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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들에게 주는 소망 (학 2:21-23)

할렐루야! 지난주에는 우리가 역대상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역대상의 말씀에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이름들이 많이 나와서 조금 힘들었죠? 힘들었을 겁니다. 이번 주에는 역대하의 말씀을 우리가 읽게 되겠는데요. 이 역대하의 말씀을 보면 솔로몬이 왕이 되어서 성전 건축을 하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역대하 처음부터 이 성전 건축에 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고요. 성전이 건축되면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는 내용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동안 이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던 곳이 참 초라했었는데 멋진 성전을 완공하게 될 때 정말 감격이 넘치고 정말 기쁨이 넘치는 행복한 자리였을 거라고 충분히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성전을 지은 그 솔로몬에게 하나님께서는 그 옛날 다윗에게 해 주셨던 언약의 말씀을 다시 해주는 거죠. 솔로몬에게 다시 약속해 주시면서 하나님의 약속이 변하지 않고 계속될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이 솔로몬의 시대가 점점점 더 발전이 되고 영광이 계속되는 것 같았는데요. 스바 여왕이 찾아오는 것을 통해서 그 정점에 이르게 되죠. 하지만 이렇게 계속해서 상승 곡선을 올라가면서 좋은 모습만 보여주었다고 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안타깝게도 그 이후로 하강 곡선을 그리면서, 점점점점 타락해 가고 또 그 영광이 사라져 가고, 그리고 결국 다윗의 나라가 멸망해 버리는 그런 그 쇠락의 기간을 겪는 이야기가 바로 역대하의 말씀 가운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솔로몬 이후에는 남북으로 나뉘게 되고요. 남북으로 나뉘었을 때 르호보암은 북쪽 이스라엘을 공격하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 공격하지 말라고 해서 뜻을 접게 되는 이야기도 기록되어 있고요. 한편 북쪽으로 나뉘었던 여로보암 왕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이 아니라 거기에 우상을 세우고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들이 예루살렘에 가서 예배하는 것을 방해하면서 막아버리게 되자, 레위 사람들이 북쪽 지방에 있었던 레위 사람들이 남쪽으로 내려오게 되는 이야기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이후에 역대하의 내용들은 주로 남왕국 유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다루고 있는데요. 그나마 이 유다 왕들은 간간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고 하는 왕들이 하나씩 하나씩 나타나게 되는 것이죠. 물론 전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떤 왕들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 그런 왕들이 있었지만 종종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왕들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가 있는데요. 그중에 한 사람이 아사 왕이고 또 한 사람의 왕이 여호사밧 왕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아사왕은 이방재단을 없애버리고 또한 산당을 없애버리는 정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서 사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계속해서 그렇게 믿음의 길을 갔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나중에는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난 모습을 보여주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죠. 여호사밧, 왕 가운데는 여호사밧은 유대 지역에서 신앙 부흥운동을 일으키기도 하고, 또 승리를 가져오기도 하고 태평성대를 이루기도 했지만, 나중에 산당을 없애기까지 하지 않는 그런 빈약한 모습을 보여주게 되는 것이죠. 이후의 왕들은 또 계속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왕들과 하나님을 거부하는 왕들이 번갈아가면서 나오는 모습을 보여주게 됩니다. 요담왕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행했지만 그러나 백성들의 삶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아하스 왕은 우상숭배를 하면서 여호와의 성전에서 기물들을 치워버리고 그렇게 해서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는 그런 왕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히스기야 왕은 성전을 수리하기도 하고 유월절을 지키기도 하면서 신앙을 회복하는 왕으로 히스기야 왕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스라엘 민족은 외세의 세력에 의해서 풍전등화와 같은 시대를 보내다가 결국에는 므낫세 왕 같은 경우는 우상숭배를 하면서 그렇게 하나님에게서 떠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다가, 결국에는 이 유다 나라가 바벨론이라고 하는 나라에 의해서 멸망당해서 포로로 끌려가게 되고, 고통 가운데 있게 되다가, 나중에 고레스 왕의 칙령에 의해서 성전 건축을 위해서 돌아오는 과정까지의 이야기가 역대하의 말씀 가운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포로 기간은 70년의 기간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한번 그 이스라엘의 역사 그 흐름을 간단하게 한번 살펴봤으면 좋겠는데요. 사울 왕 그리고 다윗왕 솔로몬의 통일왕국 시대가 있다가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로 나뉘게 된 것이 BC 930년입니다. 그런데 저 북쪽 이스라엘 나라는 BC 722년에 아수르라고 하는 나라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게 되죠. 사실 722년에 멸망을 당하기 전에 이미 BC 745년에 숫자가 크면 클수록 더 과거입니다. BC니까 745년에 디글랏 빌레셀 왕에 의해서 공격을 당해서 허수아비 정부가 세워졌다가 결국 722년에 망하게 되고 북쪽 이스라엘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다 포로로 잡아가고, 그리고 그 이스라엘 땅에 살던 그 사람들 사이에는 이방 민족이 거주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 당시에 북쪽 사마리아 사람들은 호남 민족이 유대민족만이 아니라 이방 민족과 섞여 있게 되는 그 과정이 바로 이 멸망의 과정을 통해서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남쪽 유다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남쪽 유다는 계속해서 진행되어 오다가 BC 605년 여호야김왕 때 느브갓네살에 항복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그래서 다니엘을 비롯한 사람들이 포로로 먼저 잡혀가게 되는 것이죠. 그러다가 나중에 BC 597년에 다시 전쟁에서 패하게 되고 빛이 586년에는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면서, 그래서 결국 이스라엘 민족이 끌려가게 되었는데, 다행히 남쪽 유다에는 모든 이스라엘 민족이 끌려간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는 유대 민족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외곽에 있던 유대인들이 안으로 들어와서 살아서, 여전히 이 가나안 땅에는 유다 민족이 그대로 유지되게 되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벨론의 포로 기간을 약 70년 동안 잡게 되는데요. 그 이후에 고레스 왕의 칙령에 의해서 1차 귀환, 2차 귀환, 3차 귀환을 거쳐서 이스라엘 민족이 다시 돌아오게 되고, 예루살렘 성전이 제2 성전이라고 합니다. 제1 성전은 솔로몬이 지은 성전이 제1 성전, 두 번째 포로 이후에 돌아와서 지은 성전을 제2 성전이라고 하는데, 그 성전이 이루어져서 다시 이스라엘 민족이 복귀하게 되는 그 역사를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이제 치워줘도 좋겠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지만, 그러나 다시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되는 그러한 놀라운 일을 겪게 되는 것이죠. 이것은 어쩌다 보니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신 것이다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에스라서 1장 1절 말씀에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사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아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이 고레스 왕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셔서, 어느 날 갑자기 이 고레스 왕이 유다 민족은 자기 나라로 돌아가서 이스라엘 성전을 건축할 수 있도록 허용해 줍니다. 그냥 일반 왕이 그냥 그렇게 명령을 내린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고, 이스라엘 민족을 돌보게 해 주셨다고 하는 그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 것이죠.


그래서 다시 돌아와서 학개의 스가랴 선지자들이 권고해서 이스라엘 민족들을 독려해서, 성전을 재건하는 일이 있게 되었고, 그 이후에는 에스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서 온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또 느헤미야 선지자는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일을 하게 해서, 다시 무너졌던 성벽을 다시 재건하고 다시 무너졌던 이스라엘 민족을 다시 세우는 일들이 쭉 그 이후에 벌어지게 되어서 다시 회복하는 그 과정을 겪는 이야기가 소선지서를 읽어보면 등장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을 때는 얼마나 충격이었겠습니까? 그야말로 엄청난 충격이었죠. 왜냐하면 그 옛날 다윗 왕 시절에 그리고 솔로몬 왕 시절에 하나님께서 다윗의 나라를 영원히 계속하게 해 주실 것이다라고 말씀해 주셨고, 그 왕위가 영원히 계속되리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그 하나님의 약속과는 정반대로 이스라엘 민족은 망해버렸고,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고 자기 나라를 잃어버리게 되었으며 더 심각한 것은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어 버린 것이죠. 예루살렘 성전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과 만나주시는 장소이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계신다고 하는 것을 증명해 주는 그런 장소였고, 하나님이 계시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그런 장소였는데, 성전이 무너지는 그것을 보면서 아 하나님이 아무런 힘이 없는가? 하나님의 약속은 허망하게 끝나버리는가? 우리를 도울 수 있는 하나님은 사라져 버렸는가? 하는 그런 영적인 충격 가운데 빠지게 된 것이 이스라엘 민족의 모습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바벨론으로 끌려간 이스라엘 민족들이 한 일이 무엇이었을까요? 바벨론에 가서 이스라엘 민족은 무엇을 했을까요? 울었습니다. 울었습니다. 시편 137편 1절에서부터 4절 말씀에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이 시편 137편의 말씀은 포로로 끌려갔던 이스라엘 민족의 그 마음을 그대로 드러낸 시편이라고 할 수가 있어요. 바벨론에 끌려가서 펑펑 울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셨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내치셨다고 하는 그 슬픔 가운데 펑펑 울고 있고, 이스라엘 민족들이 유다 민족들이 악기를 잘 타는 민족인데, 이 바벨론 사람들이 우리를 위해서 풍악을 울려봐라. 노래를 해라. 그러니까 노래할 수가 없어서 상처를 받은 슬픔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민족들은 악기들을 수금을 버드나무에 걸어놓고 우리는 노래할 수 없다고 하는 그 슬픔 가운데 지냈던 것이 이스라엘 민족의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슬픔을 슬픔 가운데 있었던 이스라엘 민족이었지만 소망이 없는 것은 아니었어요. 소망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 여전히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면 이스라엘 민족을 심판하셨는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때리셨는데 상처를 주셨는데, 왜 이스라엘 민족들이 하나님에게 다시 소망을 얻습니까? 왜냐하면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상처를 주신 분이시기도 하고 동시에 싸매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슬픔 가운데서 그래도 바랄 수 있는 것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소망을 두면서, 하나님께 회복을 간구하면서 바라볼 수가 있었던 것이죠.

예레미야 에가 3장 21절에서부터 24절 말씀에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하도다.” 이스라엘 민족들이 포로로 끌려가서 거기서 고통 가운데 있었지만, 여전히 이스라엘 민족들이 소망을 둘 수 있는 것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치셨으나 도로 싸매실 것이고, 우리를 어려움 가운데 처하게 하셨지만, 우리가 다시 회복되는 것은 그 어떤 외세의 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지혜가 뛰어나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 밖에, 여전히 은혜를 베푸실 뿐만 아니라, 그 옛날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약속, 그리고 다윗에게 하셨던 그 약속 그 약속들이 사라진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사라지지 않고, 그걸 통해서 이루실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거기에 소망을 두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엎드렸는데, 결국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해 주신 것이죠.

학개 선지자와 스가랴 선지자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성전을 재건하도록 그렇게 권고했는데요. 이러한 성전을 다 지어놓고 두 번째 성전을 지었을 때 그들의 마음이 기뻤을까요? 기쁘지 않았을까요? 성전을 이제 완공했으니까 기뻤을 거라고 생각하면 착각입니다. 왜냐하면 지어놨는데, 너무나도 초라한 거예요. 예전의 성전이 어땠어요? 솔로몬의 성전은 그야말로 멋있고 그야말로 화려하고 금은동 다 써가면서 백행복을 써가면서 엄청나게 멋있는 성전을 지었는데, 포로에서 돌아와서 이스라엘 민족들이 다시 성전을 만들겠다고 해서 뚝딱뚝딱해서 만들어 놓은 그 성전은 너무나도 초라해서, 그 옛날 그 성전을 기억하고 있었던 이 이스라엘 민족들의 마음 가운데 기쁨이 생긴 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참 안타까운 것이죠. 우리가 이 성전이 아니었는데! 이런 성전이 아니었는데! 예전에 이런 성전이 아니었는데 하면서 참 안타까워했습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성전이 얼마나 화려한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느냐가 중요한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이스라엘 민족을 향해서 약속해 주는 것이죠. 지금은 초라하지만 결국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될 때 그 나중에 영광이 훨씬 더 클 것이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되면 그 영광이 그 이전의 영광보다 훨씬 더 클 거라고 하는 소망을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심어주셨습니다.


학개서 2장 9절 말씀에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죠.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비록 이 세상에 두 번째 지은 성전은 초라해 보였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떠난 것이 아니라, 함께하신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시기를 나중에는 더 큰 영광을 보여주시겠다. 그 일이 누구를 통해서 이루어집니까? 바로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죠. 솔로몬의 성전은 화려했지만, 이스라엘 민족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말하기를 너희는 내게 다시는 제사를 드리지 말라. 누가 나에게 제사를 가져오라고 했는가? 다시는 가져오지 말라고 하면서, 그 아름다운 성전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었던 것이죠. 아무리 화려해도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고 한다면, 그 성전은 무의미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새로운 성전을 만들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시는 것은, 그러나 “이제 내가 너희를 만나주시겠다” 말씀하는 거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준 것이 놀라운 은혜였다고 할 것입니다.


그 뒤에 학개서의 말씀을 보면 스룹바벨이라고 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이 스룹바벨이라고 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예표하는 한 사람입니다. 이 스룹바벨이라고 하는 사람은 다윗 왕조의 한 말단 관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말단 관원을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을 회복시키시고, 하나님의 약속이 계속 이루어진다고 하는 예언의 말씀을 보여주고 계시면서, 그래서 결국 다윗의 후손으로서 예수님께서 오실 거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고요. 나중에 스가랴서를 보게 되면 성전 재건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나중에 이 스가랴는 여호수아라고 하는 사람의 환상을 보게 되는데요. 이 여호수아라고 하는 사람은 더러운 옷을 입고 그런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재자 역할을 할 만한 능력이 안 되는 것이죠. 하지만 그 사람의 더러운 옷을 벗기고 정결한 옷을 입히고 관을 씌우고 깨끗한 옷을 입혀서 사명을 맡겨주셔서 이제는 더 큰 권위를 허락해 주셔서 이제 여호와의 집을 다스리게 하고 하늘의 천사들을 만나게 하는 그런 놀라운 영광을 보여줍니다. 스가랴서 3장 7절 말씀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만일 내 도를 행하며 내 규례를 지키면 네가 내 집을 다스릴 것이요. 내 뜰을 지킬 것이며 내가 또 너로 여기 섰는 자들 가운데에 왕래하게 하리라.” 결국 그래서 이 여호수아의 그 모습을 통해서 예수님이 나중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구원해 주시고 하나님의 역사를 이룰 거라고 하는 그 예언의 말씀을 이 소선지서의 말씀을 보면 계속해서 전해주고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포로 시기에 있었던 그리고 포로 이후 시기에 있었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소망을 보여주시는 것이죠. 무슨 소망을 보여줍니까? 우리 자신에게는 소망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시고 은혜가 많으신 하나님이시기에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밖에 없다. 하나님의 사랑밖에 없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소망 가운데 주님을 바라보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번에 우리가 역대하의 말씀을 읽으면서, 그리고 포로기를 우리가 묵상하게 되면서, 실패한 이스라엘 민족을 향해서 은혜를 베풀어주신, 그 하나님, 그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었던 이스라엘 민족처럼 우리들에게도 우리의 소망이 어디에 있는가 하나님의 은혜의 소망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바라보며 주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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