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부터 마태복음의 말씀을 읽으셨죠? 그래서 이번 주도 우리가 마태복음의 말씀을 읽게 될 것이고, 계속해서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사복음서의 내용을 우리가 계속해서 성경을 읽게 되겠습니다. 아무래도 좀 복음서는 좀 쉬운 것 같아요. 구약의 선지서들을 읽고 하는 것보다는 좀 더 읽기가 편리할 것 같은데, 이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으면 좋겠습니다.
특별히 이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이 4개의 성경을 가리켜서 복음서라고 부르고 있는데요. “복음”이라고 하는 게 무슨 말이죠? 복음. 복음이라고 하는 것은 복될 복(福) 자에다가 소리 음(音) 자 해서, 복된 말, 복된 소리, 복된 소식, 이런 걸 가리켜서 복음이라고 하겠습니다. 헬라어로 보면 어떻게 되어 있냐면 “좋은 소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좋은 소식.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그래서 우리를 죄악에서부터 건져내신 이 이야기가 “우리들에게 좋은 소식이다”라고 하는 그런 의미에서 복음이라고 할 수가 있겠는 것이죠.
왜 복음입니까? 왜 좋은 소식입니까? 그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사탄의 통치 아래 살아왔었다고 한다면, 이제는 그러한 사탄의 통치에서부터 해방되어서,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하나님의 통치 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좋은 소식인 것이죠. 지금까지 우리가 사탄의 통치 가운데 있었다고 한다면, 이 사탄이 통치하는 것을 어떤 세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지옥과 같은 곳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죠. 사탄이 지배하고 있는, 사탄이 다스리고 있는 지옥과 같은 상태에서부터 벗어나서, 하나님께서 다스리시고 하나님께서 통치하는 그 영역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통치하고 다스리는 것을 가리켜서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천국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천국과 같은 상태로 바뀌게 되었으니까, 이것이 좋은 소식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러한 좋은 소식이, 예를 들면, 그 옛날, 구약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 땅에서 노예 생활을 하다가, 바로의 억압 가운데서 정말 고통 가운데 살았죠. 바로 왕의 통치는 무엇입니까? 우리들에게 먹을 것을 조금 주기는 줘요. 바 바로 왕의 통치는 무엇입니까? 우리로 하여금 서바이벌할 수 있을 만큼을 주기는 주는데, 그런데 궁극적으로는 우리를 착취하고, 우리로 하여금 고통스럽게 만들고, 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나일강에 던져버리게 만들어서, 아이들을 죽여버리는, 그런 강압적이고 포악한 정치가 바로 왕의 통치라고 할 수 있게 되겠는데, 이스라엘 민족이 그러한 바로 왕의 통치 아래에 살다가, 어느 날 좋은 소식을 듣게 됐습니다. 그 좋은 소식이 무엇입니까? 애굽 땅에서 해방된다고 하는 소식이죠. 바로 왕이 항복해 버리고, 나가라. 너희들은 모세와 함께 나가라고, 그렇게 행복하게 되는 그 소식이야말로 이스라엘 민족에게 복음의 소식 좋은 소식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겁니다. 이제는 이스라엘 민족이 더 이상 노예로서의 삶을 살지 않아도 됩니다.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아이들을 죽일 필요도 없습니다. 이제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젖과 꿀이 흐르는 그 땅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그렇게 해방되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이 경험한 이 출애굽의 사건이야말로 좋은 소식의 샘플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사탄의 지배를 받고 있던 우리가, 그 옛날 이스라엘 민족이 바로의 지배를 받고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사탄의 지배 가운데 살고 있다가, 이제는 그 사탄의 지배에서부터 해방되어서, 이제는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땅으로,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갔을 때, 그 가나안 땅에서의 삶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그 가나안 땅이 좋은 점이 무엇이에요? 가나안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이야기하는데, 그런 의미는 애굽 땅보다 가나안 땅이 훨씬 더 좋다는 이야기일까요? 실제로 좋은가요? 안 가봐서 모르죠? 안 가봐서 모르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가나안 땅이 더 좋겠습니까? 애굽 땅이 더 좋겠습니까? 애굽 땅이 더 좋아요. 가나안 땅에 기근이 내려도, 기근이 생겨도, 어디에는 먹을 게 있어요? 애굽 땅에는 먹을 게 있어요. 왜? 애굽 땅에는 나일강이 흐르고 있고, 그리고 그 나일강 삼각주의 그 풍성한 그 밭에서 늘 곡식이 나오기 때문에, 구약 성경을 읽어보면 기근이 생길 때마다 사람들이 어디를 갑니까? 애굽으로 가는 거죠. 애굽에 가서 먹을 걸 찾고 가나안 땅은 좋은 땅이 아니에요. 척박한 땅이에요. 지난번에 이스라엘 땅에 가보니까 우리나라에서 살다가 이스라엘 땅 가서 보니까 황량한 땅이더라고요. 이렇게 좋지 않은 땅이 어디 있을까 싶을 정도로 황량한 땅이에요. 그런데 그 땅을 가리켜서 성경에서는 뭐라고 표현하냐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라고 표현하고 있어요. 그 말의 의미는, 정말 먹을 것이 그만큼 풍성하고 정말 이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동네라고 해서 그런 의미를 붙인 것이 아니라, 그곳에는 누가 계셔요? 하나님이 계시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다스리고 통치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것이야말로 행복한 세상이 될 수 있다고 하는 의미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것이죠.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사탄의 지배 가운데 있다가 하나님의 통치 안으로 들어가는 이 소식이야말로 좋은 소식, 복된 소식이라고 하겠습니다.
그 복된 소식이 어떻게 우리에게 전해졌는가? 우리가 어떻게 사탄의 통치로부터 하나님의 통치 속으로 이전할 수 있게 되었는가? 그것은 바로 예수님 때문입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 민족을 저 애굽 땅에서부터 가나안까지 인도해 낸 사람이, 모세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모세처럼, 새로운 모세가 되어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죄의 그 노예 생활 속에서부터 건져내어서, 하나님이 다스리는 그곳으로 우리를 인도해 내신다고 하는 의미에서, 예수님이 우리들에게 구세주가 되신 것이고, 새로운 모세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모습이라 하겠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성경 말씀을 읽다 보면, 예수님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냐 하면, 새로운 모세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복음서를 읽으면서, 예수님의 그 모습 하나하나를 보면서, 우리가 구약 성경에서 읽었던 그 모세의 모습과 비교하면서, 예수님의 모습을 살펴보는 것이 아주 유익합니다.
예수님과 모세 사이에 닮은 점이 많이 있거든요. 어떤 점이 닮았습니까? 바로 왕이 이스라엘의 남자아이들을 죽이려고 했었던 것처럼, 헤롯 왕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고, 그리고 그 베들레헴 주변의 남자아이들을 다 죽여버리는 그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 상황 가운데서 바로 왕이 남자아이들을 모두 죽이려고 하는 그런 위협적인 상황 가운데서, 모세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기적적으로 살아나게 된 것이죠. 갈대상자에 넣어둔 그 아이를 바로의 딸이 발견해서 자기 아들로 삼는 그런 기적적인 이야기를 통해서, 모세가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 가운데서 살아나게 된 것처럼, 놀랍게도 예수님은 헤롯 왕이 죽이려고 하는 그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통해서 요셉에게 말씀해 주셔서, 피할 수 있게 만들어 주시고 목숨을 건질 수 있게 만든 겁니다. 모세를 죽이려고 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는 수 없이 도망갑니다. 어디로 도망갑니까? 미디안 광야로 도망가버리는 거죠. 그리고 거기서 지내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해 주시는 거예요. “네 목숨을 찾는 자들이 죽었다.” 그러니까 이제 이스라엘 민족에게로 돌아가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해 내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예수님께서 저 애굽 땅으로 피신했을 때 하나님께서 요셉을 향해서 말씀해 주시는 거죠. 아기의 목숨을 찾는 자들이 죽었으니 이제 다시 돌아가라고 말씀해 주셔서, 그래서 요셉의 가족은 다시 돌아오려고 하다가, 아켈라오가 왕이 되었다고 하는 소식을 듣고 나사렛으로 이주하게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십계명을 주었고 율법을 주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 율법을 새롭게 해석하시면서 새로운 계명을 주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하면서,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셨고, 모세가 가르쳐준 그 율법을 뛰어넘는, 정말 뛰어난 그 율법의 가르침 주님께서 새 계명의 가르침을 주신 것이 산상수훈의 메시지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세는 광야 생활을 하면서 만나를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을 먹이셨던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서 7병이어의 기적을 통해서, 그 사람들을 먹이시는 모습들을 보여주어서, 그래서 이 모든 과정들이 예수님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그 옛날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한 것처럼 새로운 모세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신다고 하는 이야기가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죠.
그렇게 보면 예수님의 이 이야기가 사실은 구약의 이야기들하고 많이 연관되어 있다고 하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구약시대 때 있었던 그 이야기들을 다시 한번 성취하시기도 하고, 또한 실패했던 것들을 승리하시기도 하면서 구약의 이야기들을 재현해 주고 있는데요. 예를 들자면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도 예수님에게서 다시 한번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첫 사람 아담 첫 사람 아담과 하와는 사탄의 유혹을 받아서 실패해 버렸습니다. 선악과를 먹지 말아야 되는데 먹어버린 것이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보다는 사탄의 말에 순종해 버려서 타락해 버렸고, 그래서 온 인류가 어려움 가운데 처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셨어요. 선악과를 먹으라고 하는 그런 사탄의 유혹에 실패했던 아담과는 달리 하와와는 달리 예수님께서는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고 하는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고,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정말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도록 만들었던 것을 상기시키면서, 우리가 사는 것은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하는 그 믿음으로 사탄의 시험을 이겨내신 이야기가 기록돼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구약 성경에 보면 다윗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예수님은 어떻게 오셨는가? 다윗의 아들로 오셨습니다. 다윗에게 주어진 그 약속을 성취하는 분으로 오신 것이죠. 사무엘하 7장 8절에서부터 16절 말씀에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내 종 다윗에게 이와 같이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고,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땅에서 위대한 자들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 내가 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그를 심고 그를 거주하게 하고 다시 옮기지 못하게 하며 악한 종류로 전과 같이 그들을 해하지 못하게 하여, 전에 내가 사사에게 명령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아니하게 하고, 너를 모든 원수에게서 벗어나 편히 쉬게 하리라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그렇게 말씀해 주셨어요.
그러니까 다윗을 향해서 약속해 주신 말씀이 내 나라의 위가 영원할 거라고 약속해 주셨는데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졌습니까? 중간에 실패한 것 같습니까? 중간에 실패한 것 같단 말이죠. 유대 나라가 망했어요. 애 저기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된 거죠.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이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다윗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 세상의 왕으로서 역할을 하신다고 하는 것이 복음서의 내용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아들로 오신 것이죠. 창세기 12장 1절에서 3절 말씀 가운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내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내게 복을 주어 내 이름을 장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그 약속, 내가 너로 하여금 큰 민족을 이루고 너를 통해서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게 할 거라고 하는 그 약속이 이루어졌느냐 하면 이루어지지 않았단 말이에요. 그런데 누구에게서 이루어지는가 바로 예수님에게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 하는 것이기 때문에 복음서가 바로 좋은 소식이 되는 것이죠.
하지만 우리가 분명하게 기억할 것이 있다고 한다면 예수님은 정치적인 메시아가 아니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이 회복되고 로마 정부로부터 독립하고 그런 것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오신 것이 아니에요.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사탄의 통치로부터 우리를 건져내서 하나님의 통치 속으로 들어가게 만들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오신 것이죠. 그래서 예수님이 어떤 메시아인가 복음서에서 말하고 있는 이 예수님이 어떤 메시아인가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분명하게 잘 기억해야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메시아 구세주라고 하는 얘기는 영적인 의미에서이지 정치적인 의미에서가 결코 아닙니다. 이해하셨습니까? 그런데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정치적인 메시아로 오해하고 그래서 정치적인 어떤 예수님께서 메시아가 되는 거라고 그렇게 잘못 가르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특별히 어떤 사람들이 있냐면 저 이스라엘 민족이 다시 가나안 땅에서 독립된 나라가 되고, 이미 독립된 나라가 됐지만, 거기서 정말 위대한 나라를 세우고 이스라엘 나라가 정말 굳건하게 되는 것 저 중동 지방에 있는 이스라엘 나라가 세계를 다스리는 그런 아주 강력한 국가가 되는 것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라고 그렇게 오해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근데 그거 아니에요 거기에 잘못 속아 넘어가시면 안 됩니다. 오늘날 이스라엘 나라가 하나님의 백성인가요? 아닌가요? 아닙니다. 로마서에서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고,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우리가 영적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자들이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인 것이지, 저 이스라엘 땅 가나안 땅에 있는 저 유태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이 말이에요. 거기에 이스라엘 나라가 세워지고 이스라엘 나라가 독립되고 세계 대강대국이 되고 유대인들이 세계를 지배하고 하는 것과는 복음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요. 우리가 이스라엘을 지지해야 될 이유가 있어요? 없어요? 없어요! 이스라엘 나라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냥 세속적이고 나쁜 나라일 수밖에 없는 거예요. 지금 보면 좋은 나라예요? 나쁜 나라예요? 나쁜 나라예요! 지금 악한 일을 많이 하고 있으니까 거기에 우리가 심정적으로 동조하고 좋아하고 할 이유가 없어요. 이스라엘 국기 들고 설칠 이유가 없어요. 크리스천들이 왜,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신 것은 국가적이고 정치적이고 민족적인 메시아로서 예수님께서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사탄의 지배로부터 구원해 내시기 위한 영적인 메시아로 오셨다고 하는 사실을 분명하게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세례요한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면서 예수님을 소개했지만, 수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다시 이스라엘 민족 국가를 회복시킬 사람으로 많이들 오해했어요. 예수님의 제자들도 오해한 거죠. 그래서 틈만 있으면 예수님에게 물었습니다. 예수님 우리 이스라엘 민족을 다시 일으킬 때가 언제입니까? 저 로마 나라를 무찔러 버리고 우리나라가 다시 세워질 때가 언제입니까? 자꾸 국가적인 이스라엘 민족의 독립, 국가적인 이스라엘 민족의 승리를 기원하면서 그렇게 물었지만, 예수님께서 하신 대답이 무엇입니까?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빌라도의 법정 앞에서 빌라도에게 고백하기를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탄의 지배로부터 구원받는 것을 주님께서 그것을 위해서 오셨고, 우리가 사탄의 지배로부터 구원받는다고 하는 것을 생생하게 증명하기 위해서 병자들을 고쳐주신 것이죠.
병자들이 있다고 하는 것은 온전하지 못하다고 하는 이야기고, 온전하지 못하다고 하는 이야기는 죄의 영향 아래서 온전하지 못한 것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오면 그러한 사탄의 지배로부터 해방되었다고 하는 것을 샘플로 보여주기 위해서 병자를 고치며, 하나님께서 통치하는 그 세상은 우리가 모든 것을 다 회복하는 세상, 사탄의 지배로부터 고통받는 세상에서부터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 바로 예수님의 사역이라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 복음서의 말씀을 읽으면서 구약 성경을 예수님께서 어떻게 이루시고 성취하셨는가를 읽으면서 예수님이 진정으로 우리의 참된 메시아 우리의 구세주라고 하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많은 은혜를 받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