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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음소리를 내가 듣고 (출 6:1-9)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서 좀 난처했던 경험이 있다고 하면, 어떤 경험이 있겠습니까? 아무래도 어떤 사람이 내게 찾아와서 돈을 빌려달라고 할 때가 가장 난처한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급하게 돈이 필요한데, 돈 좀 빌려달라고, 돈을 빌려주면 얼마 뒤에 분명하게 갚겠다고 말하면서, 돈을 빌려달라고 할 때, 그 말을 거절하기도 그렇고, 그 말대로 빌려주기도 그렇고, 굉장히 난처한 경험들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지금 돈을 빌려가게 된다고 한다면 반드시 갚겠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돈이라고 하는 것이 있어야 주는 것이지, 그 사람이 착하다고 줄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 사람이 신용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돈이 없으면 못 줄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 현재 돈이 없어서 힘든 그 사람이 얼마 뒤에는 돈이 여유가 있는 사람이 될 거라고 하는 아무런 보장도 없는데, 그냥 그 사람의 말만 믿고, 돈을 빌려준다고 하는 것은 굉장히 난처한 일이 될 겁니다. 나를 믿어달라. 걱정하지 말고 믿고 빌려주면, 내가 갚겠다고 이야기하지만, 그 말만 가지고는 믿을 수가 없는 겁니다. 지금도 힘든 이 사람이 조금 뒤에 가면 돈이 많아질 거라고 하는 보장이 없는데, 어떻게 그 말만 믿고, 돈을 빌려줄 수가 있을까요? 그래서 너무나도 힘든 것이죠.

믿음이라고 하는 것이 어쩌면 이렇습니다.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고, 지금은 아무런 증거가 없는 것 같지만, 믿어달라고 하는 것이 믿음이거든요. 그래서 어쩌면 불신자들이 우리 크리스천들을 바라보는 관점이, 마치 그런 관점으로 우리를 바라볼 가능성이 많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증거가 아무것도 없는데, 믿을 수가 있느냐? 천국과 지옥을 다녀온 적도 없고, 경험한 적도 없으면서, 어떻게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믿을 수 있으며, 하나님을 실제로 본 것도 아니고, 경험해 본 것도 아닌데, 하나님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어떻게 믿을 수 있으며, 예수님을 만난 적도 없는데, 그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못 박혀 죽으신 것이 바로 나를 위해서 죽으신 죽음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고 승천하셨다고 하는 사실을 믿는 크리스천들을 본다고 한다면, 불신자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저 사람들은 맹신자요. 뭔가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오늘 우리가 출애굽기의 말씀을 지난주에 이어서 살펴보게 되었는데요. 오늘 본문에서 등장하는 이야기도 그와 비슷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바로를 찾아갔다가,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을 보내어 달라고 요청했다가, 보기 좋게 거절을 당한 그 모세에게, 그래서 이런 이스라엘 민족으로부터 원망을 듣고 낙심해 있는 모세에게 들려주셨던 하나님의 말씀이 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입니다.

모세가 바로 왕 앞에 나갈 때까지만 하더라도, 모세는 정말 자신 있고 담대하게 나아갔습니다. 왜냐하면 모세가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해 주시겠다고 말씀해 주셨고, 그리고 지팡이를 던져서 뱀을 만드는 그런 기적을 행하는 능력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모세는 바로 왕 앞에 나아가서 이스라엘 민족을 내어달라고 말만 하면 바로 왕이 내어 보내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첫 시도부터 엄청난 큰 암초를 만나게 된 겁니다. 바로 왕은 단호하게 모세의 요구를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을 더 혹독하게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렇게 이런 소리를 하는 이유는, 아직도 여유가 있으니까 이런 소리를 한다고 하면서, 이스라엘 민족을 더 심하게 학대하기 시작했고, 결국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와 아론을 향해서 원망해 버렸고, 이스라엘 민족은 그들의 마음을 닫아버리고 말았습니다. 가만 내버려 두지 괜히 건들어서 벌집을 건드렸다. 괜히 긁어서 부스럼을 만들었다고 하면서, 원망하는 그 이스라엘 민족들 앞에서, 모세는 너무나도 힘들고 괴로워서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렇게 엎드린 이 모세의 마음이 얼마나 낙심했겠습니까? 뭔가 근사하게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해낼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 개혁은 완전히 산산조각이 나버렸고, 오히려 이스라엘 민족이 자기들을 향해서 욕하고 비난하고 원망하는,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될 때, 모세의 마음은 한순간에 무너져버렸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하소연합니다. 울부짖습니다. 하나님 도대체 이게 뭡니까? 구원해 주시겠다고 해놓고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도 않고, 저더러 이런 꼴 보라고 바로 왕 앞에 가라고 했습니까? 하나님 앞에 하소연하고 울부짖었을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말씀해 주신 그 말씀이 오늘 본문에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본문의 말씀을 우리가 1장 1절서부터 9절의 말씀까지 읽었는데요. 이 긴 말씀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해주신 건가요? 모세야. 걱정하지 마라. 바로 왕은 너희를 보낼 것이고, 내가 강한 능력을 보여주어서, 결국 이스라엘 민족은 독립하게 될 거다. 해방하게 될 거다. 너희들은 이 종살이를 끝장내고, 이제는 가나안 땅으로 가게 될 거라고 하는 말씀을 하나님께서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읽으면서 뭔가 좀 허전하지 않으십니까? 뭔가 좀 뭔가 빠진 것 같지 않습니까? 뭔가 빠진 느낌이 드는 이유가 무엇이냐면,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증거를 보여주시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냥 말씀만 하시는 거예요. 말씀만. 마치 돈을 빌리러 온 사람이 “걱정하지 마. 나한테 돈을 빌려준다고 한다면, 내가 몇 달 뒤에 갚을게.” 아무런 것도 증명하지 못하면서, 증거를 가지고 오지도, 담보물을 가지고 온 것도 아니면서, 내가 나중에 갚을 테니까 돈을 빌려달라고 하는 그런 사람의 말처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해 주시겠다고 말씀은 해 주셨는데, 아무런 증거를 보여주지 않고, 그냥 말씀만 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이 말씀을 읽으면서 허무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신앙생활하는 것이 이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신앙생활하는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증거가 없는데 믿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불신자들이 우리들을 바라보면, 저 사람들은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크리스천들은 정말 맹목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고, 아무 증거도 없는 그것을 믿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들이라고 비난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뭔가 뚜렷하게 보여준다고 하면 믿을 수 있겠는데, 그런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겁니다. “쇼 미 더 머니”(Show me the money!) 돈을 보여주면, 내가 움직이겠는데, 뭔가 증거를 보여주면, 내가 그것을 보고 따르겠는데, 아무런 증거도 없이 말씀만 하니까, 말씀만 하면서 믿으라고 이야기하니까, 그 말을 이해하기가 어려운 거죠.

만일 이 말을 믿었다가, 마치 돈을 갚겠다고 철석같이 약속하고 약속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었는데, 나중에 돈 없다고 배 째라고, 돈 없으니까 못 갚겠다고 해버려서, 그래서 발등 찍히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우리가 살아오면서 수많은 배신을 당하면서 삽니다. 우리는 믿었다가, 그 믿음의 배신을 당한 경험들이 사람들마다 다 있습니다. 철석같이 믿었는데 그런 사람으로부터 배신을 당하는 것이죠. 정말 내 친구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까 친구가 아니에요. 정말 나를 좋아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니에요. 내가 믿을 만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닌 것으로 드러나서,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던 경험들을 우리 모두가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증거도 없는 그 믿음을 믿으라고 하니까, 이것이 정말 괴로운 것이죠. 그러다가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게 되면, 어떻게 된다는 말입니까?

예전에 미국에 헤롤드 캠핑(Harold Camping)이라고 하는 어떤 분이 계셨습니다. 이 헤롤드 캠핑이라고 하는 사람은 미국에서 라디오 방송국을 운영하는 사람으로 아주 유명했는데요. 그 방송국의 이름은 패밀리 레이디오(Family Radio)라고 하는 그런 방송국이었습니다. 그 방송은 전국적인 방송이어서, 미국 50개 주에서 어디든지 다 들을 수 있는, 그런 아주 굉장히 큰 방송국이었고, 그 방송국을 통해서 성도들에게, 그 방송국 청취자들에게, 복음 성가를 들려주고 찬송가를 들려주고, 설교 방송도 하고 신앙 상담도 해주고 하는 그런 방송이었습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극동방송과 비슷한 종류의 방송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헤롤드 캠펑이라고 하는 사람이 얼마나 유명한지, 그분이 무엇을 했냐면, 그분이 유명했던 게 뭐냐면, 신앙 상담이 유명했어요. 제가 극동방송에서 그런가 상담을 이렇게 하면서, 여러 사람들의 대답을 해주는 일을 한 1년 넘게 했는데 지난주에 끝냈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하는데, 이 헤롤드 캠핑이 하는 신앙 상담은 제가 하는 것과는 좀 달랐는데요. 저는 그냥 문제들을 하나씩 하나씩 대답해 주는 그런 식으로 신앙 상담을 했는데, 이분은 어떻게 했냐면 전화를 받는 거예요. 그러면 미국 전역에 있는 청취자들로부터 방송국에 전화가 옵니다. 전화가 와서 물어요. 이 헤롤드 캠핑이라고 하는 사람 목사 안수를 받은 사람도 아니고, 그냥 그냥 브라더(brother) 형제라고 부르라고 그랬는데, 근데 이 사람이 전화를 받으면, 그때그때 아주 기가 막힌 대답들을 잘해주었습니다. 별별 문제들에 대해서 다 이야기해 주고, 어떤 사람은 헤럴드 캠핑을 욕하면서 막 그렇게 질문을 해도, 대답을 잘해 주고 그래서 아주 유명해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점점점점, 처음부터 좀 약간 이상하긴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이상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더니만, 급기야 2011년 5월 21일에 예수님께서 재림할 거라고 설명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날 재림한다고 하는 그 이야기를 성경의 여러 구절들을 들어서 설명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설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청취자들은 이 사람이 그렇게 이야기하니까? 예수님께서 2011년 5월 21일 날 재림할 거라고 수많은 사람들이 믿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됐을까요? 재림할 날짜가 며칠 남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 이상 이 세상에 대한 소망을 끊어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조금 뒤에 재림할 거라고 하는데, 직장을 다닐 필요가 뭐가 있고, 저축해 둘 필요가 무엇이 있고, 내가 이 세상에 소망을 둘 것이 무엇이 있느냐 하면서, 수많은 청취자들이 자신들의 삶을 그냥 더 이상 이 세상의 삶을 의미 있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중에 한 청취자가 있었는데요. 로버트 피츠패트릭이라고 하는 60세, 어떤 분이 계셨습니다. 60이면 할아버지는 아직 아닌 건가요? 할아버지인 건가요? 아무튼 그분이 계셨는데, 그분은 은퇴 자금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은퇴 자금을 가지고 있다가 이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예수님께서 오신다는데, 은퇴 자금이 무슨 소용이 있겠나?” 하면서 자신의 은퇴 자금을 다 털어서, 헤롤드 캠핑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이 시기에, 빨리 예수님을 믿게 만드는 그런 사역에 써달라고 해서 모든 돈을 다 그 사람에게 맡겼습니다. 그리고 2011년 5월 21일 날 맨해튼 한가운데 섰습니다. 꿈에 부풀어서 이제 몇 시간 안 남았는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재림하실 때 나를 데리고 가실 거라고 하는 그런 꿈에 부풀어서, 맨해튼 한가운데 서서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주변에 수많은 기자들이 몰려들어가지고, 그 기자들이 물었습니다. “정말 예수님이 올 거라고 생각합니까?” 그러니까 그 사람은 그 기자들을 향해서 이야기했습니다. “맞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할 겁니다. 여러분들도 믿으십시오.” 하면서 의기양양하게 기다리고 있었는데, 왔어요? 안 왔어요? 예수님은 안 왔어요. 5월 21일이 다 지나가고 5월 22일이 됐는데도 예수님이 안 오는 거예요.

그 뒤에 이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뉴스가 안 나서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마는, 이런 사람의 경우와 같은 일들이 있을 수 있는 것이죠. 근거 없는 이야기를 믿었다가, 정말 그런가 하고 믿었는데, 알고 보니까 순 엉터리 이야기를 믿어서 큰 낭패를 보게 되는 경우가 있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어쩌면 그와 비슷한 것처럼 보여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서 “내가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해 줄 것이다.”라고 말씀해 주고 계시는데, 하나님께서 아무런 증거도 보여주지 않으면서, 그냥 말씀만 하고 계시는 겁니다. 놀랍게도 그런데 모세는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그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은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자신을 향해서 말씀하시는 분이 아무런 증거를 보여주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저 나약하고 오류가 있는 어떤 한 인간, 방송국을 가지고 있으면서 수많은 영향력을 끼치지만, 속에는 탐욕스러운 한 인간이 나에게 이야기하시는 것이 아니라, 지금 모세를 향해서 말씀하시는 분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지금도 이 땅을 주관하시는 그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람의 말도 누가 말을 하느냐에 따라 신용 여부가 달라질 겁니다. 믿을 만하고 신용이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그 사람의 말을 믿을 수 있겠지만,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데다가 늘 거짓말만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런 사람의 말은 믿을 수가 없는 것이죠. 그런데 모세는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았고, 그 하나님이 바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게 될 때, 아무런 증거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할지라도 믿을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과 약속했던 그 약속을 기억하시고, 그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서 지금 역사하고 계시는 하나님, 아브라함을 향해서 이삭과 야곱을 향해서 해 주셨던 그 약속, 그 후손들은 그 약속을 알지도 못해요. 다 잊어버렸을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은 그 약속을 잊지 아니하시고, 지금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시겠다고 그 일을 하나씩 이루어가고 계시는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어떤 약속입니까? 허무하게 울려 퍼지는 약속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보증 수표와도 같은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장 20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기록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이사야서 55장 10절 11절의 말씀에서도 이렇게 기록합니다.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며,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준 것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하나님의 말씀은 그냥 그냥 허투루 들려지는 말씀이 아니라, 그 말씀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다 하나님의 뜻을 기뻐하신 뜻을 이룬 다음에서라야, 그 모든 일을 이루시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그것을 믿었습니다. 왜냐하면 증거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증거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 모세의 말을 전해 들었던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습니다. 오늘 읽었던 출애굽기 6장 9절 말씀에 보면 이스라엘 민족의 반응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모세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나, 그들이 마음에 상함과 가혹한 노역으로 말미암아 모세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다.” 이스라엘 민족은 지금 자신들의 눈앞에, 바로 왕이 부여한, 바로 왕의 그 혹독한 노역을 경험하면서, 하나님이 무슨 이야기를 해도 안 믿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걱정하지 마라. 내가 너희를 구원해 주시겠다고 말씀해 주셨지만, 이스라엘 민족의 눈앞에는 하나님의 말씀은 그저 공허한 말씀으로만 들리고, 증거는 아무것도 없고, 자신들이 경험하고 있는 것은 너무나도 힘든 일들만 우리들 앞에 펼쳐나가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노력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수가 없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에 한 번 질문을 던져보고 싶습니다. 아무리 증거가 없다고 할지라도 믿지 않는 것이 옳습니까? 증거가 있어야만 믿는 것이 옳습니까? 무엇을 믿는 것이 옳을까요? 증거가 있어야 믿는 게 맞습니까? 증거가 없어도 믿는 게 맞습니까? 사실은 증거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증거가 있는가 없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가 믿을 것은 무슨 기준을 가지고 믿을 것인가? 우리가 믿을 때 믿음의 그 기준이 무엇인가를 우리가 질문을 던져야 될 텐데요. 우리가 믿어야 될 그 기준이 무엇인가? 무엇은 믿고, 무엇을 믿지 말아야 될 것인가 그 기준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증거가 있느냐? 증거가 없느냐가 기준이 아니라, 사실은 믿어야 할 것은 믿는 것이고, 믿지 말아야 할 것은 믿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들은 믿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잘 믿어요. 증거가 있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은 믿고 싶은 것을 믿지, 증거가 있기 때문에 믿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말 믿어야 할 것들은 믿지 못하고, 믿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서는 얼마나 쉽게 잘 넘어가는지 몰라요. 예를 들자면 정치인들은 믿을 대상이 되나요? 안 돼요. 세상에 믿을 거 없는 것이 정치인들인데, 놀랍게도 정치인들은 얼마나 잘 믿는지 몰라요. 늘 속고 늘 당하면서도, 선거 때만 되면 열정적으로 후원하면서 지지해요. 늘 속으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가운데,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거라고 하는 증거가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이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거라고 철석같이 믿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게 뭔가요 돈이죠. 돈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거라고 하는 증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돈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거라고 믿어버립니다. 공부를 잘하는 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준다고 하는 증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게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거라고 믿어버리는 것이죠. 관광버스에 타고 가다 보면 휴게소에 들르면 누가 올라옵니다. 그러면서 이야기하기를, “여러분, 이것을 드시면 당뇨에 좋고, 관절에 좋고, 잠도 잘 자고” 하면서 뭔가를 파는데, 증거가 없어도 얼마나 잘 믿는지 몰라요. 노인정에 와서 뭘 팔면, “아 그런가 보다” 하면서, 그냥 믿고 사요. 그런데 유독 하나님에 대해서만큼은 “증거가 없으니까, 못 믿겠다.” 그래요.

사실 증거가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증거들이 얼마나 많이 펼쳐 있는지 몰라요. 저 태양은 수억 년 전부터 저 태양의 자리에 있고, 그 태양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이 지구가 적당한 거리에 떨어져서, 적당하게 돌면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한 치도 오차가 없이 1년 365일 더운 줄 알고, 이렇게 “더워 미치겠구나” 했더니, 벌써 선선해지는 가을이 오게 만드는 이 한 치도 오차가 없는, 이 자연 세계를 만들어 놓으신 그 하나님의 증거들이 우리들의 눈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에 대해서만큼은 증거를 내놓으라고 하는 것이죠.

사실 모든 믿음은 증거가 있는가, 없는가라기보다는, 우리가 믿어야 할 대상은 믿어야 되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믿지 말아야 할 것은 믿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를 믿으셨습니까? 믿습니다. 왜 믿습니까? 우리 아이가 무엇인가 대단한 사람이 될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믿어주는 거예요. 남편과 아내를 서로가 믿어주는 거예요. 증거가 있어서가 아니라, 갓난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가 어떤 증거가 있다고 그 아이를 믿습니까? 그러나 그 아이를 믿고 그 아이를 사랑하며 기르는 것처럼, 모든 믿음은 증거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그 믿음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줄로 믿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상황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하나님을 철저하게 의지하고 신뢰해야만 했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믿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며 승리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디로 가야 되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지시하는 대로 갔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연약한 존재였지만,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골리앗 앞에 설 수가 있었습니다. 아무리 증거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고 주님 앞에 나아가는 자가 복된 사람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하신 하나님.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저와 여러분들을 끝까지 믿어주신 하나님. 악한 자이고, 늘 실수하고, 늘 잘못을 저지르는 자지만, 그러한 아무런 증거가 우리들에게 나타나지 않았지만, 우리가 완벽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의 증거를 하나도 보여준 것이 없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끝까지 믿으시고,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하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가 만난 이 세상은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 가운데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들 앞에 펼쳐질 세상은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우리는 알지 못하는 상황 가운데 있습니다. 증거들은 없는 것 같고, 우리들의 마음을 무너뜨릴 것들만 우리 앞에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한 마치 풍랑이 있는 바다 한가운데에 서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 옛날 이스라엘 민족을 바로의 압제 가운데서 구원하셔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던, 바로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죄악의 세상 가운데서 구원하시고, 또한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로 인도해 주신다고 하는 그 사실을 바라보면서,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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