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성경의 맨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을 이번 주에 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까지 읽으면, 요한계시록을 마무리하게 되고, 성경 전체를 다 마무리하게 됩니다. 기쁘신가요? 기쁩니다. 그래서 이번 주에는 요한계시록을 읽게 되었는데요. 이 요한계시록이라고 하는 책은 다른 성경책과는 달리, 조금 이해하기가 어려운 책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늘 접해왔던 책, 지금까지 우리가 잘 읽었던 성경책과는 좀 다른 종류의 글을 쓰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읽고 이해하기에 편한 글은 어떤 종류의 글이죠? 사실적인 글들이 우리가 읽기에 편한 겁니다. 사실적인 글들을 보면, 말하는 것이 그대로니까, 말하는 걸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니까, 이해하기가 쉬운데, 요한계시록은 어떤 책인가? 사실적인 글이 아니라, 마치 무엇과 같으냐 하면, 판타지 소설과 같은 책이에요. 영화로 치면 sf 영화와 같은 그런 책인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주로 익숙한 장르는 어떤 장르에 익숙하죠? 그냥 드라마가 편하잖아요? 우리의 생활을 그대로 그대로 보여주는, 그런 드라마가 편한데, sf 공상과학 영화를 보게 되면, 참 모든 게 이해가 안 되고, 혼란하고, 내가 이거 제대로 이해하고 있나 싶을 정도로, 모든 것이 참 혼란스러운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도 역시 마찬가지라고 하겠는데요. 요한계시록이라고 하는 이 책은 그냥 사실적인 묘사의 글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상상력을 발휘하게 하고, 뭔가 온갖 그림과 묘사를 통해서 전달하고자 하는 그런 의미가 있기 때문에, 이 요한계시록을 이해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요한계시록을 많이 설명을 하지 않았던 경향들이 있고, 뿐만 아니라 이 책을, 특별히 잘못된 신학을 가진 사람들이, 그리고 이단들이 함부로 억지로 해석하면서, 수많은 사람을 혼란시키게 만들었던 책이 이런 요한계시록이라고 하겠습니다.
아마도 널리 퍼져 있는 그런 요한계시록에 대한 설명들을 보시면 대부분 엉터리라고 보시면 맞아요. 순 엉터리 해석들이 우리 주변에 막 많이 회자되고 있다고 하는 것을 기억하면서, 누가 요한계시록에 대해서, 뭐 신박한 해석이니 뭐니 하면서 하면, 별로 관심을 안 기울이는 것이 영적인 건강에 훨씬 더 유익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요한계시록의 내용을 우리가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이런 내용이에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침내 승리하실 것이다”라고 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 바로 요한계시록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에서부터 부활하셔서, 그리고 온 세상을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리시고, 승리할 거라고 하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는 게, 바로 요한계시록의 메시지인 것이고요. 예수님께서 승리하실 것이기 때문에, 우리 성도들은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요? 인내해야 되는 것이죠.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녹록지 않은 그런 현실을 접하고 있는 겁니다. 성도들이 살아가는데, 쉬운 세상이 아니라, 참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황 가운데, 우리 성도들이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서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여러 가지 불안한 마음이 있는 것이죠. 이러다가 우리가 망하는 거 아닐까? 이러다가 우리 교회는 완전히 무너져 버리는 거 아닐까? 정말 이러다가 우리는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한 채, 그냥 의미 없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닐까? 그런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성도들이,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보면서, 어떠한 용기를 얻을 수 있을까요? 아니구나! 망하는 게 아니라, 예수님께서 승리하실 거구나! 온 세상을 다스릴 것이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될 것이고, 하나님의 뜻대로 온 세상이 움직여질 거라고 하는, 그 승리의 메시지를 보면서, 우리 성도들이 가져야 될 마음의 자세가 있다고 한다면, 참고 인내하며, 끝까지 견딜 수 있는 그런 권고의 메시지를 주는 책이 바로 요한계시록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따라서 이번 주하고 다음 주에 우리가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읽어나가는 가운데, 이 메시지가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바라보게 하고, 그래서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좌절하거나 낙망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믿음을 잘 지켜 나가도록, 우리들의 믿음을 강화하고 있다고 하는, 그 메시지에 주목해서, 이 성경 말씀을 읽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이해할 때, 어떻게 이해해야 하냐면, 큰 그림으로 요한계시록을 이해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은 그림을 그려가는 것과 같아요. 어떠 상징적인 그림들을 통해서 전달하려고 하는 메시지가 있는데, 이런 그림들을 그려나갈 때, 큰 그림을 봐야 그 메시지를 제대로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그림 박물관, 전시관에 갔다고 한다면, 어떤 작가가 그린 그 그림을 볼 때, 그 그림을 어디서 봐야 되죠? 바짝 그림 앞에 가 가지고 물감 하나하나 분석하면서 봐야 됩니까? 조금 떨어져서, 그 그림 전체가 어떤 감정을 나에게 전달하고 있는지, 그 그림이 나에게 어떻게 말을 걸어오고 있는지, 약간 몇 걸음 뒤에 서서, 그렇게 그림 전체를 보면서 그 그림의 인상을 봐야 됩니까? 1번입니까? 2번입니까? 2번이에요.
이와 마찬가지로 요한계시록이라고 하는 것도 마치 하나의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습니다. 아주 우리가 잘 이해할 수 없는 그림인데, 어떤 그림이냐면,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 중에 밥 로스가 있어요. 로스, 밥 로스 아십니까? 밥 아저씨 모르나요? 밥 아저씨 그 밥 로스의 그 그림을 보면 그 자연환경을 정말 멋있게 그려요. 그러니까 그 아저씨의 그림을 보면, 그 그림이 예뻐요. 참 잘 그렸구나 그런 걸 느껴요. 어때요? 그렇죠? 정말 잘 그려요. 저 그걸 보면서 “나도 밥 로스처럼, 한번 그림을 한번 그려볼까?”라고 하는 동기가 부여될 만큼 그렇게 그림을 그린 거예요. 근데 그 작가보다도 훨씬 더 유명하고 훨씬 더 비싼 값에 팔리는 그런 그림이 있습니다. 누가 있을까요? 피카소가 있어요. 근데 그 피카소의 그림을 보면 이해가 돼요. 이상해요. 눈이 이렇게 생겼고, 입이 이렇게 생겼고, 도대체 이걸 무슨 그림이라고 그려놓은 거지? 아니 우리 초등학생 아이들이 그려도 이 정도는 그리겠다 싶을 정도의 그림들을 기괴하게 그려 놓은 겁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피카소의 그림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대요. 나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전문가들이 그러는데, 피카소의 그림은 뭔가 깊은 뭔가가 있대요 저는 아무리 봐도 모르겠어요. 있다고 하니까, 있는가 보다 그러면서 보는데, 여전히 모르겠어요.
요한계시록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마치 이런 피카소의 그림과 같은 그림으로, 우리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해 주고 있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이 요한계시록을 볼 때는 어떻게 봐야 되냐 하면, 큰 그림으로 봐야 됩니다. 큰 그림으로 봐야 된다고 하는 것은 구체적인 그 물감 하나 하나, 구체적인 그 표현 하나하나, 색깔 하나하나에 우리가 너무 큰 관심을 보일 필요가 없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영감된 말씀이고, 그 어느 것 하나 의미가 없는 것이 없겠지만, 그러나 우리가 기억할 것은 이 요한계시록을 보면서는, 너무나도 과도하게 문자 하나하나 표현 하나하나에, 우리가 집중하다 보면, 큰 그림을 놓쳐버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큰 그림, 약간 몇 발짝 뒤로 떨어져서, 어떤 그림을 그려나가고 있는가? 이 그림을 통해서 어떤 메시지를 전해주려고 하는가를 뒤에서 감상하는 그런 관점으로 봐야 되는 것이죠.
제가 조금 전에 말씀드리기를, 요즘 우리 주변에서 많이 들리는 요한계시록의 설교, 요한계시록의 해설 책들 이런 것들이 순 엉터리, 정말 조잡하고 아무런 가치가 없는 쓰레기와 같은 해석들이 너무나도 많다고 말씀드렸는데, 그런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그 모든 해석들이 다 이 요한계시록을 큰 그림으로 보지 않고, 물감 하나하나 분석해 가면서, 이게 무슨 의미가 있고, 저게 무슨 의미가 있고 하면서, 사람들을 호도시키고 있기 때문에, 그런 엉터리 해석들이 나오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특별히 신천지나 이런 이단 종파에서 이런 방법들을 많이 사용하게 되는데요. 우리는 그림을 볼 때, 현미경을 갖다 들이대면 안 되는 것처럼, 현미경으로 들이대면서, 그 작가가 왜 이걸 여기에다가 이렇게 물감을 이렇게 칠했을까? 저렇게 칠했을까? 거기 그렇게 고민할 필요가 없어요. 큰 그림으로 보게 만들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우리가 볼 때는 큰 그림으로 봐야 된다고 하는 것을 말씀드리는 거예요.
예전에 제가 요한계시록을 설명하면서 강의하면서, 하나의 그림을 제가 소개시켜드린 적이 있습니다. 어떤 심리 치료하는 그 사람이 어떤 하나나 아이에게 그림을 그리라고 이야기한 겁니다. 그림을 그리는데 어항 속의 물고기로 내가 내 가족들을 표현해 보라고 그 아이에게 요구를 한 것이죠. 그랬더니 그 아이가 어항 속에 여러 가지 물고기들을 그려 넣었습니다. 그 어항 속에는 문어가 한 마리 그려져 있는데요. 그 문어는 이 발로 여기 위에도 저 밑에도 막 온 의항 전체를 다 그 발로 휘젓고 다니는 그런 문어를 한 마리 그려 크게 그려놨습니다. 그리고 한쪽 구석에는 메기 한 마리가 저 어항 바깥을 바라보고 있는 그런 메기를 한 마리 그려놓은 거예요. 그다음에 또 하나는 뭘 그려놨는가 여기에 조그마한 물고기를 하나 그려놨고, 그 밑에는 수초 수초 밑에 숨어 있는 조그마한 꽃게 한 마리를 그려놓은 겁니다.
그래서 그 아이에게 “이게 누구를 의미하느냐?”라고 물었더니, 그 아이가 하는 말이 이 문어는 우리 엄마예요. 그러는 거예요.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까? 엄마가 이것저것 다 참견하면서, 집안일에 모든 것들을 다 다 휘젓고 다니기 때문에, 엄마는 마치 문어처럼 보인다는 거예요. 그러면 여기 있는 이 아빠는요, 물고기 메기 한 마리, 저 밖을 쳐다보고 있는 저 메기는 뭐냐? 그랬더니, 우리 아빠래요. 아빠는 자기 할 일만 하고 있대요. 이 수초 속에 숨어있는 꽃게는 뭐냐? 저는 두려워서 숨어 있는 나 저를 그린 거예요. 나는 수줍어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지 않고, 그래서 숨어 있는 거예요. 그런데 누군가 나에게 와서 해코지하면, 내가 집개로 그냥 콱 깨물어버릴 거예요. 자기 자신의 마음을 그렇게 그림으로 표현한 거죠.
그래서 이 그림을 보면서, 이 아이가 이 그림을 통해서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이해를 해야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이 요한계시록의 메시지를 통해서,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해주려고 하는가를 봐야 되는데, 그 메시지가 무엇이라고 그랬어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궁극적인 승리, 이 세상을 다스리고 통치하시는 주님의 왕국의 승리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 성도들은 두려워하거나, 떨거나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가운데, 주님을 신뢰하는 가운데, 믿음을 끝까지, 어려운 일이 있어도, 두려워하지 말고, 낙망하지 말고, 그 믿음을 끝까지 지켜야 된다고 하는 그 메시지를 전한다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그 요한계시록의 메시지를 통해서, 그 그림을 읽어낼 필요가 있는 것이죠.
그런데 만일 이 아이의 그림을 보면서, 왜 수초는 7개의 이파리를 그렸을까? 왜 꽃게는 이 다리는 길고, 이 다리는 짧게 그렸을까? 왜 문어의 이 빨판들이 왜 8개지? 왜? 7개가 아니고? 그런데 관심을 집중하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요? 해석이 산으로 가버린 거, 잘못된 해석이 나오는 거예요. 물론 거기다 의미를 부여하면 그럴듯해 보여요. 이 아이가 이 엄마 문어의 빨판에 이 빨판을 8개 그린 이유가 뭔지 알아? 일주일을 7일이 아니라 8일처럼 살고 있기 때문이야! 그런가? 그럴듯해 보여요. 하지만 거기에 의미가 있는 게 아니에요.
요한계시록에 보면 여러 가지 그 그림들이 나옵니다. 천사들이 나타나서 대접을 쏟아붓기도 하고, 나팔을 불기도 하고, 또한 짐승들이 나타나기도 하고, 전쟁이 일어나기도 하고, 온 세상이 정말 그 재난 속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하늘이 흔들려서 그 별들이 떨어지기도 하고, 산들이 바다에 집어넣어 주기도 하고, 그런 온갖 이야기들이 다 그려지고 있는데, 과연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게 과연 우리가 살아가는 우리의 인생 인생 역사 가운데서, 이러한 일들이 언제 나타날 것인가? 언제 산이 무너질 것이고, 언제 그 짐승들이 바다 위에서 솟아올라올 것이고, 언제 666 마크를 맡게 될 것이고, 언제 뭐가 나타날 것이고, 그런데 언제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나게 될 것이고, 이러한 7년 대환란이 언제 일어날 것인가? 이런 거를 집중하면서 연구하기 시작한다고 하면, 그럴듯하게 사람들을 속일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요한계시록의 정확한 메시지라고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순엉터리 해석인 것이죠.
미래에 대한 예언으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요한계시록을 읽으면서, 우리가 지금 이렇게 살아가고 있지만, 머지않은 장래에 7년 대환란이라고 하는 어마무시무시한 일들이 일어나게 될 거라고, 우리를 공포에 몰아넣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떤 짐승과 같은 사탄의 세력이 나타나서, 온 세상 전체를 다스리면서, 우리에게 666표를 머리나 이마에나 손에 집어넣게 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될 텐데, 만일 그렇게 되면 우리가 그 666표를 받게 되면, “천국에 가지 못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도 하는 것이죠. 천년 왕국이 일어날 거라고 하는 이야기도 하는 것인데, 대표적으로 전부 엉터리 순 어 잘못된 해석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요한계시록에 대해서 다 설명할 수는 없어요. 그러니까 이번 주와 다음 주에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읽으면서, 이런 메시지들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에 대해서 큰 그림을 보고 싶다고 한다면, 제가 예전에 요한계시록 강해로 설교를 한 게 있었는데요. 그게 홈페이지에 올라가 있습니다. 유튜브 영상으로 올라가 있으니까, 이번 요한계시록 성경을 읽으면서, 기회가 되시는 분들은, 그때 제가 했던 요한계시록 설교를 다시 한번 들어보시면서, 복기해 보시는 것도, 큰 유익이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오늘 우리는 그 요한계시록 가운데서 제일 첫 부분인 밧모섬에 끌려갔던 요한이 금촛대의 환상, 일곱 별의 환상을 본 이야기를 묘사하고 있는 게 오늘 성경의 말씀입니다. 도대체 이 이야기를 통해서 무슨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는 것일까요? 예수님이 인자 같은 이가 촛대 사이를 거닐고 있는데, 발이 끌리는 옷을 입었다는 게 무슨 의미고, 가슴에 금띠를 띠었다고 하는 게 무슨 의미고, 머리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은 불꽃같고, 뭐 이런 것의 의미가 다 무엇일까? 그렇게 그런 의미를 고민할 필요가 없어요. 그건 그냥 전체 그림으로 보시면 돼요. 전체 그림으로! 전체 그림, 그러니까 예수님에 대해서 묘사하고 있는데, 예수님이 어떤 분이라는 거예요? 한마디로 대단한 분이란 얘기예요. 대단한 분이라는 얘기예요. 온 세상을 다스리는 분이시라는 얘기예요. 온 세상의 구주라고 하는 의미예요. 온 세상의 왕이라고 하는 의미예요.
우리가 볼 때, 왕은 누구예요? 로마 황제가 왕이란 말이에요. 당시 시대에 권력을 붙들고 온 세상을 벌벌 떨게 하는 최고의 권력자가 누구냐 하면, 로마 황제, 시저(Caesar)가 온 세상을 정말 철권통치를 하면서, 온 세상을 다스리고 있는 그 상황 가운데서, 모든 사람이 그 로마 황제 앞에 머리를 숙이고, 황제가 시키는 대로 다 굴복하고, 황제의 명령에 따라서 행할 수밖에 없는 그 상황 가운데 살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촛대 사이에 일곱 별을 붙들고, 그 촛대 사이를 다니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니, 엄청나게 휘황찬란하고 정말 대단한 모습의 예수님이 나타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성도들이 보아야 할 것이 무엇이에요? 이 세상을 다스리는 진짜 왕은 로마 황제가 아니라 예수님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온 세상을 통치하고 계시다고 하는 사실을 바라보게 하는 그림이란 말이에요.
그 그림을 봐야 되는 것이죠. 금띠는 뭐고, 눈빛은 뭐고, 이 옷이 왜 다리에 끌리고, 왜 핫팬츠가 아니라, 왜 긴 옷이었을까? 그런데 신경을 쓰지 마시라 이 말이에요. 그런데 교회를 그리면서 교회 일곱 금촛대가 있는데, 그 일곱 금촛대가 무엇을 나타낸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교회를 나타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20절 말씀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죠. “내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촛대라.” 일곱 별은 누구요?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라. 이런 환상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정말 자기 자신이 누구인가를 들여다보게 해 주시는, 그런 거울과 같은 말씀인 것이죠.
초대교회 성도들은 지금 어떤 상황 가운데에 있습니까? 고통을 받고 있어요. 로마 황제가 지배하는 이 세상 가운데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혐오의 대상이고, 비아냥거림의 대상이고, 저 나쁜 놈들 온갖 손가락질을 당하면서, 그리고 경제생활도 제대로 할 수 없는, 너무 비참한 상황 가운데서, 겨우겨우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바로 초대교회 성도들이었던 것이죠. 그렇게 신앙생활하면서 어떤 마음의 생각이 들겠어요? 우리가 갖고 있는 이 믿음이 진짜인가? 이러다가 우리 망하는 거 아닌가? 이러다가 우리 완전히 아무런 결과도 없이 아무런 소망도 없이, “그냥 망하는 것 아닌가?”라고 하는 그런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성도들에게, 이 요한계시록이라고 하는 그림책을 통해서 보여주는 겁니다. 너희들이 누군 줄 아냐? 너희들이 누군 줄 아냐? 하나님께서는 너희를 누구라고 보고 있는 줄 아느냐? 하나님은 너희를 금촛대와 같이 보신다. 너희는 쓰레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소중하게 여기시는 존재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죠.
사실 교회의 모습이라고 하는 게, 어떤 모습입니까? 초대교회의 모습은 정말 아름답고 정말 사랑이 넘치고 정말 은혜가 풍성하고 아무런 잘못도 없고, 정말 완벽한 예수비전교회하고는 비교할 수도 없는 그런 완벽한 교회가 초대교회였을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니었어요. 예수비전교회가 더 나아요. 초대교회의 모습이 어떤 모습이었는가? 우리가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 보면 초대교회의 일곱 교회의 모습을 묘사해 놓고 있는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 일곱 교회 가운데 비난을 책망을 들은 교회가 있어요. 무슨 교회죠? 대부분의 교회들이 다 책망을 들었어요. 처음 사랑을 버렸구나. 너희 가운데 이단이 들어와 있구나. 활동하고 있구나. 너희 가운데 더러움이 있구나. 주님께서 보실 때 온갖 잘못들이 많은 거예요. 칭찬만 받은 교회도 있지만, 책망만 받은 교회도 있고, 그래서 교회 자체로 본다면, 교회 내부적으로 본다면, 좋은 교회였느냐 하면, 좋은 교회라고 말할 수가 없어요. 그 교회 안에 온갖 어려움이 있는 겁니다. 온갖 아픔이 있는 겁니다. 온갖 사악한 모습들이 다 있는 거예요. 교회 내부적으로 봐도 그렇고, 외부적으로 보면 세상 사람들의 온갖 공격을 받고 있고, 그러니까 교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살아가면서, 도대체 우리는 뭔가 우리는 내놓을 게 없다. 우리는 정말 힘들고 어렵다. 정말 우리는 어디서 명함 하나 내놓을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놀랍게도 주님께서는, 그 초대교회 일곱 교회를 보면서, 너희는 쓰레기가 아니라, 너희는 금촛대라고 말씀해 주시는 거예요. 너희는 하나님께서 소중하게 본다고 말씀해 주고 계시는 거예요.
요한계시록에 보면, 천사들이 금향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서 붓습니다. 그랬더니 금향로 그 금향로가 주님 앞에 들여지고 그것이 들여지는 순간에 번개가 치고 천둥이 치면서 우르릉쾅쾅거리고 온 세상이 뒤집히는 거 그런 환상을 통해서 무엇을 이야기해 주는 거예요. 우리 성도들의 생각에, 우리가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안 들으시는 것 같아요. 좀 하나님께서 들어주시면 좋겠어요. 하나님은 능력이 많으신데, 그런데 하나님이 안 들어주고 계셔요. 저 로마 황제 좀 죽었으면 좋겠는데, 안 죽어요. 대신 누가 죽어? 우리가 사랑하는 우리 형제가 죽어요. 하나님 좀 악한 사람 좀 죽여주세요. 근데 하나님 왜 우리의 기도를 안 들어주시는 거예요? 하나님 이 문제 좀 해결해 주세요. 우리의 재정의 문제를 좀 해결해 주세요. 우리 앞길의 문제를 해결해 주세요. 하나님께서 아무런 기도도 안 들어주는 것 같아서,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절망감이 생기는 거죠.
그런데 그렇게 절망감을 생기고 가지고 있는 성도들을 향해서, 보여주는 게 무엇이냐면, 너희의 기도가 그냥 땅바닥에 그냥 떨어져 버려서, 산산이 흩어져버린, 아무 의미 없는 그런 쓰레기가 되어버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천사들의 그 섬김으로, 너희들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받으셨고, 그 기도가 아무런 효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박살내고 박살 내고 있다. 우르릉쾅쾅거리며 온갖 온 세상을 뒤집어놓는 어마어마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성도님들에게 보여주는 환상이 금향로의 환상인 거죠.
그래서 그 전체적인 그림들을 보셔야 하는 것이죠, 제가 요한계시록 설교를 하면서, 예를 하나 들었습니다마는 마치 이것은 라이온킹에게 아무런 목적도 소망도 없이 살아가고 있던 심바라고 하는 어린 사자에게 너는 더 이상의 어린아이가 아니고, 밀림의 왕이 되는 엄청난 능력을 가진 사자라고 하는 사실을 보여준 것과 같다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아빠를 죽인 자책감으로 인해서 멀리 도망가서 아무런 의미도 없이 하쿠나 마타타, 될 대로 돼라 하면서, 그냥 의미 없이 살아가고 있던 그 심바라고 하는 사자에게, 라피키라고 하는 원숭이가 나타나서 어느 날 그 신발을 데리고 호수 앞에 서게 만드는 것이죠. 호수 안을 들여다보라. 내 아빠가 거기 있다 하면서 들여다보게 하는 거예요. 심바가 그 호수를 딱 들여다보는 순간 아빠의 얼굴이 보이는 거예요. 아빠! 그러는데, 아빠가 아니에요. 누구예요? 자기 자신이에요 나는 아기 사자인 줄 알았는데, 나는 아무런 힘이 없어서, 삼촌을 피해서 도망 다녀야만 하는, 그런 능력이 부족한, 피해 다녀야 되는 동물인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에 자신이 자기 아빠처럼 커버린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 그 사건을 통해서, 이 심바는 다시 밀림으로 돌아가, 그 밀림의 그 모든 어 무질서를 평정하고, 밀림의 평화를 가져오는 그런 왕으로 등극한다고 하는 이야기가 라이언킹이라고 하는 영화예요. 소설이에요. 동화예요. 대부분의 소설과 동화들은 다 복음의 메시지를 어느 정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무엇인가? 우리에게 우리를 이끌고 호수로 데려가서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여러분은 누구예요? 권사님 누구예요? 내가 지금 우리 애들하고 힘들게 사는 거 보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요. 그냥 나는 늘 넘어지고 쓰러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아무런 힘도 소망도 없어요.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들을 어떻게 보고 계시는가? 하찮은 존재로 보는 것이 아니라, 소중하게 금촛대로 보고 계시고 우리를 어떻게 보고 계셔요? 왕 같은 제사장으로 보고 계시는 거예요. 우리가 정말 별 볼 일 없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왕자로 보고 계시고, 공주로 보고 계시고, 그래서 우리를 너는 내 아들이라. 너는 내 딸이라. 이 세상을 정복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승리하며 살아라고 말씀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옆 사람한테 말하세요. 아이고, 왕자님! 아이고, 공주님!
요한계시록을 보면서, 그걸 봐야 돼요. 그걸! 쓰러진 실패한 내 모습을 볼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었는데, 망가져버려서 더 이상 앞에 앞길이 전혀 안 열리는 것 같은, 꽉 막혀버린 답답한 현실만을 볼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거예요. 너는 내 아들이라! 너는 내 딸이라! 너는 나의 백성이라 말씀하시며, 그래서 나의 자녀로서 능력을 가지고 살아라. 왜? 걱정하지 마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온 세상이 가장 강력한 무기인 죽음마저도 내가 이기고 승리했노라. 그리고 내가 너를 나의 그 축복의 자리로 초대한다고 하는 메시지가 요한계시록에 메시지예요. 얼마나 읽고 싶어요? 얼마나 읽고 싶어? 그 큰 그림을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읽어 나가야 될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를 끊임없이 우리의 실패를 보게 만드는 우리의 단점을 만들어요. 우리가 하지 못하는 것을 보게 만드는, 우리가 잘못했던 것만 집중하게 만듭니다. 네 꼬라지를 알아라. 네가 어디서 설치느냐? 이 못된 것들, 꼼짝 말고 찌그러져 있어. 절대 움직이지 마. 사탄은 우리를 향해서 말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이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보게 만들어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쩌면 우리는 불안한 현실 때문에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조급함이 있을 겁니다. 예전의 영광을 누렸던 사람들이, 예전의 화려함을 경험했던 사람들이, 오늘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 이런 교회의 상황으로, 도대체 우리는 뭘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좀 뭐 숫자라도 좀 많고, 돈이라도 좀 많고, 엄청난 파워를 가지고 있어야 뭐 좀 하지, 이 모습, 이 꼴 가지고,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실패한 거 아닌가?”라고 하는, 그런 그런 패배감이 우리들의 마음을 짓누르게 할 때가 많이 있을 겁니다. 또 우리 가정의 모습을 보고, 우리 내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아무런 소망이 생기지 않는다고 생각하기가 쉬울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보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금촛대로 보고 계셔요. 우리에게 더러움이 있고 아픔이 있고 부족함이 있는데, 그 더러운 것 때문에 우리를 내팽개쳐 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오셨고, 우리를 주님의 자녀로 잘 회복시킨다고 하는 그 메시지들을 읽으면서,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 앞에 온전히 서 나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