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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잠 3:1-10)

하나님의 명령을 잘 지키면 정말 장수하게 되는 것일까? 그런데 왜 우리가 만나는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가?

지혜의 유익 (잠 2:1-22) +++ 징계하시는 하나님 (잠 3:11-26)

잠언서 3장의 말씀을 읽었는데요. 오늘 읽은 말씀 가운데서 1절 2절 말씀에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네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켜라. 그리하면 그것이 내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솔로몬 왕이 기록한 글이 바로 이 잠언서의 말씀인데요.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나의 명령을 지키라’고 권고하고 있는데, 여기서 말하고 있는 나의 법, 나의 명령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을 가리키는 말이겠습니까? 나의 말, 나의 법, 나의 명령,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표현이겠습니까? 

1번. 솔로몬이 자녀들에게 해주는 그런 말이니까, 솔로몬이 하는 모든 말을 의미할 것이다. 
2번.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할 것이다. 
3번. 잠언서에 기록되어 있는 이 말씀을 의미할 것이다. 

무엇이 맞다고 생각이 되십니까? 한번 확인 한번 해볼까요? 1번. ‘솔로몬이 하는 모든 아버지가 하는 그 모든 말을 자녀들이 지켜야만 한다’라고 생각되시면, 한번 손 들어주십시오. 2번. ‘성경 말씀을 의미한다.’ 3번. ‘잠언서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을 의미한다’ 틀려도 좋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아마도 잠언서에 기록되어 있는 그 말씀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1차적으로 볼 수가 있겠고, 더 나아가서 그것을 확대해서 해석하자고 한다면, 2번 성경 말씀을 지키고 성경 말씀을 잊어버리지 말고 따르라고 하는 그 말씀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번은 아닐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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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이 부모로서 자녀들에게 하는 그 말을 자녀들이 무조건 다 따라야 된다고 하는 그런 의미에서 이 말씀을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이 듭니다. 우리 유교적인 생각에서는 장유유서가 있고, 또한 부모님의 말씀이라고 한다면 자녀들이 무조건 순종해야 된다고 하는 개념이 유교의 개념 가운데 들어 있습니다마는, 그러니까 지금 이 잠언서 3장 1절 2절 말씀을 통해서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내 명령을 네 마음으로 잘 지키라”라고 말할 때, 여기서 말하는 나의 법 나의 명령이라고 하는 것은, 그러니까 ‘아버지가 하는 말이면 무조건 다 따라서 해야 된다.’ ‘아버지가 하는 말씀은 무조건 진리니 질문 던지지 말고 무조건 부모님이 하시는 말씀은 전적으로 순종해야 된다’고 하는 그런 의미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 부모님들이 자녀들에게 해주시는 그런 말씀은 참 자녀를 사랑해서 하는 말이기도 하고, 그리고 먼저 인생을 산 선배로서 지혜가 담긴 말을 자녀들에게 해주기는 하지만, 부모님들이 하는 그 말씀이 오류가 없는 진리는 아닙니다. ‘부모의 말씀이 항상 옳으냐?’ 하면, 옳지 않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늘 실수가 많고, 잘못 판단하기 쉬워서, 부모의 생각 가운데 내가 자녀들에게 유익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서 한 말이고, 우리 자녀가 이렇게 가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해서 하는 말이지만, 안타깝게도 부모가 틀렸을 가능성도 충분히 많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제한적인 정보를 가지고 생각하는 것이고, 자신이 살아온 그 경험에 따라서 이야기하는 것이고, 그리고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보아서 이야기하는 것이지,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다 안다거나, 뭔가 우리가 완전히 모든 것을 다 잘 아는 그런 아주 현명하고 뛰어난 사람이기 때문에, 자녀들에게 말을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안타깝게도 부모님이 완벽하고 쉴 수가 없는 그런 말씀을 자녀들에게 해줄 수 있는 위치에 있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차라리 그냥 자녀들로 하여금 ‘너희들이 하고 싶은 거 해’라고 했었다고 한다고 하면, 그 자녀들이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고 정말 재미있게 모든 것을 다 잘할 수 있는 그런 무한한 가능성을 펼쳐 보일 수가 있었겠지만, 부모님이 ‘너 안 돼.’ ‘너 연예계로 가면 안 돼.’ ‘너 공부해야 돼.’ ‘너 좋은 대학 가야 돼.’ 하면서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판단에 의해서, 이것이 정말 자녀들에게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 모든 말들이 사실은 자녀들에게 유익이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녀들의 앞길을 가로막고 자녀들이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을 가로막는 그런 잘못된 결과를 가져올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판단은 언제나 불완전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의 말씀 1절 2절에서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지키라. 내 아들아, 나의 명령을 지키라”라고 이야기했을 때, 이 말은 ‘자녀들은 무조건 부모님의 말을 잘 들어야만 한다’ ‘부모가 말하는 것이라고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 다 들어야 된다’고 하는 그런 유교적인 관점에서 이런 말씀을 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이 듭니다.

물론 자녀들은 부모님을 존중해야 하는 것이고, 자녀들이 부모님에게 존중하고 부모님을 존중하고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지만, 부모님의 말씀이 전부 다 다 진리는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1절 2절에서 “나의 법을 지키고, 나의 명령을 지키라”라고 하는 이 말씀은 바로 이 잠언서에 기록하고 있는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록된 이 말씀을 잘 지키라’고 하는 그런 의미이고, 더 확대 해석하자고 한다면 성경 말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들려주신 그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잘 듣고 지키고 순종해야 된다’고 하는 의미에서 이 말씀을 한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우리 부모님들이 자녀들에게 완고하시면 안 됩니다. 지금까지 우리 부모님들의 자녀들을 양육하면서 자녀들 앞에서 완고한 모습을 보이고, 고집을 피우기도 하고, 그리고 한 번 내뱉은 말은 취소도 하지 않고, 자기가 틀렸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부모의 권위를 세우려고 그렇게 하는 경향들이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의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이고, 이미 자녀들은 알고 있어요. 먼저 우리 부모님들이 깨달아야 하는 것이고, 그래서 자녀들 앞에서 만일 내가 잘못 판단하거나 내가 실수하거나 내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다고 한다면, 오히려 무조건 너는 내 말을 들어야 한다고 그렇게 윽박지르고 부모의 말에 무조건 순종해야 된다고 강압적으로 말할 것이 아니라,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 자녀들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해 주시고, 때로는 우리의 잘못을 자녀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실 때도 있는데, 그러한 상황 가운데서 우리의 잘못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면, 나의 부족한 점이 있다고 한다면, 솔직하게 우리 자녀들 앞에서 나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옳습니다. ‘내가 이 문제에서는 생각이 짧았구나’ ‘내가 이 문제에 있어서는 내가 잘못 판단했구나’ ‘내가 내 분노를 참지 못하고 쉽게 화를 냈구나’ 나의 잘못과 나의 실수를 인정하면서, 부모가 완벽한 인생이 아니라, 너무나도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 그 인간 가운데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 앞서 완벽할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죄인일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고 하는 사실을 나누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자녀들과 나누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13장 1절 2절에서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은 유교적인 개념으로 부모의 말이면 무조건 다 들으라고 하는 그런 의미에서 이 말씀을 해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내 말이 아니라 나의 말이라고 표현하고 있고 나의 법 나의 명령이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이것은 부모가 하는 무조건 모든 말을 다 이해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라고 하는 그 말씀으로 우리가 분명하게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지 않고 우리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오늘 2절 말씀에서는 ‘네가 장수하게 될 것이고, 너에게 평강이 더해지게 될 것이라’고 약속해 놓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순종하면, 하나님의 명령 하나님의 법을 잘 지키게 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게 될 것인가? ‘너는 장수와 하게 될 것이다.’ ‘단명하는 것이 아니라, 장수하게 될 것이고 그리고 평강이 주어질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것 같지 않다고 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장수의 복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오늘 말씀 가운데서 기록하고 있고, 평강이 주어질 것이라고 약속해 놓고 있는데, 그런데 우리가 실제로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가운데 현실이 ‘정말 그런가?’라고 생각한다면, 그렇지 않다고 느껴진다고 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십계명 가운데서도 제5계명에 보면, ‘네 부모를 공경하라’ 말씀하시면서 그렇게 부모를 공경하는 자에게는 ‘내가 주는 이 땅에서 너희의 생명이 길 것이라’고 약속해 주고 계셨는데, 그런데 실제로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과 장수하는 것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상관관계가 있는 것 같아요? 없는 것 같아요? 없는 것 같아요!

하나님께서는. 부모를 공경하면 내가 준 이 땅에서 너희의 생명이 장수하게 될 것이라고 그렇게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셨는데 실제로 우리가 느끼는 느낌은 무엇이냐 하면 부모를 공경하는 것과 장수하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하는데 우리의 고민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 1절 2절에서도 해 주신 말씀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냐 하면, 나의 말을 지키고 내 법을 지키고, 내 명령을 지킨다고 한다면, 너희가 장수하게 될 것이고, 너희의 해가 길게 될 것이고, 너희가 평안을 얻게 될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는데, ‘하나님, 정말 그 말이 맞는 말입니까? 정말 그렇습니까?’라고 우리가 질문을 던지고 싶게 되는 겁니다. 장수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다 효자인가? ‘효자들은 모두가 다 장수했는가?’라고 질문을 던지면, 그런 것 같지 않아요. 효자처럼 정말 부모를 공경하는 그런 사람인데, 단명하는 경우도 너무나도 많이 있고, ‘저 사람은 왜 귀신이 안 잡아가나?’ 할 정도로 정말 사악하고, 나쁜 사람인데 오래오래 장수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우리 주변의 허다한 모습을 보게 되면서, 도대체 ‘하나님께서 이런 장수의 약속을 해 주시고 평강의 약속을 해 주신 것이 정말 맞는 겁니까?’ ‘정말 성경 말씀이 맞는 겁니까?’라고 하는 그런 질문이 우리들의 속마음 가운데서 떠오르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셨는데, 왜 실제 우리들의 삶 가운데는 그런 식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요? 효도를 하고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이 장수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잘 지키면 평강이 있을 것이고, 장수할 것이라고, 오늘 잠언서에서 말씀해 주고 있는데,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더 단명하기도 하고, 그런 사람들이 더 고난을 당하기도 하고, 어려움을 겪는 모습들을 우리 주변에서 너무나도 많이 보기 때문에, 우리가 과연 ‘이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진리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겠습니까?’ ‘과연 하나님의 말씀이 맞는 것이 맞습니까?’라고 하는 그런 질문을 던져보게 되는 것은, 이것이 상관관계가 없다고 느껴지는 이유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인생이라고 하는 것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인생이 참 단순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공부 잘해라. 그러면 성공할 것이다. 그 말이 잘못된 말입니까? 맞는 말입니까? 전체적으로 보면 맞는 말이에요. 지금 학생 시절에 열심히 공부하고 최선을 다해서 학업에 열정적으로 정말 최선을 다한다고 하면 아마 그 사람이 잘 될 수 있는 것이 아마 그게 보편적인 의미에서 맞는 말일 겁니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모든 사람들을 다 조사해 보면 ‘정말 공부 잘한 사람들이 잘 사는가?’ 아니요! 공부 못한 아들이 더 잘 사는 모습들이 많고, 오히려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 더 떵떵거리면서 잘 사는 경우를 우리 주변에서 너무나도 많이 보게 되는데요. 왜 그렇습니까? 왜냐하면 우리의 인생이라고 하는 것이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느 한 기준만 가지고 판단하기가 어려운 게 인생이라고 하는 것이죠. 과연 이 사람이 부모를 공경했느냐? 공경하지 않았느냐? 이것만 만 가지고 그 인생을 판단할 수가 없고, 정말 공부를 열심히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 이것만 가지고 기준을 삼아서 그 사람의 인생을 판단할 수 없고, 우리의 인생이라고 하는 것은 어마어마한 복잡 다양한 요소들이 똘똘 뭉쳐 있는 정말 복잡한 것이 인생이기 때문에, 그 여러 가지 요소들이 다 어떤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수만 배로 달라지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달라질 수 있는 가능성들이 있기 때문에, 사실 어느 하나만 가지고 말할 수가 없는 겁니다.

우리 가운데는 종종 단순화해버리려고 하는 그런 실수들을 많이 합니다. 단순화의 실수 oversimplication 단순화시켜서 이해하려고 하는 거. 단순화시켜서 이해하는 예를 들어서, ‘어떻게 영국 교회가 멸망했는가?’라고 질문을 던지면 왜 멸망했겠어요? 왜 쇠퇴했겠어요? 엄청나게 많은 요인들이 있는 겁니다. 수많은 요인들이 있는 겁니다. 그런데 그 수많은 요인들 가운데서 내가 보기에 가장 기분 나쁜 거 하나만 딱 집어서 이것 때문에 영국 교회가 망했다고 하는 이야기를, 단순화시켜서 이야기하는 것이죠. 그렇게 단순화시켜서 이야기하면 사람들을 선동하기 좋고, 사람들을 정말 마음이 들끓게 만들 수는 있지만, 그것은 정확한 판단이 아닌 겁니다. 제가 종종 제 아내를 보고서 얘기해요. 제 아내가 아프다고 그러면은 ‘그것은 영양 부족이야’라고 이야기를 하는 거죠. 제가 볼 때 잘 안 먹어요. 그러니까 모든 건수만 생기면, 그건 영양 부족이라고 자꾸 이야기하는데, 사실은 단순화한 것이기 때문에 별로 설득력이 없는 말입니다.

우리 부모님들도 우리 자녀들을 자녀들을 훈육하면서 단순화시켜서 얘기하는 거죠. ‘내가 똑바로 앉아 있으라고 그랬지.’ ‘자세 똑바로 하라고 했지.’ ‘자세 똑바로 안 하니까, 네가 아픈 거야.’ 그렇게 얘기하면 그게 맞는 분석이냐면, 맞는 분석이 아니에요. 인생이라고 하는 것은 요인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닙니다. 엄청나게 복잡한 요인들이 얽히고설켜서, 인생이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그 복잡 다양한 여러 가지 요소들이 이래저래 다 영향을 미치고 서로 관계를 해서 결국 그렇게 해서 어떤 결과가 나오는 것이죠. 그런데 지금 이 성경 말씀에서 해주시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차원에서 이야기를 해주는 겁니다. 제5 계명에서는 무엇을 이야기하는 겁니까? 부모를 공경하는 차원의 측면에서만 진단해 주고 있는 것이죠. 단순화시켜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측면에 대해서만 이야기해서 본다고 한다면, 부모를 공경하는 자가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것보다는 장수할 가능성이 훨씬 더 많은 거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 자가 평강이 주어질 가능성이 훨씬 더 많은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장수할 가능성이 훨씬 더 많아지는 것이죠. 하지만 인생이 정말 이것이 증명될 수 있을 정도로 인과관계가 확실하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 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겁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어떻게 건강 관리를 해 왔는가? 마음의 스트레스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가? 사람들과의 관계를 우리가 어떻게 유지하고 있는가? 분노가 솟아올랐을 때, 어떻게 대처했는가? 내가 위험한 행동들을 하고 있는가? 하지 않는가? 등등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복잡하게 얽히고설켜서 그 다양한 요소들이 얽히고설켜서, 그래서 그 사람의 결과들이 때로는 이런 식으로 저런 식으로 나타나게 되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성경 말씀을 가지고 ‘정말 부모를 공경하기만 하면 무조건 다 장수하는가?’라고 질문을 던진다고 한다면, 사실은 그 요소만 작용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요소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과학적으로 정확한 데이터를 내기가 어렵고 현실적으로 우리가 느낄 때에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 말씀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게 좋은 것인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며 사는 것이 옳은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거부하며 사는 게 더 좋은 것인가?’라고 하는 그 질문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마음속에 지키며 그 말씀을 잘 지키는 것이 복된 길이요. 장수의 길이오. 행복의 길이라고 하는 사실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이고, 그것은 크게 보아서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가 분명히 새겨들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사실을 분명하게 기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절 4절 말씀에서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그리하면 내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인자와 진리를 어떻게 해야 하냐면, 목에 매기도 하고, 마음판에 새기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데요. 인자와 진리를 어떻게 목에 맵니까? 인자와 진리를 어떻게 마음판에 새길 수가 있습니까? 이것은 하나의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우리가 목걸이를 하고 있으면, 안 잃어버리듯이, 마스크 자꾸 잃어버리니까 마스크를 목에 걸 수 있는 목걸이가 나왔잖아요? 안경 자꾸 잃어버리니까, 안경을 목에 걸 수 있는 그 목걸이가 나왔잖아요? 이것처럼 인자와 진리도 우리가 자꾸 잊어버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된다고 하는 것을 이야기해 주는 것이고요. 뿐만 아니라 어떤 나무판 같은 것에 새겨놓으면, 우리가 그것을 보고 그것을 다시 기억할 수 있는 것처럼, 인자와 진리를 우리들의 심령의 마음판에 새겨서 잊지 말고 살라고 하는 의미에서 비유적인 표현을 해 주고 있습니다.

인자는 무엇입니까? 너그럽게 대하는 것이죠. 나에게 좀 잘못했다고 해서 화를 내고 때리고 폭력을 쓰면 쓰는 방향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 너그럽게 대우하는 것, 모질게 대하지 않고, 정말 인자와 긍휼로 대화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겠고요. 진리라고 하는 것은 사악한 무리와 더불어서 공의롭지 못하는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롭게 행동하는 것을 의미할 것인데요.

만일 이렇게 우리가 인자와 진리를 시행하게 된다고 한다면 어떤 결과가 있을 것인가? 잠언서의 말씀 가운데서, 그러면 너희가 은총을 받게 될 것이고 귀중히 여김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은총, 사람으로부터 은총,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귀중하게 여김을 받게 될 것입니다.

역시 이것도 마찬가지인데요. 좀 전에 1, 2절에서 살펴본 것처럼, 우리가 인자하게 대하면, 은총을 받는가? ‘우리가 진리 가운데 행하면, 사람들로부터 귀중히 여김을 받는가?’라고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고 한다면,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때가 너무나도 많을 겁니다. 이 세상에서 전혀 정반대로 움직이는 결과를 보게 되기도 할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악에게 복종하기도 하고, 또한 정말 우리가 인자하기보다는 쉽게 분노하고 화를 내며, 내가 화를 내지 아니하면 사람들이 내게 정말 자상하지 않는 반응을 보일 거라고 생각하면서 행동하게 될 텐데, 그런 상황 가운데서도 우리가 이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인내하고 믿음을 지켜 나아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5절부터 8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기록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를 윤택하게 하리라.” 5절에서 8절 말씀에서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내 명철, 내 지혜, 내가 똑똑하다는 것을, 나를 믿지 말고,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맞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라가는 것이 옳다’라고 하는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하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게 혹시 나를 망가뜨릴지도 몰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난 무시당할지도 몰라.’ 그런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순종하지 않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해서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면 가고, 하나님께서 멈추라고 하면 멈추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그대로 다 순종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은 부모님을 신뢰합니다. 그래서 부모님이 ‘가자’ 그러면, 따라갑니까? 안 따라갑니까? 따라갑니다. 부모님이 ‘가자’ 그러면 다 따라갑니다. 왜 그렇죠? 부모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강아지들도요 강아지는 주인을 신뢰합니다. 그래서 강아지들은 강아지들에게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게 뭐냐? 수의사가 텔레비전에 나와서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요. 그 수의사께서 하시는 말씀이, 무슨 얘기를 하냐면, 강아지들은요, 개들은요, ‘어디에 있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와 있는가’가 중요해요. 아무리 열악한 조건, 아무리 정말 힘든 조건이라고 할지라도, 주인과 함께 있을 수 있다고 한다면 강아지들은 그렇게 행복하대요. 왜? 주인을 신뢰하기 때문에! 우리 자녀들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자녀들은 부모님을 함께하면, 부모님과 함께 하면, 그것이 행복한 거예요. 어디든지 ‘가자’ 그러면 가는 겁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부모님을 믿지 못하게 되면, 부모님이 이렇게 말해도, 내가 듣지 못하게 되는 것이죠.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하는 것, 하나님을 인정하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그것은 내가 판단해 보았을 때, 이게 아닌데 할지라도 내 머리에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면, 하는 게 순종이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 됩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어요. ‘너는 내 본토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 그랬어요. 그런데 ‘하나님, 어디로 갑니까?’ 어디로 가는지 안 알려줘요. ‘그냥 가라.’ 근데, 그 순간에 아브라함은 어떻게 했다고 나옵니까? ‘갈 바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는지도 모르는 채, 그냥 하나님이 가라고 하니까 그냥 따라간 거예요. 따라가는 데, 그 길이 어떤 길이에요? 광야길을 가는 겁니다. 물이 없는 길을 가는 겁니다. 이대로 가다는 죽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되는 그 길을 걸어서, 하나님께서 광야의 길로 인도해서, 갈릴리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주시는 그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하나님이 가라고 했으니까, 따라가는 그것이 신뢰고,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 되는가?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보다는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질문을 던지는 겁니다. ‘네 원수를 사랑하고, 원수를 갚지 말고, 오히려 선으로 악을 갚으라’고 말씀하시면, ‘주님, 그렇게 살다가는 무시당하고 살아요.’ ‘그렇게 살다가는 이 세상에서 정말 손가락질당하면서 살아요. 어떻게 살 수 있어요>?’ 하면서, 그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그대로 못하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신뢰하고 인정한다고 하는 것은, 우리의 생각에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하나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대로 순종하는 거예요. 왜?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와 같은 분이시기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를 죽이기 위해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기 위해서 하시는 거라고 하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인정한다고 하면 순종하며 나아갈 수 있을 줄로 믿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머리가 커져서, 우리는 교만해서, 하나님을 인정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지혜로 그 순간을 모면하고, 우리들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우리들의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그런 순간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게 어쩌면 우리 인생들의 본성인 것 같아요.

그 옛날 삼국지에 보면 오나라에 육손이라고 하는 대도독이 임명이 된 적이 있습니다. 근데 그 육손이라고 하는 장수는 무명의 장수예요. 전쟁을 이끌어본 적도 없고, 나이가 많지도 않고, 그저 글이나 읽던 서생과 같은, 아주 젊은 사람을 오나라의 손권이 육손을 최고의 장수로, 대도독으로 임명을 한 겁니다. 그 밑에 수많은 장수들이 그 대도독의 육손의 말을 들으면서 전쟁을 해야 되는데, 이 사람들은 전쟁에 이골이 난 장수들이에요. 그런데 그 육손이라고 하는 최고의 우두머리가 명령하기를 너희는 유비와 싸울 때 ‘절대로 공격하지 말고 수비만 해라’ 수비만 하다가 져서 후퇴합니다. 두 번째 진영에서 또 수비만 하고, 절대 공격하지 말고 ‘수비만 하라’ 그러는데 또 수비만 하다가 쳐서 또 후퇴를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장수들이 그 육손을 보면서 ‘당신의 명령을 못 따르겠다’고 하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내가 전쟁에서 패하기만 할 수 없다고 하면서, 내가 나가서 싸워서 이기겠다고 하면서 거역을 합니다. 왜요? 내가 볼 때 저 젊은 장수가 전쟁을 모르는 것 같거든. 이렇게 맨날 지기만 하고 방어만 하고, 자꾸만 뒤로 물러가면, 우리나라가 정말 망할 것 같거든. 저 장수의 말대로 따라 하기만 했다가는 결국 우리는 완전히 패망할 것 같거든. 유비라고 하는 엄청난 장수가 우리를 공격해 오고, 계속해서 우리를 함락시키고 함락시키고 또 함락시키는데, 이렇게 수비만 하다가 물러나고 수비만 하고 후퇴하고 하면, 우리가 완전히 질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반발하고 나서는 겁니다. 당신 말 못 듣겠다고 나서는 겁니다. 그런데 손권이 그 육손을 그대로 인정하는 겁니다. 왕이 그를 인정하는 거죠. 왕이 그를 인정하니까, 결국에는 도망가고 도망가다가, 공격해오던 그 유비군이 지쳤을 때, 더위에 너무나도 열사병도 들고 여러 가지 병들이 나기 시작했을 때, 진영을 숲 속에 치게 되는 그 순간, 그때를 기다려서 화공법으로 완전히 몰살시키는 엄청난 대승을 거두는 그런 전공을 올립니다. 근데 우리가 하나님을 볼 때, 마치 그 육손의 부하들이 육손을 보는 것 같은 느낌으로 볼 때가 많아요. ‘하나님, 하나님 방법대로 살면 우리 망해요.’ 저러고 나쁜 놈이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데, 우리가 원수를 안 갚으면, 우리는 완전히 무시당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세상에서 먹고 삽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진리대로 살면 어떻게 우리가 이깁니까? 우리는 성공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 앞에 예배하면, 이 시간을 가지게 되면 장사도 못하고 공부도 못하고 이러다가는 다 뒤처지는데, 어떻게 이 세상에서 성공합니까? 하나님을 인정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방법을 인정하지 못하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 잠언서의 말씀이 무엇이냐면,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망하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의 말씀이 옳다고 하는 사실을 믿어야 되고, 인정하고, 하나님의 길이 맞다고 하는 사실을 인정하며 나아가면, 어떻게 되는가? 이것이 우리에게 양약이 되어 우리의 골수를 윤택하게 할 것이라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원하기는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범사에 인정하고 신뢰하며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9절 10절 말씀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하나님께 제물을 바치라고 하는 명령입니다. 처음 익은 열매가 있으면 하나님께 드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 것인가? 너희들의 창고가 찰 것이고, 너희들의 포도즙 틀이 넘칠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이 방법은 이 말씀은 어떤 말씀이냐 하면, 그러니까 우리가 부자 되는 비법을 여기서 표현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이 성경 말씀을 읽으면서, 이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을까?’의 비법을 여기서 찾으셨다고 한다면 성경 말씀을 잘못 읽는 것이 될 겁니다. 이 말씀은 그냥 세상에서 부자 되는 방법,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성공할 수 있는가?’ 그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왜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는가? 그 마음을 읽어야 됩니다. ‘왜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은 그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예물을 바치라고 말씀하시고, 첫 수산물을 바치라고 말씀하시는가?’에 대한 그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해야 되는 것인데요.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이 부족한 게 있어서 우리들로부터 재물을 받아야만, 그래야만 하나님이 먹고살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제물이 욕심이 나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give and take를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너희가 나한테 이만큼 주면, 나도 너희한테 이만큼 줄게.’ 마치 장사하듯이, 흥정하듯이, ‘너희가 나한테 이만큼 주면 내가 너한테 이만큼 줄게.’ 하는 식으로 하나님께서 흥정하시는 마음에서 이런 말씀을 해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해 주시는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너희가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고백하게 만들기 위해서, 이 말씀을 해 주시는 것이죠. 우리가 내 힘과 노력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음으로 고백하면서, 우리가 교만한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다고 하는 그런 믿음의 고백을 하게 만들기 위해서 이 말씀을 하시는 것인데, 그러한 믿음의 고백은 입술로만 하는 고백은 참된 고백이 아닌 것이죠. 왜냐하면 우리의 물질이 있는 곳에 우리의 마음이 있는 것이기에, 사실 우리의 물질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이 표현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사실은 그 고백은 헛된 고백일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래서 어느 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마음을 시험하기 위해서, 내 아들 내 독자 이삭을 나에게 바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죠. 왜? 아브라함이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아니면 하나님보다 아들을 더 사랑하는지를 확인해보고 싶어서 그런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 내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라고 하는 말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사랑한다고 하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아브라함은 이삭을 바치는 거예요. 바치는데 하나님께서 그 이삭을 받으시냐면, 그냥 살려주시는 것이죠.

예수님께 찾아온 한 젊은 관원은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겁니다. 너는 나 위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이 젊은 청년은 하나님보다 제물이 하나님인 거예요. 그래서 그 재물을 버리라고 했을 때, 이 청년은 그 재물을 포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인정하며, 하나님이 나의 참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인정하며 고백하라고 하는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 앞에 예물을 바칠 것을 명령하고 있고, 너희가 얻은 첫 수산물을 하나님께 바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인데,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산다고 하는 믿음의 고백을 표현하는 것인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은 손해가 아니라, 축복이며 풍성한 삶의 길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 때문에 우리가 산다고 하는 사실을 날마다 날마다 인정하며 사는 것이 중요할 줄로 믿습니다.

이것을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잘 살기 위한 수단과 방법으로만 전락시켜버린다면 안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하나입니다. ‘범사에 너의 하나님을 인정하라.’ 우리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주인이 되어 주시는, 하나님의 뜻대로 내 머리로 이해되지 않더라도 순종하며 사는 삶이 그것이 참된 축복의 삶임을 기억하면서, 믿음으로 승리해 나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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