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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한을 다 쓰지 않은 예수님

– 이국진

예수님은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다고 말씀하셨다(요한복음 10:18). 예수님께서 작정하시면, 십자가를 지시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권세를 사용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열두 영이 더 되는 천사를 아버지께 보내달라고 구할 수도 있었다(마태복음 26:53). 하지만 예수님은 순순히 결박을 당하고 끌려가셨다. 십자가 주변에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향해 비난을 했다.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외쳤다(마태복음 27:40). 예수님은 그 순간 내려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내려오시지 않았다. 어쩌면 이 장면은 피난길을 떠난 다윗이 시므이의 욕설을 듣는 장면과 오버랩된다. 다윗은 충분히 시므이를 죽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시므이를 죽이지 않았다. 자신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고난을 당하고 있다는 이해 속에서, 다윗은 묵묵히 고난의 길을 걸어갔다. 예수님은 권세가 없었던 것이 아니었다. 가당치 않은 비난을 해대는 사람들을 향해 복수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마치 자신이 죄인인 것처럼, 다윗처럼 조용히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다. 내가 당해야 할 죄의 형벌을 대신 지시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가 당할 고난을 당했다. 반창고처럼, 예수님은 우리의 허물을 덮으셨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이사야 53:4~9)

생각해볼 문제 / 토론 문제

1. 가장 참기 힘든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나의 인계점을 초과하는 것은 무엇인가?

2. 참는 것이 좋은 것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참지 못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무엇 때문인가?

3.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고 고치도록 하는 것이 옳은가? 덮어두는 것이 옳은가?

4. 다른 사람의 잘못을 대할 때 — 고치려 드는 것이든, 덮어두는 것이든 — 잊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자세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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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안내: copyright information] 이곳에 수록된 내용은 이국진 목사의 저작물입니다. 이 내용을 책으로 출간하여 판매할 수도 있지만, 이 시대의 상황을 고민하며 심사숙고한 후에 온라인으로 공개하여 일반인들이 마음껏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누구든지 이곳에 있는 내용물을 비영리적인 목적으로 마음껏 사용하도록 허용합니다. 이 글을 통해 유익을 얻었다면, 웨스트민스터 사역에 적은 금액이라도 구독료 개념으로든 선한 사역 후원의 개념으로든 후원을 해주신다면 감사할 뿐입니다. 기업은행 304-082989-01-013 (웨스트민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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