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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왕을 주소서 (삼상 8:4-9)

우리가 지난주에는 사사기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사사기의 말씀과 룻기의 말씀을 읽었는데, 한마디로 사사기 시대는 영적인 암흑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가? 마치 자기가 기준이 되는 것처럼, 그냥 자기 생각에 옳은 대로 행해버린 것이죠. 하나님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순종하며 산 것이 아니라, 그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충동대로 살면서, 참 그 시기가 영적인 암흑기였다고 하는 것을 알 수가 있는데요. 그런 상황 가운데 결국 마주하게 된 현실이 무엇이냐 하면, 고통이 되는 것이죠. 외적의 침입을 받아서 노예로서 살아가야 하고, 억압을 받으면서 살아가야 되는, 그런 참 안타까운 그 시절이 바로 사사기 시대였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 시기에 하나님 앞에 울부짖으며 돌아가면,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풀어 주시는데, 사사들을 통해서 구원해 주신 이야기를 살펴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사들도 하나님의 기준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너무나도 연약한 사사였다고 하는 것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죠. 삼손과 같은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보면, 사사라고는 하지만, 그러나 거룩하지 못하고, 그리고 제멋대로 행동하고, 하나님께서 보시는 그 기준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그런 모습들을 보여주면서, 참 그 시기가 영적인 암흑기였다고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영적인 암흑기가 되었다고 해도, 우리에게 소망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소망을 보여주시고 계십니다. 소망을 보여주시는데, 그 소망이 어디에 있는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있다고 하는 것을 늘 느끼게 만들고, 하나님을 바라보게 만들어주는 이야기를 우리가 살펴보았습니다. 사사들이 우리의 소망이 아니라, 참 연약한 그런 사사들 사사들이 있다가 사라지면, 또다시 유야무야 돼 버리는 그런 너무나도 일시적인 그런 사사가 아니라, 우리 주님께서 오셔서 모든 것을 바로잡으시고 또 우리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 주실 메시아를 바라보게 만드는 것이 바로 사사기의 말씀이었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메시아를 갈망하고 우리의 참되신 왕을 갈망했던 것이 사사기의 그 시대였다고 할 수가 있겠는데요. 

사무엘서를 읽어보면, 그 사무엘서에 나오는 내용이 드디어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왕이 생기게 되었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사기 시대 때 왕이 없어서 사람들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동해 버린 그런 영적인 암흑기였다고 했는데, 그러면 사사시대가 지나가고 “이제 왕정 시대가 되고, 왕이 생겼기 때문에 문제가 해결되었는가?”라고 질문을 던진다고 한다면 해결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울이라고 하는 왕이 세워졌지만, 그 사울 왕이 모든 것을 다 해결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울 왕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더 고통스럽기도 하고 의인은 고난을 당하기도 하고 정말 하나님의 뜻에서부터 멀리 떨어져 버린 그런 안타까운 모습들을 바라보게 되는 게 바로 이 사무엘 상의 모습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사무엘 상을 읽어나가면서, 우리들에게 참된 왕은 언제 나타날 것인가? 사울 왕과 같은 그런 자격이 부족한 왕이 아닌, 정말 우리를 의로 통치하고 우리의 모든 문제들을 바로잡아주고, 또 우리의 모든 것들을 완벽하게 되돌려놓을 참된 왕이 누구신가? 그런 왕은 언제 오는가에 대한 기대를 만들게 하는 책이 바로 사무엘서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 사무엘서의 말씀을 읽어보면, 이 왕이 세워지기 이전의 모습들을 먼저 보여주고 있는데요. 바로 엘리 제사장과 그의 두 아들들이 정말 이 성전의 제사들을 무시하고 조롱하고, 자신들의 종교 권력을 이용해서 이기적인 탐욕적인 모습만을 보여주는 그런 안타까운 모습이 이 엘리 제사장 가정의 이야기를 통해서 들려주게 되는 것이죠. 참 영적인 지도자가 타락해 버리는 그런 참 불행한 이 시기에 이스라엘 민족에게 소망이 없을 것 같았지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놀랍게도 한나라고 하는 한 여인을 통해서 사무엘이라고 하는 아이를 낳게 해 주시고, 하나님께서는 그 사무엘이라고 하는 아이에게 하나님의 뜻을 들려주셔서, 그래서 그 깜깜한 시기에도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서 말씀해 주시고 역사해 주는 그 이야기를 우리가 살펴볼 수가 있게 되겠는데, 바로 이 사무엘의 이야기를 통해서 나중에 우리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게 될 거라고 하는 그 소망을 바라보면서 이 사무엘상의 말씀을 읽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인간의 타락은 한도 끝도 없이 깊어지는 것이죠. 하지만 절망스러운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소망을 여전히 보여주시면서 메시아에 대한 기대를 계속해서 갖게 만드는 것이죠.


이스라엘 민족들은 블레셋과의 전쟁 가운데서 언약궤를 가지고 나아갑니다. 그 언약궤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예전에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해 냈던 그 언약궤였습니다. 언약궤를 가지고 나가면 전쟁에서 승리를 했고, 언약궤를 가지고 나가면 요단강물이 갈라지는, 그런 엄청난 기적이 있었고, 언약궤를 들고 여리고성을 돌면 그 여리고성이 무너지게 되는 그런 엄청난 능력을 발휘했던 것이 언약궤였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들은 블레셋과의 전쟁을 하면서 이 언약궤를 가지고 갔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민족들이 이 언약궤를 가지고 갔다고 해서, 하나님을 의지하거나 하나님을 진정으로 신실하게 섬긴 것이 아니라, 그저 하나님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그 선물에만 관심을 가졌다고 하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나게 된 것이죠. 이것이 우리들이 늘 빠지기 쉬운 함정인 것이죠. 우리가 정말 갈망해야 되고 우리가 정말 바라봐야 될 대상이 누굽니까? 우리에게 선물을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봐야 되는 거죠. 그래서 그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지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인데,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는 그 혜택에만 관심이 있는 겁니다. 하나님을 이용해서 우리가 전쟁에서 이기기를 원하고, 하나님을 이용해서 우리가 잘 살기를 원하는, 그래서 하나님에게 관심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가 얻고자 하는 그런 갈망들이 많이 보여지게 되는데, 그러한 모습들이 바로 이 이스라엘 민족이 블레셋 민족과의 싸움에서 언약궤를 가져간 것과 역시 마찬가지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했을 때에도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열광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을 우리들의 왕으로 모시자 예수님을 우리의 왕으로 모셔서, “우리가 좀 잘 살아보자”라고 하는 그런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죠.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런 이스라엘 민족을 보시면서 좋아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발 뒤로 물러서시면서, 한적한 곳으로 가시고 이스라엘 민족과 그 거리를 두신 모습이 신약 성경 가운데 나타나게 되는데요. 오늘날 우리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고 섬기고 그런 신뢰하는 관계로 들어가기보다는, 그저 하나님의 능력만이 필요한 것이고 하나님을 이용해서 우리가 무엇인가를 얻고자 하는 그런 얄팍한 마음이 있다고 한다면, 사실이 그게 신앙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게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아니라 돈이나 성공이나 명예나 권력이 나의 우상이 되어버린 것이고, 하나님은 그러한 나의 우상을 채워주기 위한 그런 수단으로 전락시켜 버린, 그런 잘못된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이 사무엘상의 말씀을 보면서 분명하게 깨달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들은 왕을 요구하게 됐는데요. 오늘 성경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민족들은 사무엘에게 가서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왕을 세워달라고 한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사무엘이 늙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사무엘의 아들들은 아버지처럼 그렇게 행동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뇌물을 따라 판결하고 잘못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죠. 정말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서 활동했던 그 사무엘마저도 늙어서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참 사람에게는 소망이 없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다시 한번 바라봐야 되는 것이죠. 그러면서 이스라엘 민족들이 생각해 낸 것이 무엇이냐 하면 아 사람이 아니고,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봐야 되겠구나. “하나님이 우리의 진정한 소망이구나”라고 하는 것을 깨달아야 되는데, 이스라엘 민족들은 그렇게 본 것이 아니라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왕을 세워주십시오. 우리도 다른 민족들처럼 왕이 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다른 민족을 보니까 왕이 있어서 전쟁할 때 보면 일사불란하게 움직입니다. 다른 나라는 왕이 있어서 나라의 체계가 잘 잡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왕을 세우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왕을 요구했는데, 그 왕을 세운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무엘은 왕의 제도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사무엘상 8장 10절에서부터 18절 말씀 가운데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무엘이 왕을 요구하는 백성에게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말하여, 이르되 너희를 다스릴 왕의 제도는 이러하니라. 그가 너희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의 병거와 말을 어거하게 하리니 그들이 그 병거 앞에서 달릴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아들들을 천부장과 오십부장을 삼을 것이며 자기 밭을 갈게 하고 자기 추수를 하게 할 것이며 자기 무기와 병거의 장비도 만들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딸들을 데려다가 향료 만드는 자와 요리하는 자와 떡 굽는 자로 삼을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에서 제일 좋은 것을 가져다가 자기의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또 너희의 곡식과 포도원 소산의 십일조를 거두어 자기의 관리와 신하에게 줄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노비와 가장 아름다운 소년과 나귀들을 끌어다가 자기 일을 시킬 것이며, 너희의 양 떼의 십 분의 일을 거두어 가리니 너희가 그의 종이 될 것이라. 그날에 너희는 너희가 택한 왕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되 그날에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니”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들은 왕을 달라고 한 목적이 무엇이냐 하면, 왕이 있으면 행복해질 것이다. 왕이 있으면 우리가 좀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걱정 근심 없이 살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는 그런 희망에 부풀어서 왕을 달라고 했는데, 정작 왕이 세워지면 어떻게 될 것인가? 오히려 우리가 왕의 종이 되어버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이게 바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우리가 갈망하는 모든 것들이 다 이런 겁니다. 우리가 무엇을 갈망하고 있어요? 좋은 대학에 가서 그리고 좋은 직장에 가서 그리고 돈을 많이 벌고, 그리고 “떵떵거리면서 살아보았으면 좋겠다”라고 하는 그런 갈망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마치 이스라엘 민족이 왕을 달라고 했던 것처럼, 우리들은 그런 갈망을 가지고, 우리 자녀들에게 “네가 조금만 열심히 하면 좋은 대학 갈 수 있고, 좋은 직장을 갈 수 있고, 돈을 많이 벌 수 있고, 공무원 취업도 할 수 있고, 그리고 정말 떵떵거리면서 살 수”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그것을 성취하라고 이야기를 하는 거죠. 근데 결과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아이들이 힘들어 죽겠다고 그러는 거예요. 심지어 자기 스트레스를 받아가지고 아이들이 너무나도 힘들어하는 그 모습들, 그리고 잘못된 길로 가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하고, 돈을 벌려고 노력했지만 돈이 벌리는 것이 아니라 건강 잃어버리고, 사람들과의 관계는 다 깨져버리고 가족이 행복할 줄 알았더니 가족이 같이 앉아서 밥을 먹으면서 따뜻하게 사랑을 나누고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그런 시간을 다 빼앗겨버리는, 우리는 이것만 얻으면 우리가 행복할 줄 알았는데, 사실은 그것을 얻기 위해서 우리가 우리의 모든 것들을 다 포기해 버리고 비참한 결과로 떨어지는 모습을 늘 경험하면서 사는 것이죠. 이게 우상이 가져다주는 폐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왕이 우상이 되면 결국 그 왕이 우리들을 종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고, 돈을 우상으로 삼으면 결국 돈이 우리를 피폐하게 만들어버리는 그런 모습들을 보여주는 것인데, 사무엘상에서는 어떻게 되는가? 왕을 세워달라고 하니까, 왕을 세워주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데, 그래서 우리가 행복해졌는가? 행복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울 왕의 그 엄청난 잘못된 통치 밑에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여주게 되는 것이죠. 물론 100% 다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사울왕은 블레셋과의 전쟁, 다른 민족과의 전쟁을 통해서 승리하는 것을 통해서 왕 세우기를 잘했구나라고 하는 모습들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어요. 그런 게 없는 그게 아예 없는 것이 아니고 그런 게 있어요. 좋은 게 있어요. 좋은 게 아예 없다는 것이 아니라 돈도 좋은 게 많잖아요? 돈도 좋은 거 많고 성공하는 거 좋은 거 많고 많아요. 많은데 그런데 그것이 정말 우리를 완벽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인내 악한 모습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죠.


사무엘서에서 말해주는 사울의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실패한 왕입니다. 그 왕을 섬겨야만 했고, 그리고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문제들이 더 생기고, 그리고 고통스럽게 만들어버리고, 오히려 다윗을 죽이려고 달려드는 그런 모습들만 보여주는 것이면서, 그래서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이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들에게 진정한 왕이 누구인가? 누구를 우리가 왕으로 모셔야 되는가? 우리 주님만이 참된 왕이라고 하는 사실을 바라보게 만드는 책이 바로 사무엘서의 말씀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우리에게 참된 왕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왕 다윗의 혈통에 따라,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평화의 왕으로 온 세상의 왕으로 우리에게 오신 것이죠. 그리고 그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사탄의 나라의 통치 가운데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하나님 나라로 들어오게 만드신 거예요. 사탄의 나라의 통치 가운데는 어떤 일들이 일어났습니까? 사탄을 섬기며 하나님을 배신하면서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들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냐면 병으로 나타나는 거예요. 나병 환자도 있고 중풍병 환자도 있고 손 쓰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그 사탄이 다스리는 세상 속에서 수많은 아픔과 질고들이 있고 그리고 죽음으로 나타나는 것이죠. 또 배고픔으로 나타나는 것이죠.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우리에게 보여주시면서 배고픔의 문제도 해결하시고 질병의 문제도 해결하시고 죽음에서부터 살려내시면서 우리를 치유와 회복으로 죄에서부터 사탄의 통치에서부터 구원해 주시는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볼 수가 있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어떤 왕으로 오셨습니까? 섬기는 왕으로 오셨습니다. 마태복음 20장 25절에서부터 28절 말씀에 보면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안타까운 것은 우리는 늘 늘 실패해요. 이런 정치인을 뽑으면 이런 대통령을 뽑으면 이런 국회의원을 뽑으면 “우리나라가 좀 더 행복해질까?”라면서 뽑지만, 늘 우리는 배신당하면서 참 안타까운 결과를 맛보게 되는 것이죠. 뇌물을 받아먹는 정치인들, 그리고 자신들의 입속에 따라서 모든 것을 해버리는 그런 결국 서민들을 위해서 많은 정책을 내놓고 공약을 내놨지만, 그 모든 공약들은 다 가짜 공약일 뿐이고 말로만 했을 뿐이고, 임기가 끝나도 전혀 반영이 되지 않는 그런 일들만 보면서 늘 속임을 당하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에게 참된 왕이 누구신가? 예수님이 우리의 잠드신 섬기는 왕으로 오셨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줄로 믿습니다. 이번 한 주간 동안에 우리가 사무엘상의 말씀을 읽게 될 텐데, 이 사무엘상의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의 잠든 메시아가 왕이 누구신가? 이 세상에 우리의 소망을 둘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그 어떠한 만족을 찾을 것이 아니라 어떠한 것들을 우상으로 생각하고 이것이 나의 하나님인 줄 생각하고 거기에 열광하면서 거기에 몰려들 것이 아니라 우리의 참된 왕은 우리 주님밖에 없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그런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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