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잠언서 17장 가운데서 2절의 말씀을 살펴보게 되었는데요. 먼저 잠언서 17장 3절 말씀을 보면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풀무의 금을 연단하고, 그리고 도가니에는 은을 연단한다고 했는데, 도가니 하고 풀무가 다른 건가요? 같은 것인가요? 같습니까? 서로 다른 겁니까? 같은 거예요! 그냥 같은 말을 다르게 표현한 것일 뿐입니다. 풀무나 도가니나 용광로나 이 모든 것들이 다 똑같은 것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는데요. 도가니가 은을 연단하고, 풀무는 금을 연단한다고 하는 이야기는, 금을 연단하는 게 따로 있고 은을 연단하는 게 따로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 풀무를 통해서, 도가니를 통해서, 용광로를 통해서, 금, 은, 쇠, 철 뭐 이런 것들을 연단한다고 하는 것을 히브리 평행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금과 은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까? 단단해서 우리들의 손으로 어떻게 구부리거나, 손으로 그것들을 어떻게 변형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 금과 은의 속성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떡이야 손으로 만질 수가 있겠고, 진흙이야 손으로 만져서 빚을 수 있겠고, 그렇게 하겠지만, 금은과 같은 것들, 쇠 구리와 같은 이런 금속은, 사람이 손으로 어떻게 해서 그것을 변형시키거나 단련시키거나 제련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불의 힘을 빌어야만, 그 금은 구리, 쇠 이런 것들은 우리가 다룰 수가 있게 되는 것이죠. 제련할 수가 있게 되는 것이죠. 뜨거운 열을 이용해야만, 이런 것들을 재현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을 예로 들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마음도 그렇게 연단하신다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도 역시 금과 은과 비슷하다고 하는 이야기겠죠. 우리의 마음도 쉽게 연단이 잘 안 되고, 우리의 마음도 잘 빚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도 너무나도 단단해서 쉽게 바뀌지 않고, 고지식해서, 그리고 여간해서는 그 마음이 변화되지 않는 그런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성숙하게 만들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연단하셔서 우리들의 마음을 성장시킨다고 하는 게, 오늘 잠언서에서 알려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들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 너무나도 보수적이고 고지식하고, 그래서 발전이나 성숙하기보다는 우리들이 항상 그 자리에 있으려고 하는, 늘 하던 방식대로만 살려고 하는 그런 마음들이 우리들에게 있는데,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는가? 성숙하게 만들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연단하셔서, 그래서 우리가 더 나은 상태로 더 좋은 성숙의 길로 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는 거라고 오늘 잠언서에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마치 원석과 같은 것이죠. 원석이라고 하는 것은 가치는 있지만, 아직 그것을 잘 단련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것을 잘 가공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 원석 그 자체로서 큰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원석만 가지고는 실제 우리들의 삶 가운데 쓸 수 있는 부분이 별로 없는 겁니다. 하지만 그 원석을 가져다가 잘 단련시키고 제련하고, 그것을 잘 가다듬게 되면, 보석과 같이, 금과 은처럼 그렇게 잘 다룰 수만 있다고 한다면, 그것이 아주 소중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변화되는 것처럼, 우리들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도, 그냥 가만 내버려 두면 참 퉁명스럽기도 하고, 그리고 우리들의 마음이 완고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으려고 하는 그런 마음들이 우리들에게 있는데, 그러한 우리들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이렇게 잘 제련하셔서 단련시켜서,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성숙하게 만들어주신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성숙해져 나갈 수 있겠는가? 우리의 마음은 어떻게 성장해 나갈 수 있겠는가? 이 금과 은이 불이라고 하는 그 뜨거운 맛을 통해서, 뜨거운 것을 통해서, 금과 은이 제련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마음, 우리들의 인격, 우리들의 삶은 어떻게 더 나은 단계로 올라가게 될까요? 어떻게 우리의 마음은 더 성장할 수 있게 될까요? 우리들의 마음을 더 성장하도록 만드는 그 도구가 무엇이겠습니까? 시련인 거죠. 시련 시련과 고통을 하나님께서 주셔서, 그래서 우리를 단련시키고 우리를 훈련시켜서, 마치 금과 은이 불속에 들어가게 되면, 그 불 속에서 녹기도 하고, 그 불속에서 불순물이 걸러지기도 하면서, 그래서 아주 좋은 금과 은으로 그렇게 재탄생하게 되는 것처럼, 우리도 고난의 과정이라고 하는 불을 통과하게 되면, 우리가 어려움의 과정이라고 하는 그 과정을 통과하게 되면, 우리들의 마음이 연단을 받게 되어서 그래서 성숙해져 나갈 수 있다. 우리가 성장해 갈 수 있다고 하는 게 오늘 잠언서의 가르침입니다.
그런 예를 아주 잘 보여주는 것이 욥의 경우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우리가 잘하는 욥기의 말씀을 보면, 동방의 의인이라고 했던 욥은 어느 날 아주 엄청난 고난을 경험하게 됐습니다. 하루아침에 가지고 있는 재산이 다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하루아침에 자기의 아들 딸들이 다 죽는 그런 비참한 일을 경험하게 된 것이죠. 더 나아가서 자신의 육신이 심각한 질병 가운데 있어서, 그래서 너무나도 큰 고통 가운데서 죽지 못해 살아가는, 그런 아주 힘들고 어려운 고난의 길을 걷게 되었던 것이죠. 너무나도 힘들고 어려운 고난의 그 과정을 겪을 때, 그 욥이 결국에 깨달은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욥의 고백을 욥기 23편 10절 말씀에서 볼 수가 있는데 욥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하나님이 나의 가는 길을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 전에는 아주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인생이기는 했지만, 그 금 사이에 불순물이 섞여 있었고, 여러 가지 잘못된 것들이 섞여 있어서, 그래서 완성되지 못한 인격이었고, 아직도 뭔가 부족한 인격이었다고 한다면, 이 고난의 강을 통과한 다음에, 고난의 불시험을 통과한 다음에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 자기 안에 들어있던 모든 불순물들이 다 없어져버리고, 순금과 같이 정금과 같이 잘 재현되어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정말 아름다운 그런 사람으로 변화되게 될 것이라고 하는 것을 고백한 것이 바로 욥의 고백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욥은 아주 힘들고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런 고난을 주신 하나님의 뜻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나로 하여금 단련시키시고 연단시켜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한 삶으로 아주 성숙한 삶으로 변화시키려고 하는 그 하나님의 목적을 깨닫고 인내하게 되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려운 시련과 고난을 당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러한 시련과 고통을 준다고 한다면, 그러면 이것이 “재수 없어서 내가 이런 일을 경험하게 됐다”라고 생각할 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나를 지금 금을 단련시키고 은을 단련시키듯이, 나를 단련시키셔서, 그래서 순금과 같이 빚어나가기 위한 하나님의 그 단련이 지금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인내하며 오히려 감사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가운데 만나는 여러 가지 고난과 슬픔 고통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일까요? 그냥 어쩌다가 살다 보면 그냥 재수 없어서 만나게 되는 일들일까요? 1번입니까? 2번입니까? 좀 크게 얘기해야 들려요.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것입니까? 하나님과는 상관없이 어쩌다 보니까 만나게 되는 일들입니까? 2번? 1번이에요? 2번이에요? 1번이에요? 2번이에요?
최근에 김동호 목사님이라고 하시는 아주 유명한 목사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냐면, “우리가 살다가 걸리는 암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게 아니다. 그냥 랜덤으로 걸리는 거다.”라고 그런 발언을 하셨다고 하는 그런 뉴스를 접하게 됐습니다. 그 뉴스를 듣고서 “도대체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그 이유가 무엇일까? 어떤 맥락에서 그런 말을 한 것일까?”라고, 그 그렇게 말씀하신 그 맥락을 한번 들어보기 위해서, 한번 기사를 찾아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목사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가 있는데요. 그것이 우리가 암에 걸리는 것, 여기서 말하는 암에 걸린다고 하는 것은 암뿐만이 아니겠죠. 고통스러운 일 아주 어려운 일 시험 여러 가지 힘든 일들을 만나는 모든 것들을 이 암이라고 하는 것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가 있겠는데요. 그렇게 표현한 것을 대유법적인 표현이라고 했잖아요? 그렇게 표현한 것일 텐데, 이러한 것들을 걸리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아니라, 그냥 랜덤으로 걸리는 거다. “살다 보면 그냥 랜덤으로 우리들에게 오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니다”라고 이야기를 해서,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고 제가 쭉 살펴봤어요.
그랬더니 그 말의 의미는 어떤 의미냐면은, 우리 크리스천들이 종종 어떤 생각을 하냐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고난과 아픔, 슬픔, 여러 가지 암 이런 것들을, 이건 하나님의 심판 때문이야. 우리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죄에 대해서 심판하시려고 주는 거야.” 만일 누군가 길을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심판해서 그런 거야.” 만일 어떤 사람이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면, 만일 어떤 사람이 큰 어려운 일을 당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심판을 내리신 것이라고 하는 그런 사람들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며, 그렇게 하나님께서 일일이 모든 죄에 대한 대응으로 심판하고 계시다.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하는 것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그런 크리스천들의 일반적인 생각이 잘못되었다”라고 하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게 아니라, “살다 보면 걸릴 수도 있고, 안 걸릴 수도 있고”라고 이야기를 한 것으로 표현한 것을 알게 됐어요. 그렇죠?
성경 말씀에는 우리가 만나는 이 세상의 고난이라고 하는 것이 꼭 그 원인이 죄에만 있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기 위해서 고통을 주실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고, 욥과 같은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이 연단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주는 경우도 있고 하기 때문에, 그렇게 어떤 어려움을 겪고 고통을 당한다고 한다면, 암에 걸린다면, “그건 네가 무엇인가 잘못한 게 있을 거야.” “그것은 네가 무언가 하나님 앞에 잘못한 것이 있을 것이니까” 그걸 회개하라고 했던, 그런 욥의 세 친구와 같은 그런 주장들이 잘못된 것이라고 하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김동호 목사님께서 그게 아니라 살다 보면 암에 걸릴 수도 있는 것이고, 안 걸릴 수도 있는 것이고, 랜덤으로 그냥 어쩌다 보면 그렇게 걸리는 것이지, 모든 게 다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그렇게 보아서는 안 된다는 의미에서 그 말씀을 하신 것으로 이해할 수가 있었습니다. 맞는 말씀이에요. 그런 말씀이라고 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이 있다고 한다면,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다고 하는 것 또한 인정해야 합니다. 한편으로는 김동호 목사님 말씀처럼 그렇게 우리가 함부로 어떤 죄 때문에 그런 일들을 겪는다고 그렇게 함부로 판단할 것도 아니지만, 동시에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 성경적인 관점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하늘에서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우연히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용하셔야만 떨어진다고 말씀하고 계시고, 요셉이라고 하는 한 청년을 그의 형들이 팔아버린 것도, 우연히 어쩌다 보니까 살다 보니까 그렇게 파는 일도 겪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결국에 그 요셉을 인도하셔서 그래서 그 가족을 구원하고 온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가운데 그 일이 일어나게 만들어 주었다고 요셉이 고백할 수 있었던 것처럼, 모든 일들이 그냥 우연히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동시에 고백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어떠한 어려움과 시련과 고통을 당한다고 한다면, 불평과 좌절하거나 절망할 것이 아니라, 이것이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더욱더 훈련받고, 그래서 이 과정을 통과하면서 영적으로 성숙하기를 바라는 하나님께서, 나를, 나의 마음을 연단하시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믿음으로 고백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야고보서 1장 2절에서부터 4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권면합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어떻게 하라?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내는 줄 너희가 알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만일 너희가 고난을 당한다고 한다면, 만일 너희가 시련을 당한다고 한다면, 암에 걸린다고 한다면, 어떤 교통사고를 당하든지 어떤 어려운 일을 당하든지 힘든 일을 만나게 되면, 그런 상황을 만나게 됐을 때, 재수 없어서 오늘 내가 이런 일을 만났다고 할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들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오히려 기쁘게 여겨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걸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인내하게 만드시고, 그 인내를 통해서 우리가 더 온전해지도록 만들어주시는 하나님의 연단의 과정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서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럴 수만 있다고 한다면 우리가 당하는 고난도 유익하게 될 수 있습니다. 고난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를 파멸시키고 우리를 짓눌러 버리기 위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금을 연단하기 위해서, 도가니를 통과하게 하고 풀무를 통과하게 하는 것처럼, 우리를 더욱더 영적으로 성숙시키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기 위해서 우리로 하여금 고난의 길을 통과하게 만드신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이 고난도 내게 유익이라 믿음의 고백이 우리 모두에게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러니까 우리가 고난을 받는 게 더 좋다고 말씀드리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일부 크리스천들 가운데는 내가 일부러 고난을 당하려고도 하고, 순교를 당하는 것을 소망하면서 살았던 그런 크리스천들이 있었습니다. “주님, 내가 순교하게 해 주옵소서” 막 그렇게 기도하면서, 순교하는 것을 사모하면서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던 그런 크리스천들이 있었는데요. 그러한 태도가 옳다고 하는 것이 아니고요. 고난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피할 수 있으면 피해야 됩니다. 만나지 않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해야 되는 것이고,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하나님, 가능하면 이 고난을 없애주옵소서.” 이 고난을 통과하지 않게 만들어 달라고 그렇게 기도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고난이 닥치게 된다고 한다면, 그가 상황 가운데서 슬퍼하며 고통스러워할 게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 앞에 기뻐하며, 이 고난을 통해서 내 믿음이 더 연단이 되고 성숙해질 수 있도록, 이 고난을 우리의 영적인 성숙의 기회로 삼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라버 엘리엇이라고 하는 사람이 쓴 <스트레스에서 건강으로>라고 하는 책에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주 즐겨하는 표현 하나가 있습니다. 무슨 표현을 하냐면,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라고 하는 그런 표현이 있는데요. 우리에게 주어진 이 모든 고난들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을 오히려 영적인 연단의 도구로 생각하며 기뻐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잠언서 17장 4절 말씀에 보면 이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악을 행하는 자는 사악한 입술이 하는 말을 잘 듣고, 거짓말을 하는 자는 악한 혀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느니라.” 왜 우리가 악을 행하는가? 왜 우리가 거짓말을 행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잘못된 것을 들었기 때문이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악한 것을 듣고, 나쁜 사람들이 말하는 말을 듣고서, 우리가 악을 행하게 되는 것이고, 잘못된 이야기를 듣고 속이는 말을 듣고, 그래서 우리가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잠언서 17장 4절에서 말하고 있으니까, 이 말씀은 그러니까 우리로 하여금 어떻게 해야 된다는 이야기입니까? “우리가 듣는 것을 조심하라.” 왜냐하면 우리가 악한 이야기를 듣는다고 한다면, 악한 사람들이 하는 말을 자꾸만 듣는다고 하면, 결국 그 말에 따라서 우리가 악한 일을 행할 수밖에 없어요. 거짓말을 자꾸 듣게 되면, 속이는 말을 자꾸 듣게 되면, 우리도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어요. 세상 사람들이 하는 그런 나쁜 이야기들을 우리가 듣게 되면, 결국 그 나쁜 짓을 우리도 같이 따라 할 수밖에 없게 되기 때문에, 잠언서 17장 4절에서 들려주고 있는 교훈이 무엇이냐면 그러므로 우리가 듣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듣는 것을 분별해야 한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는 이 세상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는데요. 이 세상은 어떤 세상입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고, 이 세상은 악한 영이 지배하는 세상이라고 할 수가 있을까요? 이 세상은 어떤 세상입니까? 이 세상의 가치관이 지배하는 세상이고, 이 세상의 가치관대로 살지 아니하면, 큰일 난다고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고, 그래서 그런 이야기들을 우리가 많이 듣게 되면,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정말 그러한가?” 하면서, 자꾸 이 세상이 말하는 대로 따라가면서 살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학부모님들이 그렇잖아요. 과외를 안 시켜도 되는데, 모두가 다 시키니까, 나도 과외를 안 시키면 안 될 것 같으니까 과외를 시켜요. 과외해 봤자 별로 도움도 안 되고, 별로 유익하지도 않은데, 다들 하기 때문에, 내가 안 하면 뭔가 뒤처지는 것 같고, 내가 안 시키면, 그러면 내가 무책임한 학부모인 것 같고 해서, 그냥 다른 사람들이 하는 거 보고 그냥 따라가면서, 그렇게 하는 것이죠.
그런데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우리를 향해서 들려주는 이야기가 정말 하나님의 법칙에 맞는 말씀인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일인가 하면, 그렇지 않거든요. 이 세상의 가치관은 무엇인가? 돈을 우상으로 섬기면서, 무엇이든지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최고고, 성공하는 사람이 최고라고 하는 그런 거짓된 가치관을 우리들에게 심어주면서, 이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서바이벌하기 위해서는 이 세상의 방식대로 따라가야 된다고 하는 그런 이야기들이 온 세상에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심지어 우리 교회 안에도 가득 들어와 있기 때문에, 그 속에서 우리가 그 말들을 듣고 따라가다 보면, 결국 우리도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그렇게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잠언서 17장 4절에서 가르쳐주는 게 무엇이냐 하면, 악을 행하는 자는 왜 악을 행하는가? 사악한 입술이 하는 말을 잘 들었기 때문에 악을 행하는 거예요. 거짓말을 하는 자는 왜 거짓말을 행하는가? 악한 혀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므로 결론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듣는 것을 조심해서 들어라. 듣는 것을 분별해서 들어라.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아서 이것이 옳은가 잘못된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선별해서 들어야 한다고 하는 교훈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의 예를 들자면 하와는 사탄이 그에게 다가와서 유혹하는 겁니다. 선악과를 먹어라. 선악과를 먹으면, 네가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너로 하여금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한 이유는 네가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될까 봐, 그래서 못 먹게 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거짓말을 하게 되었을 때, 그 말을 듣고 결국 하나님의 뜻을 어기면서 결국 타락의 길로 가게 된 거죠. 잘못 들은 겁니다. 듣지 말아야 될 말을 들은 것이죠.
사울 왕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죠. 사울왕은 다윗을 죽이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다윗을 죽이기 위해서 군대를 끌고 다니면서, 다윗을 죽이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했는데, 한 번은 다윗을 죽이기 위해서 갔다가 오히려 다윗이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있을 때, 오히려 다윗은 그 사울을 죽이지 않고 사울을 살려준 후에, 나중에 그 사울 왕을 향해서 외치고 있었습니다. 그게 사무엘상 24장 9절 말씀에 이렇게 외치는 것이죠. “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다윗이 왕을 해하려 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말을 왕은 어찌하여 들으시나이까?” 내가 왕의 신하요. 왕과 함께 내가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서 열심히 일할 수 있고, 내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왕을 위해서 충성을 다할 수 있는 왕에게 유익이 될 수 있는 다윗인데, 사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겁니까? 저 다윗을 살려두면 큰일 납니다. 저 다윗이 결국 차지할 건 왕의 자리를 빼앗을 겁니다. 다윗을 살려두면 결국 왕의 자리가 위태해질 겁니다. 그러니까 빨리 이 다윗을 죽여버려야 된다고 하는 그런 이야기들을 사울이 들었다는 거예요. 실제로 그런 이야기를 한 신하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탄이 그 사울의 말에 사울의 마음 가운데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아니면 사람들의 말을 통해서 사울이 그런 말을 듣게 되었던, 사울은 무슨 말을 들었는가? 다윗을 살려두면 위험할 거라고 하는 그런 잘못된 생각을 자꾸만 듣고, 이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 그런 악한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었던 것이죠.
뿐만 아니라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솔로몬이 죽고 난 다음에 왕위에 오르게 되었을 때, 백성들이 르호보암 왕에게 나아와서 간청하기 시작했습니다. 왕이시여, 솔로몬께서 통치하던 시절에는 너무나도 많은 노역을 시켜서 우리가 너무나도 힘들었습니다. 왕께서 이제 왕위에 오르시게 된다고 한다면, 솔로몬 때 우리에게 강하게 그 무거운 짐을 우리들에게 지어줬는데, 그 무거운 짐을 조금만 약화시켜준다고 한다면, 우리가 왕을 즐거이 정말 충성되게 섬기겠다고 하는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그때 르호보암은 두 종류의 사람들의 말을 듣습니다. 솔로몬 왕과 함께했던 신하들에게 가서 물어보니까, 그 신하들은 말하기를 “왕이시어 백성들을 섬기는 왕이 되십시오. 좋은 말로 대답하십시오.” 백성들의 요구를 들어달라고 들어주시라고 그렇게 선한 대답을 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르호보암이 자기들 자기와 함께 함께 자랐던 친구들에게 가서 물어본 거예요. “친구들아 내가 이 백성들에게 어떻게 대답하면 좋겠는가?” 그때 그 친구들이 이야기합니다. 이 백성들에게 조금이라도 숨 쉴 기회를 준다고 한다면 왕을 물로 볼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아버지보다 더 강하게 억압은 통치를 하겠다고 그렇게 선포하고, 함부로 까불지 못하게 본떼를 한번 보여주세요. 그렇게 제안하는 그 친구들의 잘못된 말에 귀를 기울였다가, 결국 잘못된 대답을 하게 되고, 결국 이스라엘 나라가 둘로 나뉘어지게 되는 안타까운 결과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른 삶을 살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우리가 듣는 것을 분별해서 삼가서 바른 말씀을 들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런 말씀을 들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어떻게 분별할 수 있을까요? 분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좋은 말인가, 무엇이 나쁜 말인가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습니까? 나쁜 말이 어떤 말인가를 배울 필요는 없고요. 좋은 말이 무엇인가를 배우면 되는 겁니다. 위조지폐가 어떻게 생겼는가를 공부할 게 아니고, 진짜 지폐가 어떻게 생겼는가를 알면, 그 어떤 종류의 위조지폐가 나와도 분별할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될 때 우리는 바른 길로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시편 1편 1절에서부터 2절 말씀에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깊이 깨닫고 묵상하면서,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새기고, 그래서 그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이 세상의 모든 소리들을 다 분별해 내는, 영적인 분별력들이 있게 해 주옵소서 기도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듣는 것을 조심해야 하고 보는 것을 조심해야 하는데요.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가짜 뉴스가 판치는 시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시대에는 가짜 뉴스들이 많이 퍼져 나가고 있는데요. 우리들을 자극하게 만들고 그래서 분노하게 만들어서, 우리로 하여금 행동하게 만들, 우리로 하여금 행동하도록 유발을 할 목적으로 만든 가짜 뉴스들이 얼마나 많이 넘쳐서 돌아다니는지 모릅니다. 약간의 사실에 왜곡과 과장과 자극적인 말들을 조립해서, 그래서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상대방을 향해서 분노하게 만들고 환하게 만드는, 그런 가짜 뉴스들이 우리들 주변에 많이 전달되고 있는데, 이런 것들에 쉽게 현혹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조심해야 되는 것이고, 우리가 확인하지 못했다고 한다면 함부로 전달하지 않아야 될 것입니다. 잘못된 이야기들을 듣게 된다고 한다면 결국 우리는 악한 일을 하게 되는 것이죠. 거짓말도 자꾸만 반복해서 들으면 진짜처럼 느껴지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늘 하나님의 말씀을 분별하면서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해 나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기도 제목이 무엇이어야 됩니까? 하나님 이 복잡한 세상 가운데서 듣는 것을, 우리들의 귀에 파수꾼을 세워주셔서 정말 선하고 옳고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이야기들을 새겨서 들을 수 있게 해 주옵소서. 우리들의 눈에 파수꾼을 세워 주셔서 악하고 나쁜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선하고 좋은 것들,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것들을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옵소서. 기도하며 나가야 될 것이고, 우리가 혹시라도 잘못된 생각들을 듣게 되어서 우리가 잘못을 했다고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나아가 회개하고, 다시 한번 하나님의 말씀대로 돌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