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닫기

성전을 향한 기도 (왕상 8:27-30)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말씀은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한 다음에 하나님 앞에 기도한, 성전을 위해서 드리는 기도의 내용 가운데 일부입니다. 기도의 내용을 요약한다면 어떤 내용이 되겠습니까? 하나님, 우리가 이 성전을 향하여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들으시옵소서. 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며 엎드리며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들어 달라고 하는 그런 기도를 하고 있는 겁니다.
먼저 솔로몬은 이 성전이 부족하다고 하는 사실을 고백했습니다. 이 성전이 어디입니까? 이 성전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모실 만한 그런 충분한 공간인가 했을 때, 그럴 만한 자격이 되지 않는 성전이라고 고백을 하는 겁니다. 이 성전에 하나님께서 거하실 수 있을까요?
솔로몬이 만든 이 화려한 성전, 어쩌면 그 당시에 제일 화려한 건물이고 그 당시에 제일 웅장한 건물이 이 성전이었을 거라고 생각이 드는데,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이 성전에 머무를 정도로 이 성전은 그야말로 영광스러운 건물이 될 수가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너무나도 크기 때문에 이 성전이 아무리 화려하다고 한들, 이 성전이 당시의 최고의 건물이라고 한들 하나님의 영광에 비한다고 한다면 새 발의 피밖에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성전에 거하시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거예요. 우리 집에 귀한 손님을 모시기가 좀 부끄럽지 않아요. 만일 대통령이 우리 집에 온다고 한다면 좀 창피할 것 같지 않아요. 그것처럼 정말 이 영광스러운 하나님이 이 성전 가운데 임하신다고 하는 것은, 그것은 너무나도 부끄러운 일이고 너무나도 자격이 안 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을 오늘 솔로몬은 기도하면서 먼저 고백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이 뭐라고 기도하냐면, 하나님 이 성전이라고 하는 것이 이렇게 보잘것없는 것이지만—보잘것없다고 하는 얘기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잘것없는 것이죠. 사람의 관점으로 본다면 제일 화려한 것이겠지만 하나님께서 거하시기에는 보잘것없는 것이겠지만—그러나 이곳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게 해 주옵소서, 우리가 이 성전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는 기도가 오늘 본문의 말씀의 기도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러면서 솔로몬은 이렇게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데요. 하나님, 우리가 이 성전을 보면서 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할 때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이 성전을 향하여 간구하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 울부짖을 때 하나님께서 들어 주옵소서 간구하고 있는데, 이렇게 간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아무런 권리가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전을 만들어 놓기만 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와서 우리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야만 하고, 우리들에게 축복을 베풀어 주셔야만 하고, 우리를 위해서 모든 것을 다 쏟아내 놓으셔야만 하는 그런 당위성이 하나님에게 있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와서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여야만 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야만 하고 하는 그런 당연한 권리가 우리에게 있느냐고 하면 우리에게 있지 않아요. 우리의 입장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입장은 하나님의 은총을 기다리는 것,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간절하게 기다리는 게 우리의 태도인 것이지, 마치 우리가 식당에 들어가서 “왜 밥 빨리 안 줘요? 내가 먼저 왔는데 왜 나한테 주지 않나요?” 하고 권리를 주장하며 “밥을 내놓으라, 밥을 가져오라”고, 그렇게 우리가 원하는 것을 달라고 주장할 만한 그런 권한이 우리에게 아무것도 없다고 하는 사실을 먼저 기억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성도들은, 우리들은 종종 이러한 사실을 잊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향해서 따지는 거죠. “하나님, 내가 기도했는데 왜 안 들어줘요? 기도했는데 왜 안 내놔요?”라고 하나님 앞에 따지는 거죠. “하나님, 내가 하나님 앞에 예배드렸는데 왜 나한테 축복 안 해 줘요? 하나님 말씀대로 살았는데 왜 나한테 축복해 주지 않는 거예요?” 하면서 하나님 앞에 따지고 하나님을 향해서 요구하는 것이죠.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지 아니하면 이내 마음이 상해서 “나, 이렇게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지 않는 하나님은 못 믿겠다” 하면서 그냥 떠나 버리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엄격하게 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줘야 될 이유가 아무것도 없어요. 솔로몬이 성전을 지어 놓으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그 성전에 와서, 그 성전에서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셔야 될 이유가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하나님이 거기 와야만 하는 이유가 없는 겁니다.

그러한 사실을 분명하게 들려주시는 이야기가 신약 성경 가운데 수로페니키아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가나안 여인의 이야기인 것이죠. 어느 날 예수님께서 길을 지나간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은 이 여인이, 자신의 딸을 위해서 예수님 앞에 나아가서 간청하는 거예요. “선생님, 선생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내 딸을 좀 불쌍히 여겨 주셔서, 내 딸을 고쳐 달라”고 간청하는 거죠. 그런데 사랑이 많으신 그 주님께서 놀랍게도 아주 차가운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아주 정 떨어지는 말씀을 해 주신 것이죠. 무슨 말씀을 해 주셨어요?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지는 것이 옳지 않다”라고 말씀해 주세요. 그 이야기를 들은 이 여인이 얼마나 수치스러웠겠습니까? 얼마나 모욕을 느꼈겠습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이 여인은, 그 예수님 앞에서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하면서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간 것이 아니라 더 엎드렸어요. “주님, 맞습니다. 제가 자녀의 떡을 빼앗을 자격이 없습니다. 제가 상에서 나오는 그 화려한 음식을 달라고 할 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하지만 **헬라어로 ‘κυνάρια’(작은 개들)**도, 아무런 가치가 없는 그런 짐승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이라도 먹을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 은혜를 내게 베풀어 주실 수 없습니까?”

예수님께서 그 여인을 향해서 들려주시려고 했던 메시지가 무엇이냐면, 우리에겐 자격이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 정확하게 솔로몬은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성전을 화려하게 짓고 모든 열정을 다해서 아름다운 성전을 만들었지만, 이 성전에는 하나님께서 오셔야 될 아무런 의무도 없고, 하나님께서 이 성전에 와서 귀를 기울여야 될 아무런 이유가 없는 거예요. 없지만 솔로몬은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엎드리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이 성전에 오셔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가 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할 때 그 기도에 귀를 기울여 주옵소서”라고 간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간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성전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지만, 이 성전이 어떤 대단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기도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미신적인 사고에 많이 익숙해져 있는 우리들은, 종종 이 세상에 어떤 물건이, 이 세상에 어떤 장소가, 어떤 사람이 대단한 능력이나 파워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리고 거기에 열광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어떤 것에 신비한 능력이 있다고 생각이 되면 그 앞에 머리 숙이고 경배하는 거죠. 제주도에 갔더니 돌하르방에 그 코가 반질반질해요. 아들을 낳고 싶어서 그랬나요? 저 대구의 팔공산에 가면 시험을 앞두고 수많은 학부모들이 그 앞에서 절을 하고 있어요. 왜, 이곳에서 100일 동안 혹은 천일 동안 그렇게 매일매일 와서 경배하고 기도한 사람은 그러면 좋은 대학 갔다더라. 떨어진 사람이 99.99%인데, 그 사람들의 이야기는—뭐 좋은 얘기가 아니니까—안 들리고, 합격했다고 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또 증폭되고 증폭되어서 그래서 거기만 가면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면서 거기에 열광하며 달려가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요.

크리스천들 중에서도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경향들이 많이 있습니다. 참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며 엎드리기보다는 이 세상에 눈에 보이는 것들에게 열광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 것이죠. 법궤가 광야를 지나는 동안에 함께했었고, 요단강을 가르고 여리고성을 무너뜨렸다고 하는 이유 때문에, 법궤가 무엇인가 대단한 것처럼 생각하고 법궤 앞에 가서 전쟁에서 승리하게 해 달라고 간절히 비는 거죠. 에봇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줄 줄 알고 에봇을 만들어 놓으면 그것을 우상처럼 섬기는 일들이 있었던 것이죠.

그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어떤 사람이 대단한 사람인가, 선지자가 대단한 사람인가, 어떤 사람이 대단한 사람인가 생각하는 경우도 있고, 또한 오늘날의 수많은 크리스천들 중에서도 “어느 기도원에 가면 용하더라, 어디에 가면 어떤 권사님이 능력이 많더라, 어떤 목사님이 능력이 많더라”—사람들에게 어떤 무슨 커다란 능력이 있는 것처럼 거기에 열광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그런데 오늘 이 솔로몬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은 이 성전이 그런 어마어마한 파워를 가질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들어 응답해 주시라고 기도하는 것은, 성전 자체가 어떤 대단한 능력이 있게 만들어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우리의 마음이 열려서 회개하며 돌아오는 심정 가운데,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을 기도하고 있는 것이죠. 오늘 저와 여러분들은 은혜가 많으신 그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실 필요가 없으신 하나님이신데, 놀라운 것은 응답해 주셨어요.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옳지 않은데, 하나님께서는 자녀의 떡만이 아니라 자녀의 생명을 취하여 우리들을 위하여 생명의 양식으로 내어 주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피 흘리신 그 주님의 은총과 사랑을, 주님 앞에 나아오고 엎드리는 심령들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허물을 용서하시고 우리를 품으시며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가운데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엎드렸으면 좋겠어요. 우리의 문제를—안타깝게도 우리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어—우리가 저질러 놓고 우리가 벌려 놓은 그 문제를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어요.

그럴 때 그냥 원망하고 싸우고 다툴 게 아니고, 비난하고 욕하고 좌절하고 낙망할 게 아니고,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해 주신 그 하나님,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사 우리를 위하여 한없는 사랑으로 품어 주시는 그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시고 우리의 어려움의 문제들을 하나씩 하나씩 해결해 주시고, 또한 하나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시는 그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누리는 그러한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Loading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