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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시는 하나님 (대하 7:14)

지금 우리가 성경을 통독하고 있는 가운데 벌써 역대상 역대하를 읽을 차례가 되었습니다. 이번 주는 역대상의 말씀을 읽겠고, 다음 주에는 역대하의 말씀을 읽게 되겠는데, 오늘 이 역대상과 역대하의 말씀을 함께 개관하면서 말씀의 의미들을 같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이 역대상하서는 최초로 누구에게 주어진 성경책인가? 누구에게 쓰여진 책인가?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포로로 잡혀 갔다가, 이제 해방이 되어서 다시 가나안 땅에 돌아온 이스라엘 민족들을 향해서 1차적으로 주신 말씀이라고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포로생활 동안 정말 엄청난 고통을 당하면서 지내야만 했었던 것이죠. 다른 나라의 포로로 노예로 끌려가서 그곳에서 살아야 했던 그 기간이 정말 쉽지 않은 기간이었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나라가 그 옛날 36년 동안 일본의 악재 밑에서 고통스럽게 살아가야만 했었던 기간이 있었던 것과 아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민족은 70년 동안 그렇게 다른 나라의 악재 밑에서 노예로서 살아왔었던 것이죠. 하지만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고, 이스라엘 민족들이 놀랍게도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게 되는 그런 해방을 경험하게 되었던 겁니다. 그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어진 말씀이 바로 역대상 역대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읽게 되겠는데 이 말씀의 내용은 아담으로부터 시작해서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이 포로로 끌려가서 포로 생활하다가 이제 고레스 왕의 칙령에 의해서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기까지의 그 긴 역사를 요약한 내용이 바로 역대상 역대 하의 말씀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 가나안 땅에 돌아온 이스라엘 민족을 향해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이렇게 들려주는 이유가 있다고 하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가 역사를 배운다고 하면 그 역사를 배우는 그 목적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랑하고 자부심을 가지고 그런 의미일까요? 물론 그런 자랑과 자부심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우리 역사라고 하는 것이 우리 역사라고 하는 것이 사실은 슬픔의 역사입니다. 고통의 역사죠. 인간이 실수해서 얻게 된 여러 가지 고통과 아픔의 역사가 역사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인데, 그 과거의 역사를 보면서 교훈을 얻게 만들기 위해서 이 역사의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이 역사의 이야기를 해주는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우리 인간들은 늘 과거의 역사를 반복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죠. 옛날에 우리 선조들이 잘못했던 그 잘못을 오늘날 우리가 또다시 반복하게 되어 있고, 예전에 실수했던 바로 그 일을 또 반복하고, 우리 인생들이 너무나도 어리석어서 계속해서 잘못해왔던 것들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경향들이 있기 때문에 역사를 우리가 살펴보면서 배우는 것이죠. 우리가 미리 과거를 통해서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지혜를 배울 수 있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이스라엘 민족을 향해서 아담으로부터 고레스 왕까지의 그 기간을 쭉 설명해 주는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우리가 이제는 어떻게 살아야 되겠는가? 가나안 땅에 돌아온 지금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회복되어서 살고 있는 우리가,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이고,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야 할 것인가?”라고 하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이 역사의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까 성경 말씀이 중복이 됩니다. 반복이 되는 거죠. 이미 우리가 사무엘서를 읽었고 열왕기서를 읽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내용이 다시 한번 역대상 역대하에 반복됩니다. 반복하지만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역대기서를 기록한 기록자의 독특한 관점으로 역사를 다시 써 내려가고 있는 것이죠. 똑같은 역사라고 해도 그것을 어떤 관점에서 써 내려가느냐에 따라서 강조점이 다를 수가 있는 것이죠.


그래서 사무엘서와 열왕기서에 있는 그 내용과 비슷한 내용이 되고 반복되는 내용이겠지만, 약간의 차이점이 있을 수가 있겠습니다. 예를 들어서 열왕기서의 말씀을 우리가 지난주 지지난주를 통해서 읽었는데 이 열왕기서의 내용은 과연 이스라엘의 리더십이 어떻게 연결이 되고 있는가? 다윗의 왕조의 운명이 어떻게 귀결되고 있는가? 이스라엘은 어떻게 왕조가 자꾸만 무너지고 그리고 열왕기 하의 말씀 가운데 다윗왕조의 그 모습들이 어떻게 끈끈히 이어져가고 있는가 이런 것들을 다루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역대기서의 말씀은 성전에 대한 관심이 아주 집중돼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주신 이 성전에 관한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서, 이 다윗의 시기, 솔로몬의 시기를 지나면서 하나님께서 이 성전을 계획하셨고, 하나님께서 이 성전을 어디에다 지을 것, 그리고 어떤 양식으로 지을 것, 그리고 이 성전에 기능들 그리고 그 이후의 과정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성전을 예비하시고 마련해 주셨다고 하는 그 관점에 대해서 쭉 설명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역대기서에서 볼 수가 있겠습니다.


역대 기사의 내용을 한번 정리해서 도표로 보면 이런 도표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역대상 1장에서부터 9장까지는 족보가 기록돼 있습니다. 굉장히 지루할 것 같죠? 조금만 참으시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1장에서 9장까지의 족보가 기록돼 있는데 그중에서 1장에서부터 8장까지는 족장 시대 즉 아브라함, 이삭, 야곱 이런 족장 시대로부터 시작해서 왕조 시대까지의 족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1장에는 아담을 머리로 하여는 수직적인 족보가 기록되어 있고, 2장에는 12 족장에서부터 다윗까지의 족보가 기록되어 있고, 2장에서부터 4장까지는 유다 지파의 족보가 기록돼 있고, 5장에는 르우벤과 므낫세의 족보가 기록되어 있고, 9장에서는 바벨론 포로 후기 시대의 족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런 족보에 많은 이름들이 우리가 처음 보는 이름들이 많습니다. 그 예전에 창세기나 이런 열왕기서나 이런 데 나와 있는 이름들이 아니라, 바벨론 후기 시대의 족보니까 생소한 이름들이 많이 나와 있을 것인데 그래서 이 이름들 나열해 있는 것만 보면, 우리는 굉장히 참 아직 이걸 읽으면서 굉장히 어려움을 느끼게 되겠지만, 이 구절들이 사실은 포로시대 때 포로 생활을 끝내고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아주 큰 감동이 있었을 거예요. 이런 사람도 저런 사람도 아무개도 아무개도 이렇게 같이 이름들이 다 나열되는 것을 보면서 모두가 다 흥분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역대상 10장에서부터 역대하 9장까지는 통일왕국 시대에 다윗과 솔로몬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고요. 역대하 10장에서부터 36장까지는 분열왕국 시대의 유다 왕들이 어떤 왕들이 다스렸는가라고 하는 것을 기록해 주고 있는 것이죠.


이런 족보 가운데서 우리가 아주 특이한 점을 하나 볼 수가 있겠는데요. 역대 기서의 족보가 쭉 기록되어 있는 가운데 그 족보를 기록하는 중간에 아주 특이한 이야기가 하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 족보인데 족보 가운데 어떤 한 사람의 이야기가 포함돼 있는데, 그게 누구의 이야기일까요? 야베스의 이야기입니다. 역대상 4장 9절에서부터 10절 말씀에 보면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란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라고 하는 아주 짤막한 이야기가 족보들 가운데 이렇게 들어가 있어요. 이 두 구절만 본다고 하면 이게 정말 족보 안에 들어 있는 말일까 싶을 정도로 생뚱맞은 이야기가 들어가 있는데요. 사실 이 야베스라고 하는 사람의 이름의 뜻은 고통이라고 하는 뜻이에요. 엄마가 아들을 낳으면서 아기 이름을 뭐라고 했냐면, 야베스라 고통이라고 했어요. 근데 그 고통이라고 한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정말 이 아이를 낳으면서 엄청난 고통 가운데 죽다가 살아나면서 이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주어진 거죠. 엄청난 산고 속에서, 이 아이를 낳았던 것이죠. 그래서 이 사람의 이름이 야베스 고통이라고 하는 이름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었는데, 놀라운 것은 그 고통이라고 하는 이름의 이 야베스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겁니다. 하나님 제게 복을 주시려거든 지경을 넓혀 주옵소서. 하나님 제게 복을 주시려고는 하나님의 은총을 주셔서 이렇게 좀 확장할 수 있도록 형통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은혜를 내려주옵소서 기도했는데요.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이 아베스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장점이 야베스에게 있어서 이런 좋은 결과가 있을 수 있었을까요? 도대체 하나님께서는 왜 이 야베스를 특별하게 사랑해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셨을까요? 사실은 그런 것에 초점을 맞추어서 이 사람이 어떻게 기도를 했길래, 이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갔길래 이렇게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얻었는가 이것을 배우라고 기록된 것이 아니라, 사실은 이 야베스는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대표하는 것과 같은 그런 샘플이라고 말할 수가 있어요. 사실은 야베스만 고통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다 고통인 것이죠. 인류 자체가 고통이에요. 삶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고, 어쩌면 이스라엘 민족이 저 포로로 잡혀가서 고통 가운데 있었고 정말 미지러블한 정말 비참한 상태에 있는 인간들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런데 그 고통 가운데 있는 우리 인생들에게 어떻게 소망이 생겼는가? 어떻게 그 고통이 변하여 복이 되었는가? 어떻게 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었는가? 우리 모두가 다 야베스와 같은 것인데 어떻게 이렇게 되었는가 하나님께서 은총을 베풀어 주셨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도 이와 같이 고통스러운 상황 가운데 있는데 우리가 바라보아야 될 것은 우리의 어떤 국력이 커가는 걸 통해서가 아니라, 아니면 우리가 돈을 많이 버는 걸 통해서가 아니라 아니면 어떤 대단한 일들을 통해서 우리가 복을 얻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바라보아야 될 것은 하나님의 은총밖에 없구나.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시면, 우리의 운명이 바뀌고 우리의 삶이 바뀐다고 하는 사실을 생생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야베스의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죠. 따라서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가 바라보아야 되는 것은 주여 우리들에게 은혜를 더해 주옵소서 기도하고 엎드리며 나아가야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 정말로 우리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이죠. 어떻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어요? 하나밖에 없는 그 아들을 우리 위에 내어주신 겁니다. 죄로 인해서 영원히 멸망받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을 위에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 위에서 피 흘려주시고 우리들의 모든 죄를 씻기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지고 가야 될 그 질고를 주님께서 대신 지시고, 우리가 당해야 될 그 심판 채찍질을 주님께서 대신 맞으시고, 우리가 가지고 있던 그 여러 가지 고통과 아픔, 그 모든 것들을 우리 주님께서 지시고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해결해 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그 비참한 상태에서 하나님의 자녀 됨의 특권을 누리는 그런 상태로 변화되는 그 메시지가 이 역대기의 말씀 가운데 들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을 읽으면서도 우리의 참된 복이 하나밖에 없는 그 아들을 내려주신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바라보며 주님께 소망을 두는 그러한 성경 읽기가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이 족보는 이스라엘 민족이 아담의 후손으로부터 쭉 내려오고 있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데요. 그런데 그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만 기록된 것이 아니라 그 주변 나라들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주변 나라들은 어떻게 해서 탄생하게 되었고 하는 것들을 쭉 열거하면서 이스라엘 민족이 그냥 보통 민족이 아니라 수많은 민족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택해 주신 사람들이고 하나님이 주신 그 약속을 우리가 받았다고 하는 사실을 바라보면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게 하는 말씀입니다. 특별히 이 책을 통해서 우리를 향해서 들려주시는 중심적인 메시지가 있다고 한다면 역대상 9장 1절의 말씀입니다. 역대상 9장 1절 말씀에 보면 “온 이스라엘이 그 계보대로 개수되어 그들은 이스라엘 왕조 실록에 기록되니라 유다가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바벨론으로 사로 잡혀 갔더니”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선택한 민족이었는데 왜 포로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는가? 하나님께서 선택한 민족이었는데 왜 이렇게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되었는가 범죄했기 때문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 다시 포로에서부터 돌아왔지만 지금은 그 옛날 다윗의 영화는 다 사라져 버리고 지금 외세의 공격 앞에서 너무나도 취약한 약속의 상태로 있는 가운데 있는데,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범죄하면, 우리가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되겠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야 되겠다고 하는 그런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책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하나님의 상은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우리가 죄악을 저지른다고 한다면 심판을 당하게 될 것이고 불행한 길로 걸어가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된다고 한다면 형통할 것이고 평안함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경우도 많이 있어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오래 참고 계시기 때문에 그런 것이죠. 그래서 사람들은 늘 그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착각하면서 계속해서 죄악의 길로 가다가 멸망하게 되는 겁니다. 그 멸망이 언제 이루어졌는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유다 왕들의 그 악행을 보시면서도 참고 참고 또 참으시면서, 다윗에게 해주신 약속이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유다 왕조들을 보호해 가시면서 끝까지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그 죄가 쌓이고 쌓이다 보니까 결국 하나님께서 미루셨던 그 심판이 포로로 잡혀가는 걸 통해서 이루어지는 그 모습을 보여주는데요. 역대기의 말씀은 무엇이냐 하면 그런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잊지 말고 악용하지 말고 순종하며 가야 한다고 하는 그런 메시지를 전달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역대야 20장 20절 말씀에서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에 백성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드고아 들로 나가니라 나갈 때에 여호사밧이 서서 이르되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하고” 이 불행한 역사, 결국 파멸로 갈 수밖에 없었던 이스라엘의 역사를 읽어보는 것은 그렇게 즐거운 일은 아닙니다. 실패하고 망한 이야기 읽는 게 그렇게 기분이 좋은가요? 별로 기분이 좋지 않죠. 승리했다고 하고 뭔가 어마어마한 성공을 이루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어야 기분이 좋잖아요? 그런데 안타까운 이 이야기를 우리가 읽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옛날 이스라엘 민족이 잘못 선택해서 포로로 끌려갔던 것과 같은 우리의 그 모습을 반복하지 말자라고 하는 경고의 메시지들을 읽을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다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원하기는 이 말씀을 읽는 가운데 우리의 삶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고 죄를 지을 때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나아가고, 그리고 더욱더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이 복이라고 하는 이 사실을 다시 한번 발견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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