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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과 성실 (잠 19:1)

할렐루야! 계속해서 잠언서의 말씀을 살펴보고 있는 가운데 오늘은 잠언서 19장 1절 말씀을 살펴보게 됐습니다. 잠언서 19장 1절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가난하여도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입술이 패역하고 미련한 자보다 나으니라.” 가난하지만 성실한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입술이 패역한 미련한 사람보다는 훨씬 더 낫다. 가난하지만 그 성실한 사람이 훨씬 더 낫다고 하는 그런 말씀인데요.

잠언서 말씀은 성실하게 행하는 사람이 항상 성공하는 것이 아닐 수 있다고 하는 것을 전제하고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성실하면 부자가 될 수 있고 성실하게 살면 성공할 수 있다”**고 하는 게 그게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아니, 성공하려면, 부자가 되려고 한다면, 누가 성공할 수 있고 누가 부자가 될 수가 있는가? 게으르고 성실하지 못하고 정말 열심히 살지 않는 사람이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성공하는가? 성실하게 사는 사람이 성공하는 것이요, 성실한 사람이 부자가 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 인생의 법칙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런데 오늘 잠언서 19장 1절에서 약간 모순되는 것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가난한데 성실한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죠. 성실한데 가난한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 잠언서 말씀은 성실하게 산 사람이 모두가 다 부자가 되고, 성실하게 행한 사람이 모두가 다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전제하고서 이 말씀을 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성실하게 사는데 성실한 사람들이 모두가 다 부자가 되고 성실한 사람들이 모두가 다 성공한다고 하면 좋겠는데, 그런데 성실한 사람들 가운데서 부자가 되고 성실한 사람들 가운데서 성공하는 사람의 숫자를 세워 보라고 한다면, 극히 일부분만이, 정말 극소수만이 성공하기도 하고 부자가 되기도 하는 게 현실인 것입니다. 왜 성실한데 성공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성실하게 살았는데 왜 부자가 될 수 없는 경우가 많이 있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왜 그렇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성공하거나 부자가 되는 것이 성실 하나에만 달려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항상 그렇듯이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그렇듯이, 어떤 것의 원인을 하나에서만 찾는 것은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성공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전교 1등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서민 갑부가 됐습니다. 어떤 사람이 장수하고 100세를 넘으면서 건강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좋은 성과를 나타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 사람이 왜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는가? 어떻게 이 사람은 이런 놀라운 결과를 얻게 되었는가?” 하면서 그 사람을 그 사람 되게 만든 이유가 무엇일까에 사람들은 질문을 던집니다. **”이 사람은 어떻게 서민 갑부가 되었을까? 이 사람은 어떻게 전교 1등을 하게 되었고 전국 1등을 할 수 있게 되었을까? 이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성공할 수 있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게 될 텐데, 그럴 때 사람들이 내놓는 대답은 완벽한 대답이 아닙니다. 수능에서 전국적으로 1등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과외는 안 하고 교과서만 공부를 했어요.” 그런데 그게 그 답이 진짜냐? 그게 전부냐 하면 그게 전부가 아닌 것이죠.

흔히 어떤 식당이 아주 잘 되는 식당이 있는데, “그 식당은 어떻게 잘 되었을까?” 사람들은 질문을 던지는데, 사람들이 쉽게 내리는 결론이 무엇이냐 하면, 식당이 어떻게 하면 잘 되는가? **”맛있으면 식당은 잘된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맞는 말입니까? 잘못된 말입니까? 모두가 다 맞다고 생각하고 **”그래, 역시 식당은 맛있으면 잘될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정말 그런 것처럼 그 식당은 간판도 없어요. 그 식당은 허름한 식당이에요. 그 식당은 찾아가기도 어려워요. 산속 깊은 곳에 들어가 있는 식당인데 사람들이 계속 와서 그 식당에서 밥을 먹고 수많은 사람들이 와서 그 식당을 애용하는 정말 잘 되는 식당이 있는데, “그 식당이 잘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사람들은 대답을 합니다. **”맛있으니까 그렇다. 맛있으면 성공한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정말 맛만 좋으면 식당이 성공하는 것일까요? 맛만 좋으면 식당이 잘 되는 것일까요?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망한 모든 식당들도 다 맛있는 식당들이 다 망했어요. 수많은 맛있는 식당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해서 다 망해버렸는데, 그 망해버린 식당은 왜 망했는지에 대해서 사람들이 알아보지 않기 때문에 과연 무엇 때문에 망했는지 사람들이 알 수 없을 뿐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건강합니다. “왜 건강한가? 황토 걷기를 해서 건강하대요.” 어떤 사람이 “왜 건강한가? 아침 금식을 했더니 건강하대요.” 어떤 사람이 “왜 건강한가? 그 사람은 소식을 했기 때문에 건강하대요.” 어떤 사람이 “왜 이렇게 좋은 성과를 이루었는가?” 그 이야기들 하나하나 이야기를 하는데, 그 모든 이유를 단 하나의 이유에서 원인을 찾는 것은 그 자체가 잘못된 방법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역시 성실도 마찬가지인데요. 우리가 성공하고 부자가 되는 그 이유 중에 성실이 아마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겁니다. 하지만 모든 성실한 사람들이 다 성공하고 다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죠. 왜 그렇습니까? 거기에는 또 다른 이유들도 더 합해져야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공의 모든 조건들, 부자가 되는 모든 조건들을 다 갖추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부자가 되거나 그 사람이 성공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게 있고, 사람들의 손을 떠난 영역들도 있고, 모든 것들이 다 맞추어져야 그래야 가끔씩 성공하는 사람도 나오고 갑부도 나오고 하는 것이지, 그 어느 것 하나 혹은 여러 가지 조건들을 다 맞추었다고 해서 그렇게 될 수는 없는 것이죠.

그래서 성경은 우리들에게 가르칩니다. 시편 127편 1절 말씀에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모든 것을 다 갖추었어요. 모든 것을 다 완벽하게 마련했어요. 그래서 모든 성공의 조건들을 다 채운다고 해서 그 사람이 다 자동적으로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외에도 수많은 것들이 필요할 것인데, 그 가운데 성경은 이야기하는 겁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모든 것을 다 갖추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다고 한다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죠. 안타깝게도 수많은 목사님들이 **”기도가 부흥의 열쇠다”**라고 하는 말을 믿고 개척교회를 시작합니다. 열심히 기도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그렇게 개척 교회를 시작했는데, 그런데 대부분의 개척교회를 시작하면 90% 이상의 많은 목사님들이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몇 년 안에 다시 접어야만 하는 그런 안타까운 결과를 가져옵니다. 정말 개척을 해서 엄청나게 좋은 큰 교회를 이룬, 그렇게 성장한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목사님이 간증하면서 말하기를 “개척의 열쇠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도에 있어요.”

“내가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하면서 그렇게 간증했고, 그렇게 기도하면서 개척을 했는데 그래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고 하는 그런 고백들을 하게 되는데, 안타깝게도 모든 목사님들이 다 기도를 열심히 하면서 정말 최선을 다해서 기도하지만,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다 똑같이 똑같은 결론을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닌 것이죠.

그래서 오늘 잠언서 19장 1절 말씀에서도 **”가난하여도 성실하게 행하는 자가 미련하고 입술이 패역한 사람보다 훨씬 낫다”**고 하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먼저 전제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성실한 사람도 가난해질 수 있다고 하는 것을 전제하면서 이 말씀을 해주고 있는 겁니다. 성실합니다. 지혜가 있습니다. 타이밍도 잘 맞아떨어집니다. 조력자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이 다 맞아떨어진다고 할지라도 그것으로 다 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셔야 내가 할 수 있고 내가 만들어가는 것도 필요하지만, 내가 할 수 없는 것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만 결국에는 모든 것들이 다 합력해서 그것들이 다 이루어질 때에 결과가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죠. 따라서 성실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반드시 부자가 되거나 성실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 것을 먼저 우리가 보면서 이 말씀을 우리가 묵상해 보아야 할 겁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어떤 현상이 발생하게 되나요? 그 어떤 현상이 발생하냐면 성실하지 않은 사람이 성공하는 케이스들을 우리는 목도하게 되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정말 열심히 일을 해요.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리어카를 끌고 다니면서 정말 한숨도 쉬지 않고 최선을 다하면서 정말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데, 그 사람은 정말 힘들게 살아가는 반면에, 별로 성실하지 않은 사람인데 그 사람은 많은 것을 누리고 잘 살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모습들이 우리의 삶 가운데서 나타나게 되는 것이죠. 도대체 왜 이런 불합리한 것과 같은 이런 상황들이 벌어지고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성공의 요소에는 성실함만이 정답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것이죠.

어떤 사람은 성실하지 않지만 부모님들로부터 많은 유산을 물려받아서 처음부터 금수저 물고 태어나 그래서 잘 살 수 있는 그런 환경이 조성된 사람도 있고요. 어쩌면 우리나라에서 태어나서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다고 하는 것도 어쩌면 잘 살게 되는 기본적인 조건이 전제로 깔린 채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 아프리카에 가면, 저 제3세계에 가면, 그곳에서는 어려서부터 공부도 제대로 잘하지 못한 채 꼬마 아이들 때부터 그때부터 일을 하러 다니면서 돈 몇 푼 벌기 위해서 몸을 희생시켜야만 하는 그런 일들이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는 일들이 계속 벌어지고 있고, 그래서 정말 최선을 다해서 살지만 겨우 먹고 살 수밖에 없는 그런 불합리한 국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래도 우리나라는 우리나라에 살면서 여기서 생활하는 것은 그래도 땀을 흘린 만큼 결과를 얻을 수 있고 그래도 내가 노력한 만큼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그런 조건이 잘 갖추어진 나라에서 사는 것이 그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원인이 될 때도 있는 것이죠.

그리고 내가 예상치 못했지만 갑자기 좋은 운(運)이나 행운이 생긴다든가, 그래서 여러 가지 좋은 결과들을 가져오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 우리들의 삶 가운데서 어떤 사람이 성공하느냐 어떤 사람이 부자가 되느냐 그런 것들이 단순히 성실에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우리가 일일이 말할 수 없는 그런 복합적인 다양한 요소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먼저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오늘 잠언서 19장 1절에서 해주고 있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그런데 낙망하지 말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성실한 게 아무 의미가 없다. 성실해도 가난하니까 성실해 봤자 아무 의미가 없다” 하면서 체념해버리고 성실함을 포기할 게 아니라,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들을 향해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냐면, **”성실한데 가난해도 그 사람이 훨씬 더 낫다”**고 이야기해 주고 있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보면서 우리가 당장 우리가 원하는 대로의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서 낙망하거나 실망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그 사랑과 은혜를 생각하면서 낙망하지 않고 담대하게 끝까지 신실함을 지켜 나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낙망하지 말아야 될 이유가 있다고 한다면 무엇일까요? 첫 번째로 갈라디아서 6장 9절 말씀은 이렇게 가르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이 세상에서는 우리가 성실하게 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그래서 정말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면 아무런 열매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상황들이 올 때가 있고, 악한 사람들은 오히려 잘 되고 게으른 사람들이 오히려 잘 먹고 잘 사는 것 같은 그런 불합리한 상황들을 우리가 만나게 되겠지만, 그런 상황 가운데서 우리가 포기하면 되겠는가? 낙심하면 되겠는가? 그러지 말라는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가 포기하지 아니하면, 낙망하지 아니하면,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그 열매를 거둘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포기하지 않고 낙망하지 않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8절 말씀에서도 이렇게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신실하게 살아가는 가운데 신실하지 못한 사람들이 판치고 있고 잘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잘 나가는 것을 보면서, “나는 신실하게 살아봤자 아무 의미가 없다” 그렇게 낙망할 것이 아니라, 결국 하나님께서 그 수고의 눈물을 기억하시고 인정해 주실 거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우리가 실망하지 말고 믿음을 지키며 계속해서 신실하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 읽은 잠언서 19장 1절 말씀에서는 무슨 이야기를 합니까? **”가난하여도 성실하게 행하는 자가 입술이 패역하고 미련한 자보다 낫다”**고 주님께서 보고 계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무엇을 봅니까? 이 세상은 결과를 보는 것이죠. 이 세상은 밖으로 드러나는 것을 보는 것이고, 이 세상은 사람들이 지금 이루어 놓은 것을 보아서 겉으로 드러나는 것을 보고 박수를 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화려한 규모와 많은 결과물들을 보이는 사람을 향해서 모두가 다 박수를 치고 그 사람을 부러워하는 것이 이 세상의 방법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인정하십니까? 많은 것을 이룬 사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성전처럼 화려한 성전, 정말 멋있는 성전을 지어 놓아 봤자 하나님께서 그 성전을 인정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하나님 앞에 진실로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 하나님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그런 사람들을 찾으시는 하나님이시지, 화려한 성전, 멋있는 성전을 하나님께서 그 화려한 외모에 감동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다, 이 말이에요.

하나님은 누구를 인정합니까? 화려한 옷을 입고 높은 위치에 올라간 그런 사람들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리와 죄인과 마찬가지로 정말 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진실하게 찾아 나와 엎드려 울며 회개하는 그런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받으시기 때문에, 우리는 무엇을 보아야 됩니까? 이 세상 사람들이 박수 쳐주는 이 세상의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 열광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무엇을 보신다? 우리들의 마음의 중심을 보시고 우리가 우리의 삶 가운데서 열매로 나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고 할지라도, 성실하게 살아가는 그런 사람이 입술이 패역하고 미련한 그런 악한 자들보다 훨씬 낫다고 인정해 주시는 하나님의 그 말씀을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얼마 전에 뉴스를 봤는데요. 이런 뉴스가 나와서 참 안타까웠습니다. 어느 학교에 학생이 하나 있었는데 그 학생이 과외 공부를 그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받았어요. 중학생 때부터. 근데 그 중학생 때부터 과외 공부를 하다가 그 선생님이 있는 학교로 진학을 하게 됐는데, 나중에 학부모와 그 교사가 짜고서 시험 문제를 늘 빼돌린 거예요. 시험 문제를 늘 빼돌려서 그래서 이 학생이 전교 1등을 지금 계속하는 거예요.

계속 1학년 때부터 전교 1등을 계속 했는데, 결국 그것이 발각이 되어서 그 학생의 모든 점수는 빵점 처리하고 퇴학시켰다. 그리고 학부모는 아무튼 무슨 죄목으로 해서 입건되고 수사를 받고 아마 처벌을 받게 될 거라고 하는 그런 뉴스를 들었습니다. 왜 사람들은 그런 일에 넘어갑니까? 이 세상 사람들은 지금 당장 우리 눈앞에 좋은 성과를 이루는 것, 지금 우리들의 눈앞에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는 거, 이 세상 사람들이 화려하게 보이는 그 모든 것들을 바라보면서 사람들이 거기에 열광하기 때문에, 그것을 바라보고 그것을 향해서 잘못된 방법이라도 써서 그것을 얻으려고 하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누구를 인정하시는가? 그렇게 하나님의 법을 어겨가면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지 않는 그런 사람들은 어리석은 사람들이요.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한 삶을 사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고, 하나님을 무시하면서 이 세상의 법칙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 어리석은 사람인데, 하나님은 누구를 더 인정하시는가? 사람들이 많은 성과를 내는 그 사람을 보고 박수 치겠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어리석은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진실로 살아가는 그런 성실한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신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기억하며 하나님 앞에 신실하게 살아가기로 결심하고 다짐하는 이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넘어질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나가서 다시 한 번 회개하고, 진실하게 다시 우리의 삶을 바꾸고 바꾸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인정받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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