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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 하고 기쁘게 하라(잠 23:19-25)

제가 방송을 통해서 신앙상담 프로그램을 지금 현재 진행하고 있는데요. 아마 들어보신 분들도 있을 거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런 신앙상담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여러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질문들 신앙적인 고민들에 대해서 신학적인 신앙적인 대답들을 해주고 있는데요. 참 많은 시간이 소요가 됩니다. 준비하고 응답하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가 되는데, 그런데 사실은 제게 아주 큰 유익한 시간이 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유익한 것은 여러 가지 질문들에 대해서 한번 정리하고, 또 묵상할 수 있는 좀 더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어서, 저 개인적으로도 아주 유익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우리 성도님들의 실제적인 고민과 삶의 현장 속에서 어떤 아픔들이 있는지, 어떤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지 좀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어서, 그래서 성도님들을 이해하는 데 훨씬 더 많은 도움이 되고 있어서, 제게는 아주 큰 유익이 되고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신앙 상담을 하면서, 제가 이렇게 올라오게 되는 그 여러 가지 사연들 가운데서, 자주 올라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냐 하면, 가정 내에서 여러 가지 갈등의 이야기들이 많이 나옵니다. 부부간의 문제도 나오고, 부모와 자녀들 간의 갈등의 문제들이 자꾸 나와서,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 성경적인 신앙적인 대답을 요청하는 그런 사연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부모님들의 지나친 간섭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자녀들의 사연들, 때로는 폭력적인 부모님들의 그 폭력 앞에서 집을 뛰쳐나가고 싶고 정말 부모님을 증오하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그런 자녀들의 사연들, 크리스천이기 때문에 사랑을 해야 하겠지만, 정말 너무나도 괴롭고 고통스러워서, 정말 집을 떠나고 싶다고 말하는 그런 자녀들의 이야기, 부모님과 같이 교회를 다니고 싶지 않다고 하는 그런 하소연들 이런 사연들이 참 많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정말 안타까워요. 가정이라고 하는 곳은 어느 곳이어야 됩니까? 사랑이 넘치는 곳이어야 되고, 행복이 넘쳐야 되는 곳인데, 가정이 그러한 가정이 되지 못하고, 정말 메말라버리고 고통스러운 곳 정말 힘든 곳이 되어 버린, 우리 현 모습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정말 안타까운데요. 사실 이 세상에서 자녀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게 누구겠습니까? 부모님이죠. 이 세상에서 자녀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게 누굴까요? 부모님입니다. 자녀를 사랑하되 끝까지 변함없이 무한대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게 누구냐면, 바로 부모님이라고 말을 할 수가 있는 것이죠. 이 세상에 그 누가 부모님보다 그 자식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부모님의 사랑은 너무나도 커서, 그 부모님의 사랑을 비교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겠죠.

예전에 어떤 동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요. 결혼식 영상이었습니다. 대만에 있는 한 결혼식에서 있었던, 그런 영상을 제가 한 번 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결혼식은 참 형식적이고 그냥 그냥 지나가 버리고, 예전에는 그냥 그래도 좀 엄숙한 결혼식이었는데, 요즘에는 그냥 즐거움 위주의 결혼식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 너무나도 좀 아쉽기는 한데요. 제가 미국에 있을 때나 또 해외에서 결혼식 하는 것을 보면 굉장히 감동적인 그런 순서들이 결혼식에 있어요. 그런데 그 결혼식에서 어떤 순서가 있었냐면, 대만에 있는 한 결혼식이었는데, 그 신랑과 신부 앞에서, 신부의 아버지가 신랑에게 결혼에 즈음에서 부탁하는 말을 하는 순서가 있는 결혼식이었습니다. 아마 대만에서는 결혼식이 먼저 1부로 끝나고, 그다음에 그 자녀들에게 덕담을 해주는, 뭔가 이렇게 축복을 해주는 그런 순서였던 것으로 생각이 되는데, 그 신부의 아버지가 누구였냐면 62세의, 굉장히 좀 나이가 많으시죠? 아마 늦둥이 딸을 시집보내는 것 같았습니다. 62세가 된, 굉장히 연세가 많으신 그분이 신부의 아버지였는데, 그분은 공부를 많이 한 것도 아니고, 별로 배우지 못한, 글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시골 출신의 신부 아버지였습니다. 1차 결혼 예식이 끝나고, 2차 작별식이라고 하는 대만의 예식 가운데서, 그 신부의 아버지가 신랑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내용이 나왔습니다. 뭐라고 얘기했냐면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이 아이의 손을 처음 잡은 건 자네가 아니라 바로 나였다네. 이 아이에게 처음으로 키스를 한 건 자네가 아니라 바로 나였다네. 이 아이를 사랑한 건, 처음 사랑한 건, 자네가 아니라 바로 나였다네. 그런데 이제는 이 아이와 함께 자네가 영원토록 함께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네. 자네가 정말 이 아이와 함께 영원히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네.” 그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덧붙여서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요. “그런데 만에 하나 만의 하나, 혹시 자네가 이 아이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되는 일이 생긴다고 한다면, 그런 일이 생기게 된다고 한다면, 절대로 그런 말을 이 아이에게 해주지 말게. 그런 일이 생긴다고 한다면, 나에게 와서 말해주게. 그러면 내가 이 아이를 데리고 우리 집으로 가겠네.” 아 그 정말 나이 많으신 그 신부의 아버지가 호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가지고, 그 신랑 되는 사람에게 부탁하는 떠듬떠듬거리면서 말하는 그 동영상을 보면서, 중국어로 하는 그 말을 보면서 참 깊은 감동이 됐습니다.

어쩌면 그게 부모님의 마음이에요. 자녀를 위해서라고 한다면, 정말 모든 것을 다 해주고 싶고, 이 자녀의 행복을 바라보는 것이 가장 큰 부모의 행복이오. 그게 부모의 마음일 거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요. 실제 우리 집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느냐 하면, 그것이 느껴지지 않게, 정말 삭막하고 답답한 부모의 모습만 느껴지는 것이 우리 현재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정말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은 한이 없고 끝이 없고, 정말 무한대로 사랑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인데, 실제 우리가 가정에서 살아가는 관계 속에서는 부모와 자녀들 사이에 담이 쌓여 있어서, 도무지 부모와 자식 사이에 마음이 통하지가 않고, 때로는 자녀가 부모를 향해서 증오하면서, 정말 집에 들어가는 것이 너무나도 싫고, 가장 행복해야 될 가정이 고통스러운 장소로 변해버려서, 정말 우리 아이들이 집안에서 따뜻한 마음을 느끼기보다는, 오히려 방황하고 집에 들어오는 것이 싫고, 고통스러운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는 가정들이 한두 가정이 아니고 정말 많은 가정들이 그런 상황 가운데 있는 이 세상에서, 실패해도 무슨 일을 하다가 실패하고 좌절해도 낙망하게 되는 일이 있다고 할지라도, 집에만 가면 엄마의 얼굴을 보고 아빠의 얼굴만 보면 거기서 쉼을 얻고 위로를 얻어야 정상인데, 다른 데서는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상처받고 고통을 당해도, 집에만 오면 마음의 평안함이 생기고, 다시 용기를 얻고 위로를 받아야 하는 것이 가정이어야, 그게 정상적인 모습인데,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친구들에게 위로를 받을 수는 있을지언정, 집안에서는 말 섞기도 싫고 얼굴을 보기도 싫고, 문 닫아버리고 방 안에 처박고 들어가고 싶은 자녀들의 마음들이 있는 겁니다. 왜 우리의 가정들은 행복한 가정이 아니라, 같이 모여 앉아서 저녁을 먹으면서 행복하고 대화를 나누면서 엄마 아빠랑 같이 있는 것이 너무 좋아서 계속 같이 있고, 그리고 대화를 이런 속 얘기 저런 속 얘기도 다 하면서 함께 지내는 그런 행복한 가정을 만들지 못하고, 왜 우리의 가정들은 우리 아이가 꼬마였을 때는 그랬는데, 아주 갓난아기였을 때는 참 예쁘고 그랬는데, 왜 지금은 커서는 왜 이렇게 참 삭막한 가정이 되어 버리게 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 죄성으로 가득한 인생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마음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들을 나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이기적으로 생각하고 상대방에 대해서 마음에 여유가 없고, 열림이 없고 너무나도 완악하고, 참 완고하게 사람들을 대하는 이기적인 모습들이, 그 죄성으로 가득한 모습들이 우리들에게 너무나도 많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행동하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는 방식대로 우리가 행동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는 방식대로 우리가 말을 하는, 그런 나쁜 모습이 우리들에게 다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자녀들에게 표현하기보다는 분노하고, 우리 자녀들을 향해서 폭력을 쓰기도 하고, 우리 자녀들을 무시하는 그런 태도로 일관해서, 말 한마디를 해도 따뜻한 말로 우리 자녀들에게 그 아픔을 감싸주는 말로 하기보다는, 아주 그 자녀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찌르는 말들을 우리가 너무나도 쉽게 내뱉어버리는 죄성으로 가득한 우리의 모습들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그러한 죄성에 가득한 우리들의 모습 때문에, 결국 우리 자녀들이 외롭고 고통스럽게 인생을 살아가고 부모님들의 그런 위선적이고 악한 모습들을 보면서, 우리 아이들의 마음의 문들이 다 닫혀버렸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부모들이 자녀를 대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한한 사랑과 무한한 은혜를 베풀어주셨던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우리 자녀들을 대해주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자녀들에게 드러내기보다는, 오히려 완고하고 고집불통의 모습이고, 폭력적인 모습으로 우리 자녀들을 대할 때가 많고, 그래서 무엇인가 우리 아이들이 잘못해 버리면 비난해 버리고, 여지없이 모욕적인 말을 하고, 우리 아이들의 마음을 상처를 주는 그런 모습으로, 우리가 대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실 우리 자녀들이 부모님을 생각하면 부모님을 보면서 하나님을 연상할 수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저런 분이실까? 정말 우리 부모님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일까?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모습으로, 우리가 우리 자녀들에게 대해야 되는데, 그래서 정말 우리 자녀들에게 놀라운 사랑을 베풀어 줘야 되는데, 놀랍게도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아요. 우리 자녀들은 부모님의 품에 안기고 싶어 하고, 부모님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데, 그런데 우리 부모님들이 그런 마음의 그 자리에, 우리 자녀들을 포용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전혀 없어서, 뭐 하나 조그만 거 잘못하면 즉시 혼내버리고, 비난하고 욕하고 때리기도 하고, 폭력을 써서, 우리 자녀들이 부모님에게 다가갔다가는 또 혼날까 봐, 아빠한테 가서 또 혼나고, 또 욕먹을까 봐, 마음을 열고 우리 부모님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또 무시당할까 봐 다가가지 못하면서, 정말 이 세상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이 세상에 정말 힘들고 어려운 그 고난의 삶을 살다가, 그래도 좀 마음을 풀고 싶어서 집에 들어가서 부모님에게 위로받고 좀 힘을 얻고 싶은데, 오히려 더 큰 상처를 받게 되기 때문에, 어느 것에도 마음을 주지 못해서 불안 불안하는 것이 우리 자녀들의 모습이죠.

부모님들에게 사랑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사실은 부모님이 자녀들을 정말 사랑해요. 부모님들이 부모님들의 최고의 행복은 자녀들이 잘 되는 거예요. 자녀들만 잘 될 수만 있다고 한다면, 부모님들이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줘도 괜찮아요. 자녀를 위해서라고 한다면 내 목숨을 내놓아도 괜찮을 정도의 사랑을 우리 부모님들이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그런 사랑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자녀들에게 그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전달해 주는 것이 아니라, 안타깝게도 우리 인생이 죄성으로 가득 차 있어서, 그 사랑을 전달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모습을 반영하는 행동과 말을 하기보다는, 죄성으로 가득한 악한 모습을 보여주어서, 그래서 너무나도 우리 자녀들의 마음을 상처 주고 있다고 하는 것이 현재 우리들의 문제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 자녀들에게 신앙생활을 권유할 때에도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고 말하고, 교회에 나가야 된다고 말하고, 전화가 울리면 째려보고 그럴 게 아니라, 다 그럴 수 있어요. 전화 올 수 있는 거지, 내가 전화 건 것도 아니고, 째려볼 게 아니라, 잘못하면 욕하고 비난하고 그럴 것이 아니라, 정말 사랑의 모습으로 바라보아야 하는데, 심지어 우리 자녀들에게 신앙을 권유할 때에도,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하는 방식으로 사랑으로 권유하고 인도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신앙생활을 권유할 때에도 폭력적이고 모욕을 주면서, 우리 아이들의 마음을 닫아버리게 만드는 그런 일들을 우리가 많이 해온 것이죠.

왜 왜 우리는 그렇게 많이 했는가? 안타깝게도 우리가 그렇게 교육을 받았고, 그렇죠? 우리가 부모님 세대에게 그렇게 혼나면서, 욕을 들어가면서, 두드려 맞으면서 그렇게 자라왔어요. 그래서 그게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생각을 해요. 우리 제가 어렸을 때도 우리 부모님이 그랬어요. 얼마나 무서웠는지 몰라요. 우리 부모님, 정말 무섭고, 뭐 하나 잘못하면 윽박지르고, 강압적으로 화를 내면서, 정말 모욕을 주면서, 힘들게 우리를 길러 와서 우리들의 마음이 막 닫혀버린 거죠. 그리고 그게 정상인 줄 알고, 우리도 우리 자녀들을 향해서, 그렇게 그래서 우리가 교회에서 하나님에 대해서 설명할 때, 여러분 하나님이 누구인 줄 아십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영적인 아버지십니다. 그러면 “아, 그렇구나. 고맙구나.” 하는 게 아니라, 우리 한국 사람들은 보면은,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십니다. 그러면 시큰둥해요. 아휴.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같다고? 그런 하나님이라면, 내가 안 만났으면 좋겠다. 아버지 같은 하나님이라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정말 하나님, 그 하나님을 내가 만나고 싶고, 그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싶고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버지라고 말씀하면 매력적으로 안 느껴지는 거예요. 지금 땅에 있는 아버지만으로도 지금 굉장히 힘들어 죽겠는데, 하늘의 아버지가 또 있다고 하니까, 너무 힘든 거죠.

5월은 가정의 달인데요. 우리가 회개해야, 회개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우리 자녀들을 향해서,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지 못하고, 죄성으로 가득한 우리들의 완악한 마음으로 대해왔다고 한다면, 사랑이 많으신 주님의 성품을 드러내지 못한 채, 우리 자녀들에게 사악하고 완고하고, 정말 폭력적인 그리고 악한 모습으로 우리 자녀들을 대해왔다고 한다면, 우리가 회개해야 할 것이고, 주님 앞에 기도하며 나아가야 할 겁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인자한 부모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조그마한 잘못 조그마한 실수에 분노하고 짜증 내고 윽박지르는 부모가 아니라, 용납하고 이해하고 실수를 보완해 주고 감싸주고 인자한 말을 할 수 있는 믿음의 능력을 달라고 주님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을 사랑으로 감쌀 수 있는 마음과 그리고 우리 자녀들에게 내가 하고 싶은 말들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의 눈높이로 우리가 낮아져서, 무슨 말을 하는지 끝까지 그 마음을 읽을 수 있도록,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주님 앞에 기도해야 되고, 인내할 수 있는 그런 사랑을 달라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나아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저도 그렇게 못했어요. 그래서 후회가 많이 돼요.

그런데 우리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 자녀들을 향해서 주시는 권면의 말씀입니다. 자녀들에게 부모님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 부모님이 우리 자녀들을 어떻게 사랑해 줘야 될 것인가에 대해서도 말씀드렸는데, 이제는 자녀들은 부모를 어떻게 대해야 될 것인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언 23장 22절 말씀, “너를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말씀해 주셨습니다. 23장 25절의 말씀,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권면해주고 있습니다.

우리 부모님이 완벽하고 인자하고, 정말 사랑이 많은 그런 정말 존경할 만한 부모님이시니까, 그럴 때에야만 청종하고, 그리고 즐겁게 하고 기쁘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이 부족하고, 부모님이 죄성으로 가득 찬, 그런 연약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쉽게 분노하고 쉽게 짜증을 내고, 폭력을 쓰는 그런 부모라고 할지라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성경에 보면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종하고 즐겁게 하고, 기쁘게 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부모님은 완벽한 부모님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 자신이 불완전한 것처럼 우리들의 부모님도 완벽하지가 않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 죄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인간이 무엇이냐 하면, 인간은 다 죄인이라고 하는 거예요. 나만 부족한 게 아니라, 우리 부모님도 나보다 나이는 많겠지만, 나보다 인생을 먼저 살기는 했지만, 우리 부모님도 완벽한 부모님이라고 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 부모님도 죄성으로 가득 차 있고, 우리 부모님도 그 죄성에 의해서 눌리게 되어 있고, 부족한 모습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는 거예요. 부모님이 좀 자상한 부모님이면 좋겠고, 부모님이 좀 이해력이 있는 부모님이면 좋겠고, 좀 마음이 좀 넓고 정말 푹신해서, 그 어떤 거라도 받아줄 수 있는 부모님이라고 한다면 정말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고, 우리들의 부모님이 분노하기 쉽고,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고 탐욕적인 모습을 보이고, 그리고 정직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는, 그러한 부모님이라고 할지라도, 그런 부모님을 보면서 실망하고 비난하고 괴로워하고, 우리들의 마음의 문을 확 닫아버릴 것이 아니라, 오늘 성경의 권면은 무엇이냐면, 그런 부모님이라고 할지라도, 그 부모님에게 청종해야 하는 것이고, 즐겁게 하고 기쁘게 하라고 하는 것이 성경의 권면입니다.

인간은 완벽하지가 않아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야만 했어요. 만일 우리 가운데 누군가 완벽할 수 있다고 한다면, 우리 가운데 그 누군가가 정말 수양을 잘하고, 정말 도를 많이 닦아서, 정말 완벽한 모습에, 그런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고 한다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실 필요가 없어요. 노력하면 되는데, 왜 예수님께서 오셔요? 노력하면 할 수 있다고 한다면, 예수님께서 굳이 이 세상에 오실 이유가 없었어요. 하지만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가 무엇이냐면,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완벽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 마음은 원이지만, 육신이 약해서 잠잘 수밖에 없는 인생이고, 마음은 원이지만 육신이 약해서 분노하고 참지 못하고 폭력적이 되고, 이기적이고 거짓말하고, 정말 나밖에 모르는 그런 인생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인생이기 때문에, 구제불능의 사람들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저와 여러분들을 위하여 십자가를 위에서 못 박혀 죽으신 겁니다.

따라서 부모님을 바라보면서, 부모님들의 모습 가운데 잘못들이 많이 보이게 될 거예요. 부모님들의 불완전한 모습들이 우리들의 눈에 보이게 될 겁니다. 그러면 우리들의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고, 더 이상 상종하지 않고, 내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더 이상 고통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문, 방문을 닫아버리고, 더 이상 만나지 않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 아니라, 내 마음의 문을 닫아버려서, 더 이상 말을 섞지 않는 것이 상처받지 않는 최선의 방법이 아니라, 성경적인 관점으로 접근을 해야 합니다.

만일 부모님들이 잘못하는 모습을 본다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경적인 가르침 가운데 첫 번째는 그런 잘못을 하는 부모님을 보면서 비난하거나 욕하거나, 그 모습을 보면서 욕해서는 안 됩니다. 마태복음 7장 1절에서부터 4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기록합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일반적인 교훈의 말씀인데요. 우리 부모님들을 보면서도 역시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우리 부모님들의 연약한 모습을 보면, 그 모습을 보고 욕하고 비난하고 마음의 문을 닫을 것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도 똑같은 사람이라고 하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죠. 그래서 빌립보서 2장 1절에서부터 4절 말씀에서는 이렇게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실수를 보고 잘못을 보면, 그것으로 비판할 게 아니라, 사실은 그 잘못이 바로 나의 잘못이고, 나도 똑같은 죄와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을 보면서, 우리 자신을 먼저 돌아보아야 하는 것이 성경적인 관점이고요. 더 나아가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고, 더 이상 상종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한 가족으로 불러주신 것은, 그것은 서로가 서로를 향해서 선한 영향력을 끼쳐서 변화하도록, 더 영적으로 성숙해져 나가도록 가정으로 불러주셨기에, 사실은 부모가 자녀들에게만 영적으로 성숙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자녀들도 부모님을 더 영적으로 성숙하게끔 만들어 주는 역할들을 해야 하는 것이죠.

그래서 가정이 서로가 서로를 도와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도와주는 역할들을 해야,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는 것이 상책이 아니고, 부딪히지 않으면 그러면 좀 더 덜 아프겠지만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사실은 똑같은 죄인이라고 하는 사실을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가야 하는 것이고,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어야 되는 거죠. 일 대 일로 만나서, 사실 그런 아버님의 말씀이 어머님의 말씀이 내게 굉장히 상처가 되니까, 제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고치겠지만, 말씀을 더 좋은 방법으로 해줬으면 좋겠다고 대화도 하고, 서로 좋은 선한 관계를 만들어서, 서로가 함께 성장해 나가는 길을 걸어가야, 성경의 가르침은 부모님들에게 청종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에게 청종해야 하는 이유는 부모님에게 자녀에 대한 권세를 주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결혼하기 전에 성년이 되기 전에 자녀들은 부모의 권세 아래이기 때문에, 부모님을 철저하게 신뢰하고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그것이 성경적인 원칙입니다. 왜냐하면, 부모님을 신뢰해야 되는 것이죠. 부모님이 나에게 악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선한 것을 도모한다고 한다고,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신다고 하는 사실을 믿고,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바른 가르침이 되는 것이고요. 성년이 되고 이제 출가했다고 한다면, 이제는 부모의 권세를 떠나서,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결정하는 그런 가정을 이루게 될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모님을 존중하는 그런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이죠.

그뿐만 아니라 부모를 즐겁게 하고 기쁘게 하는 것이 성경적인 가르침이라고 하는 사실을 생각하고, 특별히 우리 부모님들이 우리를 얼마나 많이 사랑해 주십니까? 그것은 우리가 우리 자녀를 사랑해 보아서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 놀라운 사랑을 받았기에, 당연히 감사하고 기뻐하고, 주님 그 우리 부모님들에게 기뻐하는 일을 하는 것이 성경적인 교훈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며, 우리가 일 년 365일 그런 하나님의 권면 가운데 그 교훈 가운데 살아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이 세상에는 완벽한 부모는 없습니다. 자녀를 우상 삼아서는 안 되듯이, 자녀를 너무나도 사랑한 나머지 자녀가 우상이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게 우상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부모님도 우리들의 완벽한 우상이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들의 참된 아버지는 저 하늘에 계신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해 주신 참된, 진짜 아버지가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고 그래요. 그 말이 무슨 말인가요? 우리가 하나님의 붕어빵이라는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을 완벽하게 닮았어요. 그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낳으셨다고 하는 이야기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이야기예요. 우리 부모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를 사랑하신 그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참된 소망은 부모님에게 두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을 사랑해야 될 대상이고, 존경해야 될 대상이지, 우상으로 삼을 대상은 아니고, 우리의 참된 소망은 우리 아버지 진짜 아버지 되시는 하늘의 아버지 되신 우리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로 모시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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