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기사] ‘예수는 신화다’를 뒤집는 통쾌한 반박

▲예수는 있다.

예수는 있다
이국진 | DMI | 343쪽 | 15,000원

‘예수는 신화다(티모시 프리크·피터 갠디 공저)’, ‘예수는 없다(오강남 저)’에 대한 통쾌한 반박을 담은 ‘예수는 있다(DMI)’가 출간됐다.

저자인 이국진 목사(필라델피아 사랑의교회)는 오강남 교수가 정통 기독교에서 받아들이는 예수의 모습을 ‘근본주의적 예수상(像)이라 평가절하하고, 성불한 예수상을 제시했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예화’를 사용해 대중 속으로 파고드는 데 치중했고, 그래서 논리적인 면에서 너무 많은 허점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래서 그는 오강남 교수가 제시했던 것보다 훨씬 풍부하고 다양한 예화를 사용해 오 교수의 주장을 반박한다. 그는 “그렇게 해서, 오강남 교수가 단순히 예화를 전달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지 못함을 보여주겠다”며 “오강남 교수가 자신의 의견을 설득력 있게 말하고 싶다면, 예화가 아닌 더욱 분명한 근거를 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증거가 없다(the absence of evidence)는 것은 없다는 증거(the evidence of absence)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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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나의 아버지는 최고’라는 믿음은 객관적이지 않다는 주장에 ‘나의 아버지는 한 분 뿐’이라고 답하고, 기적을 인정하고 믿는 것은 ‘철부지 어린이 같다(고전 13:11)’는 생각에는 ‘어린이처럼 순수한 믿음(마 18:3)’이라고 응수한다.

또 성경의 기록 과정과 전달 방법이 ‘농담’의 형성 과정이나 전달 방법과 비슷했기 때문에 성경을 농담처럼 읽어야 한다는 입장에는 “성경은 신앙을 말하고 있으며, 신앙은 우리 삶 전체를 좌우하고 우리의 영생과 관련돼 있어 농담처럼 받을 것이 아니다”고 잘라 말한다. 성경은 ‘농담 따먹기’가 아니고, 농담은 누가 처음 만들었는지도 모르 고 어떤 과정을 거쳐 전달됐는지도 모르지만 복음서를 비롯한 성경은 생생한 증언으로 우리에게 전달되고 있기 때문이다.

빌라도는 당시 체포당하신 예수님에게 ‘진리가 무엇이냐(요 18:38)’고 물었다. 2천년 후, 오강남 교수는 우리가 진리에 대해서 결코 다 알았다고 말할 수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에 동감하지만, “기독교가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이 왜 잘못인가?”라고 반문한다. 그리고 도덕경 56장의 ‘아는 사람은 말을 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며 진리에 대해 떠들지 말고 조용히 하라는 말에는 “그런 점에서 조용히 ‘예수는 없다’고 떠들어 댄 자신의 책을 절판하라”고 권고한다.

저자는 이후 자신의 주장이 ‘근본주의자’처럼 비춰졌을지 모른다는 염려를 시작하면서 “오강남 교수는 정통 기독교에서 말하지 않는 것들을 지적하며 비판하는데, 이는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기형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잘못된 신앙행태에 대해 신학적으로 동조하거나 지원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을 수도 있겠다”고 토로한다. 그러면서 기독교가 비판의 대상이 된 이유를 ‘기복주의 신앙 형태’로 지적하고, 여기서 빠져나올 것을 촉구한다.

이국진 목사는 “우리 주위에는 마치 전문가인 것처럼 큰 소리를 치는 사람들이 있는데, 스스로는 잘 알지 못한다고 겸양을 떠는 것 같지만 오히려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큰 목소리로, 더 활발한 저술활동과 강연활동을 하며 떠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며 “문제는 이러한 목소리에 많은 사람들이 속고 있다는 점”이라고 진단한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 사실을 믿게 하기 위해 성령께서 우리 안에 역사해 주셨다는 말로 글을 마무리한다.

앞으로도 ‘예수는 신화다’, ‘예수는 없다’ 류의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서적 뿐만 아니라 매체를 통한 공격은 더욱 거세질 수 있다.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이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마귀는 예수님에게도 유혹과 시험의 손길을 뻗쳤기 때문이다. 모래 위가 아닌, 반석 위에 굳게 세운 집은 무너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도발적인 주장들은 우리가 믿는 진리가 더욱 풍성하고 확고함을 드러낼 뿐이다.

문제는, 우리 스스로 여기에 위축되거나 믿음이 허약해지고 자신감이 줄어들면서 ‘기독교와 성경은 비과학적이고 신화적’이라는 막무가내식 떼쓰기에 휩쓸려버리거나, 그러한 주장이 일리가 있다고 말해야 지적인 사람처럼 보인다는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이 책은 지난 2003년 저술한 내용을 개정 증보한 결과물이다.

출처: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46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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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개혁실천연대 사무국장 구교형 목사의 비평에 대한 답변

http://www.newsnjoy.co.kr/news/read.php?idxno=10328&rsec=MAIN

교회개혁실천연대 사무국장 구교형 목사는 기독교계 비평적 인터넷 매체인 뉴스앤조이(www.newsnjoy.co.kr)에 기고한 “‘다빈치코드 깨기’식으로는 ‘다빈치코드’ 절대 못깬다 “라는 글(링크를 클릭하면 볼 수 있습니다)을 통해서, [예수는 있다]에 대한 나름대로의 건전한 비평을 올렸다.

구교형 목사는 기독교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 대응하는 방법으로써, [예수는 있다]와 같은 변증적 성격의 책은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으며, “믿심을 얻으라”고 충고한다. 이러한 구교형 목사의 비평은 상당한 일리가 있으며 우리 크리스천들이 반드시 새겨 들어야할 부분이 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민심을 얻어도 안된다.” 불신자들이 기독교에 내던지는 도전들은 기독교인들이 민심을 얻지 못해서 나온 것이 아니다. 타 종교에 대해서는 관대한 불신자들이 유독 기독교에 대해서는 적대적인 이유는, 인간의 마음 속 깊은 곳에 하나님에 대한 거부의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기독교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지만, 사랑의 모습을 전달해야 하지만, “민심을 얻는 방법만으로는” 기독교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를 돌이킬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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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연합교회 이영대 목사의 반론에 대한 답변

http://koreanherald.com.au/Columns/view.php?id=senior&num=3

호주 연합교회 이영대 목사는 호주에서 발행하는 [한국신문]에 고정 컬럼을 쓰는 컬럼니스트로 활약하고 있는 분으로, 오강남 교수처럼 종교 다원주의적 입장을 옹호하는 분이다. 이영대 목사는 2004년 12월 6일, 필자의 책을 반박하며, 오강남 교수의 [예수는 없다]를 변론하는 글을 올렸다(이 글은 링크를 클릭하면 볼 수 있다). 이에 대해서 이렇게 답변하고자 한다.

1. 나는 변화와 개혁을 두려워 하는가?
이영대 목사는 [예수는 있다]가 쓰여진 것은 [예수는 없다]가 준 충격을 감당할 수 없고, 단순히 변화와 개혁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비평하였다. 하지만 나는 변화와 개혁을 두려워하지도 충격으로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예수는 없다]와 같은 류의 주장은 전혀 새로운 주장도 아니기 때문이다. 신앙을 거부하는 주장은 창세 이후로 인류 사회에 끊임없이 존재해왔다. 내가 책을 쓴 것은 새로운 옷인 양 포장된 불신앙이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 뿐이다. 나는 [예수는 있다]의 제6장 “이제는 보수적인 크리스천들에게”라는 글을 통해서, 한국 기독교인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동시에 비평했다. “조금만 다른 이야기에도 목숨을 걸듯이 극단적인 반응을 감추지 않는다”는 비평은 옳지 않다.

2. [예수는 없다]라는 도발적인 제목은 단지 역설적인 표현뿐인가?
이영대 목사는 [예수는 없다]라는 말이 “예수가 실제 인물이 아니라거나 지금까지 신앙의 동반자로 믿어왔던 예수가 허구라는 말은 결코 아니라,” 역설적인 표현일 뿐이라고 한다. “교회가 선포해온 기독론적, 대속론적, 구원론적, 삼위일체론적, 종말론적 예수를 모두 부정하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이런 주장을 하는 이영대 목사는 과연 [예수는 없다]란 책을 읽어 보았는지, 아니면 지금까지 교회가 선포해온 신학을 제대로 공부했는지, 궁금하다. 둘은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가 이해한 오강남은, 교회가 전통적으로 선포했던 신론, 기독론, 구원론, 종말론 등과 모두 다르다.
기독교의 삼위일체 신만이 유일한 참 신임을 주장하는 정통 신론과는 달리, 오강남은 타종교의 신도 기독교의 신과 같은 신이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사역에 의한 구원을 말하는 정통 구원론과는 달리, 오강남은 구원의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으며 자력 구원을 말하기 때문이다.

오강남 교수가 기복주의적 신앙을 비판한 점에 있어서는 옳다. 나는 내 책 제6장에서 이같은 점을 말했다. 하지만 오강남 교수가 예수는 없다고 할 때, 기복주의적으로 이해한 예수만 없다고 한 것이 아니라, 유일한 구원의 중보자인 예수도 없다고 했다.

3. [예수는 없다]를 통해서 진짜 예수를 발견할 수 있는가?
오강남 교수는 스스로 도를 닦고 수련하고 신의 경지에 까지 나아가는 종교를 주창한다. 하지만 기독교는 예수님의 대속적 죽음으로 구원받게 되었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는 없다]를 통해서 진짜 예수를 발견하기를 희망하는 이영대 목사의 생각은 잘못되었다. [예수는 없다]를 통해서는, 스스로 선행을 쌓고 도를 닦고 마음의 수련을 하는 종교인이 될 수는 있으나, 성경의 길과는 거리가 멀다.  오강남의 예수는 우리의 모범(example)이 될 뿐, 우리의 구세주(savior)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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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신문 서평] ‘예수는 없다’반박하는 책…’예수는 있다’

http://www.reformed.co.kr/bbs/view.php?id=culture&no=103

지난 2001년 “과연 교회 안에 구원이 있을까”라는 위험천만한 질문으로 시작하는 책이 있어 한국교회에 적잖은 파문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그 책은 다름아닌 원로 종교학자인 오강남 교수의 ‘예수는 없다’(현암사)로 크리스천들이 믿고 있는 ‘진리’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기독교의 전래를 뒤집어엎는 책으로 평가받았다. 또한‘유아적 믿음에서 벗어나 다른 종교도 인정하는 성숙한 종교인이 되라’고 충고하는 이 책에서 저자는 기실 예수를 어느 누구보다 사랑하는 기독교인이다.

그러나 평생을 동서고금의 종교와 철학을 연구해온 학자로서, 그는 더 이상 성경의 하늘에서 뚝 떨어진 책으로, 그 신화적 어구 하나하나를 신의 음성으로 떠받들며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는 중세적 거짓 종교관에 매어 살지 말자고 말하고 있다. 출간된 지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종교서적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지키고 있을 정도로 상당한 반향을 이끌어 낸 책으로 그 영향력이 넌크리스천과 크리스천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쳐왔다.

‘예수는 없다’의 영향력은 이를 반박하는 책 이국진 목사의‘예수는 있다’(기독출판사)의 출판으로 그 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 ‘예수는 있다’는 왜 예수만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인지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고, ‘예수는 없다’에 대해 하나하나 대답해나가는 형식을 취하고 있고 포맷 또한 ‘예수는 없다’와 거의 동일하다.

‘예수는 있다’는 ‘예수는 없다’의 흐름을 목차와 소제목의 순서까지 그대로 따라가면서 뒤집어 제시한다. ‘…없다’에서 어렸을 때는 ‘우리 아빠가 최고’라고 믿던 철수가 커가면서 그런 믿음을 버린다는 예화를 들었다면 ‘…있다’는 초등학생 영희가 음악 신동으로 명품 ‘스트라디바리’를 소장하고 있음에도 그 친구들은 ‘네 악기와 내 악기가 무엇이 다르냐’며 비웃는 상황을 예로 든다.

‘…없다’가 불교에 귀의한 서양인 ‘현각스님’의 내용을 소개한 자리에는 기독교를 배척하던 대학 교수가 눈물로 예수를 영접한 사연을 소개한다. ‘성경을 다 믿지는 않는다’는 한 목사의 인터뷰를 실은 자리에는 회심한 사도 바울에 대한 가상의 인터뷰를 실어 거울처럼 반대되는 상황을 보여준다. 아울러 마지막 장에서는 기독교 내에서 잘못된 신앙 행태를 답습하고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따금한 일침을 놓기도 했다.

이런 방식을 취한 것은 ‘…없다’가 그럴 듯한 사례와 논리로 포장한 내용들이 어떻게 무너지는가를 보여주려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진리와 비진리의 경계에서 갈등하는 구도자들에게는 구원의 확신을,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다시 한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소망을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며, 반박하고픈 마음은 있었지만 방법을 찾지 못해 답답했던 평신도들에게는 시원함을 안겨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승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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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기사] 이국진 목사 ‘예수는 있다’ 발간

오강남 교수의 ‘예수는 없다’ 조목조목 반박

오강남(캐나다 리자이나대 비교종교학) 교수가 2년 전 ‘예수는 없다’란 책으로 한국 개신교계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예수는 없다’에는 “잘못된 신관(神觀)은 무신론만 못하다”,“예수는 성불(成佛)했다”,“기독교인도 ‘단군이 세워주신 나라’를 마음을 다해 노래할 수 있다”는 식의 상당히 도발적인 내용을 담아 교계는 물론 사회적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이국진(필라델피아 사랑의교회) 목사가 이에 반박하는 ‘예수는 있다’(사진)를 펴내고 ‘왜 예수만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인가’를 설명하고 있다.

“만일 지적인 유희를 즐기고자 한다면 예수를 제멋대로 그려내고 제멋대로 색칠한 후 마음대로 가지고 놀 수는 있다. 하지만 우리가 믿어야 하는 예수는 내가 색칠해낸 예수가 아니라 믿지 않으면 안될 예수여야 한다. 신앙의 대상으로서 예수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바뀔 수 있는 예수가 아니라 시대를 초월해 모든 세대에 적용돼야 하는 예수이다.”(책 머리말에서)

오강남 교수가 “21세기 나의 실존적 질문에 답을 줄 수 있는 예수여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이목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처럼 ‘예수는 있다’는 ‘예수는 없다’라는 책에 대해 하나하나 대답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때문에 ‘예수는 있다’는 ‘예수는 없다’의 전개 형식으로 따랐으며, 오교수의 책과 비교할 수 있도록 페이지도 기록해 놓았다.

이동원(한국 지구촌교회) 목사는 “‘예수는 없다’와 ‘예수는 있다’ 두 책의 싸움은 골리앗과 다윗의 대결 같다”며 이는 노련한 종교학자에 대한 ‘치기 어린’ 목회자의 도전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면서, “이 책을 읽으면 젊은 다윗의 손에 붙들린 물맷돌의 힘을 느낄 수 있다”고 추천했다.

이국진 목사는 총신대학교·대학원을 졸업하고 고든콘웰신학교에서 신약을 전공(Th.M.)하고 현재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성경해석학 박사 과정에 있다.

정상교 기자〈nyjsgo@joongangusa.com〉
http://ny.joongangusa.com/Asp/Article.asp?1=1&sv=ny&src=life&aid=200312081448386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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