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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의 시대(삼상 7:13-17)

13 이에 블레셋 사람들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지역 안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14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았던 성읍이 에그론부터 가드까지 이스라엘에게 회복되니 이스라엘이 그 사방 지역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도로 찾았고 또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더라. 15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되 16 해마다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로 순회하여 그 모든 곳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렸고 17 라마로 돌아왔으니 이는 거기에 자기 집이 있음이니라. 거기서도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며 또 거기에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사무엘의 영도하에 이스라엘 민족은 평화의 시기를 지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블레셋 민족을 치셨기 때문에 블레셋 민족들은 다시는 이스라엘 지역 안으로 들어올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블레셋에게 빼앗겼던 땅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평화의 시대가 온 것입니다. 또한, 사무엘은 부지런히 이스라엘의 각 지역을 다니면서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이스라엘이 그야말로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나라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사무엘 앞 시대였던 엘리 제사장이 다스리던 시대와는 아주 극명하게 대조되는 장면입니다. 엘리 제사장 시절에는 블레셋 민족이 이스라엘을 짓밟아서 고통스러운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지도자가 나와서 이스라엘 민족을 영적으로 다시 회복시켰고, 결국 평화까지 이루게 되었습니다. 지도자 한 사람이 중요함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평화를 갈망하면서 삽니다. 과거 시대에 있었던 전쟁은 없는 것 같지만 사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 속에서 살아갑니다. 마치 블레셋의 침공으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는 것과 비슷하게, 오늘날의 사람들은 고통을 당하면서 살아갑니다. 아무리 수고하여도 헛수고뿐인 인생을 살아갑니다. 과연 이 땅에 참 평화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그 옛날 사무엘이 다스리는 기간 동안에는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침공하지 못하고 평화의 시대가 찾아온 것처럼, 우리들에게 참 평화를 주시는 지도자가 있습니다. 그 지도자는 보수 정권의 어느 지도자가 아닙니다. 그 지도자는 진보 정권의 어느 지도자가 아닙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들은 정치적인 지도자들이 우리들의 삶의 문제를 해결해줄 구세주인 것처럼 과도하게 열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우리들의 참된 구세주가 될 수 없습니다. 참된 지도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참된 평화를 주시기 위해서 스스로는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래서 참된 에벤에셀, 즉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도움을 생각나게 하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우리가 주님께서 달리신 십자가를 볼 때, 하나님의 사랑을 생생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히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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