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넴 여인의 땅 (왕하 8:1-6)

우리가 로마서의 말씀을 살펴보다가 오랜만에 열왕기하의 말씀을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어떤 한 여인이 등장하는데요. 이 여인은 어떤 이름이 무엇일까요? 혹시 아십니까? 수넴 여인이라고 불리는 이 여인은 이 사람의 이름이 수넴이 아니고, 수넴이라고 하는 것은 이 여인이 살고 있는 지방의 이름입니다. 이 여인의 이름이 밝혀져 있지는 않습니다. 이 여인의 이름이 밝혀져 있지는 않지만, 이 여인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헌신은 아주 유명합니다.

이 당시에 선지자가 누구였냐면 엘리사 선지자였는데요. 엘리사 선지자는 전국을 다니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사명을 잘 감당해 나가고 있었는데, 하루는 수넴이라고 하는 마을에 이 엘리사 선지자가 오니까, 이 수넴 여인이 엘리사 선지자를 초대했습니다. 음식을 대접하면서 정말 극진히 대접하게 되었는데요. 엘리사 선지자는 이 수넴 여인의 대접을 받았는데, 이것이 너무나도 좋았던 것 같아요. 마음이 편했던 것 같아요. 사랑으로 극진하게 대접하는 이 여인의 대접을 받은 것이 너무나도 편하게 느껴졌는지, 이 엘리사 선지자는 수넴이라고 하는 마을에 갈 때마다, 다른 집에 들른 것이 아니라, 늘 이 집을 들렀습니다. 그리고 이 집에 들러서 음식을 대접받고, 또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면서 그렇게 사역을 하니까, 이 수넴 여인이 하루는 남편에게 이야기를 한 겁니다. “여보, 이 선지자가 우리 집에 늘 와서 늘 음식을 대접받고 하는데, 기왕이면 우리 선지자를 위해서 우리 집에 방 하나를 마련했으면 좋겠다”고, 조그마한 방 하나를 마련해서 그 안에 침상도 넣고 책상도 의자도 초대도 놔두어서, 선지자가 오면 마음 편하게 여기서 주무시고, 마음 편하게 여기를 근거지로 해서, 사역을 할 수 있도록 그렇게 아주 친절하게 배려를 했던 여인이 수넴 여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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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사 선지자로서는 정말 그 수넴 여인이 정말 고마웠던 것 같아요. 이렇게 극진히 대접하는 여인을 보면서 너무나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는지, 수넴 여인의 가정에게 내가 해줄 일이 뭐가 있을까를 물었습니다. 계하시를 통해서 이 가정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물었습니다. 엘리사는 당시에 왕하고도 잘 연결이 되고 있었고, 군사령관도 잘 연결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혹시 이 집 안에 필요한 일이 있다고 한다면, 내가 왕에게 이야기해서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군사령관에게 이야기해서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물어봤는데, 게하시라고 하는 엘리사의 사환이 대답하기를 다른 것은 부족함이 없는데 이 집안에는 아기가 없습니다. 아들이 없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이 엘리사 선지자는 하나님 앞에 아마 기도했겠죠. 그리고 말을 했습니다. 내년 이맘때가 되면 이 가정에 아기가 태어날 거라고 하는 놀라운 기쁨의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 이야기를 들은 수넴 여인은 믿지를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나이가 이미 상당히 오래되어서 아기를 낳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엘리사 선지자의 말대로, 이 가정 가운데는 아기가 태어나게 되었던 그런 기적을 체험한 가정이 바로 수넴 여인입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자라다가 죽었습니다. 하루는 머리가 아프다고 하더니만 쓰러져서 그 즉시 죽어버리고 만 겁니다. 그러니까 이 여인의 마음이 너무나도 아프죠. 너무나도 슬프죠. 그런데 이 여인이 엘리사 선지자에게 하소연을 하는 겁니다. 내가 언제 아들을 달라고 했느냐고 하면서 그렇게 울부짖을 때에, 엘리사 선지자가 즉시 다가와서 이 아이에게 올라가서 몸을 따뜻하게 하고, 이 아이를 위하여 기도하는 가운데 이 아이가 다시 살아나는 엄청난 기적의 역사가 있게 되었습니다.

이 여인은 정말 하나님을 사랑했던 사람이었고, 주의 일에 동참하기를 원했던 것이고, 또 하나님의 사람 선지자를 극진히 대접했던 사람이었는데, 결국 이 여인은 그로 인해서 더 많은 축복을 받았던 여인이었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번은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0장 41절 42절의 말씀에 이런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오.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오.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어쩌면 예수님의 이 말씀에 대한 생생한 증언이 증인이 바로 이 여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구약 성경에 또 다른 여인이 나오는데, 사르밧 과부라고 하는 여인이 등장합니다. 이 사르밧 과부는, 엘리야 선지자가 와서 나에게 떡을 달라고 했을 때, 마지막 남은 떡 하나, 그거 먹고 죽겠다고 했던, 그 마지막 떡 하나를 엘리야 선지자에게 대접한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으로 인해서 죽었던 것이 아니라, 기근이 있는 3년 반 동안에 엘리야와 함께 있으면서, 그 기간을 무사히 넘기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한 여인이 사르밧 과부라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엘리야 선지자가 수면 여인에게 이스라엘 땅에 기근이 있을 거라고 하는 사실을 미리 알려주는 이야기에서부터 시작을 합니다. 엘리사 선지자는 이 수넴 여인을 굉장히 아꼈던 것이고,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가운데 이스라엘 땅에 기근이 있을 거라고 하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수넴 여인에게 말하기를, 이 땅에 기근이 있을 것이니까, 그것도 1년 정도, 2년 정도의 기근이 아니라, 7년 동안의 긴 기간 동안 기근이 있을 것이니까, 이곳을 피하여 안전한 곳에 있다가, 음식이 있는 곳에 있다가 돌아오라고 이야기를 해주어서, 이 수넴 여인이 블레셋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땅으로 피신했다가 7년 만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한번 지도를 한번 봤으면 좋겠는데요.

수넴이라고 하는 마을은 갈릴리 호수 아래쪽에 있는, 다시 말하자면 서남쪽에 있는 조그마한 마을이 수넴이라고 하는 마을입니다. 그 마을에 살던 이 여인이 7년 기근을 앞두고 어디로 피했냐면, 지금의 가자(Gaza)지구라고 할 수 있는 블레셋 지방으로 피신하게 됐습니다. 그 거리가 아마도 한 170km, 한 180km 정도, 많으면 한 200km 정도 떨어진 곳까지 이주하게 되었는데요. 지금은 자동차로 가면 2~3시간이면 충분히 가겠지만, 그 당시에는 마차를 타고 3일이나 4일 정도 가야만 하는 먼 지역에 가서, 거기서 7년 동안 이주민으로 살다가 낯선 이방인으로 살다가, 이제 7년 기근이 마치고 돌아오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 가운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7년 뒤에 다시 고향에 돌아오게 되었을 때, 이제는 기근이 끝났으니까, 집에 돌아오기만 하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될 수 있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그 집 안을 비우고 있었을 때에, 그 집과 토지를 무단 점거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7년 만에 다시 돌아와서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집과 이 토지가 내 거니까 비우고 나가주세요. 그러면 그 사람들이 “아이고 죄송합니다. 몰랐습니다.” 하면서 나갈까요? 안 나갈까요? 안 나갈 겁니다. 칠 년 동안 점거하고 있었던 이 사람들이 마치 자신의 것인 양, 그 땅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무단 점거해서 그동안 이익을 가지고 먹고 있었는데, 그걸 순순히 내줄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오늘 같으면, 땅 문서 보여주면서, 등기부 등본 보여주면서, 내 거니까 나가달라고 그렇게 요구할 수 있었겠지만, 당시에는 그런 제도가 없었던 겁니다. 자신의 땅이라고 하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겁니다. 아무런 방법이 없는 그 상황 가운데에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고대 세계서에서는 힘이 정의였죠. 힘을 가지고 있는 자가 차지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힘이 있다고 한다면 밀어버릴 텐데 힘도 없습니다.

창세기 26장에 보면 이삭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한 번은 이삭이 우물을 팠습니다. 그런데 우물을 파는데, 물이 나오는 겁니다. 당시에 우물을 갖는 것은 정말 아주 귀중한 일인데요. 그 우물을 파게 되자, 주변 사람들이 몰려와서, “이 땅 내 거야. 나가.” 그러는 겁니다. 하지만 이삭은 힘이 없으니까, 그냥 그 사람들이 나가라고 하니까, 순순히 도망가야만 했습니다. 떼거지로 몰려와서, “이 땅이 내 거니까, 나가”라고 하는 그 사람들 앞에서 더 이상 어떻게 항거하지도 못하고, 힘이 없어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가 창세기 26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수넴 여인도 마찬가지인데요. 이 땅을 다시 되찾고 싶다고 한다면, 힘을 가지고 밀어붙여야 되는데, 힘도 없고 연약한 이 여인이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요? 지금 이 사람들을 자신의 것을 찾으려고 한다고 한다면, 이 여인이 알 수 있었던 것이 있다고 한다면 무엇일까요? 그것은 기도겠죠. 내 힘으로 할 수 없을 때, 내 능력으로 할 수 없을 때, 우리 성도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있다고 한다면, 기도일 겁니다. 아니 내가 할 수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것이 우리 성도들의 바른 자세라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을 가만히 읽어보면, 수넴 여인이 기도했다고 하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습니다. 나옵니까? 안 나옵니까? 안 나와요. 대신 수넴 여인이 무엇을 합니까? 왕을 찾아가는 것, 왕에게로 가는 겁니다. 그리고 왕에게 나아가서 판결을 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죠.

우리가 이 성경 말씀을 읽으면서, 이런 모습을 볼 때 약간 당혹스럽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기대하기로는 지금 이런 상황이 되었다고 한다면,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간구했더니,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셨더라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기대하고 있습니다. 성경이라고 한다면 그렇게 쓰여져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성경에 보면 우리를 향해서 늘 권고하시는 말씀이,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하라. 그게 성경의 가르침 아닙니까? 그런데 이 수넴 여인이 한 일을 가만히 보면, 기도했다고 하는 이야기는 기록되어 있지 않은 채, 이 수넴 여인은 왕에게로 나아가서, 왕에게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하는 이야기가 기록돼 있습니다.

왜 성경에서 수넴 여인의 이야기를 이렇게 풀어가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그 이유를 말씀드리자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우리가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종종 우리 가운데는 잘못되고 왜곡된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은 주장하기를 “우리가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하기 위해서는, 모든 인간적인 방법은 다 버려야만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는 모든 인간적인 방법들을 다 포기해야 하나님을 의지하는 거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하나님 내 병을 고쳐주세요. 하나님께서 내 병을 고쳐달라고 그렇게 기도하기를 원한다고 한다면, 그리고 정말 하나님을 믿는다고 한다면, 정말 기도의 힘을 믿는다고 한다면, 그렇다고 한다면, 약을 끊어버려라. 병원에 가지 마라. 의사에게 가지 마라. 오로지 이 모든 것들은 인간적인 방법은 다 끊어버리고, 오로지 하나님 앞에만 철저하게 의지하고 하나님만을 믿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이라고,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그럴 듯한 말처럼 보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이 우리가 정말 무엇을 의지하는가 정말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이 아닌 이 세상의 방법을 의지하고 있는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모든 인간적인 방법을 다 버려야 한다고 하는 주장은 순 엉터리 주장일 뿐입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악한 태도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들에게 여러 가지 해결할 수 있는 힘을 주셨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들을 다 주셨어요. 우리가 물질을 얻고 싶다면, 우리가 물질을 얻고 싶다고 한다면, 일하면 돼요. 일해서 물질을 얻도록 하나님께서 방법을 만들어주셨어요. 만일 우리가 건강해지기를 원한다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되나요? 잘 먹어야 돼요 밥이 보약이라고 하잖아요? 잘 먹고 운동하고, 또 의사와 약을 이용해서, 우리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해야 되는 것이죠. 만일 문제 해결을 해야 한다고 한다면, 왕이라고 하는 제도도 잘 이용해야 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한다고 하는 말씀은, 하나님의 은총이 없어도, 내가 내 힘과 능력으로 살 수 있다고 하는 그런 교만한 마음을 버리라고 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한다고 하는 것은, 내 힘과 능력을 아예 쓰지 말라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내 힘과 능력을 쓰더라도, 내 힘과 능력 때문에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 때문에 산다고 하는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한다고 하는 그 이야기는, 내가 하나님의 은총이 없어도, 내가 약을 잘 먹었기 때문에, 의사를 잘 만났기 때문에 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건강할 수 있고, 회복할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을 인정하라는 것이죠. 내가 칼과 창으로 전쟁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도우셨기 때문에 전쟁에서 이긴다고 하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고,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이 참된 신앙인 것이지, 이 세상의 모든 방법들을 다 버리라고 하는 그런 의미의 말씀은 아닙니다.

수넴 여인이 지금 이 순간에 왕을 찾아간 것은 잘한 겁니까? 잘못한 겁니까? 예. 잘한 거예요. 왕은 그 일을 위해서 존재하는 거에요. 왕의 제도를 주신 이유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하나님께서 왕의 제도를 주신 겁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 상황이 된다고 한다면, 할 수 있는 일들을 해야 하는 것이고,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사용해야 되는 거예요.

이 수넴 여인이 기도했을까요? 기도하지 않았을까요? 기도 했을 거예요. 기도 안 했을 거라고 생각합니까? 기도했을 거라고 생각합니까? 기도했을 거예요. 왜? 이 여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여인이었으니까. 이 여인은 하나님의 선지자를 도와주는 여인이었어요. 정말 주의 일에 믿음이 있는 여인이었어요. 그러니까 이 여인은 매순간순간 할 때마다 기도했을 것이 분명해요. 믿음의 여인이니까요.

그런데 왜 성경은 기도했다고 하는 이야기를 생략하고 있을까요? 생략하고 있는 이유는, 기도했다고 말이 하는 말이 없다는 것은 기도를 안 했기 때문에 없는 것이 아니라, 만일 기도를 안 했다고 한다면, 이 여인은 기도를 하지 않고, 왕에게만 달려갔더라 그렇게 써놨겠죠. 기도했다고 하는 이야기를 생략하고 있는 이유는, 성경은 우리의 호기심을 다 알려주는 책이 아니고, 모든 정보를 일일이 다 기록하고 있는 책이 아니고, 주제를 강조하기 위한 것들만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열왕기하 8장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 하면, 이 여인의 믿음이 얼마나 위대했는가, 이 여인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 기도했는가, 이 여인이 어떻게 열심히 했는가, 그것을 강조하는 것이 이 성경 본문의 주안점이 아니라, 이 성경에서의 강조점이 무엇이냐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이 여인을 배려하시고, 또 섭리하시고, 어떻게 도와주셨는가를 강조하기 위한, 하나님에게 초점을 맞춘 기록이기 때문에, 이 여인이 무엇을 했는가에 대해서는 아주 간략하게만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주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 여인이 왕에게 찾아가기만 하면, 이 여인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찾아간다고 해서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이 땅이 내 땅이라고 하는 걸 무엇으로 증명합니까? 증명이 안 돼요. 왕에게 나가서, “왕이여, 이 땅이 내 땅입니다.” 아무리 울면서 아무리 간절하게 이야기해봤자, 지금 점거하고 있는 그 사람들이 나와서 하는 말이, “이 땅은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왔고, 7년 동안 우리가 어떻게 이 땅을 만들었고, 어떻게 우리가 집을 수리했고 하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것”을 쭉 이야기하면서, 이 땅이 우리 땅이고, 이 토지가 우리의 토지라고 이야기하면, 누구의 이야기를 듣겠어요? 부재지주의 이야기를 듣겠습니까?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겠습니까? 왕에게 나아간다고 한들,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닌 겁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해결될 수 없는데도, 나아가서, “나가봤자. 소용없구나” 하면서 포기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한 줄기 희망을 가지고, 그 왕 앞에 나아가서 그 이야기를 했는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곳에서 역사하고 계셨습니다. 때마침 왕이 누구랑 같이 있었냐면,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하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왕은 게하시에게 묻습니다. 엘리사 선지자가 무슨 일들을 했었는지를 물었고, 게하시는 엘리사의 사적들에 대해서 왕에게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엘리사가 이런 일도 했고, 저런 일도 했고, 하는 가운데, “왕이시여, 그런데 이 엘리사 선지자가 했던 일 가운데 하나는 아기를 낳지 못한 집에 아기가 태어날 수 있도록 예언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 아이가 죽었는데 그 아이를 다시 살려내는 일도 했다”고 하면서 엘리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바로 그 순간에 그 여인이 나온겁니다. 다른 때가 아닌 바로 그 순간에, 수넴 여인이 왕에게 나와서, 내 땅을 돌려달라고 간청하고 있는 그 이야기를 들을 때, 게하시가 그 여인을 보면서 말합니다. “저 여인이 바로 그 여인입니다.”

결국 왕은 더 이상의 증거가 필요하지 않고, 이 여인에게 그 여인의 집과 땅을 다시 돌려주라고 말했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7년 동안 얻었던 소출들까지 다 돌려주라고 하는 엄청난 결과를 얻게 되었던 것이죠.

하나님이 도우셨습니까? 우연히 일어난 일입니까? 하나님이 도우셨어요.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없다면 일어날 수 없는 것인데, 하필이면 이 여인이 왕 앞에 나아가는 그 순간에 왕과 게하시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증언해 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미리미리 준비해 주시고, 미리미리 작정해 주셔서, 이 여인을 회복시켜주는 그런 엄청난 기적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도록, 수넴 여인을 사랑해 주시고 배려해 주신 줄로 믿습니다.

이런 비슷한 이야기가 에스더서에도 나옵니다. 에스더서에 보면 하만이라고 하는 사람이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계략을 짭니다. 그런데 왕이 잠이 오지 않아서, 무엇을 할까 하다가 그 옛날 역사 역대 기록을 왕이 살펴보게 된 겁니다. 예전에 무슨 일들이 있었는가를 살펴보는 가운데, 왕을 암살하려고 했던 그 음모를 발견한 모르드개가 이 사실을 왕에게 알려서 결국 그 암살 기도를 무산시킨 이야기를 읽게 되었습니다. 왕의 마음 가운데 이 모르드개에게 무슨 상을 내렸을까 물었더니, 거기 있는 신하들이 대답을 합니다. “아직 상을 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 왕이 잠이 오지 않아서 읽었던 그 부분이 하필이면 모르드개가 공헌을 했던 그 이야기를 읽게 되었고, 그 이야기를 읽은 왕이 모르드개를 다시 영웅처럼 높이게 되는 그런 엄청난 일을 함으로써, 하만이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했던 계략을 무참히 깨어버린 일들이 일어나게 됐는데, 그것이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요 은총이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면서 우리는 종종 우리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을 만납니다. 다 내 맘대로 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내가 최선을 다했는데 실패해버리는 일들이 일어나는 겁니다. 속상하죠. 때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는 겁니다. 답답하죠.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려운 문제들이 내 앞을 가로막고 있을 때, 커다란 장벽이 내 앞에 있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그냥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울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해요.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능력을 주셨어요.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셨어요. 할 수가 있는 일들을 해나가야 하는 겁니다. 할 수 없는 것, 너무 감당하기 어려운 큰 것을 할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시작하는 겁니다.

만일 우리 가정이 다시 행복해지기를 원한다고 한다면, 삭막한 우리 가정 가운데 정말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자꾸만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면, 조그마한 것부터 시작해 보세요.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부터 시작하고, 고맙다고 이야기하는 것부터 시작하고, 우리 자녀들을 매일매일 한 번씩 안아주는 것부터 시작하는 거에요. 우리 아이들의 마음이 정말 상해서, 아버지 어머니에게 마음을 닫아버리고 있다고 한다면, 다가가서 “내가 너를 사랑한다” 말해주고, 그의 손을 한 번씩 붙잡아주고,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해 나가야 할 겁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사실 저하고 제 아내는 굉장히 많이 싸웠어요. 정말 힘들고 어렵게 살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까? 조그만 거 하나부터 바꿔 나가기 시작한 거에요. 요즘 꾸준히 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뭐냐면, 저는 나갈 때마다 아내에게 다가가서 안아주고, 그러고 쪽 하고 나와요. 하루 종일 행복해요. 우리 아이들의 마음이 닫혀 있다고 한다면, 학교 가기 전에 아이의 손을 붙잡고, “내가 너 사랑한다” 말 한마디 해주는거에요. 할 수 있는 걸로 시작해요. 제 아내의 이야기를 들었더니, 우리 장모님께서는 잠자리에 누우면, 제 아내의 손에다가 손가락으로 글씨를 써줬대요. 내가 뭐라고 쓰는지 알아맞춰봐라. 글씨를 써주는데 “사. 랑. 해”를 써줘요. 할 수 있는 게 많아요.

건강해지길 원한다고 한다면, 건강해질 수 있는 일을 이제 시작하는 거예요. 조금 지금 조그마한 일을 시작하면, 0.1cm의 그 차이를 지금 만들면, 오랜 기간 뒤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하는 것을 발견하게 돼요. 남편과 아내 사이에 관계가 서먹서먹해졌다고 한다면, 그냥 그렇게 울고만 있지 말고, 기도만 하고 있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되는 거예요.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 이야기해주고, 손을 잡아주고, 우리 가정이 서로 행복해지기 위한 노력을 해야 되는 거죠.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제가 2021년에 살을 8kg 뺐습니다. 똑같아 보이겠지만. 한 번은 제가 저울에 올라갔더니 너무 끔찍한 거예요. 몸무게가. 그래서 하나님 앞에 기도만 하지 않았어요. “하나님 살 좀 빼주세요.” 기도만 한 기도만 하고 앉아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날부터 제 삶을 약간 바꿨어요. 크게 바꾼 게 아니고 약간 바꿨어요. 집에서 교회 올 때 걸어서 오고, 1,200보. 교회에서 집으로 갈 때, 1,200보 걸어서 갔어요. 그게 무슨 도움이 될까요? 1,200보가 무슨 도움이 될까 했는데, 작년 말에 저울 위에 올라가 봤더니, 8kg가 빠져 있는 거에요. 만일 약을 먹으라고 했다고 한다면, 굶어서 빼라고 했다고 한다면, 그 기간이 끝나면 다시 원상복귀할 겁니다. 그런데 01cm 정도의 차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지속적으로 해나가는 데, 턱선이 살아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런데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십시오. 온 세상을 주관하시는 우리 하나님께서 여호와 이래로 준비해 주시지 않는다고 한다면, 아무리 이 여인이 왕 앞에 나아간 될 문제가 해결이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도와주지 않는다고 한다면, 우리의 문제가 해결이 되겠습니까? 시편 127편 1절의 말씀에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군에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라고 말씀하셨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은 하면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되는 거에요.

엎드려 기도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고 나아간다면, 하나님의 약속이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7장 11절의 말씀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그렇잖아요? 우리들의 마음이 우리 새끼들에게 제일 좋은 거 주고 싶은 게 부모의 마음인 것처럼,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를 원하시고 계셔요.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하는 사실을 믿고, 우리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기 때문에, 죄악에 빠진 우리를 건지시기 위하여 하나밖에 없는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심으로 말미암아, 피흘리게 하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신 그 하나님, 아들을 내어주기까지 사랑해 주신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그 무엇을 해줄 수 없는 것이 있겠어요? 로마서 8장 32절의 말씀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시겠느냐?” 약속하고 있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고, 아무리 큰 장막이 장벽이 우리들 앞에 놓여져 있고, 아무리 큰 수렁이 우리들 앞에 놓여져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해나가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신뢰하며 엎드리는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하게 누리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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