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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고 찬송하매 (행 16:19-34)

바울과 실라가 복음을 전하는 가운데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복음을 전했는데 일이 술술 잘 풀리고, 모든 것들이 정말 기쁘고 행복한 일들만 그 앞에 펼쳐진 것이 아니라, 놀랍게도 복음을 전하는 가운데 난관을 맞이하게 된 겁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면 항상 좋은 일이 있는 게 아니라, 안타깝게도 좌절과 고통과 슬픔을 경험할 때도 있는 것이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가면, 성공하고 승승장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어려움과 실패를 겪을 때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울과 실라는 그 순간에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옥에 갇히는 것을 경험하게 될 때, 너무나도 당황스러웠을 겁니다. 하나님을 증거하고 주님을 증거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전혀 도와주시지 않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바울과 실라는 그 순간에 절망하고, 낙담해버린 것이 아니라, 옥중에서도 소망을 잃지 아니 하였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9절 말씀에 보면,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름에 거두리라.”고 말씀해 주셨는데요. 바울과 실라는 바로 이 말씀을 그 순간에 기억한 것이죠.

즐겁고 행복한 일이 있을 때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인생의 힘든 상황 가운데서, 우리가 선을 행했다고 한다면, 낙심하지 말고 소망을 하나님 앞에 두어야 한다고 하는 사실을 마음속에 기억하면서, 그 옥중에서 하나님을 찬송하고 기도하였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그 옥중에서 했던 것은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찬송하는 것이었는데요. 문이, 옥문이 닫히고 자신들의 손과 발이 묶인 너무나도 당황스러운 그 상황 가운데서도, 우리 성도들이 해야 할 일들을 그들은 잊지 않았던 것입니다. 야고보서 5장 13절의 말씀에 의하면,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오.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바울과 실라는 그 고난의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 앞에 기도한 것입니다.

모든 면이 다 막혀버렸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 통하는 기도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가운데 위로와 소망을 얻게 되는 것이고, 그 가운데서도 찬송하는 그런 놀라운 모습들을 보여주게 되었는데요. 바로 그 순간에 아주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으로 역사해 주셔서, 옥문이 열리고 그들의 손과 발을 묶고 있던 착고가 풀리며, 자유의 몸이 되는 그런 엄청난 기적을 경험하게 된 것이죠.

항상 이런 결과가 오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는 순교하는 자리에 갈 수도 있을 것이고, 어떤 경우에는 정말 아무것도 일이 풀리지 않는 일들도 있을 것인데,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 기적으로 인도해 주실는지, 그렇지 아니하실런지는 우리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달린 것인데, 하나님께서 이 순간에는 바울과 실라에게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도록 만들어 주신 것이죠.

그런데 그 기적보다도 더 놀라운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 일을 통하여 옥문을 지키던 간수와 그 가족들이 복음을 듣게 된 것입니다. 간수와 간수는 그 바울과 실라 앞에 두려워 떨면서 질문을 던집니다.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까?” 질문을 던질 때, 이 기회를 놓치지 아니하고 “주, 예수를 믿으라.” 우리를 죄악 가운데서 구원해 주시고 우리를 절망 가운데서 살려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함으로 말미암아, 이 바울과 실라가 아니었다라고 한다면, 복음을 전혀 들을 수 없었던, 이 간수와 그 가족들이 바로 그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온 가족이 구원을 받고 세례를 받는 엄청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사도행전 16장의 말씀을 우리가 잘 살펴보게 된다고 한다면, 어쩌면 바울과 실라가 이 옥에 갇히게 된 것은 하나님의 참 우리가 감히 추측할 수 없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 가운데 이 간수와 그 가족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사 그 가족을 보호해 주시고 구원해 주시기 위한 섭리 가운데, 바울과 실라를 이 감옥까지 인도해 주셨다고 할 것입니다. 한 영혼을 살리시기 위하여 복음을 증거하고 있던 바울과 실라를 감옥 가운데로 인도하고, 그리고 그 바울과 실라를 통하여 기적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그런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이죠.

그러므로 바울과 실라가 이러한 어려움을 당한 것이 하나님께서 실수하는 가운데 보호하지 못해서 감옥에 들어간 것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딴 짓 하고 방관하고 있다가 미처 챙기지 못해서, 그래서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사실은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 가운데 이 사람들을 감옥 가운데 인도하게 하시고 또한 간수와 그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신 것이라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우리의 인생들 가운데서도 비슷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항상 좋은 일만 있으면 좋겠고, 항상 즐거운 일만 있으면 좋겠고 행복한 일만 건강한 모습만 일이 술술 잘 풀리는 경우만 있으면 너무나도 좋겠지만, 그러나 놀랍게도 우리들의 인생은 기쁘고 즐거운 일보다는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더 많이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그 순간에 우리가 절망하고, 슬퍼할 것이 아닌데, 오히려 우리는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 과연 이 일을 통하여 어떠한 위대한 섭리를 이끌어 나가실지, 과연 하나님께서 어떠한 일을 만들어내실지, 기대하며 바라볼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바라볼 때 마치 아이들이 부모를 바라보듯이 소망하며 바라보아야 합니다. 아이들이 부모를 바라보면서 기대를 가지고 바라보듯이 우리들은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해야 합니다. 아이들은 부모님이 없어지면 호기심 많은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죠. 아빠 어디 갔을까? 엄마 어디 갔을까? 호기심을 가지고 바라볼 때, 엄마 아빠가 짠하고 나타나면서, 까꿍 하게 되면, 그 엄마 아빠의 모습을 보고 깔깔깔깔 웃습니다. 그러다가 엄마 아빠가 다시 숨으면, 엄마 아빠가 어디 갔을까? 눈을 뜨고 두리번 두리번 하면서 찾지만, 슬픔과 두려움 가운데 그렇게 찾는 것이 아니라, 조금 뒤면 뒤에는 엄마 아빠가 다시 나타나서, 까꿍 해주겠지, 언제 그런 깍꿍을 해줄까 기대하면서, 그 엄마 아빠가 나타나기를 바라보는 어린아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볼 때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할 겁니다.

우리들의 가는 그 모든 길들은 쉬운 일들이 없고 정말 견디기 어려울 수 없는, 견디기 어려운 그런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만나게 되지만, 하나님께서 이 일을 통하여 어떤 놀라운 일들을 보여주시기를 원하시는지, 사도 바울과 실라가 엄청난 고난 가운데 있었지만, 그 일을 통하여 한 영혼을 살리는 그 엄청난 기적의 역사를 체험케 하신 그 모습을 보면서, 오늘 또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고 찬송하며 나아가는 이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실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고 우리의 삶을 통해서 무엇을 이루어 나가시는지 기대하는 가운데, 주님 주님께서 저희들의 이 부족한 것도 사용해 주셔서 하찮은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통해서도 수많은 생명을 먹이시고 살리셨던 것처럼, 바울과 실라의 그 고통을 통해서도 한 영혼을 살리시고, 온 가족을 이끌어주셨던 그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 가운데, 오늘 하나님 우리들의 삶을 통해서 주님께서는 무엇을 이루시기를 원하십니까? 기도하는 가운데 주께서 우리가 예상치 못한 크고 놀라운 일들을 이루실 것을 바라보며, 오늘 이 저녁에도 기도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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