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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시험하는 일 (신 6:16-19)

오늘 우리는 신명기의 말씀을 읽었는데요. 이 신명기의 말씀은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하나님께서 주셨던 말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나안 땅에서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 다시 한번 들려주시는 말씀이 바로 신명기의 말씀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 신명기 말씀 6장 16절의 말씀을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가 맛사에서 시험한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라.” 그렇게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이죠.

그 옛날 이스라엘 민족이 맛사라고 하는 곳에서, 이 맛사라고 하는 곳은 므리바라고 하는 지명으로도 알려져 있는데요. 이 맛사라고 하는 곳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을 시험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시험한 일을 상기시키면서, 그 옛날 너희 조상들이, 너희들이 맛사에서, 므리바에서 하나님을 시험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렇게 하나님을 시험했던 것처럼 너희들은 시험하지 말라.”라고 말씀해 주고 계시는 것이죠.

맛사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혹시 기억이 나십니까? 므리바라고 하는 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출애굽기 17장에 있었던 이야기를 말하고 있는 것인데요. 광야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생활하는 가운데 물이 떨어지게 되자, 이스라엘 민족은 즉각적으로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하나님을 향해서, 자신들을 이끌고 나온 그 모세를 향해서 원망하고 불평한 일이 있었는데요. 바로 그 일을 상기시키면서, 그 옛날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또 너희의 지도자인 모세를 향해서 불평하면서, 그렇게 하나님을 원망했었던 일이 있었는데, 그래서 하나님을 시험한 적이 있었는데, 너희는 그렇게 다시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교훈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의 일을 교훈 삼아서, 과거에 있었던 역사를 다시 한번 기억하면서, 미래에 대한 교훈을 주고 계시는 것이죠. 우리가 과거에 일어난 그 실패의 경험들이 있을 겁니다. 과거에 아픈 기억들이 있을 겁니다. 우리가 실수를 하고, 우리가 실패를 해서, 우리가 성공하지 못한 참 안타까운 실패의 경험들이 우리들에게 있을 수 있겠고요. 그리고 그 과거의 실패는 어쩔 수가 없어요. 과거에 우리가 저질렀던 잘못들, 과거에 우리가 행했던 모든 잘못들, 그런 것들을 되돌릴 방법이 결코 없는 겁니다. 한번 엎질러진 물을 주어 담을 수는 없는 것이죠. 하지만 과거의 그 실패, 그리고 그 과거를 바꿀 수는 없겠지만, 그 과거를 들여다보면서 미래를 위한 교훈을 얻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큰 유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게 바로 우리가 과거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유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요즘 우리 교회 성경대학에서 교회사를 공부하고 있는데요 초대교회사, 중세 교회사 등등, 우리 교회가 지난 역사 동안에 어떠한 일들을 해왔으며, 어떤 경험들을 해왔는지 이렇게 살펴보는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성경 말씀도 아닌데, 우리의 역사인데, 그런 역사를 되짚어보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과거를 바꿀 수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과거를 통해서 그저 자랑하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과거를 자랑의 재료만 삼는다고 한다면, 교만의 재료로 삼는다고 한다면 역사를 허비하는 것이 되는 것이죠. 하지만 과거를 바꿀 수도 없고, 과거에 쓰라린 실패들도 있지만, 그것을 통해서 미래를 향한 교훈을 얻는다고 한다면, 그것이 아주 유익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 인생들은 너무나도 과거를 쉽게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죠. 과거에 우리가 참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겪게 되었는데, 그리고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게 된 이유가 있었고, 그러한 역사들이 있었는데, 그런 역사들로부터 제대로 배우지 않는 게 우리들의 문제인 것이죠. 불과 몇 년 전의 일들, 불과 몇십 년 전의 일들을 까마득하게 망각해 버리고,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채, 과거의 잘못이 또다시 반복되는 그런 안타까운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자꾸 일어나고 있다고 하는 것이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하지만 오늘 성경 말씀, 신명기의 말씀에서는 하나님께서는 그 과거를 이야기하면서, 미래에 대한 교훈을 주고 계시는 것이죠. 과거 맛사라고 하는 곳에서, 므리바라고 하는 곳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실패했던 그 쓰라린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너희가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간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 가나안 땅에서 어떻게 해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인가?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교훈을 오늘 성경 말씀 가운데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물론 이 과거 맛사에서의 이야기는 우리 이스라엘 민족의 실패의 역사이기는 했지만, 그 실패의 역사가 아주 절망적이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원망과 불평하던 그런 이스라엘 민족을 향해서 진노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놀랍게도 은혜를 베풀어 주셨기 때문이죠. 반석에서 물을 내게 하시고, 그들에게 물을 공급해 주시면서,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 하나님이 인자가 많으신 분이요. 사랑이 많으신 분이오. 길이 참으시는 그 하나님이라고 하시는 그 놀라운 은총의 하나님을 드러내 주시는 그런 놀라운 역사가 과거의 역사였던 것이죠.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가 행한 대로 심판하신다고 한다면, 우리가 행한 그대로 판단하신다고 한다면, 우리는 단 한순간도 제대로 서 있을 수도 없을 것이고 살아있을 수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분이신가? 우리 부모님과 같아서, 우리의 아버지와 같아서, 사랑이 많으시고 인자가 많으셔서,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이시기에, 살아있는 것이고, 숨 쉬고 움직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일을 통해서 우리가 교훈을 잘못 얻는다고 한다면 큰 문제가 일어날 겁니다. 하나님 별거 아니구나. “하나님에게 원망하고 불평해도 괜찮구나”라고 하는 결론을 내리면 안 되는 것이죠.

우리 이 출애굽기의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제대로 잘 배워야 되는 것인데, 그 옛날 하나님을 원망하며 불평하면서 하나님을 시험했던 그 과거를 안타깝게 여기면서, 앞으로는 이제는 어떻게 살 것인가?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아야 되겠다. 이제는 더 이상 하나님을 시험하는 그런 나쁜 일을 하지 말아야 되겠다고 하는 그런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오늘 본문에서 말씀해 주고 있는데, 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의 인생 가운데 하나님을 시험하는 그런 잘못된 일들을 하지 않는 그런 결단이 이 아침에 있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그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 잘못된 일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해 주고 계시는 것인데요. 하나님을 시험한다고 하는 것의 본질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이죠.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것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하게 되었을 때, 40일 동안 금식하고 이제는 굶주렸던 그 예수님을 사탄이 나타나서 세 가지 시험으로 시험하는 가운데, 예수님에게 제안하기를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고 그렇게 제안했습니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서 정말 하나님이 내 발을 보호해 주는가? 한번 해보라는 겁니다. 뛰어내려보라고 제안을 하는 것이죠. “하나님이 정말 너를 사랑하는가? 정말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정말 하나님이 너의 하나님이냐?”라고 하는 사실을 시험해서 확인해 보라고 사탄이 유혹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이 사탄의 시험에 넘어가서 하나님을 시험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아주 단호하게 대답해 주셨습니다. 구약 성경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말씀하시면서, 그 시험을 하지 않고 물리친 이야기가 성경 말씀 가운데 기록되어 있는 것이죠. 오늘 우리들의 삶 가운데서도 이러한 유혹들이 우리들에게 있다고 한다면, 담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해서 물리쳐야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다 보면,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이 그렇게 나쁜 일처럼 보이지 않아 보이는 내용도 있고요.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을 시험하라고 적극적으로 권면하고 있는 말씀도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는 기드온의 경우인데요. 사사기 6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향해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해 내라고 하는 그런 사명을 주셨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할 테니까, 너는 군사들을 이끌고 가서, 저 미디안 사람들로부터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해 내라고 말씀해 주신 것이죠. 하지만 기드온은 “정말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십니까? 정말 내가 전쟁에 나가면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해 주시는 것이 확실합니까?” 확신이 없었어요. 확신이 없어서 하나님을 시험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정말 나와 함께하실 거라고 하는 것, 그것을 나에게 증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런 증거가 있으면, 내가 나가고 싶습니다.”라고 이야기하면서 하나님 앞에 요구한 것이죠. “하나님, 여기 양털이 있는데, 오늘 밤에 이슬이 내릴 때 다른 곳에는 이슬이 내리지 말고, 이 양털에만 이슬이 내려서, 이 양털만 젖게 해 주세요.”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죠. 사실 이슬이 내리면, 다 이슬이 내리지, 따로 구별하여 이슬이 내릴 리는 없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요구를 한 것은 하나님을 시험한 것이었고, 그리고 그날 밤 자고서 일어났는데, 놀라운 결과를 발견하게 된 것이죠. 하나님께서 정말 기드온이 요구한 대로 그 양털에만 이슬이 내린 거예요. 확신해야 되는데. 그런데 이 기드온은 그것을 보면서도 확신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다시 한번 시험합니다. “하나님, 한 번만 더 말씀하고 싶습니다. 이번에는 양탄에만 이슬이 내리지 않게 해 주시고” 다른 곳에 이슬이 내리게 해달라고 요구했는데, 그것도 역시 하나님을 시험한 것이었는데, 하나님께서는 놀랍게도 그렇게 시험하고 있는 기드온을 심판하지도 않았고, 책망하지도 않고, 그것이 나쁜 일이라고 진노하지도 아니하셨고, 그냥 그 기드온이 요구하는 대로 그대로 해주셨다고 하는 이야기가 사사기 6장의 말씀 가운데 있습니다. 하나님을 시험에도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은 구절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말라기 3장 10절에 가면 한 술 더 떠서 이제는 하나님을 시험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라기 3장 10절의 말씀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이 아니하나 보라”라고 말씀해 주신 것이죠. 이스라엘 민족이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습니까? 탐욕적인 삶을 살고 있는 거예요. 마치 물질이 하나님인 것처럼 물질을 우상처럼 섬기면서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을 의지한다기보다는 이 세상의 재물을 의지하며 살고 있는 그 이스라엘 민족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해주시는 말씀이, 재물이 너희의 하나님이냐? 하나님이 너희의 하나님이냐? 너희가 결정하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이 너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인정하며, 재물이 나의 우상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인정하며,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리고,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라고 하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살아보고 정말 그 삶이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주시는 삶인지 한번 하나님을 시험해 보라는 거예요. 돈이 너희를 축복해 주는지, 하나님이 너희를 축복해 주는지 시험하면서 살라고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말라기 3장 10절의 말씀에서는 우리로 하여금 시험하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죠.

도대체 무엇이 맞는 것일까요?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 잘못된 것입니까?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 괜찮은 것입니까 해도 되는 것입니까? 이런 식으로 상반된 말씀들이 성경에 많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성경을 이해하는 것이 상당히 곤란하고 어려운데요. 우리가 이런 말씀들을 볼 때는 항상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냐면, 과연 어떤 의미에서 시험하라고 하는 말씀인가? 어떤 의미에서 시험하지 말라고 하는 말씀인가를 질문을 해야 하는 것이죠. 성경에 상반된 표현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것들이 서로 모순된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런 차원이 있는 것이죠. 어떤 차원에서, 어떤 의미에서 시험하라고 하는 말씀, 어떤 의미에서 시험을 하지 말라고 하는 말씀인가를 구분해서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엄격하게 따지면, 우리의 모든 행동은 다 시험하는 겁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 우리가 어떤 식으로 생각하고 어떤 식으로 행동을 하던 우리의 모든 행동 100%는 다 일종의 시험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결국에는 우리의 모든 행동들이 하나님의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고 믿음으로 살면, 하나님의 은혜의 반응들이 나올 것이고, 축복의 반응들이 있을 것이지만, 우리가 죄악의 길로 가고 악한 길로 간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심판의 반응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식으로 행동하든, 하나님의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어떤 식의 반응이 나온다고 하는 의미에서, 우리의 모든 행동은 다 일종의 시험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어쩌면 우리 자녀들이 늘 부모님을 시험하잖아요? 자녀들은 부모님을 부모님과 관계를 가지면서 시험을 합니다. 내가 이런 행동을 하면 우리 엄마가 어떻게 반응을 할까? 내가 엄마를 향해서 욕을 해버리면, 엄마가 어떻게 반응을 할까? 내가 공부를 안 하고 놀면, 아빠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내가 하는 그 모든 행동을 통해서, 엄마 아빠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늘 시험하고 있는 겁니다. 그게 의도를 하고 있든 의도를 하고 있지 않든, 내가 시험하려고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든 그런 의도가 없든, 내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어떤 반응이 나오고, 내가 어떤 말을 했을 때 어떤 반응이 나오고, 내가 어떤 일들을 했을 때 어떤 반응이 항상 반응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사회적인 존재이고 관계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의 반응은 나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늘 반응을 불러오는 것이기 때문에, 엄격하게 말하면 모든 우리의 행동과 말과 생각과 그 모든 것들은 다 100% 다 시험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어요.

역시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들도 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이 될 겁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일을 하고, 우리가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반응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시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축복의 반응으로 우리들과 함께해 주시는 것이죠. 하지만 우리가 계속해서 원망하고 불평하고, 하나님께서 싫어하실 만한 일들을 하고, 속이고 미워하고 질투하고 악한 일들만 계속해서 한다고 한다면, 하나님으로부터 그 우리의 행동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들은 모두가 다 시험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향해서 너희가 맛사에서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맛사에서 너희가 하나님을 원망하며 불평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방식으로써, 하나님을 자극하고 하나님을 시험했던 그런 방식으로, 그렇게 나쁜 방식으로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하는 그런 의미입니다. 말라기 3장 10절에서 하나님을 시험하라고 하는 말씀은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며, 하나님의 사랑에 따라 살고, 하나님을 순종하며 살아가는 가운데, 하나님의 은총의 반응을 받을 수 있는지, 그것을 시험해 보라고 하는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시험을 해보라고 하는 그런 의미의 말씀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우리가 하는 선택에 따라서 우리는 그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음식을 먹을 때 적절하게 영양을 골고루 갖추어서 먹고, 과식하지 않으며, 운동도 열심히 하고, 또 걷는 것도 열심히 하면서, 몸 관리를 잘하면서 과연 내 몸이 건강해질까를 시험해 본다고 한다면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되겠습니까? 건강한 몸을 가지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어떤 사람이 그냥 인생을 마음대로 살면서 잠도 그냥 막 자고, 게으르고 과식하면서 운동도 하지 않고, 그러면서 내 몸의 변화가 어떻게 되나 한번 보자 하면서 자신이 자기 자신을 테스트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건강치 못한 몸을 가져오는 결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의 삶 가운데서 우리 정말 내가 사랑을 베풀고, 많은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고, 은혜를 베풀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배려와 사랑을 보여주는 그런 삶을 살면, 그러면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 주고 내 주변에 몰려들게 되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 주는 그런 시험을 해본다고 한다면, 어떤 결과를 얻게 됐겠습니까? 정말 그렇게 되는 것이죠. 내가 사랑을 베풀면 내가 더 많은 사랑을 받게 되는 그런 결과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이기적이고 다른 사람들 미워하고, 시기하고, 그래서 나 혼자 살고 그냥 독불장군처럼 그렇게 살겠다고 그런 시험을 한다고 한다면, 결국 그는 외톨이가 될 수밖에 없고 쓸쓸하고 고통스러운 인생을 살아가는 결과를 얻게 될 것입니다. 만일 어떤 학생이 열심히 공부하고 미래를 위해서 열심히 준비한다고 한다면 결국에는 성공의 길을 가게 될 것이지만, 게으르고 정말 나태하며 미래에 대한 아무 준비도 없이 실패하는 그런 삶을 살게 된다고 한다면 실패하는 인생을 가지게 될 것이죠. 성경 말씀 가운데 너희는 기도하라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겠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하나님께서 해주신 그 말씀대로 정말 하나님께서 내가 기도하면 응답해 주실까 하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엎드리면, 하나님 앞에 엎드리면서 울면 정말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해 주신다고 말씀해 주셨고,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정말 그러한가 하여서 그렇게 시험한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놀라운 응답과 하나님이 함께해 주시는 놀라운 경험을 체험하게 될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 앞에 마음을 닫아버리고, 기도도 하지 아니하고 그냥 쓸쓸하게 외롭게 나 혼자 살면, 그런 아무런 재미없는 인생을 살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이 말입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 가운데서 해주시는 말씀이 무엇이냐면, 너희는 맛사에서 하나님을 시험한 것처럼 시험하지 말라고 하는 이야기는, 그러니까 아무런 시험을 하지 말라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맛사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면서 그렇게 하나님의 마음을 긁고 하나님을 슬프게 만드는 그런 행동을 하면서, 하나님이 어떤 반응을 보여주실지 그렇게 시험했던 것처럼, 나쁜 시험을 하지 말라는 얘기죠. 하나님을 시험하라고 하는 이야기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사랑을 베풀며,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면 가고, 멈추라고 하면 멈추고 주님의 말씀대로 따라 사는 가운데 성경에 약속하신 그 놀라운 축복이 우리의 것이 되는지를 직접 시험해 보라고 하는 그런 의미인 것이죠.

안타깝게도 이스라엘 민족은 긍정의 시험과 부정의 시험 가운데서 부정의 시험을 하게 된 것이죠. 불신앙과 원망의 선택을 하게 된 겁니다. 감사하며 살면서, 늘 감사와 찬송을 올리면서 감사와 찬송하는 삶이 얼마나 행복한 삶인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삶인가를 그렇게 시험한 것이 아니라, 불평과 원망하면서 불평과 원망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 것인가 하면서 불평과 원망의 시험을 하나님 앞에 하다가 하나님으로부터 안타까운 그런 소리를 듣게 된 것입니다. 오늘 신명기 6장에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은 바로 그런 의미의 말씀입니다. 신명기 6장 17절에서부터 18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명령과 증거와 규례를 삼가 지키며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고 선량한 일을 행하라.” 너희는 하나님을 맛사에서 시험한 것처럼 시험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그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는 일이 무엇인가? 그것은 그냥 입 다물고 있는 게 시험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시험을 하지 않는 것이 무엇이에요? 그런 맛사에서 시험한 것처럼 시험하지 않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17절, 18절의 말씀처럼 행하는 게 바로 그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죠. 하나님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으면 사랑하는 거예요. 내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했으면, 사랑하는 거예요. 누군가 나를 힘들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면 내 손으로 원수를 갚아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심판을 하나님 앞에 맡겨버리라고 했으면 맡겨버리는 거예요. 너희가 기도하라 기도하면 내가 너희에게 응답해 주겠다고 말씀하셨으면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 나와 엎드리라고 하면 엎드리는 거예요. 불평하고 원망하며 살라가 아니라 감사하며 살라고 그랬으면 감사하면서 사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순종하며 살면 그것이 하나님을 좋은 의미에서 시험하는 것이고, 맛사에서처럼 그렇게 부정적으로, 정말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시험할 것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신지, 정말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 약속을 이루어 주시는지, 하나님의 그 말씀이 오늘날에도 우리들에게 맞는 말씀인지, 그렇게 긍정적인 시험을 하면서 믿음의 삶을 살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제가 여러 교역자들을 만나게 되었었는데요 교역자들이 새로 부임을 하게 되면 언제나 저를 시험합니다. 의도적으로 시험하는 것은 아니고요 그냥 시험하게 돼요. 왜냐하면 행동하는 그 행동 하나에 대해서 제가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저는 화를 안 내요. 실수해도, 잘못해도, 늦게 나와도, 게을러도, 책임을 잘 수행하지 못해도. 좋은 방법인지는 모르겠어요. 그런데 제 마음속에 무슨 생각이 있냐면 긍휼의 마음이 있어요. 얼마나 힘들면 실수했겠노? 얼마나 여러 가지로 마음에 말 못 할 사정이 있으면 그랬겠나? “내가 해주면 되지” 하면서 해줍니다. 그러면 그걸 보고 하나씩 둘씩 테스트를 하다가, “내가 이래도 괜찮네” “내가 마음대로 행해도 괜찮네” 하면서 정말 게으르고 사역을 제대로 하지 않는 그런 교역자들도 그런 모습을 보면 안타깝죠. 그렇게 시험하지 말고 정말 사랑으로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사역을 하고, 하나님이 나를 구원해 주시고 나로 사역자를 삼아주셨다고 하는 것 때문에 감사해서, 목사님 눈치 때문에, 목사님한테 혼나지 않기 위해서 그래서 사역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 교회에서 사례를 받기 때문에 사역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해 주셨습니까? 나와 같은 죄인을 구원해 주셨으니까 사랑할 그 마음으로 사랑하는 섬기는 그런 모습들의 반응을 보이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그런 식으로 시험해 보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냥 대충 아무렇게나 우리가 만족하는지, 만족하지 않는지, 우리의 반응이 무엇인지를 보면서, 거기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시험하면서 우리에게 대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우리에게 쏟아부어 주셨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고, 우리를 위하여 잡으시며, 우리에게 한없이 아무런 제한 없이 모든 사랑을 쏟아주신 그 하나님의 놀라운 그 사랑을 우리가 받았다고 한다면, 오늘 우리가 원망과 불평하면서 하나님을 시험하거나 하나님과 상관없는 그런 죄악의 길을 걸어가면서 하나님이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그렇게 살펴보면서 시험해 보는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순종하며, 그 말씀대로 따라 사는 가운데, 내 본성을 누르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가운데, 저와 여러분들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그런 믿음의 길을 걸어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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