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좌 25

요한복음 강좌 25

38년된 병자(5:1-9)1

5:1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2: 예수님이 유대인의 명절에(아마도 유월절일 수도 있지만 다른 명절일 수도 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다. 이것은 요한복음에 기록된 5번의 예루살렘 방문 이야기 중 두번째 것이다.

5:2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3: 예수님께서 표적을 보여주신 곳은 예루살렘 성전 북쪽에 위치한 양의 문 근처에 있는 베데스다 연못이었다. 예전에는 예루살렘 양문 근처에 연못이 없어서, 이 구절의 말씀은 그저 상징적인 것으로만 생각되곤 했었다. 하지만 19세기에 독일의 고고학자인 Conrad Schick가 이 연못을 발굴했다. 또한 그 이후로 1964년에 더 많은 고고학적 조사가 이루어졌다. 그래서 실제로 베데스다 연못이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 연못의 특징은 두개의 연못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주랑(행각)이 5개 있었다는 점이었다. 네 귀퉁이에 하나씩, 그리고 두 연못을 나누는 지점에 하나가 있었다.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는 “자비의 집”이란 뜻이다. 그런데 다른 사본에서는 “벧짜다(감람유의 집) 또는 “벧사이다”(어부의 집)으로 된 것도 있다.

요한복음은 이 베데스다 연못이 있다고 현재형 동사(ἔστιν)를 사용하여 표현하였다. 이 말은 요한복음이 기록될 당시에 베데스다가 현존했다는 뜻이다. 아마도 A.D.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될 때, 이 연못도 같이 사라졌었을 것이므로, 이러한 요한복음의 표현은 요한복음이 아마도 A.D.70년 이전에 쓰여진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5:3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4: 그 곳에 많은 병자들이 누워 있었다.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라는 표현은 대부분의 사본에서는 없는 표현으로, 5:4의 구절과 더불어 아마도 후대에 첨가된 설명처럼 보인다.

5: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5: 천사들이 가끔식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는데, 가장 먼저 들어가는 사람은 무슨 병에 걸렸든지 낫는다는 것은 그 당시 그 주변에 몰려들었던 사람들이 믿었던 헛소문이었다. 물이 움직이는 현상이 간혹 있었을런지는 모른다. 그러나 설령 있었다 할지라도 그래서 병이 나을 수는 없다. 병은 그렇게 낫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은 그걸 신앙처럼 믿었다. 이 부분은 5:3의 첨가부분처럼 대부분의 사본에는 없는 문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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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6: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여기서 소개된다. 38년 동안 병을 앓아온 한 사람이 있었다.

5: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7: 예수님은 그 사람을 보자마자 그 사람의 병이 오래 되었다는 것을 아셨다. 이미 예수님께서는 여러 곳에서 모든 것을 꿰뚫어보실 수 있었던 것을 보여준 바 있다(나다나엘의 경우, 1:47-48; 사마리아 여인의 경우, 4:16-19). 물론 여기서의 앎은 예수님만이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누구라도 그 사람의 상태를 보고서는 아주 병이 오래 되었을 것이라고 짐작할만 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셨다. 이렇게 질문한 것은 예수님께서 그 사람의 마음의 소원이 무엇인지를 모르기에 던진 질문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 사람에게 의지를 확인하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변화를 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변화를 거부하는 마음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5: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8: 38년 된 병자는 자신이 낫지못하는 이유를 설명하였다. “주여”라고 보른 것은 예수님에 대한 어떤 믿음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이 표현은 일반적으로 어떤 사람을 지칭할 수 있는 표현이었다. 물이 움직일 때 제일 먼저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아무리 해도 제일 먼저 연못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런데 왜 그곳에 있는가? 나을 가능성이 없는데? 사실 그 사람은 낫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곳에 있는 것, 지금의 상태에 익숙해져 있어서, 거기에 있는 것이다. 딱히 이곳을 벗어나야 할 다른 특별한 이유를 찾을 수 없기 때문에 그곳에 있는 것이다. 38년된 병자는 에수님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는 어떤 특별한 믿음을 보여준 것은 아니다. 그냥 자신의 상황을 설명한 것뿐이다. 주님은 기적을 베풀 때, 때때로 믿음을 요구하셨지만, 항상 믿음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다. 주님의 일방적인 역사로 기적이 일어났다.

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9: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는 것은 그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혼자의 힘으로는 걸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가 일어나 자리를 들고 갈 수 있다고 하신다.

5: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10: 그가 일어서서 자리를 들고 걸어간 것은 믿음이 필요한 것이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자신이 나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행한 것일 수도 있다. 몸의 변화를 느꼈기에 그는 일어설 수 있었을 수도 있고, 아직 변화를 느끼지 못한 상태에서 믿음으로 일어서는 시도를 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 날은 안식일이었다. 안식일에 병자를 고친 이 일에 대하여 시비를 걸어올 것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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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1.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2. Μετὰ ταῦτα ἦν ἑορτὴ τῶν Ἰουδαίων καὶ ἀνέβη Ἰησοῦς εἰς Ἱεροσόλυμα[]
  3. ἔστιν δὲ ἐν τοῖς Ἱεροσολύμοις ἐπὶ τῇ προβατικῇ κολυμβήθρα ἡ ἐπιλεγομένη Ἑβραϊστὶ Βηθεσδά πέντε στοὰς ἔχουσα[]
  4. ἐν ταύταις κατέκειτο ⸀πλῆθος τῶν ἀσθενούντων τυφλῶν χωλῶν ξηρῶν ἐκδεχομένων τὴν τοῦ ὕδατος κίνησιν[]
  5. Ἄγγελος γὰρ κατὰ καιρὸν κατέβαινεν ἐν τῇ κολυμβήθρᾳ καὶ ἐτάρασσεν τὸ ὕδωρ ὁ οὖν πρῶτος ἐμβὰς μετὰ τὴν ταραχὴν τοῦ ὕδατος ὑγιὴς ἐγίνετο ᾧ δήποτε κατείχετο νοσήματι[]
  6. ἦν δέ τις ἄνθρωπος ἐκεῖ τριάκοντα ὀκτὼ ἔτη ἔχων ἐν τῇ ἀσθενείᾳ αὐτοῦ[]
  7. τοῦτον ἰδὼν ὁ Ἰησοῦς κατακείμενον καὶ γνοὺς ὅτι πολὺν ἤδη χρόνον ἔχει λέγει αὐτῷ Θέλεις ὑγιὴς γενέσθαι[]
  8. ἀπεκρίθη αὐτῷ ὁ ἀσθενῶν Κύριε ἄνθρωπον οὐκ ἔχω ἵνα ὅταν ταραχθῇ τὸ ὕδωρ βάλῃ με εἰς τὴν κολυμβήθραν ἐν ᾧ δὲ ἔρχομαι ἐγὼ ἄλλος πρὸ ἐμοῦ καταβαίνει[]
  9. λέγει αὐτῷ ὁ Ἰησοῦς Ἔγειρε ἆρον τὸν κράβαττόν σου καὶ περιπάτει[]
  10. καὶ εὐθέως ἐγένετο ὑγιὴς ὁ ἄνθρωπος καὶ ἦρε τὸν κράβαττον αὐτοῦ καὶ περιεπάτει Ἦν δὲ σάββατον ἐν ἐκείνῃ τῇ ἡμέρ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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