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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 이국진

한글 성경에서 세 번째 사랑의 정의를 예전에는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로 되어 있었다. 이것은 “시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로 정정되었다. 어떤 번역이든지 큰 차이는 없는데, 투기(妬忌)라는 말은 “질투(嫉妬)와 시기(猜忌)”를 가리키는 한자어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질투하지도 시기하지도 않는 것이다.

우선 이러한 정의는 유교에서 말하는 “질투하지 말라”와는 다른 차원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가부장적 중심의 유교에서, 남자가 첩을 두고 데려온다 할지라도, 그것을 투기하지 말라고 했던 차원에서 “사랑은 투기하지 않으며”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임금이 후궁을 맞이한다 할지라도, 중전이 투기하지 않고 받아주어야 하는 것처럼, 그렇게 살라는 말이 아니다. 부부간의 사랑은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줄 수 있는 부분이 없다.

사랑의 세 번째 정의에서 말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잘 되는 모습을 보면서, 질투와 시기심으로 가득차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흔히 사촌이 밭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을 하는데, 바로 그런 것을 시기라고 한다. 사랑은 그렇게 시기하지 않는 것이다.

시기하는 자를 가리켜, 바울 사도는 “육신에 속한 자”이며(고린도 전서 3:3), 아직 성숙하지 못한 어린아이와 같다(고린도 전서 3:1)고 말한다. 어린아이들은 쉽게 시기한다. 흔히 갓 난 어린 아기 동생이 생겼을 때, 시기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3-4살의 어린아이가 갓 난 아기의 행동을 하여 어머니의 사랑을 차지하려고 한다. 어머니의 인정과 사랑을 받기 위해, 자신의 나이에 걸맞은 행동을 하지 않는 모습이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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