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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가 사라지는 이유 (살전 5:16-1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하는 이 말씀은 아주 유명한 말씀이어서, 누구나 다 잘 기억하고, 누구나 늘 묵상하는 말씀이라고 할 수가 있겠는데요. 오늘 다시 한번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특별히 오늘은 범사에 감사하라라고 하는 이 주제를 특별히 더 살펴보려고 하는데요.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는 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 시간 전하고자 하는데, 이런 말씀으로 전하게 되는 이유가, 전하는 것은, 제가 그럴 만한 자격이 있기 때문은 결코 아닙니다. 제가 이 본문으로 설교하는 것은, 저는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든지 저는 늘 항상 기뻐할 수 있고 늘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어서가 아닙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제가 마치 말씀을 전할 때에는, 그러한 말씀을 전할 만한 자격이 제게 있기 때문에 전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저 자신을 향해서 권면하고 싶어서 전하는 것이죠. 항상 기뻐하라고, 어떤 상황에 있어도 기도하라고, 그리고 무슨 일을 만나도 감사하라고 하는 그 메시지를 저 자신을 향해서 먼저 전하고 싶고 듣고 싶기 때문에 전하는 것입니다. 제가 들어야 할 메시지를, 언제나 우선적으로 선택하고 전하고 있는 것인데요.


저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고, 늘 실수투성이고, 허물이 많은 죄인일 뿐입니다. 모든 일에 감사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러나 감사하지 못하는 게 저의 상태이고, 저의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하는 것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작 이 말씀을 기억하고, 감사해야 될 상황이 되면, 평상시에는 이 말씀을 잘 기억하고 잘 알고 있지만, 정작 기뻐해야 할 상황에서는, 정작 기도해야 될 상황에서는, 정작 감사해야 될 상황 가운데서는, 그러기보다도 불평이 나오고, 원망이 나오고, 짜증과 분노가 치밀어오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 그러한 상황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오셔야만 했던 것이죠. 우리는 알고 있지만 행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과는 정반대로 행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죄인이기 때문에, 우리와 같은 구제불능의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아무런 소망이 없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 대신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주님을 바라보면서, 주님 앞에 나아가야 되는 것이고, 또 주님 앞에 소망을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항상 어떤 상황에서든지 감사하며,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기쁨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데요. 이렇게 우리들을 향해서 항상 기뻐하라고 하시는 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시는 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어떠한 생각들이 드십니까? 이 말씀을 들을 때마다, “그렇지! 항상 기뻐해야지. 범사에 감사해야지.”라고 하는 그런 동의하는 마음이 떠오르십니까? 아니면 기분이 나쁘십니까? “아니, 하나님. 감정이라고 하는 게 우리가 의지대로 되는 것입니까? 내 감정을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입니까? 상황이 좋다고 한다면 뭐라고 하지 않아도 기쁠 것이고, 좋은 일이 펼쳐진다고 한다면, 저절로 감사가 나올 것이고, 우리 앞에 좋은 일들이 자꾸만 펼쳐진다고 한다면,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감사할 수가 있는데, 그런데 지금 내 처지가 그럴 상황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 감사가 나옵니까? 내 처지가 지금 정말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한다면, 그럴 때는 감사가 나올 수 없고, 우울하고 분노가 치밀어 솟아오르고, 짜증이 날 수밖에 없는 것인데, 그런 상황 가운데 있는 우리들을 향해서 웃으라고 말씀하시면, 어떡하란 말이에요? 그런 상황 가운데서 감사하라고 말하면 어떡하란 말이에요?” 힘들어 죽겠는데, 감사하라고 하는 이 말씀이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와닿을 수 있는가? 이 말입니다.

마치 그 모습은 마치 조폭이 우리를 향해서 강요하는 것 같아요. 막 우리를 위해 돈을 빼앗아가면서 때리면서, 그래서 정말 얼굴을 찡그리고 있으면, “기분 나빠? 왜 찡그려?” 하면서, 웃으라고 강요하는, 그런 조폭처럼, 억압적으로 우리들의 감정을 강요하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느끼십니까? 어떤 말씀으로 우리들에게 이 말씀이 와닿으십니까?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조폭과 같이, 우리의 모든 것을 다 빼앗아 버리면서도, 그러면서도 웃어야 된다고 강요하는 막무가내 강요를,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오해하시면 안 되는 것이죠. 주님께서는 왜 이런 말씀을 해 주시는가?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하시는 이유,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는 그 이유, 그리고 어떤 일을 만나든지 짜증 내고, 불평 내고, 불평하고, 분노하고, 우울에 처해 있지 말고, 오히려 감사하라고 말씀하시는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 그 감사가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힘을 얻게 만들고, 우리로 하여금 행복하게 만들고, 우리가 다시 원상 회복될 수 있도록, 우리들을 만들어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것이 우리를 온전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그런 것이죠. 만일 우리가 불평하고 원망하고 짜증 내고 분노하게 된다고 한다면, 그것은 사탄이 우리들을 향해서 늘 부추기고 있는 감정일 텐데요. 그런데 그런 사탄의 부추김에 따라서, 우리가 우리의 감정이 이끄는 대로 불평해 버리고, 짜증 내버리고, 또 우울해져 버리고 슬퍼하는 가운데 있다고 한다면, 그러면 계속해서 우리는 사탄이 원하는 방식대로, 파멸로 결국 결과될 수밖에 없는 것이죠.


하지만 감사가 무엇인가? 기쁨이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에게 있던 상처도 아물게 만들고, 문제들을 해결하고, 우리들을 가족들을 하나로 묶어주고, 그리고 정말 힘들었던 것들을 치유하며,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놀라운 길이기 때문에 감사하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우리의 감정을 막무가내식으로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정말 회복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정말 좋은 길로 가시길 원하시기 때문에, 기뻐하라 말씀하시고, 감사하라 말씀하시는 것이죠.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하나님은 우리의 부모님과 같은 분이세요. 우리 부모님은 우리 자녀들을 위해서라고 한다면, 모든 좋은 것을 해주고 싶어 하고, 우리 자녀들이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것이고, 정말 우리 자녀들의 그 삶을 위해서라고 한다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길 원하는 그런 부모님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가 복되고 행복하고 온전해지기를 원하시는, 그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가장 좋은 길을 말씀해 주고 계시는 것이죠. 우리에게 가장 행복한 길을 말씀해 주고 계시는 거예요.


그런데 인간 부모는 어떤 부모인가? 인간 부모는 어리석어서, 우리 자녀들을 위한다고 하는 것이 오히려 우리 자녀들을 망쳐버리고, 우리 자녀들을 위한다고 하는 것이 실수가 많아버리고, 자녀들을 위한다고 하는 것이 지혜롭지 못하고, 모든 것을 다 알지 못해서, 그래서 마음은 원하고 있지만,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우리 자녀들의 그 마음을 망쳐버리기도 하고, 자녀들을 위한다고 하는 것이 사실은 자녀들을 더 망쳐버리는 것으로, 그렇게 인도해 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종종 뉴스에 듣게 되면 참 안타까운 비극의 이야기를 뉴스로 많이 듣게 되는 것이죠. 우등생 학생이 자기 친엄마를 죽여버렸다고 하는 뉴스를 듣습니다. 엄마는 그 아이가 더 공부 잘하기를 원해서 말을 했던 것이고, 이 아이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고 싶어서 그 아이를 향해서 잔소리를 하고, 최고가 되라고 그렇게 윽박질렀는데 이 아이는 너무나도 괴로운 거예요. 너무나도 슬픈 거예요. 너무나도 분노에 차서, 결국 그 엄마를 죽여버렸다고 하는 그런 안타까운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그런데 인간 부모라고 하는 모습이 언제나 그렇게 실수가 많아요. 지혜롭지 못해요. 자녀들을 위해서 가장 좋은 것을 해준다고 하지만, 정반대로 자녀의 인생을 망쳐버리는 일들을 하는 게 우리 부모들의 어리석은 모습인 것이죠.


하지만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우리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는 하나님이세요. 우리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이신가?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세요 우리를 잘 알고 계시고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가를 아시고, 우리의 삶을 완벽하게 아시는 그 주님께서 우리가 가장 좋은 길로 행복한 길로, 그리고 정말 온전한 길로 가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저와 여러분들을 향해서 해주시는 말씀이 항상 기뻐하라. 분노하고 화내고 절망하고 괴로워할 게 아니라, 항상 기뻐하라. 우리를 온전하게 만드시고 행복하게 만드시고, 우리를 가장 잘 아시는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하시는 말씀이 범사에 감사하라 말씀하고 계시는 거예요.

그런데 왜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은 진리의 말씀이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그 말씀은 우리에게 가장 유익한 말씀인데 왜 우리는 늘 실패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의 마음속에 헛된 우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할 것, 우리를 만족하게 해주지 못할, 우리를 온전하게 해주지 못할 이 세상에 썩어질 것들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이 세상에 썩어질 것들에 대한 소망을 너무나도 크게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우상들을 갈망하면서, 그러한 우상들을 바라보면서, 우상 앞에 우리들의 목을 매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죠. 사실 우리 인생들의 모든 문제의 근원이 어디에 있느냐 하면, 우리들의 마음속에 우상을 두는 데, 우리의 문제가 있습니다.


우상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에게 화려한 것을 약속하지만, 그러나 우리에게 그 약속한 것을 주지 않고, 우리를 파멸시키고, 우리를 망가뜨려버리는 것이 우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우리는 주님을 섬긴다고 말하고 있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주님이 나의 주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하지만, 그러나 정작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늘 주님이 아닌 다른 것들이 우리들의 우상이 되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돈이 우상이 되어버릴 때도 있고, 우리 자식이 우상이 되어버릴 때가 있고, 때로는 우리들의 명예가 우상이 되어버릴 때가 있고, 우리의 자존심이 우리의 우상이 되어버릴 때가 있는 것이죠.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주님을 따라야 되는데, 아버지와 가족들을 다 내 팽개치고 주님을 따라야 하는데, 우리는 쟁기를 붙들고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그런 부족한 제자의 삶을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그 우상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우상을 좇아간다고 한다면, 결국은 닭 쫓는 개 신세처럼 허망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따라서 우상을 우리가 마음속에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돈이라고 하는 우상을 쫓아가다 보면, 명예라고 하는 우상을 쫓아가다 보면, 그 자존심이라고 하는 우상을 쫓아가다 보면, 결국에는 감사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절망과 불평, 원망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죠. 결국 이 세상의 우상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파멸로 이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감사하며 살 수 있는 비결이 있다고 한다면,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들어와 있는,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을 자리 잡고 있는, 그런 우상들을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서 제거해 버리고, 우리의 소망을 이 세상에 썩어지는 것에 둘 것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오직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께만 소망을 두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선지서 하박국에 보면 선지자는 하나님을 향해서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주변에 돌아가는 상황들을 바라보면 감사할 만한 일들이 없는 것이죠. 나라가 망해져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 가운데 처하는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을 향해서 원망하고 불평하기 하고 하나님을 향해서 따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던 이 하박국 선지자는 결론적으로 마지막에 이런 고백을 하면서 하박국서를 마무리합니다. 하박국 3장 17절에서 18절 말씀에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줄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의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다 있다가도 없어질 것이지만, 우리를 사랑하사 하나밖에 없는 그 아들을 십자가 위에 내어주신, 그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 우리 가운데 있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우리가 무엇 때문에 기뻐해야 되는가? 이 세상의 것들 때문에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고 그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고 하는 그 사실을 생각한다면 감사하지 못할 게 없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것에 소망을 두면, 우리는 머지않아 실망하게 될 겁니다. 아무리 좋은 것도 결국은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무엇에 기뻐하고, 무엇에 열광하고 무엇에 흥분하면서 살아오셨습니까? 여러분들을 행복하게 해 주었던 것이 무엇입니까? 그 모든 것들이 우리를 영원히 만족시켜 주는 것이 이 세상에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만일 사람에게 소망을 둔다면 우리가 사람에게 기대를 한다면 결국 100% 실망할 겁니다. 사람에게 우리의 마음을 두고 사람에게 우리의 기대를 두면 반드시 100% 실망하게 될 겁니다. 돈에 우리의 소망을 둔다면 반드시 실망하게 될 겁니다. 권력에 소망을 둔다고 한다면 반드시 실망하게 될 겁니다. 그것으로는 우리가 감사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두 우리를 반드시 실망시킬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제가 처음 우리 예수비전교회 강단에서 말씀을 전하면서, 지금까지 계속해서 반복하고 또 반복하고 또 반복해 왔던 메시지는 우리의 소망을 사람에게 두지 말라는 거예요. 아무리 좋은 사람도, 아무리 멋있는 사람도 아무리 좋은 것도 이 세상에 그 어느 것을 우리의 마음속에 우상으로 둔다고 한다면 결국은 우리는 실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고, 우리의 소망은 오로지 하나밖에 없으신 우리를 사랑하시는 참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주님께만 소망을 두며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며, 늘 감사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절망하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우리는 그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감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안에서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금 당장 내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전부가 아니에요. 그야말로 하나님의 어마어마하게 큰 그 계획 가운데 가장 작은 한 부분일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 작은 일부분을 보고 기뻐할 것도 아니고, 그 작은 일부분을 보고 절망할 게 아니라, 우리는 거기서 불평할 게 아니라, 그 뒤에 얼마나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그 역사하심이 기다리고 있는지 기대하면서, 우리가 소망 가운데 주님을 바라보며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죠.

이 세상 사람들도 불신자들도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 것들이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하는 것을 너무나 잘 압니다. 인생지사 새옹지마라고 하는 말이 있는데, 좋아 보이는 일이 결코 좋은 게 아니고, 결코 좋지 않아 보이는 일이 결국에는 좋아 보이는 것으로 판결되면서, 이 세상 사람들의 지혜에서도, 우리가 단편적인 지금 눈앞에 일어나는 일에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고 교훈해 주고 있는데, 우리 주님을 믿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하는 사실을 믿고,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크고 놀랍고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고 하는 사실을 믿는다고 한다면,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조그마한 것들이 흔들린다고 해서, 돈이 흔들리고 사람이 흔들리고 , 내가 서 있는 터전이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고, 내가 소망하던 것들이 그냥 아무런 열매 없이 무산되는 것처럼 보이고, 그리고 모든 것에 아무런 소망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절망하거나 불평하거나 원망할 게 아니라, 범사에 감사하라 하신, 주님의 음성을 기울이며 믿음으로 일어서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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