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좌 28

예수님에 대한 증언(5:31-47)1

5:31 내가 만일 나를 위하여 증언하면 내 증언은 참되지 아니하되2: 재판에는 최소 두 세 사람의 증언이 필요하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각각 독립적으로 증언했을 때, 그 증언이 일치해야 그 증언이 증거로서의 가치가 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기 위하여 제자들을 파송했을 때, 둘씩 짝을 지어보내셨다. 이것은 증언의 특성 상 최소 두 사람이 증언을 해야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증언은 제3자의 증언이어야 한다. 자기가 자기 자신에 대하여 증언할 수 없다(미쉬나 케투봇 2:9).

5:32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이가 따로 있으니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그 증언이 참인 줄 아노라3: 예수님께서 자기 자신에 대하여 증언하지 않더라도 예수님에 대하여 증언하시는 분이 계시다. 여기서 증언하는 다른 분은 누구를 성령님을 지칭할 수 있다. 나중에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15:26)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성령님의 증언은 참되신 하나님의 증언이므로 그 증언은 거짓될 수 없다. 또한 성부 하나님을 지칭할 수 있다. “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언하셨느니라”(5:37)이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또한 세례 요한을 지칭할 수도 있다. 바로 다음 절인 33절에서 “요한이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였다”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증언하는 책임이 제자들에게도 주어져 있다.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언하느니라”(요 15:27). 문맥 상 가장 적절한 것은 아마도 세례요한을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음 구절에서 연결해서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5:33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을 보내매 요한이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였느니라4: 요한에게 사람을 보냈다는 것은 유대인들이 세례 요한에게 문의하기 위하여 보낸 것을 상기시킨다(1:19). 그때 요한은 참된 것을 증언하였다. 즉 자신의 뒤에 오시는 분(즉 예수님)이 메시야라고 증언하였다.

5:34 그러나 나는 사람에게서 증언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로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5: 세례 요한의 증언도 아주 중요하지만, 예수님은 굳이 세례 요한의 증언이 필요 없었다. 성령님께서 친히 증언하시기 때문이다. 사람에게서 증언을 취하지 않는다는 말은 사람들의 증언에 매달리지 않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세례 요한의 증언에 대하여 언급하는 이유는 그의 증언을 듣고서라도 예수님을 영접하고 결과적으로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해서였다.

5:35 요한은 켜서 비추이는 등불이라 너희가 한때 그 빛에 즐거이 있기를 원하였거니와6: 요한은 “그 빛”(τὸ φῶς)-즉 로고스(ὁ λόγος) 안에 들어 있는 생명(ἡ ζωὴ)-이 아니고 그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고 이미 선언한 바 있다(1:8). 그런데 에수님께서는 요한을 등불(ὁ λύχνος)이라고 하셨다. 등불이나 빛이나 사실상 같은 어둠을 밝히는 이미지를 나타내는 비유이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요한복음에서는 구별하여 사용하여, 죄악의 어둠 가운데 있는 인생에게 생명을 주는 빛은 예수님에게 사용하고, 무지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 진리를 깨닫게 해주고 보여주는 등불은 요한에 대하여 사용하고 있다. 세례 요한이 진리에 대해서 증언하였고, 사람들은 그러한 세례 요한의 증언을 환호하며 받아들인 바 있다. 그런데 그 요한이 예수님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다.

5:36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곧 내가 하는 그 역사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것이요7: 요한의 증거도 중요하지만, 사실 예수님에게는 더 큰 증거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복수, τὰ ἔργα)이다. 예수님께서 하신 기적들이 예수님이 누구이신가를 보여준다. 그래서 바리새인이자 유대인의 지도자인 니고데모는 밤 중에 예수님에게 찾아와서,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3:2)라고 하였다(참조: 마 11: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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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7 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언하셨느니라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형상을 보지 못하였으며9: 하나님께서 친히 예수님에 대하여 증언하신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막 1:11), 그리고 예수님의 모습이 변화되실 때(막 9:7), 친히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 있다. 세례 요한에게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사실을 알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셨다(1:32-33). 또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자체가 예수님에 대하여 증언하고 있다. 문제는 사람들이 그 증언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었고, 하나님의 형상을 볼 수도 없었다는 점이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이다.

5:38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가 보내신 이를 믿지 아니함이라10: 더 심각한 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말씀이 사람들에게 없다. 결국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11: 구약성경은 예수님에 대하여 에언한 책이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고 영생을 주실 것인가를 기록한 책이다. 그 구원은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따라서 성경을 읽으면서 예수님에 대하여 발견하여야 한다. 성경은 예수님에 대하여 증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경을 읽으면서 예수님이 아닌 다른 것들만 본다면, 성경을 잘못 읽은 것이다. 당시의 사람들은 성경의 주인공이신 예수님께서 오셨지만, 정작 예수님을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5:40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12: 영생을 얻기 위하여 예수님에게 오지 않고, 단순히 율법을 지키는 것을 향해서 나아갔다.

5:41 나는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13: 예수님께 영광을 올리는 것이 필요없다는 뜻은 아니다.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우리들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우리들이 주님께 영광을 돌리거나 돌리지 않는 것 때문에, 주님의 명예가 훼손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으로부터 영광을 취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람이 돌리는 영광에 주님의 명예가 달린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5:42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14: 유대인들이 신앙적인 행위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사울이 전쟁에 앞서 제사를 드린 이유가 하나님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단지 군대가 흩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수단이었듯이, 하나님은 수단으로 전락했을 뿐이다.

5:43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하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15: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다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내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대비하여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은 거짓 선지자들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쉽게 현혹되는 것을 지적하셨다.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내시지 않았는데, 자의로 선지자 노릇하는 것을 지칭한다. 놀랍게도 사람들은 진짜에 대해서는 거부하고, 가짜에 대해서는 마음이 열린다.

5:44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16: 사람들의 관심은 하나님에게 있지 않았다.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그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광스러운 상태에 참여하는 것을 추구하지 않았다. 사들은 오로지 이 세상의 것들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을 뿐이었다. 신앙생활도 결국은 이 세상에서 사람들로부터 종교적으로 인정받는 것이 목적이었다. 한 마디로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받는 것, 인정을 받는 것이 목적이었다. 관심 자체가 이 세상의 것이니,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선물에 대해서는 관심이 가지 않았다. 예수님이 세상에 왔으나, 주목하지도 않았고, 믿을 수도 없었다.

5:45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발할까 생각하지 말라 너희를 고발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가 바라는 자 모세니라17: 유대인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은 예수님께서 자의로 하시는 것이 아니다. 사실 유대인들에 대한 비판/고발은 성경 자체에서부터 나온다. 그들이 믿고 따르는 모세의 글이 그들을 심판한다.

5:46 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18: 모세의 율법은 사람들의 죄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그러한 죄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는 길도 제시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다. 따라서 율법을 제대로 알았다면, 예수님을 믿는 게 정상이다.

5:47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하시니라19: 하지만 사람들이 모세를 완전히 받아들인 것도 아니다. 문자의 규정은 지키고 있지만, 율법의 정신은 외면하였다. 결과적으로 모세의 율법을 통해서 제시되고 있는 예수님을 바라볼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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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1. 내가 만일 나를 위하여 증언하면 내 증언은 참되지 아니하되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이가 따로 있으니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그 증언이 참인 줄 아노라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을 보내매 요한이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였느니라 그러나 나는 사람에게서 증언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로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은 켜서 비추이는 등불이라 너희가 한때 그 빛에 즐거이 있기를 원하였거니와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곧 내가 하는 그 역사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것이요 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언하셨느니라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형상을 보지 못하였으며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가 보내신 이를 믿지 아니함이라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나는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하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발할까 생각하지 말라 너희를 고발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가 바라는 자 모세니라 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하시니라[]
  2. Ἐὰν ἐγὼ μαρτυρῶ περὶ ἐμαυτοῦ ἡ μαρτυρία μου οὐκ ἔστιν ἀληθής[]
  3. ἄλλος ἐστὶν ὁ μαρτυρῶν περὶ ἐμοῦ καὶ οἶδα ὅτι ἀληθής ἐστιν ἡ μαρτυρία ἣν μαρτυρεῖ περὶ ἐμοῦ[]
  4. ὑμεῖς ἀπεστάλκατε πρὸς Ἰωάννην καὶ μεμαρτύρηκε τῇ ἀληθείᾳ[]
  5. ἐγὼ δὲ οὐ παρὰ ἀνθρώπου τὴν μαρτυρίαν λαμβάνω ἀλλὰ ταῦτα λέγω ἵνα ὑμεῖς σωθῆτε[]
  6. ἐκεῖνος ἦν ὁ λύχνος ὁ καιόμενος καὶ φαίνων ὑμεῖς δὲ ἠθελήσατε ἀγαλλιαθῆναι πρὸς ὥραν ἐν τῷ φωτὶ αὐτοῦ[]
  7. ἐγὼ δὲ ἔχω τὴν μαρτυρίαν μείζω τοῦ Ἰωάννου τὰ γὰρ ἔργα ἃ δέδωκέν μοι ὁ πατὴρ ἵνα τελειώσω αὐτά αὐτὰ τὰ ἔργα ἃ ποιῶ μαρτυρεῖ περὶ ἐμοῦ ὅτι ὁ πατήρ με ἀπέσταλκεν[]
  8.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9. καὶ ὁ πέμψας με πατὴρ ἐκεῖνος μεμαρτύρηκεν περὶ ἐμοῦ οὔτε φωνὴν αὐτοῦ πώποτε ἀκηκόατε οὔτε εἶδος αὐτοῦ ἑωράκατε[]
  10. καὶ τὸν λόγον αὐτοῦ οὐκ ἔχετε ἐν ὑμῖν μένοντα ὅτι ὃν ἀπέστειλεν ἐκεῖνος τούτῳ ὑμεῖς οὐ πιστεύετε[]
  11. Ἐραυνᾶτε τὰς γραφάς ὅτι ὑμεῖς δοκεῖτε ἐν αὐταῖς ζωὴν αἰώνιον ἔχειν καὶ ἐκεῖναί εἰσιν αἱ μαρτυροῦσαι περὶ ἐμοῦ[]
  12. καὶ οὐ θέλετε ἐλθεῖν πρός με ἵνα ζωὴν ἔχητε[]
  13. δόξαν παρὰ ἀνθρώπων οὐ λαμβάνω[]
  14. ἀλλὰ ἔγνωκα ὑμᾶς ὅτι τὴν ἀγάπην τοῦ θεοῦ οὐκ ἔχετε ἐν ἑαυτοῖς[]
  15. ἐγὼ ἐλήλυθα ἐν τῷ ὀνόματι τοῦ πατρός μου καὶ οὐ λαμβάνετέ με ἐὰν ἄλλος ἔλθῃ ἐν τῷ ὀνόματι τῷ ἰδίῳ ἐκεῖνον λήμψεσθε[]
  16. πῶς δύνασθε ὑμεῖς πιστεῦσαι δόξαν παρ’ ἀλλήλων λαμβάνοντες καὶ τὴν δόξαν τὴν παρὰ τοῦ μόνου θεοῦ οὐ ζητεῖτε[]
  17. μὴ δοκεῖτε ὅτι ἐγὼ κατηγορήσω ὑμῶν πρὸς τὸν πατέρα· ἔστιν ὁ κατηγορῶν ὑμῶν Μωϋσῆς, εἰς ὃν ὑμεῖς ἠλπίκατε[]
  18. εἰ γὰρ ἐπιστεύετε Μωϋσεῖ ἐπιστεύετε ἂν ἐμοί περὶ γὰρ ἐμοῦ ἐκεῖνος ἔγραψεν[]
  19. εἰ δὲ τοῖς ἐκείνου γράμμασιν οὐ πιστεύετε πῶς τοῖς ἐμοῖς ῥήμασιν πιστεύσετε[]

요한복음 강좌 27

아들의 권한(5:19-30)1

5:19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2: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신성모독 행위로 죽이려고 들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들은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고서 그 일을 하는 것이지, 스스로(자의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순종하며 일을 하는 것이다. 즉 안식일에 병자를 고친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이다. “내가 진실로(아멘) 진실로(아멘) 네게 이른다”라는 표현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참되고 진실한 말씀이며 하나도 오류가 있는 것이 아님을 밝히시는 말씀으로 예수님께서 자주 사용하신 표현이다.

율법주의는 율법의 문자적 적용을 고집한다. 하지만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셨고, 그것을 그대로 행하셨다. 안식일법이 있다고 하여서 병자를 치료하는 것을 멈출 수 없고, 안식일법 때문에 병이 나은 그를 그 자리에 있게 할 이유도 없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나아가는 것은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이었다. 마치 제사장만 먹을 수 있는 진설병을 다윗과 그 일행에게 준 아히멜렉의 마음과 같았다. 문자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과연 주님께서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시는지를 살펴야 한다.3.

5:20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4: 38년 된 병자를 고친 일 외에도,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님 사이의 관계는 더 드러나게 될 것이다.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하셨고,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을 다 보이셨다. 또한 앞으로 더 큰 일도 보여주실 것이다. 사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 에수님에게 제한을 두실 것은 없다. 이러한 일들이 펼쳐지게 될 때, 사람들은 놀랄 것이다.

5:21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5: 20절에서 말한 더 큰 일이란, 다름 아닌 죽은 자들을 살리는 것이다. 살리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일이다(cf. 왕하 5:76). 생명을 주고 빼앗는 것은 오직 하나님에게 달려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들도 생명을 살린다. 아들도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5: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7: 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8:508). 최후에 심판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시다(cf. 롬 2:59; 엡 5:610; 골 3:611; 롬 3:5-612; 고전 5:1313; 히 12:2314; 히 13:415; 벧전 1:1716; 벧전 2:2317; 계 18:818). 그런데 그 권한을 아들에게 주셨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심판하실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그 심판은 하나님의 심판이다. 제자들도 주님의 대리인으로 심판하게 될 것이라고도 말씀하신 바 있다(마 19:2819). 하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심판이다.

5:23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20: 아들로 하여금 심판하도록 하신 목적은 아들을 공경하게 하기 위함이다. 아들도 똑같은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아들도 하나님이다. 따라서 아들을 공경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할 수 없다. 유대인들 앞에 서 있는 그분은 무시해도 되는 분이 아니라, 심판 주 하나님이시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하였지만, 정작 보이는 하나님을 거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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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21: 예수님께서는 다시 엄숙하고 진지하게 말씀하신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예수님의 말을 듣는 것은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며, 그렇게 믿음으로 반응하는 자는 영생을 얻었다. 따라서 심판에 이르지 않는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이미 옮겼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것이 생명의 길이다.

5: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22: 다시 엄숙하게 진지하게 말씀하셨다.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음성을 듣게 될 때가 온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살아나는 때가 올 것이다. 이것까지는 주님께서 하신 말씀인데, “곧 이 때라”는 요한복음의 저자가 요한복음의 독자들을 향해서 예수님의 약속이 지금 현실이 되고 있음을 알리는 표현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23 또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볼 수도 있다. 예수님과 더불어 하나님의 나라가 왔고, 그래서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영적으로 본다면, 사람들은 이미 죽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믿음으로 받아들인다면, 영생(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즉 살아날 것이다.

5: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24: 아들에게는 하나님 아버지에게 있는 생명이 똑같이 있다. 그래서 에수님은 하나님과 같이 생명을 살릴 수 있다.

5:27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25: 예수님은 다니엘 7장에 예언된 바로 그 “사람의 아들”(인자)이므로, 온 천하를 심파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다.

5:28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26: 결국 모든 죽은 자들이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될 것이다.

5: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27: 선한 일을 행한 사람은 생명의 부활로, 악을 행한 사람은 심판의 부활을 하게 될 것이다.

5:30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뜻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려 하므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28: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대로 행할 것이다. 자의적으로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심판이기에 공의로운 심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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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뜻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려 하므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2. Ἀπεκρίνατο οὖν ὁ Ἰησοῦς καὶ ἔλεγεν αὐτοῖς Ἀμὴν ἀμὴν λέγω ὑμῖν οὐ δύναται ὁ υἱὸς ποιεῖν ἀφ’ ἑαυτοῦ οὐδὲν ἐὰν μή τι βλέπῃ τὸν πατέρα ποιοῦντα ἃ γὰρ ἂν ἐκεῖνος ποιῇ, ταῦτα καὶ ὁ υἱὸς ὁμοίως ποιεῖ.[]
  3. cf. 이국진, “4. 바른 성경 해석과 문자주의의 위험,” http://iwbs.org/?p=3628[]
  4. ὁ γὰρ πατὴρ φιλεῖ τὸν υἱὸν καὶ πάντα δείκνυσιν αὐτῷ ἃ αὐτὸς ποιεῖ καὶ μείζονα τούτων δείξει αὐτῷ ἔργα ἵνα ὑμεῖς θαυμάζητε[]
  5. ὥσπερ γὰρ ὁ πατὴρ ἐγείρει τοὺς νεκροὺς καὶ ζῳοποιεῖ οὕτως καὶ ὁ υἱὸς οὓς θέλει ζῳοποιεῖ[]
  6. 이스라엘 왕이 그 글을 읽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냐 그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로 보내 그의 나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와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줄 알라 하니라[]
  7. οὐδὲ γὰρ ὁ πατὴρ κρίνει οὐδένα ἀλλὰ τὴν κρίσιν πᾶσαν δέδωκεν τῷ υἱῷ[]
  8. 나는 내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나 구하고 판단하시는 이가 계시니라[]
  9.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10.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11.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12.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
  13.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
  14.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15. 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16.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17.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18.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함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시는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라[]
  1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20. ἵνα πάντες τιμῶσι τὸν υἱὸν καθὼς τιμῶσι τὸν πατέρα ὁ μὴ τιμῶν τὸν υἱὸν οὐ τιμᾷ τὸν πατέρα τὸν πέμψαντα αὐτόν[]
  21. Ἀμὴν ἀμὴν λέγω ὑμῖν ὅτι ὁ τὸν λόγον μου ἀκούων καὶ πιστεύων τῷ πέμψαντί με ἔχει ζωὴν αἰώνιον καὶ εἰς κρίσιν οὐκ ἔρχεται ἀλλὰ μεταβέβηκεν ἐκ τοῦ θανάτου εἰς τὴν ζωήν[]
  22. Ἀμὴν ἀμὴν λέγω ὑμῖν ὅτι ἔρχεται ὥρα καὶ νῦν ἐστιν ὅτε οἱ νεκροὶ ἀκούσουσιν τῆς φωνῆς τοῦ υἱοῦ τοῦ θεοῦ καὶ οἱ ἀκούσαντες ζήσουσιν[]
  23. (Michaels, J. Ramsey. The Gospel of John (Kindle Locations 6141-6143). Wm. B. Eerdmans Publishing Co.. Kindle Edition.[]
  24. ὥσπερ γὰρ ὁ πατὴρ ἔχει ζωὴν ἐν ἑαυτῷ οὕτως καὶ τῷ υἱῷ ἔδωκεν ζωὴν ἔχειν ἐν ἑαυτῷ[]
  25. καὶ ἐξουσίαν ἔδωκεν αὐτῷ κρίσιν ποιεῖν ὅτι υἱὸς ἀνθρώπου ἐστίν[]
  26. μὴ θαυμάζετε τοῦτο ὅτι ἔρχεται ὥρα ἐν ᾗ πάντες οἱ ἐν τοῖς μνημείοις ἀκούσουσιν τῆς φωνῆς αὐτοῦ[]
  27. καὶ ἐκπορεύσονται οἱ τὰ ἀγαθὰ ποιήσαντες εἰς ἀνάστασιν ζωῆς οἱ δὲ τὰ φαῦλα πράξαντες εἰς ἀνάστασιν κρίσεως[]
  28. Οὐ δύναμαι ἐγὼ ποιεῖν ἀπ’ ἐμαυτοῦ οὐδέν καθὼς ἀκούω κρίνω καὶ ἡ κρίσις ἡ ἐμὴ δικαία ἐστίν ὅτι οὐ ζητῶ τὸ θέλημα τὸ ἐμὸν ἀλλὰ τὸ θέλημα τοῦ πέμψαντός με[]

요한복음 강좌 26

하나님 아버지께서 일하신다(5:10-18)1

5:10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2: 제4계명은 안식일(오늘날의 금요일 저녁 해질 때부터 토요일 해질 때까지의 기간)에 일을 하는 것을 금한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일에 해당하는 지는 성경에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지 않으나, 랍비들은 무엇이 일이고 무엇이 일이 아닌지에 대한 자세한 논의를 통해 답을 제시해놓았다. 이러한 규정은 미쉬나 안식일 편에 기록되어 있다. 일로 규정된 것들은 파종, 쟁기질, 수확, 단 묶음, 탈곡, 키질, 작물 세척, 체질, 반죽, 제빵, 양털깎기, 양털두들기기, 양털 염색, 실뽑는 것, 밧줄만들기, 새끼 꼬기, 두 실 짜기, 두 실 풀기, 두 바늘 코 꿰매기, 천 찢기, 사슴 사냥, 사슴 죽이기, 사슴 껍질벗기기, 사슴 소금에 절이기, 사슴 가죽 만들기, 사슴털 문질러 뽑기, 사슴 자르기, 두 통의 편지 쓰기, 두통 편지 쓰기 위해 글씨 지우기, 건축, 철거, 소화, 착화, 망치질, 물건 운반 등 39가지이다. 예레미야 17:21-223에는 안식일에 짐을 들고 다니는 것을 금하고 있다. 이러한 규정에 의하면, 자신이 누웠던 것(매트)을 들고 걸어가는 것은 일에 해당한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율법을 어긴 사람을 향하여 옆에서 비난이 나왔다. 안식일에 그런 일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율법주의는 율법은 자신에게 적용할 뿐만 아니라,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사람에 대한 멸시와 비난으로 연결되고, 자신이 율법을 잘 자키는 것에 대한 교만한 마음으로 귀결되는 데, 이러한 것은 주님께서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5:11 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하니4: 38년 된 병자는 자신에 대한 비난을 예수님에게로 돌렸다.

5:12 그들이 묻되 너에게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5: 유대인들은 안식일 법을 어기게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질문하였는데, 이는 안식일법을 어긴 사람이나 어기게 만든 사람이나 모두 다 안식일 법을 어긴 셈이기 때문이었다.

5:13 고침을 받은 사람은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6: 하지만 그 사람은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몰랐었다. 그저 자신에게 다가와서 자비를 베푼 어떤 유대인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리고 그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예수님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예수님에 대해 알 기회가 없었다. 예수님이 피하신 것은 거기에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후에도 예수님은 사람들을 피하였는데(6:22-26), 이는 사람들이 표적을 보지 못하고 그저 기적 자체(빵)에만 몰두했기 때문이었다. 예수님이 유대인들로부터의 적대적인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아직까지는 유대인들로부터 적대적인 반응이 없었다), 적극적인 환호를 피하기 위하여 자리를 옮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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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4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7: 나중에 예수님은 그 병자를 만났다. 예수님은 그에게 더 심한(나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셨다. 예수님의 관심은 단순히 병에서 해결되어 건강한 몸을 되찾는 것에 있지 않았다. 건강한 몸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라면, 예수님은 다시 이 사람에게 오실 필요도 말씀하실 필요도 없었다. 그가 얻어야 하는 것을 얻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님의 관심은 영적인 건강에 있었다. 그래서 죄의 문제를 이야기하셨다. 예수님은 단순히 병을 고쳐주는, 육신의 필요를 채워주는 분으로서 오신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육신의 필요를 위해서만 찾을 때에는 피하셨다.

예수님의 말씀은 마치 죄와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다른 곳(9:1-38)에서는 이러한 인과관계를 부인하신 바 있다. 성경에는 이 두가지 관점이 동시에 존재한다. 욥의 경우에는 죄와 관련이 없이 고통이 왔고 질병을 얻은 바 있다. 그러나 성찬을 함부로 하는 죄를 지은 자들 가운데에는 병든 자가 있었고 심지어 죽임을 당한 경우도 있었다(고전 11:29-30). 예수님의 이 말씀은 이 사람이 38년간 병으로 고통을 받은 것이 반드시 죄의 결과라고 단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죄를 짓은 것은 그 동안 겪었던 질병의 고통보다 더 심하고 나쁜 것임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땅의 이야기를 매개로 하늘의 이야기를 하시는 어법인 셈이다.

물론 이 세상에 고통과 질병이 온 것은 죄의 결과였다. 태초에 하나님께서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셨다. 하지만 죄가 들어옴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은 가시와 엉겅퀴를 내기 시작하였고, 고통스러운 곳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죄의 문제의 해결은 결국 아무런 고통도 슬픔도 아픔도 없는 세상의 회복을 위한 것이다. 그 날이 다가올 것이다.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질병으로부터의 해방을 보여주신다. 그런 점에서 질병은 죄와 연관이 있다. 하지만 모든 질병과 고통을 어떤 죄의 결과로만 연결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 죄와의 연관성이 부인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크게 보아서는 우리가 죄의 영향력 아래에 있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일을 당하는 것이지만, 구체적인 케이스에서는 각각 다른 설명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5:15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9: 나음을 받은 그 사람은 유대인들을 만나서 자신을 고쳐준 사람이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알렸다. 그가 직접 찾아간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나은 사람이 예수님을 유대인들에게 고발하려는 의도가 있어서 찾아간 것인지 여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상식적으로 고발의 의도가 있었다기보다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려는 것이었을 것이고,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셨기 때문에 유대인들도 호의적으로 볼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을 수도 있다. 예수님을 지칭하는 표현도 짐을 들고 걸어가라고 한 사람이라고 표현하기 보다는 자신을 고쳐준 이라고 하였다. 아무튼 정확한 의도는 알 수 없다. 물론 이 사람의 반응은 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한 시각 장애인(9장)의 태도와는 결이 다르다.

5:16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박해하게 된지라10: 그 나음을 받은 사람의 의도가 무엇이었든지 간에,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안식일을 의도적으로 범하는 자로 낙인을 찍고 박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사실에 주목했지만(3:2), 이들은 그점은 주목하지 않았다. 율법주의는 정말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5:1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11: 그러한 박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일하신다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안식하고 이제는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시는 것이 아니라, 쉬지 않으신다. 이러한 선언은 창 2:212의 선언과는 정반대되는 선언이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에도 일하신다는 것은 이 세상을 다스리시고 유지하시는 것에서 드러나며, 안식일에도 아기가 태어나는 것에서도 들어난다. 그래서 유대교 랍비들은 하나님께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식일에 일하신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온 우주가 하나님의 집이기 때문에, 집 안에서 집 밖으로 물건을 옮기시지는 않으셨다는 논리를 대면서.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어떤 식으로든(안식일 법을 어기는 것은 아니라고 인정해주는) 일을 하시는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유대교 랍비들도 인정하는 것이었다. 여기에 근거하여 예수님은 치유 사역을 정당화하셨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에도 일하셔야 하는 것은 온 세상이 망겨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태초에 창조를 마치신 후에는 완성되어서 쉬셨지만, 죄로 인하여 세상이 망가져버렸다. 사람을 살리고 세상을 회복시켜야 할 일을 하셔야 하는 상태가 된 것이다.

5:18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13: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대답에 외려 더 반발하였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자신의 아버지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표현이 신성모독적 발언이 되는 것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자기 자신도 하나님과 똑같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아들이 사람인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이다. 결국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것은 자신이 하나님과 똑같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그렇게 부를 때에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사랑하시고 보호하신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의미를 넘어서서 하나님이 안식일에 일을 하셔도 안식일 법을 어긴 것이 아닌 것처럼, 자신도 안식일 법을 어긴 것이 아니라고 하는 의미에서 자신을 하나님과 같은 수준에 올려놓은 것으로 간주되었다. 신성모독의 죄이며, 유대인들이 가장 혐오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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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1.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하니 그들이 묻되 너에게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고침을 받은 사람은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박해하게 된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2. ἔλεγον οὖν οἱ Ἰουδαῖοι τῷ τεθεραπευμένῳ Σάββατόν ἐστιν καὶ οὐκ ἔξεστίν σοι ἆραι τὸν κράβαττον[]
  3.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스스로 삼가서 안식일에 짐을 지고 예루살렘 문으로 들어오지 말며 안식일에 너희 집에서 짐을 내지 말며 어떤 일이라도 하지 말고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명령함 같이 안식일을 거룩히 할지어다[]
  4. ὃς δὲ ἀπεκρίθη αὐτοῖς Ὁ ποιήσας με ὑγιῆ ἐκεῖνός μοι εἶπεν Ἆρον τὸν κράβαττόν σου καὶ περιπάτει[]
  5. ἠρώτησαν οὖν αὐτόν Τίς ἐστιν ὁ ἄνθρωπος ὁ εἰπών σοι Ἆρον καὶ περιπάτει[]
  6. ὁ δὲ ἰαθεὶς οὐκ ᾔδει τίς ἐστιν ὁ γὰρ Ἰησοῦς ἐξένευσεν ὄχλου ὄντος ἐν τῷ τόπῳ[]
  7. μετὰ ταῦτα εὑρίσκει αὐτὸν ὁ Ἰησοῦς ἐν τῷ ἱερῷ καὶ εἶπεν αὐτῷ Ἴδε ὑγιὴς γέγονας μηκέτι ἁμάρτανε ἵνα μὴ χεῖρόν σοί τι γένηται[]
  8.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9. ἀπῆλθεν ὁ ἄνθρωπος καὶ ἀνήγγειλεν τοῖς Ἰουδαίοις ὅτι Ἰησοῦς ἐστιν ὁ ποιήσας αὐτὸν ὑγιῆ[]
  10. καὶ διὰ τοῦτο ἐδίωκον οἱ Ἰουδαῖοι τὸν Ἰησοῦν ὅτι ταῦτα ἐποίει ἐν σαββάτῳ[]
  11. ὁ δὲ ἀπεκρίνατο αὐτοῖς Ὁ πατήρ μου ἕως ἄρτι ἐργάζεται κἀγὼ ἐργάζομαι[]
  12.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13. διὰ τοῦτο οὖν μᾶλλον ἐζήτουν αὐτὸν οἱ Ἰουδαῖοι ἀποκτεῖναι ὅτι οὐ μόνον ἔλυε τὸ σάββατον ἀλλὰ καὶ πατέρα ἴδιον ἔλεγε τὸν θεόν ἴσον ἑαυτὸν ποιῶν τῷ θεῷ[]

요한복음 강좌 25

38년된 병자(5:1-9)1

5:1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2: 예수님이 유대인의 명절에(아마도 유월절일 수도 있지만 다른 명절일 수도 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다. 이것은 요한복음에 기록된 5번의 예루살렘 방문 이야기 중 두번째 것이다.

5:2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3: 예수님께서 표적을 보여주신 곳은 예루살렘 성전 북쪽에 위치한 양의 문 근처에 있는 베데스다 연못이었다. 예전에는 예루살렘 양문 근처에 연못이 없어서, 이 구절의 말씀은 그저 상징적인 것으로만 생각되곤 했었다. 하지만 19세기에 독일의 고고학자인 Conrad Schick가 이 연못을 발굴했다. 또한 그 이후로 1964년에 더 많은 고고학적 조사가 이루어졌다. 그래서 실제로 베데스다 연못이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 연못의 특징은 두개의 연못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주랑(행각)이 5개 있었다는 점이었다. 네 귀퉁이에 하나씩, 그리고 두 연못을 나누는 지점에 하나가 있었다.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는 “자비의 집”이란 뜻이다. 그런데 다른 사본에서는 “벧짜다(감람유의 집) 또는 “벧사이다”(어부의 집)으로 된 것도 있다.

요한복음은 이 베데스다 연못이 있다고 현재형 동사(ἔστιν)를 사용하여 표현하였다. 이 말은 요한복음이 기록될 당시에 베데스다가 현존했다는 뜻이다. 아마도 A.D.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될 때, 이 연못도 같이 사라졌었을 것이므로, 이러한 요한복음의 표현은 요한복음이 아마도 A.D.70년 이전에 쓰여진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5:3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4: 그 곳에 많은 병자들이 누워 있었다.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라는 표현은 대부분의 사본에서는 없는 표현으로, 5:4의 구절과 더불어 아마도 후대에 첨가된 설명처럼 보인다.

5: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5: 천사들이 가끔식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는데, 가장 먼저 들어가는 사람은 무슨 병에 걸렸든지 낫는다는 것은 그 당시 그 주변에 몰려들었던 사람들이 믿었던 헛소문이었다. 물이 움직이는 현상이 간혹 있었을런지는 모른다. 그러나 설령 있었다 할지라도 그래서 병이 나을 수는 없다. 병은 그렇게 낫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은 그걸 신앙처럼 믿었다. 이 부분은 5:3의 첨가부분처럼 대부분의 사본에는 없는 문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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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6: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여기서 소개된다. 38년 동안 병을 앓아온 한 사람이 있었다.

5: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7: 예수님은 그 사람을 보자마자 그 사람의 병이 오래 되었다는 것을 아셨다. 이미 예수님께서는 여러 곳에서 모든 것을 꿰뚫어보실 수 있었던 것을 보여준 바 있다(나다나엘의 경우, 1:47-48; 사마리아 여인의 경우, 4:16-19). 물론 여기서의 앎은 예수님만이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누구라도 그 사람의 상태를 보고서는 아주 병이 오래 되었을 것이라고 짐작할만 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셨다. 이렇게 질문한 것은 예수님께서 그 사람의 마음의 소원이 무엇인지를 모르기에 던진 질문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 사람에게 의지를 확인하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변화를 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변화를 거부하는 마음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5: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8: 38년 된 병자는 자신이 낫지못하는 이유를 설명하였다. “주여”라고 보른 것은 예수님에 대한 어떤 믿음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이 표현은 일반적으로 어떤 사람을 지칭할 수 있는 표현이었다. 물이 움직일 때 제일 먼저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아무리 해도 제일 먼저 연못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런데 왜 그곳에 있는가? 나을 가능성이 없는데? 사실 그 사람은 낫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곳에 있는 것, 지금의 상태에 익숙해져 있어서, 거기에 있는 것이다. 딱히 이곳을 벗어나야 할 다른 특별한 이유를 찾을 수 없기 때문에 그곳에 있는 것이다. 38년된 병자는 에수님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는 어떤 특별한 믿음을 보여준 것은 아니다. 그냥 자신의 상황을 설명한 것뿐이다. 주님은 기적을 베풀 때, 때때로 믿음을 요구하셨지만, 항상 믿음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다. 주님의 일방적인 역사로 기적이 일어났다.

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9: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는 것은 그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혼자의 힘으로는 걸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가 일어나 자리를 들고 갈 수 있다고 하신다.

5: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10: 그가 일어서서 자리를 들고 걸어간 것은 믿음이 필요한 것이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자신이 나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행한 것일 수도 있다. 몸의 변화를 느꼈기에 그는 일어설 수 있었을 수도 있고, 아직 변화를 느끼지 못한 상태에서 믿음으로 일어서는 시도를 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 날은 안식일이었다. 안식일에 병자를 고친 이 일에 대하여 시비를 걸어올 것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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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1.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2. Μετὰ ταῦτα ἦν ἑορτὴ τῶν Ἰουδαίων καὶ ἀνέβη Ἰησοῦς εἰς Ἱεροσόλυμα[]
  3. ἔστιν δὲ ἐν τοῖς Ἱεροσολύμοις ἐπὶ τῇ προβατικῇ κολυμβήθρα ἡ ἐπιλεγομένη Ἑβραϊστὶ Βηθεσδά πέντε στοὰς ἔχουσα[]
  4. ἐν ταύταις κατέκειτο ⸀πλῆθος τῶν ἀσθενούντων τυφλῶν χωλῶν ξηρῶν ἐκδεχομένων τὴν τοῦ ὕδατος κίνησιν[]
  5. Ἄγγελος γὰρ κατὰ καιρὸν κατέβαινεν ἐν τῇ κολυμβήθρᾳ καὶ ἐτάρασσεν τὸ ὕδωρ ὁ οὖν πρῶτος ἐμβὰς μετὰ τὴν ταραχὴν τοῦ ὕδατος ὑγιὴς ἐγίνετο ᾧ δήποτε κατείχετο νοσήματι[]
  6. ἦν δέ τις ἄνθρωπος ἐκεῖ τριάκοντα ὀκτὼ ἔτη ἔχων ἐν τῇ ἀσθενείᾳ αὐτοῦ[]
  7. τοῦτον ἰδὼν ὁ Ἰησοῦς κατακείμενον καὶ γνοὺς ὅτι πολὺν ἤδη χρόνον ἔχει λέγει αὐτῷ Θέλεις ὑγιὴς γενέσθαι[]
  8. ἀπεκρίθη αὐτῷ ὁ ἀσθενῶν Κύριε ἄνθρωπον οὐκ ἔχω ἵνα ὅταν ταραχθῇ τὸ ὕδωρ βάλῃ με εἰς τὴν κολυμβήθραν ἐν ᾧ δὲ ἔρχομαι ἐγὼ ἄλλος πρὸ ἐμοῦ καταβαίνει[]
  9. λέγει αὐτῷ ὁ Ἰησοῦς Ἔγειρε ἆρον τὸν κράβαττόν σου καὶ περιπάτει[]
  10. καὶ εὐθέως ἐγένετο ὑγιὴς ὁ ἄνθρωπος καὶ ἦρε τὸν κράβαττον αὐτοῦ καὶ περιεπάτει Ἦν δὲ σάββατον ἐν ἐκείνῃ τῇ ἡμέρᾳ[]

요한복음 강좌 24

사마리아 동네의 회심(4:39-42)1

4:39 여자의 말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2: 사마리아 여인이 동네 사람들에게 가서 말한 것은 내가 이만큼 성공했으니 나처럼 해보라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방식으로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신 사마리아 여인은 자신이 경험한 예수님을 소개했다. 그 예수님은 자신의 죄를 모두 알고 있는 분이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여인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신 분이었다. 가장 타락했던 사람조차 은혜를 받을 수 있었다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소망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믿을 수 있게 되었다. 인생의 실패자들도 충분히 증언할 수 있는 것이 예수님이다.

4:40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시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3: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머무시기를 요청하였다. 당시의 사람들은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음식을 베풀고 잠자리를 제공해주는 미풍양속이 있었다. 그것은 긍휼의 표시였다. 그런데 그분이 위대한 분이라고 한다면 더더욱 함께 머무시기를 요청하는 것이 당연하다. 아브라함이 천사들을 대접했던 것과 비슷하다. 적대감을 가지고 쫓아내는 것과는 정 반대의 행위이다. 사실 사마리아인과 유대인들 사이에는 반목이 있었던 관계였기에 이러한 초대는 놀라운 반전이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요청에 따랐다. 예수님은 유대인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구주이기 때문이다(4:42).

4:41 예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가 더욱 많아4: 예수님이 사마리아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 날씨 이야기만 하고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예수님을 통해서 영적인 진리를 발견하게 되었을 것이고, 결국 그들은 더욱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이 확신하게 되었다.

4:42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5: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들이 여인의 증언 때문만이 아니라,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듣고 온 세상의 구주이심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세상의 구주”(ὁ σωτὴρ τοῦ κόσμου)라는 표현은 요일 4:146과 여기에서 나온다. 이 말의 의미는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사마리아인들도 포함하는 구주라는 의미일 수 있다. 또는 로마의 황제가 아닌 예수님이 세상의 구주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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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하의 아들(4:43-54)7

4:43 이틀이 지나매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며8: 예수님은 사마리아에 이틀을 더 머무셨다. 이 사실로 보아, 반드시 사마리아를 통과해야만 했던 것은 빨리 갈릴리로 가야만 했던 사유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아니면 아무리 급했던 사유가 있었더라도, 사마리아 사람들이 복음을 잘 받아들이는 황금기에 그들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틀을 머무셨을 수도 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는 딤전 4:2의 말씀처럼, 다른 급한 사정이 있어서 때가 아닌 것 같아도, 가장 중요한 목적 앞에서는 다른 목적들은 뒤로 미룰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예수님은 이틀이 지난 후에 다시 사마리아를 떠나 갈릴리 원래 목적지로 향했다.

4:44 친히 증언하시기를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 하시고9: 선지자는 고향에서는 대접을 잘 받지도 못하고 인정받지도 못한다는 세간의 경구를 인용하셨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에서, 그리고 가족과 친척들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될 것임을 미리 언급하셨다.

4:45 갈릴리에 이르시매 갈릴리인들이 그를 영접하니 이는 자기들도 명절에 갔다가 예수께서 명절중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음이더라10: 그러나 갈릴리에서도 갈릴리 사람들이 예수님을 환영하였다. 이들도 유워절 기간에 예루살렘에 갔다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하신 일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들의 믿음은 온전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기적을 보면서도 거부하는 반응을 보였던 사람들에 비하면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4:46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의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11: 예수님은 가나로 가셨다. 그곳은 물로 포도주를 만들었던 곳이었다. “왕의 신하”(τις βασιλικὸς)라고 번역된 말은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왕에게 속한 어떤 사람”을 뜻한다. 왕에게 속해 있으니 신하일 것이어서 이렇게 번역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사역하실 때에는 유다, 사마리아, 이두메는 빌라도 총독이 다스리고 있었고, 갈릴리 바다 동쪽 지역인 시리아 남서쪽은 헤롯 빌립이 다스리고 있었지만, 갈릴리 지역과 베뢰아 지역은 헤롯 안티바스가 다스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왕의 신하라는 것은 헤롯 안티바스의 신하를 가리킨다. 그의 아들이 가버나움에 살고 있었는데 병이 들었다.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사역 본거지였던 곳으로(눅 4:23), 가나에서부터는 약 27km 정도 동쪽에 있는 갈릴리 바다 북쪽에 위치한 해안 도시이다.

4:47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로 오셨다는 것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하니 그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12: 왕의 신하가 예수님에게 아들의 병을 고쳐달라고 간청하게 된 것은 예수님에게 능력이 있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왕의 신하도 유대인이어서 명절에 예루살렘에 갔다가 기적을 목격했을 수도 있고, 가나의 혼인 잔치의 기적을 보았거나 들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갈릴리 사람들로부터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을 수도 있다. 정확하게 그가 어떻게 예수님에 대해서 알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듣자 청하였다. 아들은 거의 죽을 상황에 있었고, 그 어느 곳에서도 소망을 발견할 수 없었다.

4:4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13: 예수님께서는 왕의 신하에게 말씀하셨다. 한글 성경에서는 “그에게”(πρὸς αὐτόν)라는 말이 번역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왕의 신하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닌,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씀을 하셨다. 표적(σημεῖα)은 영적인 것을 나타내는 징조나 신호를 의미하고 기사(τέρατα)는 신기하고 놀라운 것을 의미하는데, 신약에서는 이 두 단어가 항상 같이 사용되었다(마 24:24; 막 13:22; 요 4:48; 행 2:19, 22, 43; 4:30; 5:12; 6:8; 7:36; 14:3; 5:12, 19; 고후 12:12; 살후 2:9; 히 2:4). 특히 고후 12;12; 살후 2:9; 히 2:9에서는 능력(δύναμις)이란 말과 함께 사용되었다. 이것은 각각 다른 것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것을 나타낸다. 사람들은 언제나 표적을 보여주지 않으면 믿으려하지 않는 것을 지적하시는 말씀이다.

4:49 신하가 이르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14: 신하는 간절했기 때문에 당혹스러운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도 자신의 간청을 계속해야 했다. 죽기 전에 주님께서 손을 써 주실 것을 간청하였다. 어쩌면 신하의 이 대답은 주님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표현이다. 아직 신하는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않았다. 하지만 믿었다. 물론 이 믿음은 위기 상황이었기에 나온 것일 수 있다. 아직 여유가 많았다면, 예수님이 능력을 베풀 메시야라는 증거를 보여달라고 했었겠지만, 지금은 다급하기에 그런 요구를 할 상황이 아니었다. 믿음을 고백해야만 했다.

4:50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 하시니 그 사람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15: 너무나도 미약한 믿음이지만, 예수님은 그것을 귀하게 보셨다. 그리고 “가라. 네 아들이 살아있다”고 선언하셨다. 신하는 직접 와 달라고 요구하였지만, 예수님은 굳이 가지 않아도 고칠 수 있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시공을 초월하시기 때문이다. 말로만 선언하는 것을 신하는 믿었다. 눈으로 본 것이 아니지만, 보지 않고 믿었다. 처음에 예수님에게 간청할 때보다도 믿음이 발전되었다.

4:51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아 있다 하거늘16: 가는 길에 자신의 종들을 만났다. 가나는 비교적 높은 지역에 있었고, 가버나움은 해안지대에 있었으나, 내려가는 길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종들은 주인에게 아들에 대해 알려주었다.

4:52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일곱 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17: 그 소년이 낫기 시작한 때는 어제 일곱시(즉, 오늘날의 시간으로는 오후 1시) 경이었다. 가나에서부터 가버나움까지 가는 길은 대략 27km로 오후1시 정도에 출발했더라면, 저녁 때면 도착했을 수 있었을 것인데 왜 그 다음 날이나 되어서야 종들을 만난 것일까? 이런 질문은 현대인들만이 할 수 있는 질문이다. 저녁이 되면, 그 다음 날이다. 그러니까, 왕의 신하는 바로 가나에서 출발하여 가버나움을 향해 갔을 것이다. 그러다가 저녁 때 가버나움 집에 다다랐을 때, 종들을 만났을 것이다. 그때 물어보면 “아까 오후 1시쯤부터 상태가 좋아졌습니다”라고 대답했을 것인데, 그런 표현이 당시의 표현으로는 “어제 7시에 열기가 떨어졌습니다”가 된다.

4:53 그의 아버지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 말씀하신 그 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안이 다 믿으니라18: 왕의 신하는 오후1시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시간이었음을 기억해내었다. 그냥 우연히 나았겠지 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그는 예수님을 믿었고, 그의 온 집안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4:54 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에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니라19: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친 것은 가나의 혼인잔치에서의 표적에 이어서 두번째 표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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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자의 말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시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예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가 더욱 많아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
  2. Ἐκ δὲ τῆς πόλεως ἐκείνης πολλοὶ ἐπίστευσαν εἰς αὐτὸν τῶν Σαμαριτῶν διὰ τὸν λόγον τῆς γυναικὸς μαρτυρούσης ὅτι Εἶπέν μοι πάντα ἃ ἐποίησα[]
  3. ὡς οὖν ἦλθον πρὸς αὐτὸν οἱ Σαμαρῖται ἠρώτων αὐτὸν μεῖναι παρ’ αὐτοῖς καὶ ἔμεινεν ἐκεῖ δύο ἡμέρας[]
  4. καὶ πολλῷ πλείους ἐπίστευσαν διὰ τὸν λόγον αὐτοῦ[]
  5. τῇ τε γυναικὶ ἔλεγον ὅτι Οὐκέτι διὰ τὴν σὴν λαλιὰν πιστεύομεν αὐτοὶ γὰρ ἀκηκόαμεν καὶ οἴδαμεν ὅτι οὗτός ἐστιν ἀληθῶς ὁ σωτὴρ τοῦ κόσμου[]
  6.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언하노니[]
  7. 이틀이 지나매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며 친히 증언하시기를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 하시고 갈릴리에 이르시매 갈릴리인들이 그를 영접하니 이는 자기들도 명절에 갔다가 예수께서 명절중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음이더라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의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로 오셨다는 것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하니 그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신하가 이르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 하시니 그 사람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아 있다 하거늘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일곱 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그의 아버지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 말씀하신 그 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안이 다 믿으니라 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에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니라[]
  8. Μετὰ δὲ τὰς δύο ἡμέρας ἐξῆλθεν ἐκεῖθεν εἰς τὴν Γαλιλαίαν[]
  9. αὐτὸς γὰρ Ἰησοῦς ἐμαρτύρησεν ὅτι προφήτης ἐν τῇ ἰδίᾳ πατρίδι τιμὴν οὐκ ἔχει[]
  10. ὅτε οὖν ἦλθεν εἰς τὴν Γαλιλαίαν ἐδέξαντο αὐτὸν οἱ Γαλιλαῖοι πάντα ἑωρακότες ὅσα ἐποίησεν ἐν Ἱεροσολύμοις ἐν τῇ ἑορτῇ καὶ αὐτοὶ γὰρ ἦλθον εἰς τὴν ἑορτήν[]
  11. Ἦλθεν οὖν πάλιν εἰς τὴν Κανὰ τῆς Γαλιλαίας ὅπου ἐποίησεν τὸ ὕδωρ οἶνον καὶ ἦν τις βασιλικὸς οὗ ὁ υἱὸς ἠσθένει ἐν Καφαρναούμ[]
  12. οὗτος ἀκούσας ὅτι Ἰησοῦς ἥκει ἐκ τῆς Ἰουδαίας εἰς τὴν Γαλιλαίαν ἀπῆλθεν πρὸς αὐτὸν καὶ ἠρώτα ἵνα καταβῇ καὶ ἰάσηται αὐτοῦ τὸν υἱόν ἤμελλεν γὰρ ἀποθνῄσκειν[]
  13. εἶπεν οὖν ὁ Ἰησοῦς πρὸς αὐτόν Ἐὰν μὴ σημεῖα καὶ τέρατα ἴδητε οὐ μὴ πιστεύσητε[]
  14. λέγει πρὸς αὐτὸν ὁ βασιλικός Κύριε κατάβηθι πρὶν ἀποθανεῖν τὸ παιδίον μου[]
  15. λέγει αὐτῷ ὁ Ἰησοῦς Πορεύου· ὁ υἱός σου ζῇ ἐπίστευσεν ὁ ἄνθρωπος τῷ λόγῳ ὃν εἶπεν αὐτῷ ὁ Ἰησοῦς καὶ ἐπορεύετο[]
  16. ἤδη δὲ αὐτοῦ καταβαίνοντος οἱ δοῦλοι αὐτοῦ ὑπήντησαν αὐτῷ λέγοντες ὅτι ὁ παῖς αὐτοῦ ζῇ[]
  17. ἐπύθετο οὖν τὴν ὥραν παρ’ αὐτῶν ἐν ᾗ κομψότερον ἔσχεν εἶπαν οὖν αὐτῷ ὅτι Ἐχθὲς ὥραν ἑβδόμην ἀφῆκεν αὐτὸν ὁ πυρετός[]
  18. ἔγνω οὖν ὁ πατὴρ ὅτι ἐκείνῃ τῇ ὥρᾳ ἐν ᾗ εἶπεν αὐτῷ ὁ Ἰησοῦς Ὁ υἱός σου ζῇ καὶ ἐπίστευσεν αὐτὸς καὶ ἡ οἰκία αὐτοῦ ὅλη[]
  19. τοῦτο δὲ πάλιν δεύτερον σημεῖον ἐποίησεν ὁ Ἰησοῦς ἐλθὼν ἐκ τῆς Ἰουδαίας εἰς τὴν Γαλιλαίαν[]

요한복음 강좌 23

나의 양식(4:27-38)1

4:27 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그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자가 없더라2: 제자들은 먹을 것을 구하여 돌아왔다. 서로 반목하는 사이이지만, 그래도 먹을 것을 그들에게서 사거나 얻을 수는 있었을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일반적으로 말을 서로 섞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님께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와 관련하여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헬라어 “티”(τί)는 “무엇”으로 번역할 수도 있고, “어찌하여”로 번역할 수도 있다. 따라서 한글 성경처럼 번역해도 되고, “무엇을 구하십니까? 무엇을 말씀하십니까?”로 번역해도 된다. 이 질문은 예수님께서 이 여인과의 대화를 하시는 것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이다. 하지만 감히 물어보지 않았다.

4:28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3: 물동이를 버려두고 여자가 마을로 간 것은 그가 메시야를 발견한 기쁨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에 다른 아무것도 신경쓸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추측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베드로와 안드레는 주님을 만난 것이 너무나도 기뻐서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따른 바 있다(마 4:204. 사마리아 여인이 제자들의 부정적인 태도를 느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5. 이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물을 긷는 것이 그의 목적이었다. 하지만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그 목적이 무의미해졌다. 더 시급한 것이 생겼기 때문이다. 사마리아 여인은 자기가 메시야를 만난 것을 동네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원하였다. 기쁨은 밖으로 표출해야만 완성되기 때문이다.6

4:29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7: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에 대하여 소개했다. 예수님을 소개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완벽하게 거룩하고 깨끗한 사람이 아니다. 이 세상에 그런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예수님을 소개할 수 있는 사람은 예수님을 만난 사람이다. 특별히 자신의 죄를 용서함받은 사람이 예수님을 소개할 수 있다. “나와 같은 죄인도 용서를 받았는데, 당신도 예수님에게 간다면 죄의 용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메시지가 예수님을 소개할 수 있는 메시지이다. 사마리아 여인은 자신의 마을에 들어가서, 바로 이 점을 이야기했다. 자신이 행한 일은 옳지 않은 일이었다. 예수님께서 그 모든 일을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했다는 것은, 단순히 여인의 사정을 꿰뚫어보는 능력이 있는 분을 만났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 여인의 죄를 용서하고 용납하고 받아주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마리아 여인처럼 아주 큰 죄를 저지른 사람이라도 예수님께서 용납하셨다면, 다른 사람들도 용납될 수 있다. 이게 복음의 핵심이다. 사마리아 여인은 메시야를 만났다고 소개한다.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라는 표현은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에 대해서 아직 확신하지 못하고 있음을 뜻하지 않는다. 이러한 표현은 수사학적인 표현일 뿐이다. “이 사람이 그리스도가 아니라면, 누가 그리스도란 말인가?”라는 확신에 찬 표현이다.

4:30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8: 사마리아 여인의 증언은 힘이 있었다. 만일 사마리아 여인이 바리새인들이 하는 방식처럼 “나처럼 거룩하게 살아야 천국에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면, 콧방귀를 뀌며 “너나 잘하세요” 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마리아 여인은 나같은 죄인도 용서하신 예수님을 소개했기에, 모두가 예수님께로 나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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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1 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이르되 랍비여 잡수소서9: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드실 것을 권하였다.

4:32 이르시되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10: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알지 못하는 다른 종류의 양식이 있다고 대답하셨다. 분명 예수님이 물질적인 양식을 드신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 영혼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은 주님께 가장 소중한 일이었다. 물론 그것은 육적인 양식은 아니었기에 육신의 배를 불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과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가져온 양식을 전혀 드시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다. 요한복음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밝히고 있지 않을 뿐이다.

4:33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하니11: 제자들은 예수님의 뜻밖에 대답에 어리둥절하였다. 자기들 말고 도대체 누가 양식을 가져다 주었는지 궁금할 뿐이었다. 적어도 이곳에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4: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12: 하지만 예수님은 육적인 양식을 의미한 것이 아니라, 영적인 양식을 의미한 것이었다. 주님을 보내신 이는 곳 하나님을 의미하며, 주님의 양식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온전히 성취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영혼을 살리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었다(6:3813; 9:414; 17:415). 어쩌면 바로 그 목적을 위하여 일부러 사마리아를 통과해야만 했었을 수도 있다(4:4).

4:35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16: 이 일이 일어난 시기는 아직 추수할 때가 아니었다. 아마도 3,4월 경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데(유월절 직후였으므로), 그렇다면 추수가 이루어지는 가을까지는 4개월이나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눈을 들어 밭을 보라고 하셨다. 여기서 말하는 밭은 진짜 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밭을 의미하는 것이며, 결국 사람들이 영적인 상태가 어떠한가를 보라는 의미이다. 영적인 의미에서 추수할 때가 가까이 왔다는 듯이다. 이미 첫 열매는 거두었다. 사마리아 여인이 첫 열매인데, 그 이후로 더 많은 열매들을 거두게 될 것이 자명하다.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황금물결을 이루었다고 표현할 텐데, 이스라엘에서는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다고 표현한다. 사마리아 여인 한 사람만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 전체가 회심하는 놀라운 수확이 다가오고 있다.

종종 “추수”는 마지막날에 있을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한다. 하지만 추수가 언제나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여기에서는 마지막날의 심판을 의미하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이 회개하여 돌아오는 것을 의미한다.

4:36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17: 거두는 자는 추수에 동원되어 추수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들은 자신들이 받아야 할 대가를 이미 선지급받았다면, 열매를 모으는 일은 지체될 일이 없다. 지금 영적인 차원도 비슷하다. 일반적으로 심판의 상황에서 추수꾼들은 천사들을 가리킨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추수꾼이 구체적으로 누구를 가리키는 것도 아니고 삯을 받았다는 것도 어떤 상황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전체적으로 추수의 준비가 다 되었다는 것이 영적인 측면에서 볼 때 수많은 영적인 수확이 기다리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영생에 이르는 열매”라고 번역을 했지만, “이르는”이라는 표현은 원어에는 없다. “영생을 향한 열매”(?) “영생에게로의 열매”(?) 등으로 번역이 가능하다.

뿌리는 자는 누구를 가리키고 거두는 자는 누구를 가리키는가를 질문하면 답이 없다.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할 것이라는 말은 영적인 수확이 이루어지는 것이 기쁜 일이라는 것을 나타낼 뿐이다.

4:37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18: 심는 자가 누구인지를 규명하려는 노력은 의미 없는 일이다. 예를 들어, 세례 요한, 구약의 선지자 등을 뿌리는 자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지만, 그렇게 1:1로 누구인지를 밝히려는 노력은 무의미하다. 여기서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는 수고하지 않은 것을 거둔다는 점이다. 지금은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는데, 그렇게 수많은 회심자들이 생기는 것은 우리의 수고에 따른 것이 아닌 하나님의 은총임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는 말은 유대 사회에서 회자되는 하나의 격언처럼, 노력하지 않았으나 운이 좋게 수확을 하는 것을 빗대는 표현이다. 그런데 영적인 면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4:38 내가 너희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19: 예수님의 제자들이 참여하게 될 놀라운 결과는 그들만의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바울 사도는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고전 3:6-8)고 하였다. 모든 사람들이 수고하는데, 그 가운데 어떤 사람은 거두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나, 많은 열매를 거두었다고 교만할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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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그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자가 없더라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이르되 랍비여 잡수소서 이르시되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내가 너희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
  2. Καὶ ἐπὶ τούτῳ ἦλθαν οἱ μαθηταὶ αὐτοῦ καὶ ἐθαύμαζον ὅτι μετὰ γυναικὸς ἐλάλει οὐδεὶς μέντοι εἶπεν Τί ζητεῖς ἢ τί λαλεῖς μετ’ αὐτῆς[]
  3. ἀφῆκεν οὖν τὴν ὑδρίαν αὐτῆς ἡ γυνὴ καὶ ἀπῆλθεν εἰς τὴν πόλιν καὶ λέγει τοῖς ἀνθρώποις[]
  4.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5. Contra Colin G. Kruse, John. 배용덕 역, 『요한복음』(서울: CLC, 2013), 202[]
  6. C. S. Lewis, Reflections on the Psalms. 이종태 역, 『시편사색』 (서울: 홍성사, 2004), 136.[]
  7. Δεῦτε ἴδετε ἄνθρωπον ὃς εἶπέ μοι πάντα ὅσα ἐποίησα μήτι οὗτός ἐστιν ὁ χριστός[]
  8. ἐξῆλθον ἐκ τῆς πόλεως καὶ ἤρχοντο πρὸς αὐτόν[]
  9. Ἐν τῷ μεταξὺ ἠρώτων αὐτὸν οἱ μαθηταὶ λέγοντες Ῥαββί φάγε[]
  10. ὁ δὲ εἶπεν αὐτοῖς Ἐγὼ βρῶσιν ἔχω φαγεῖν ἣν ὑμεῖς οὐκ οἴδατε[]
  11. ἔλεγον οὖν οἱ μαθηταὶ πρὸς ἀλλήλους Μή τις ἤνεγκεν αὐτῷ φαγεῖν[]
  12. λέγει αὐτοῖς ὁ Ἰησοῦς Ἐμὸν βρῶμά ἐστιν ἵνα ποιήσω τὸ θέλημα τοῦ πέμψαντός με καὶ τελειώσω αὐτοῦ τὸ ἔργον[]
  13.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14.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15.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16. οὐχ ὑμεῖς λέγετε ὅτι Ἔτι τετράμηνός ἐστιν καὶ ὁ θερισμὸς ἔρχεται ἰδοὺ λέγω ὑμῖν ἐπάρατε τοὺς ὀφθαλμοὺς ὑμῶν καὶ θεάσασθε τὰς χώρας ὅτι λευκαί εἰσιν πρὸς θερισμόν ἤδη[]
  17. ὁ θερίζων μισθὸν λαμβάνει καὶ συνάγει καρπὸν εἰς ζωὴν αἰώνιον ἵνα ὁ σπείρων ὁμοῦ χαίρῃ καὶ ὁ θερίζων[]
  18. ἐν γὰρ τούτῳ ὁ λόγος ἐστὶν ἀληθινὸς ὅτι Ἄλλος ἐστὶν ὁ σπείρων καὶ ἄλλος ὁ θερίζων[]
  19. ἐγὼ ἀπέστειλα ὑμᾶς θερίζειν ὃ οὐχ ὑμεῖς κεκοπιάκατε ἄλλοι κεκοπιάκασιν, καὶ ὑμεῖς εἰς τὸν κόπον αὐτῶν εἰσεληλύθατ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