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습 사사의 실망스러운 행보(삼상 8:1-3)

1 사무엘이 늙으매 그의 아들들을 이스라엘 사사로 삼으니 2 장자의 이름은 요엘이요 차자의 이름은 아비야라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사사가 되니라 3 그의 아들들이 자기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

사무엘이 다스리던 시절에 블레셋 민족은 이스라엘을 함부로 넘보지 못했습니다(삼상 7:13). 이러한 상황은 엘리 제사장 때의 상황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었습니다. 엘리 제사장이 다스리던 시절에는 블레셋 민족이 이스라엘을 침범하여 이스라엘을 괴롭히곤 했었습니다. 하지만 사무엘이 다스리던 시절에는 블레셋 민족이 이스라엘을 넘볼 수 없었습니다. 상황이 역전된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었지만, 지도자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사무엘이라는 선지자가 이스라엘을 지도하며 이끌 때, 이스라엘은 영적인 부흥을 경험했고 주변 민족이었던 블레셋은 감히 쳐들어올 엄두를 내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황금 같은 시절이 영원히 지속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안타깝게도 그 기간이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사무엘상 8장은 사무엘이 늙어서 그의 아들들을 사사로 삼았다는 말로 시작합니다. 사무엘이 늙어서 더 이상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일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엘리 제사장 가정과 같은 타락한 지도자 뒤에 사무엘이 등장하니까 우리는 사무엘의 위대함에 초점을 맞추기 쉽습니다. 분명 사무엘은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면, 사무엘도 궁극적인 해답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비록 사무엘이 엘리 제사장이나 홉니나 비느하스 같은 사람들보다 훨씬 더 뛰어난 면을 가지고 있었지만, 사무엘이 정답은 아니었습니다. 사무엘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늙을 수밖에 없는 존재였습니다. 판단력이 흐려지게 되었고, 더 이상 사사로서의 기능을 수행할 수 없었습니다. 사무엘은 위대한 사람이었지만 완벽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사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위인들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의 사람이었던 아브라함은 믿음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위대한 다윗은 밧세바와의 일로 추악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크게 쓰임 받았던 모세는 마지막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못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때 하나님에 의해 크게 쓰임 받았다고 생각되던 사람들의 추락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절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에게 진정한 메시아가 필요합니다. 모든 것이 우리와 똑같되 전혀 죄도 없고 약점도 없으신 분이 필요합니다. 그분은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에게만 소망을 두게 됩니다. 사무엘은 영원하고도 참된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필요함을 보여줍니다. 사무엘은 늙어버렸지만, 주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십니다.

사무엘이 사사로서의 기능을 더 이상 수행할 수 없게 되자 그의 아들들이 새로운 사사의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장자인 요엘과 둘째 아들인 아비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아버지가 가지고 있었던 직분을 아들이 물려받는 것은 구약 시대에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제사장의 아들이 제사장이 되는 것이고, 레위인의 아들이 레위인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담임목사직을 무리하게 승계하려는 시도는 정당하지 않습니다. 물론 목사인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아들이 목사를 하겠다고 하는 것은 말릴 일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목회자로서의 은사가 있다면 말입니다. 하지만 굳이 어떤 특정 교회의 담임목사의 직을 아들이나 사위가 물려받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특히 유교적 문화권에 있는 한국적인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물론 절대로 불가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장로의 아들이 대를 이어서 같은 교회에서 장로로 세워질 수 있다면, 담임목사도 모든 성도들이 원하는데도 불가하다고 할 것은 아닙니다. 정당하고 공평한 과정을 거칠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담임목사의 직을 아들이 승계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가능하다는 말은 그렇게 하는 것이 유익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거나 유익한 것은 아니니까 말입니다(고전 6:12; 10:23).

사무엘의 아들들은 아버지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고 옳지 못한 판결을 하였습니다(삼상 8:3). 아버지 사무엘은 훌륭한 선지자요 사사였는데, 그의 아들들은 엉망이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해서 그 아들들이 자동으로 훌륭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아버지가 훌륭하고 위대해도 그 자녀들은 엉망일 수 있습니다. 솔로몬 왕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 아주 뛰어난 지혜의 사람이었지만, 그를 이어서 왕이 된 아들 르호보함은 어리석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이어서 아들에게 사역을 승계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선택이 아니라, 최악의 선택일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뻔뻔스럽게 세습을 하면서 성경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교회는 탐욕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더 나아가 교회의 주인은 오직 주님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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