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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면 죽으리이다 (스 4:13-17)

성경 읽기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는데요. 우리가 얼마큼 읽은 것 같습니까? 한 5분의 1 읽은 것 같은가요? 읽는 가운데 하루를 중단하면 하루를 읽지 않으면, 그다음에 양이 2배로 늘어나고, 이틀을 읽지 않으면 3배로 늘어나고 해서, 성경 읽기가 굉장히 어려워집니다. 꾸준히 매일매일 조금씩 읽어나가는 것이 아주 중요하니까, 성경 말씀을 잘 읽어나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서로 권면 한번 하십시다. “성경 잘 읽읍시다.” “빠뜨리지 말고 읽읍시다.”

이번 주에는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의 말씀을 읽게 되겠습니다.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의 말씀은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가서 거기서 생활해야 했던 그 시기, 그리고 포로 이후에 그 시기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는 그런 성경 말씀입니다. 특별히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으로 끌려가서 거기서 생활했던 그 시기를 묘사하고 있는 이 책이 에스더서라든가 다니엘서라든가 이런 성경책의 말씀들이 있는데요. 이 말씀들이 우리들에게 특별히 의미가 있는 것은, 어쩌면 우리들도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으로 끌려가서 바벨론의 왕의 명령에 따라 그 말에 따라서 생활해야 했던 것과 비슷하게, 우리들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서, 바벨론과 같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고 하는 것이 아주 비슷한 상황이라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이 포로 시기에 성도들이 어떻게 신앙생활을 했는가? 이런 것들을 보면서, 우리가 듣고 배워야 할 교훈들이 많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가운데, 우리들의 삶 가운데 적용해야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특별히 다니엘의 세 친구 같은 경우는 어떤 모습을 보였습니까? 이제 나중에 우리가 시가서를 읽고 난 다음에 대선지서에 들어가게 되면 다니엘서를 살펴보게 되겠는데, 다니엘의 새 친구들은 어떻게 신앙생활을 했는가? 이 세상의 명령에 따라 살면서 믿음이 없이 살아가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서 당하는 그 온갖 위험들을 오히려 더 다 견디면서 신앙생활을 하겠다고 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죠. 그것을 분명하게 드러낸 이야기가 다니엘서 3장 17절 18절의 말씀이라고 하겠습니다. 다니엘서 3장 17절의 말씀부터 보게 되면,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다. 그렇게 하지 아니할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하나님께서 반드시 구원해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금신상에게 절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이 세상의 방식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다가 망하게 되고, 하나님의 뜻에 뜻대로 살다가 죽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그게 복되다고 하는 사실을 고백하면서 살았던 것이 다니엘의 세 친구의 모습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그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이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이 의미가 있는 것이고, 또 이 세상은 눈에 보이는 왕이 다스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온 세상 만물을 통치하고 계시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온 세상이 움직인다고 하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준 것이 이 말씀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다니엘서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결국 승리하게 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한다면, 우리가 이번 주에 읽게 될 에스더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로 인해서 구원을 받고 승리하게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에스더의 말씀 가운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이 바벨론에 끌려온 여인 중에 한 사람이 바로 에스더라고 하는 사람이었는데요. 이 에스더라고 하는 사람이 바벨론 나라의 왕비가 되었습니다. 그 왕비로서 살고 있었던 그 에스더의 삶을 모르드개가 오빠가 나타나서 이야기하는 거죠. 하나님께서 너를 지금 왕비로 삼으신 이유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이때를 위함이 아닌가? 지금 이스라엘 민족이 멸절당할 수밖에 없는 그런 위험한 상황 가운데 있는데, 하나님께서 왕비로 너를 세워주셨기 때문에, 내가 할 일이 있기 때문에, 거기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는 것이 옳다고 이야기를 한 것이죠.

에스더서 4장 14절의 말씀을 보니까 “이때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내 아버지의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라고 말하면서, 에스더로 하여금 이 민족을 구원하는 일에 앞장설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만일 에스더가 이 에스더서에 기록된 것과는 달리, 자신에게 주어진 이 사명을 감당하지 않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이스라엘 민족이 몰살을 당하게 되었을까요? 하만의 계략에 의해서 한 명도 살지 않고 죽게 되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에스더가 순종하지 않았더라도, 에스더가 왕 앞에 나가지 않았더라도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시는 거죠. 에스더가 그 자리에 없어도, 에스더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다른 방법을 통해서라도 이스라엘 민족을 건져주시는 거죠.


이러한 상황을 정반대로 생각해 보면 가룟유다의 경우도 생각할 수가 있겠습니다.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버려서,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고, 그리고 온 인류를 구원하게 되는 놀라운 그 일을 이루시게 되었는데, 만일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먹지 않았더라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의 구원이 실패로 돌아가는 걸까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지 못하고 그냥 숲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일까요? 그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의 순종 여부와는 관계없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선하신 뜻대로 이루어 가고 계시다고 하는 사실을 잘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그런 믿음의 결단들이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에스더는 그 순간에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 무엇인가를 깨달았고, 그래서 금식하면서 왕 앞에 나아가 결국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일은 혼자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실 거라고 하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의지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해 낸 것이죠. 에스더서 6장 1절 말씀에 보면 “그날 밤에 왕이 잠이 오지 아니함으로 명령하여 역대 일기를 가져다가 자기 앞에서 읽히더니” 그랬습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이 어떻게 오게 되었는가? 어떤 사람의 순종, 어떤 사람의 헌신, 그런 것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사실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 가고 계시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어느 날 왕이 잠을 자는데 잠이 오지 않습니다. 잠이 오지 않는 가운데 왕의 일대기를 한번 읽어보아야 되겠다고 하는 그 마음이 생긴 것이죠.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불어넣어 주셨고, 그 옛날 모르드개가 엄청난 공헌을 세웠던 것 그것을 다시 한번 읽게 만들고, 그때 상을 주지 못했다고 하는 것을 생각나게 해서, 결국은 모든 것들을 다 뒤집어버리는, 우리 인간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나가고 계시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에스더의 말씀을 통해서 발견해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나아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가 궁극적으로 의지할 대상이 하나님 한 분뿐이다”라고 하는 사실을 믿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특별히 우리가 이 포로 기간 동안에 있었던 이 이야기를 살펴보면서, 지금 당시의 상황은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가 되어버렸고, 그래서 더 이상 성전에서 제사를 드릴 수 없는 그런 상황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계셔서 역사하셨다고 하는 점을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바벨론 나라가 쳐들어와서 성전을 무너뜨려버렸어요. 이제는 이스라엘 민족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끌려와서 바벨론 땅에 살면서 성전에서 제사를 드릴 수도 없어요. 아무런 하나님과의 그런 예배를 드릴 수 없는 그런 상황 가운데, 제사를 드릴 수 없는 상황 가운데 있었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가 그것 때문에 중단되었는가? 그게 아니라, 여전히 하나님께서는 역사하고 계셨고,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해 내시는 그런 놀라운 은혜가 계속 지속되었다고 하는 사실을 보면서, 우리도 이 말씀을 읽는 가운데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그런 모습을 보일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특별히 느헤미야서를 보게 된다고 한다면, 이 느헤미야라고 하는 사람은 이 바벨론으로 끌려와서 살아가는 동안에 예루살렘이 어떻게 되었는가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미 끌려와서 바벨론에서 포로로 살아가고 있는데 소식이 들려오는 겁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졌다,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졌다. 절망적인 소식들이 계속 들려오는 것이죠. 그럴 때 이 느헤미야는 어떻게 했는가? 느헤미야는 하나님 앞에 울면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이 민족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이 민족을 구원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기대하며 하나님 앞에 기도했는데요. 결국 하나님께서는 이 느헤미야를 통해서 다시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게 하는 그런 놀라운 일들을 이루어 나가시는 이야기가 느헤미야서의 말씀 가운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전에 우리가 지난 주간의 역대하의 말씀을 읽으면서 솔로몬이 성전을 만들어놓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했던 내용 중에 하나가 역대하 7장 14절의 말씀입니다. 역대하 7장 14절 말씀에 보면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신 것이죠. 성전이 무너져 버리고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이 완전히 망해버린 것 같은 그런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는 약속해 주신 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이 저 이방에 끌려갔다고 할지라도, 완전히 망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겸손한 마음으로 울부짖으며,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고치시고 회복시켜 주시겠다고 하셨는데, 정말로 느헤미야가 이 말씀처럼 하나님 앞에 엎드려 울부짖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다시 회복을 일으켜 주시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게 만들어 주신 것이죠.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서 마치 왕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신뢰하게 만들고 하나님을 인정하게 만들고, 그리고 그 땅 가운데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서로 고리대금업을 하면서 또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면서 또 노예로 자기 민족을 삼는 것들을 보면서, 여러 가지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 있는 그런 이스라엘 민족을 보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잘 다시 돌아오도록 만드는 역할을 이 느헤미야라고 하는 사람이 했던 것이고요.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이방 민족과 결혼을 하지 못하게 만들고 안식일을 준수하게 만들고 또한 성전을 잘 회복시키는 그런 역할들을 해서 결국 이런 느헤미야와 같은 사람이 다시 일어나서 우리들을 구원해 줄 거라고 하는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기대하게 만드는 그런 엿보게 만드는 역할을 느헤미야가 해주는 것이죠.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졌다고 했을 때 가만히 앉아서 울고만 있지 않았습니다. 이 느헤미야는 바벨론 왕에게 찾아가서 허락을 요청했고, 그래서 그 허락을 받아서 조서를 달라고 해 가지고,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거기서 성벽을 건축했을 뿐만 아니라, 반대 세력들이 막 방해할 때, 그 반대 세력들을 다 물리치고, 그래서 하나님의 그 도성을 다시 잘 짓는 역할을 이 느헤미야가 했던 것입니다.


반면에 에스라 선지자가 나오는데요. 에스라가 나오는데 이 에스라는 제사장이면서 율법 선생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열심히 활동하는 활동가였다고 한다면 에스라는 학자와 같은 사람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막 운동을 하면서 사람들을 이끌고 지도력을 발휘해서 그래서 가나안 땅에 있는 예루살렘을 건축하는 그런 일들을 했다고 한다면, 이 에스라라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쳐서 그래서 이제는 이스라엘 민족이 자신들이 잘못했던 그 잘못에서부터 떠나오게 만들고 이스라엘 민족이 회개하게 만들고 하나님 앞에 돌아오도록 만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잘 가르치는 역할들을 에스라라고 하는 사람이 하게 된 것이죠.


이러한 모습들을 우리가 이제 이번 주간에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의 말씀을 읽으면서 살펴보게 될 텐데 이 말씀을 읽는 가운데, 우리도 우리의 삶이 하나님에게서부터 혹시라도 멀리 떠난 것이 있다고 한다면,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 나와야 되고, 또한 우리 공동체가 전체적으로 잘못하고 있다고 한다면 나 혼자만 울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이 세워주고 같이 회개 운동을 하고 같이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그런 놀라운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 그래서 우리 교회도 영적인 부흥을 이 말씀을 읽으면서 소망할 수 있는 그런 우리 성도님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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