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단의 위로(삼상 23:15-18)

15 다윗이 사울이 자기의 생명을 빼앗으려고 나온 것을 보았으므로 그가 십 광야 수풀에 있었더니 16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일어나 수풀에 들어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그에게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하였는데 17 곧 요나단이 그에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 아버지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아버지 사울도 안다 하니라 18 두 사람이 여호와 앞에서 언약하고 다윗은 수풀에 머물고 요나단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요나단은 다윗을 찾아가 위로하고 격려하였습니다. 사울 왕은 다윗을 죽이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던 반면, 요나단은 아주 쉽게 다윗을 찾아갈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사울의 군사들이 오면 다윗이 몸을 숨겨 피했을 것이지만, 요나단이 나타나면 부하들을 시켜서 잘 모셔오게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쨌든 요나단이 쉽게 다윗을 만날 수 있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사울은 다윗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울의 손에 붙이지 아니하셨기 때문입니다(삼상 23:14).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면 그 누구도 우리를 대적할 수 없다는 말씀(롬 8:31)은 진리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안에 있다면 그 어느 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에게 말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 아버지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아버지 사울도 안다.” 사실상 사울의 뒤를 이어서 왕이 되어야 할 사람은 요나단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요나단의 입에서 놀라운 말이 나왔습니다. 다윗은 요나단의 말을 듣고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을 것입니다.

사실 친구는 이런 때를 위하여 있는 것입니다. 신앙의 공동체가 존재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길을 가는 것은 쉬운 길이 아닙니다. 적지 않게 위험한 일을 만나고, 무서운 일들을 경험하면서 무너지기 쉽습니다. 그때 믿음의 친구들이 필요합니다. 옆에서 따뜻한 말을 해주고 용기를 북돋우어주면서 믿음의 길을 가게 만들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이미 요나단과 다윗은 구약 시대의 작은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다시 일어서게 만드는 것은 믿음의 동역자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다윗과 요나단은 다시 만나서 언약을 맺습니다. 이들은 하나님 앞에서 언약을 맺었습니다(삼상 23:18). 그들이 맺은 구체적인 언약의 내용은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아마도 사무엘상 20:14-15의 내용을 다시 확인하는 것이었을 것이라고 추정됩니다. “너는 내가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내게 베풀어서 나를 죽지 않게 할 뿐 아니라 여호와께서 너 다윗의 대적들을 지면에서 다 끊어 버리신 때에도 너는 네 인자함을 내 집에서 영원히 끊어 버리지 말라.”

이미 맺었던 언약인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이 시점에 다시 언약을 맺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예전에 맺었던 언약이 잘못되었거나 미비해서가 아닙니다. 시효가 지나버려서도 아니고, 잊었기 때문도 아닙니다. 다만 다시 그때 맺었던 언약을 기억하면서 재확인하고 감사하고 즐기고 확신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마치 부부가 결혼 서약을 하고 결혼을 했지만, 살면서 틈틈이 장미꽃이라도 사들고 가서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랑의 약속을 한번 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계속해서 재확인해야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요나단과 다윗은 이미 예전에 언약을 맺었지만, 다시 언약을 맺으면서 적지 않은 힘과 위로를 받았을 것입니다.

예전에 다윗과 요나단이 언약을 맺었었는데, 다윗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마음속에 질문이 떠오르게 됩니다. 과연 요나단은 나의 편일까? 이런 질문이 솟아오를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요나단이 와서 다시 언약을 갱신하면서 위로를 받습니다. 요나단은 이 순간에 아버지를 선택하지 않고 다윗을 선택하였습니다. 요나단의 언약은 여전히 유효했던 것입니다. 이런 요나단과 같은 친구를 둔 다윗은 정말 행운아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에게도 그런 친구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향해서 약속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구원의 약속입니다. 하지만 그 약속을 받기에 너무나도 부족한 모습을 사람들이 보여주었습니다. 인간 편에서 자꾸만 약속은 파기되어버렸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이제 하나님의 약속은 사라져버린 것일까요?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다시 재확인시켜주셨습니다. 끝까지 그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이렇게 끝까지 언약의 약속을 지키는 것을 가리켜 의롭다고 표현합니다. 그래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 것이라고 표현합니다(롬 1:17). 그 하나님의 의 때문에 우리가 살 수 있습니다.

기독교 이단 중에는 한 번 회개하면 더 이상 회개할 필요가 없으며, 또다시 회개하는 것은 구원받지 못한 증거라고 우기는 자들이 있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은 정반대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해서 더 이상 회개할 필요가 없는 완벽한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기 전까지는 또 넘어지고 죄를 짓습니다. 그래서 또 다시 신실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 옛날 다윗과 요나단이 언약을 다시 맺으면서 우정을 재확인했듯이, 우리는 십자가 앞에 다시 나가서 하나님의 은혜를 재확인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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