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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즐거움과 근심 (잠 15:13-17)

오늘 13절 말씀에 보면,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지만, 그러나 마음에 근심이 있으면, 심령이 상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당연한 말씀이죠. 마음이 즐거우면, 얼굴이 환하게 밝게 빛나게 되겠지만, 그러나 마음속에 근심이 있으면, 심령이 상해버리고 정말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는 것, 당연한 말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마음속에 즐거움이 있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마음속의 근심을 제거할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즐거움이 있으면 얼굴이 밝아지고 빛나고 좋고, 마음에 근심이 있으면 심령이 상하게 되고 썩게 되는데, 근데 문제는 어떻게 하면 우리들의 마음이 이렇게 근심이 아니라 이렇게 기쁨으로 마음의 즐거움을 가질 수 있겠는가? 이게 우리들의 문제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마음 마음의 기쁨을 얻기 위해서,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 그리고 마음속의 근심을 없애기 위한 그 길이 무엇일까를 우리가 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그 뒤에 나오는 몇몇 구절들을 통해서 한번 살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15절 말씀에 보면 “고난 받는 자는 그날이 다 험악하나,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하느니라.”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날이 다 험악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 그날이 험악하다는 거죠? 고난을 받을 때, 고난을 받게 되면, 그날이 험악해진다고 하는 것이죠. 즉 마음의 즐거움이 없어지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어려움을 당하기 때문에 그렇죠. 좋은 일이 있으면 기쁘겠지만, 좋은 일이 아니라 힘든 일을 만나게 되면,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고통스러운 일들을 만나게 되면, 그러면 그 고난을 당하게 되면, 결국 우리들의 마음이 근심이 쌓이게 될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죠. 우리의 삶 가운데, 살아가는 가운데 힘들고 어려운 일이 늘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인데요.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되면, 당연히 마음속의 즐거움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날이 험악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15절 말씀에서 그러니까 “고난이 없어지면 좋아진다”라고 설명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눈여겨보았으면 좋겠습니다. 15절을 한번 다시 봤으면 좋겠는데요. 고난을 받게 되면 그날이 다 험악해진다고 얘기하면서, 그런데 잔치는 어떻게 되는가? “고난이 없어지면 잔치가 이루어질 수 있다”라고 표현하고 있지 않습니다. 고난이 있으면 험악해지는 것은 사실인데, 그런데 잔치하게 되는 것은 언제 잔치가 되는가? 고난이 없어질 때 잔치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하지 않고, 15절에서는 마음이 즐거운 자가 그런 자는 잔치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주변의 환경이 고통스럽다고 할지라도, 지금 내가 만나는 일들이 정말 험악하고, 우리들의 마음이 정말 힘들고 어려운 상황 가운데 있다고 할지라도, 그런데 그 상황 가운데서도 우리가 마음을 지켜서, 우리가 즐거움을 유지한다면, 그러면 고난 가운데서도 기쁨이 가능하다고 하는 그런 의미일 것입니다.

주변의 고통을 만나면서도 마음이 즐거울 수 있을까요? 어려운 일을 만나는데도 고통스럽지 않고, 오히려 기쁨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이 있을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은 그럴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합니다. 좋은 일이 있어야 기쁜 것이고, 행복해야 즐거워지는 것이지, 일이 술술 잘 풀려야, 그래야 내가 얼굴에 웃음이 나오는 것이지,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나면, 웃을 일이 없고, 고통스러운 일을 만나면 짜증이 날 뿐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지만, 그러나 오늘 잠언서 15장 15절의 말씀은 그게 아니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거예요. 잠언서 15장 15절의 말씀은 고난을 받을 때 고통스럽고 힘들겠지만, 그러나 기쁨이 언제 오는가? 고난이 없어질 때 기쁨이 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순간에도 마음이 즐거운 자에게 기쁨이 온다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성경 전체의 가르침이 바로 그런데요. 그래서 성경은 우리를 향해서 권면하고 있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항상 기뻐하라고 하는 이야기는 좋은 일이 있을 때, 일이 잘 풀릴 때, 모든 것들이 다 술술술술 잘 풀려나갈 때, 그때만 기뻐하라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고통스러운 일을 만나고, 어려운 일을 만나고, 문제가 생기고, 우리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 같은 그런 장애물이 우리들 앞에 놓여 있는 그런 순간에도, 기뻐하라고 하는 말씀이에요.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는 이야기는 많은 결과가 생길 때, 그리고 좋은 일들이 생길 때, 그때만 감사하라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황 가운데서도 감사하라고 하는, 그런 이야기, 왜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이런 힘들고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오히려 기뻐하고 오히려 감사하다고 말씀하고 있는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야고보서 1장 2절의 말씀을 보면, 우리가 한번 생각해 볼 수가 있겠는데요.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어떻게 하라?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시험을 당하거든, 고난을 당하거든, 어려운 일을 당하거든 울고 짜고 있을 것이 아니라, 슬퍼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괴로워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이죠. 왜 그렇게 해야 됩니까? 바로 그다음 구절인 야고보서 1장 3절의 말씀에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우리 성도들을 향해서 다가오는 그 시련이, 우리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그 고통이, 우리를 박살 내버리고 도무지 재기하지 못하도록 완전히 짓밟아버리기 위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고난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로 하여금 인내하게 만들고, 우리로 하여금 영적인 유익을 경험하게 하기 위해서,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시련이 온다고 할지라도 절망할 것이 아니라, 슬퍼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온전히 기쁘게 여겨야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결국은 인내를 만들어 버리기 때문에 그런 것이죠.

뿐만 아니라 로마서 5장 3절에서부터 4절 말씀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란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환란을 우리가 당하게 되면 그것이 우리가 완전히 망하게 되는 길로, 박살 나게 되는 길로 가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 환란을 통해서 인내를 얻게 되는 것이고, 연단을 얻게 되는 것이고 소망을 얻게 되면서, 영적인 유익을 누리게 될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사실을 생각해 본다고 한다면, 고난이 닥친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절망하고 슬퍼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뻐하고 마음속에 오히려 즐거움을 가져야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결과를 알면 중간에 고통은 그렇게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이를 낳을 때 해산에 고통이 있은 후에는 아이를 안을 거라고 하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그 해산의 과정을 통과하는 것이죠. 결과를 알기 때문에 그 고통스러운 그 아픔들을 잡아낼 수가 있는 것이죠. 축구 경기를 할 때, 서로 골을 넣고 골을 먹히기도 하면서 왔다 갔다 하는 그런 경기가 있을 수가 있겠는데요. 라이브로 그것을 볼 때는 생방송으로 보게 될 때는 아 마음이 조리고 정말 과연 이 경기를 이길 수 있을 것인가? 그러다가 골을 하나 먹히게 되면 정말 탄식을 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치던 경기를 막바지 90분 이제 인저리 타임에 얼마 남겨놓지 않고 경기가 끝나기 직전에 연달아 몇 골을 넣으면서 뒤집어버린 그런 역전승을 하는 경기가 있었다고 한다면, 그 경기를 생방송으로 볼 때는 정말 마음을 조마조마하면서 보게 되겠지만, 그러나 그것을 재방송으로 볼 때는 어떨까요? 재방송으로 볼 때 재방송을 보는데 우리 팀이 한 골 먹혔어요. 탄식하겠습니까? “아, 이게, 너, 왜, 왜 골을 먹혔지?” 하면서 괴로워하나요? 아니요. 그때는 오히려 소파 뒤에 탁 누워가지고, 아 저렇게 한 골 먹혔지만, 좀 있다가 역전하겠지. 그 역전하는 꼴 한번 보자 하면서 보는 거예요.

우리가 결과를 알고 있다고 한다면 중간이 그 어떤 고난이 있다고 할지라도 두렵지 않은 것이죠.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무슨 말씀을 해 주셨습니까? 마태복음 5장 11절, 12절 말씀에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다. 우리 성도들이 하늘에 상이 있을 거라고 하는 사실을 생각한다고 하면, 이 세상에서 만나는 그 어떠한 아픔과 고통도 사실은 믿음으로 견딜 수 있으며, 오히려 그 순간에 기뻐하고 찬송할 수 있는 믿음의 용기들이 있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원하기는 오늘 우리들의 삶 가운데서 그러한 믿음이 아직 없다고 한다면, 아직 그런 눈이 우리들에게 없다고 한다면,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오늘 이 시간에 기도할 때, 하나님, 저희들에게 믿음의 눈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기도하며 나아가는 오늘 저녁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고난이 우리의 마음을 무너뜨리고 근심하게 할 수 있으나, 우리가 기쁨을 얻는 것은, 즐거움을 얻는 것은 그 고난이 없어져야 비로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지금 그런 고난이 아직도 내 눈앞에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는 그 섭리와 계획과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 때문에 그것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인내에, 연단에 소망을 줄 거라고 하는 사실을 바라보면서, 오히려 기뻐할 수 있는 믿음의 눈을 달라고 기도하며 나아가는 이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 감옥에 갇혔을 때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전하며 다니는 가운데, 빌립보 사람들이 관리들에게 고발을 해서, 우리 사람들이 받지도 못할 이상한 풍속을 전한다고 하면서 고발하게 될 때, 관리들이 제대로 재판도 하지 아니하면서 무조건 때리고, 바울과 실라를 감옥 속에 가두고 차꼬를 채워서, 그 어두컴컴한 곳에 집어넣었을 때, 바울과 실라는 그 순간에 왜 내가 복음을 전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왜 나를 도와주지 않는가? 왜 우리들의 삶이 이렇게 고통스러운가? 한탄하고 좌절하고 울고 괴로워했던 것이 아니라, 빌립보 감옥 속에서 찬송을 불렀어요. 그곳에서 하나님을 찬양했어요. 힘들고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리가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 어떠한 방향으로 인도해 주실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그 사랑과 은혜를 알기에 오히려 찬양하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엎드릴 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지진을 일으키시며, 그들을 풀어주시고, 또 그곳에서 회심자를 얻게 하는 놀라운 은총의 역사가 있었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오늘 또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이며, 그 어느 것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고 하는 이 한 가지 사실을 기억하며 담대하게 마음속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잠언서 15장 16절 말씀에 보면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일반적인 생각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부자가 되고 풍부한 삶을 살게 되면 행복할 것이지만, 가난하고 어려운 모습을 가지고 있게 된다고 한다면 그러면 불행하고 정말 힘들 거라고 하는 것이 우리들의 일반적인 생각입니다. 하지만 16절의 말씀 가운데서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 것이지요. 가산이 적어도, 돈이 많지 않아도, 가난해도 여호와를 경외한다면, 가산이 많고 크게 부하더라도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번뇌하며 살아가는 사람보다 훨씬 더 낫다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이죠. 재산과 부유함, 평안함, 건강함 이런 것들이 반드시 항상 좋은 기쁨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의 여건이 좋지 않다고 하는 것이 가난하거나 병들거나 또한 여러 가지 문제를 만나거나 하는 그 모든 것들이 반드시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가운데 주님 앞에 나아가면 오히려 그 삶이 더 복된 삶이요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는 삶이요. 그 그 삶이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는 삶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있으면 더 좋죠. 재산이 많으면 더 좋겠고, 건강하면 더 좋겠고, 모든 일들이 술술 잘 풀린다고 한다면 좋을 것입니다. 그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한다면 우리들이 마음을 어떻게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죠. 하나님을 예배하며 사는 삶이 복된 삶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잠언서 15장 17절 말씀에서도 또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잠언서 15장 17절 말씀입니다.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우리의 생각은 일반적인 생각은 부유해서 고기도 마음대로 먹고, 스테이크도 먹고 외식도 막 하고 그러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오늘 또 이 17절의 말씀에서는 무엇이 행복하고 기쁜 것인가? 부유함이 행복의 기준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며 서로 아끼고 그 가족들 간에 사랑하는 것이 그것이 행복의 비결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또한 그 사랑을 우리 주변에 전파하면서 사랑을 베풀면서 살아가는 것이 그게 기쁜 것이지, 그냥 돈이 많다고 해서, 다른 여건들이 좋다고 해서 행복한 것이 결코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외적인 조건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러나 없다고 나쁜 것은 아니며,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또한 사랑하면서 살고 있는가가 훨씬 중요하다고 오늘 본문에서 말씀해주고 있는 줄로 믿습니다. 원하기는 우리 예수 비전에 속한 모든 성도님들의 얼굴에서는 그 얼굴이 빛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늘 근심과 걱정 가운데 그렇게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얼굴이 밝고 빛나게 그렇게 행복한 삶이 사는 그런 우리 예수비전교회 성도님들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늘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 또한 사랑으로 서로를 도우며 믿음으로 하나님의 소망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믿음의 결단들이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고 계십니다. 하나밖에 없는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하신 그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살펴보고 계시는데, 더더욱 살펴보시는 분이 있다고 한다면 더 힘들고 더 고통스러운 자를 하나님께서 더 사랑하고 계시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주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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