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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 됨의 유익 (롬 3:1-8)

뭣이 중헌디? (롬 2:17-29) +++ 의인은 없다 (롬 8:9-18)

우리가 성경을 읽다 보면 한 절 한 절 읽을 때는 이해가 되지만, 그 한 절 한 절들이 어떻게 연결이 되고 있는지 좀 제대로 이해가 안 되는 그런 성경 구절들도 있습니다. 한 절만 떼어놓고 보면 맞는 말이고 이해가 되는 말인데, 그 구절들이 계속 연결되어 있는데, 그 주제의 흐름이 왜 이렇게 진행되고 있는지, 왜 이렇게 이런 말씀에서 이런 말씀으로 넘어가는지, 종종 이해가 안 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로마서 3장 1절에서부터 8절 말씀도 그렇습니다. 설교를 준비하려고 보니까요. 그 논리를 따라가기가 주제의 흐름을 따라가기가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왜 이 말씀을 하고 있을까? 왜 그다음에서 이 구절을 이야기하고 있을까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먼저 도표를 보면서, 논리의 흐름 주제의 흐름을 한번 살펴보았으면 좋겠는데요.

(다행히 전기가 들어와서 다행입니다.) 이거 한번 보십시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2장 17절에서부터 29절까지의 말씀을 살펴보면서, 유대인이라고 하는 사실이 구원을 보장하는 게 아니다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기억나십니까? 아무리 유대인이라고 할지라도, 율법을 범하게 된다고 하면,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에 유대인이 되었다고 하는 것이 아무런 특권이 없고, 유익이 없는 것이라고 하는 말을 17절에서부터 29절까지 이야기해 주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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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1절에서는, 그렇다고 한다면, 유대인이라고 하는 사실이 아무 유익이 없는 것인가라고 하는 그 질문을 던지게 되는 것이고, 그 질문에 대해서 유익이 없는 게 아니라, “있다!” 유대인들이 구원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유대인이 되었다고 하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라, 유익이 있는 것이고, 그 유익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면, 다른 민족과는 달리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계명을 받았다고 하는 것이 그게 바로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유익이라고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다음에 3절부터 4절 말씀에서, 이제는 주제를 약간 바꾸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한다면, 결국 불신의 길을 걸어간다고 한다면, 결국은 망하게 되는 것인데,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했지만, 결국은 망하게 되는 길로 간다고 한다면, 불신의 길로 간다고 한다면, 그렇다면 결국 하나님이 우리가 믿을 만한 분이 아니지 않느냐라고 하는 그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죠.

우리나라 말 가운데, 성경에 나온 표현 가운데, 우리가 잘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가 “미쁘시다”라고 하는 표현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대화하는 가운데, “당신은 참 미쁘시네” 이런 말 쓰는 경우가 있나요? 전혀 없죠. 없는 단어인데, 그런데 성경에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미쁘시다”라고 하는 형용사입니다. 아마도 성경을 번역했던,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에는 썼던 단어였을 거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이 미쁘시다고 하는 말의 의미는 “아름답고 예쁘다”고 하는 그런 의미가 아니고, “믿을 만한” 분이다. “믿을 만하다”라고 하는 그런 의미의 단어입니다. “믿을 만하다”라고 하는 그런 의미죠. 결국 사람들이 죄를 짓는 길로 가게 된다고 한다면, 하나님이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그런 분이 아니지 않는가? 결국 인간이 망해가는 그 모습은 결국 하나님도 똑같은 그런 그렇게 결과를 빚어진 하나님도 똑같은 것 아닌가라고 하는 그런 질문에 대해서, 3장 3절 4절에서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믿을 만한, 믿을 만한 분이고, 하나님은 신뢰할 만한 분이고, 하나님은 참되신 하나님이다. 인간이 아무리 나쁜 길로 간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참되신 하나님이고, 인간이 나쁜 길로 가면 갈수록 오히려 더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게 된다라고 하는 것을 5절에서 6절 사이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불의하다고 하는 이 사실은 하나님도 불의한 것으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불의하다고 하는 이 사실이, 하나님의 의가 더 드러나는 것이라고 설명을 하게 되는 것이 5절에서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그다음에 또 질문을 던지는 겁니다. 7절 8절 말씀에서 만일 우리들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된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더 나쁜 짓을 해도 되는가라고 하는 그런 질문을 다루고 있는 것이죠. 그런 질문에 대해서, “아니다.” 우리가 악을 행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선을 드러내기 위해서,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기 위해서, 그런 목적을 위해서 우리가 악을 행하는 것은 그것은 궤변이지, 그것은 바른 길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이 오늘 3장 1절에서부터 8절까지의 이야기의 흐름입니다. 어느 정도 좀 이해가 좀 됩니까? 그래도 안 되죠? 그래도 어렵습니다. 그래도 어려운데, 그런데 오늘 나온 이 이야기가 세 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요. 그중에서 오늘은 두 개만 한번 같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유대인으로 태어났다고 하는 것이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태어나봤자,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진노를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아무리 할례를 받았다고 할지라도, 아무리 율법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다고 한다면, 결국 멸망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는데요. 그렇다고 한다면 유대인이라고 하는 것이 아무런 특권도 아무런 유익도 없는 것이냐라고 하는 질문에 대해서 오늘 본문의 말씀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 3장 2절 말씀을 보면 이렇게 표현합니다.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라고 하는 그런 질문에 대해서 “범사에 많으니, 우선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라.”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것 자체가 엄청나게 큰 유익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죠. 왜냐하면 우리 인생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몰라서 하나님의 뜻을 몰라서 방황하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어 합니다. 신년이 되면 우리 한국 사람들이 하는 게 주로 뭐가 있죠? 신년에 운세도 보고, 토정비결도 보고, 우리 우리 교인들 중에서는 그러신 분이 없었겠죠? 아무튼 그렇게 자꾸만 토정비결도 보려고 하고, 운세를 보려고 하는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이 불확실한 세상 가운데서, 과연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뜻이 무엇인가를 알고 싶어 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거든요. 우리가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가 돌이 되면 돌잡이를 하는데요. 그래서 이 아이가 활을 잡는지, 돈을 잡는지, 붓을 잡는지 알아보려고 하는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아이의 미래를 알고 싶은 마음이 우리 인간의 마음 가운데 들어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은 게 사람의 소망인 것이죠.

예전에 제가 온두라스라고 하는 곳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중앙 아메리카죠 중앙아메리카에 있는 나라인 온두라스에 갔는데요. 거기 가보니까, 이미 사라져버린 마야 민족의 유적들이 거기에 있는 것을 봤습니다. 선교사님께서 저를 안내해가지고, 코판(Copan) 유적이라고 하는 곳에 가서 그 유적들을 살펴보고 있는데, 그 어떤 커다란 신전 같은 데, 커다란 돌이 있는 것을 봤습니다. 그런데 그 돌 가운데 보니까, 돌 가운데가 동그랗게 파여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 동그랗게 파여진 그 구멍 양 옆으로, 이쪽으로 줄기 하나, 물줄기 하나, 이쪽으로 물줄기 하나가 이렇게 딱 나 있는 것을 봤습니다. 그래서 제가 선교사님에게 물었어요. 선교사님 이게 도대체 뭐 하는 겁니까? 그랬더니 선교사님이 설명하기를 뭐라고 설명하냐면, 이것은 옛날 마야 민족들이 하나님의 뜻을, 신의 뜻을 알기 위해서 사용하던 거였다고 이야기를 해줍니다. 어떻게 알아냈느냐?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겁니다. 사람을 제물로 바치기 위해서 사람의 머리를 그 동그란 구멍 안에 넣고, 그리고 칼로 쳐서 그 사람을 죽여서 신에게 바치는데, 그렇게 신에게 바칠 때, 그 피가 어느 쪽으로 흐르는가? 이쪽 물줄기로 흐르는가? 이쪽 물줄기로 흐르는가? 어느 쪽으로 더 많이 흐르는가를 봐 가지고, 신의 뜻이 무엇이다라고 하는 것을 발견하려고 했었다라고 하는 것을 설명해 줄 때, 참 충격적인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다들 그렇게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하는데 유대인의 특권이 무엇이냐면, 하나님의 말씀이 이미 주어졌다는 것이에요.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밝은 뜻,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 율법이 주어졌다고 하는 것이 특권이고, 그것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이 엄청나게 좋은 것이라는 것이죠. 이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몰라서 타락의 길로 가고 멸망의 길로 가고 있지만, 그래도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져서 그 말씀대로 순종하기만 하면, 복을 받을 수 있는,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그런 엄청난 특권이 주어져 있었다고 하는 것이, 유대인들이 가진 특권이요, 유익이었다고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을 함께 나누면서 이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지위가 아무런 유익이 없다는 걸 이야기하면서, 우리 시대에도 목사가 된다고 하는 것 장로가 된다고 하는 것 권사가 된다고 하는 것 그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무리 제자면 뭐 하고, 아무리 사도면 뭐 하고, 아무리 성직자면 뭐 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아무 유익이 없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이야기를 열심히 잘 들으신 분들이라고 한다면 아마 마음속에 이런 결론을 내렸을지도 모릅니다. 굳이 그러면 직분을 맡을 필요 없겠네. 아무 유익이 없다고 하니까, 굳이 목사 할 필요 없겠네, 굳이 선교사 할 필요 없겠네, 아무 유익이 없다고 하니까, 그런 마음의 결론을 내리신 분이 혹시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서 그러면 성도들의 유익이 무엇인가 우리가 직분을 맡은 자의 유익이 무엇인가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의 유익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오늘 반대로 생각해 보려고 하는데요. 어떤 유익이 있을까요? 그 유익이 오늘 3장 2절의 말씀에 따라서, 대답을 드린다고 한다면 “범사에 많다”라고 하는 이 말씀을 오늘 기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보통 성도님들 가운데는 십자가 옆에서 못 박혀 같이 죽었으나,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을 믿고 고백하여서, 낙원의 약속을 받았던 한 강도를 생각하면서, 그 강도를 무척이나 부러워하시는 분들이 종종 계십니다. 혹시 그렇게 생각해 보신 분들 계십니까? 어떤 분이 저한테 그래요. 목사님, 지금 이 세상에서 마음대로 죄 짓고 살다가, 마음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다가, 그냥 악하게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살다가, 죽기 전에만 예수님 믿으면 되잖아요? 죽기 전에, 그때 예수님 믿는다고 하면 구원받을 수 있는 거죠? 그러면서 저한테 물어봐요. 마지막에만 예수 믿으면 되는 거잖아요? 지금은 아직 내가 하고 싶은 게 많아요. 지금은 내가 놀러 다니고 싶은 거 많고, 내가 하고 싶은 거 많은데, 굳이 지금 믿을 게 아니고, 마지막에만 예수님 믿으면 되는 거예요? 그렇죠? 목사님. 저한테 그렇게 물어봐요. 아마 여기 있는 분들 가운데도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십니까? 혹시 우리들 자녀들 가운데 그렇게 말하는 자녀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게 맞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왜냐하면 목사라고 하는 직책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 장로라고 하는 직책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이 아무 유익이 아니라, 결국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한다면, 마지막 순간에라도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 거라고 한다면, 굳이 지금 이렇게 애써서 예수님을 믿을 필요가 있을까 라고 하는 그런 생각들이 떠오를 수가 있겠는데요. 그러나 성도 여러분 어떻습니까? 지금 예수님을 믿고 성도로서 사는 게 유익한가요? 유익하지 않은가요? 유익해요!

내가 주님과 함께 믿음의 길을 걸어간다고 하는 것이 쓸데없는 일이 아니라, 아무 유익이 없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그 길이 유익하다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되는 것이죠. 주님과 함께 걸어간다고 한다면, 고난 가운데 힘을 얻는 것이고, 외로움 가운데 위로를 얻는 것이고, 절망 가운데 소망을 얻는 것이고, 말씀을 읽는 가운데 용기를 얻게 되고, 기도하는 가운데 응답을 받게 되고, 예배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은총을 체험하게 되는 놀라운 경험들이 있게 될 줄이라고 믿습니다.

제가 아는 분 가운데 주선태 교수님이라고 하는 분이 계십니다. 지금 저 경상대학교에 축산학과 교수님이신데요. 그분이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에 미국에 왔을 때 그분을 처음 알게 됐습니다. 근데 그분이 처음 미국에 왔을 때는 크리스찬이었냐면 크리스찬이 아니었어요. 그분은 철저하게 불신자였고, 본인의 어머니께서 유언하기를 몇 가지를 유언했는데, 그 유언한 내용이 뭐냐 하면 개고기 먹지 마라 이런 거, 근데 그 유언 가운데 하나가 뭐냐면, 절대 교회에 가지 마라라고 유언해 놨어요. 그러니까 이 주선태 교수라고 하시는 분이 신앙생활을 절대 하려고 하지 않은 분인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에 왔는데 어떻게 살았는가? 주중에는 학교에서 연구를 하고 연수를 했지만, 주말만 되면 어디로 갔을까요? 골프장으로 가는 겁니다. 미국에 연수 오시는 분들이 목표가 뭐냐면, 미국에 있는 동안에 골프 마스터하고 돌아가는 게 꿈이거든요. 주말만 되면 골프장 가서 사는 겁니다. 그런데 그분의 부인과 아이들이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어요. 교회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 가운데, 어떤 소리가 들리냐면 이 아이는 아빠가 없는 아이인가요?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되니까, 그래서 이분이 자기 자식을 위해서 교회를 한번 나오기로 한 겁니다. 그래서 교회에 나왔어요. 그래서 예배를 드리려고 저 뒤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는데, 처음 예배드리는 그 순간부터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시작한 거에요. 그리고 그래서 그분이 신앙생활을 시작해가지고, 지금 현재는 교수이시면서 동시에 이제 목사까지 되셨는데요.

그때 그분이 신앙생활을 처음 막 하면서 그 자신이 전혀 신앙생활을 안 하다가 신앙생활 하면서 느끼게 된 그 느낌들을, 일기 형식으로 매일매일 인터넷에다가 글을 이렇게 쭉 썼습니다. 그런 이런 음악 소리 같은 좋은 글을 막 썼어요. 그래서 그분의 글이 얼마나 좋은지, 여러 사람들에게 많은 감동을 준 글이 돼가지고, 그분의 글들을 모아가지고 책으로 펴냈습니다. 그래서 그 책으로 펴낸 것이 아가페에서 <아름다운 시작>이라고 하는 책으로, 책으로 한 2002년도인가 그때 나왔는데요. 그분이 했던 글 내용 중에 하나가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방황의 끝이 어딘지 모르게 헤매던 내 청소년기와 성공을 위해 물불 안 가리고 세상을 질주하던 나의 젊은 그 시절에 당신은 어디 계셨나요?” 예수님을 말하는 거죠. “제 옆에서 지켜보셨다고 보셨다면 왜 그렇게 살도록 보고만 계셨어요? 물려주세요. 처음부터, 모태 신앙인들처럼, 엄마 뱃속에서부터 당신을 알고, 유년기 청소년기 청년기 항상 당신과 함께 살고, 무엇이 죄고 무엇이 당신이 원하시는 것인지 알고 살아가도록 그렇게 만들어주세요.” 이분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예수님 믿는 것이 너무나도 좋은 거예요. 너무나도 좋은데, 자기가 예수님을 언제 알게 됐는가? 이제 겨우 40에 대해서 알게 되니까, 40년을 헛살아온 것에 대한 것이 너무나도 안타까운 것이, 하나님 나도 어렸을 때 예수님을 알았더라면, 하나님 나도 청소년 때에 예수님을 알았다라고 한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내 인생 물려주세요 할 정도로, 그분의 마음 가운데 예수님과 동행하는 기쁨이 너무나도 커서 그런 글을 썼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기에, 그냥 이 세상 마음대로 살다가 죽기 전에 “예수님 믿습니다” 말해버리고 천국 가는 것이 그게 목적일까요?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가 굳이 빨리 믿어야 될 필요도 없고, 그냥 지금은 마음대로 이 세상에서 살다가 죽기 전에 “나, 예수님 믿어요” 하고 구원받고 싶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요. 그것은 몰라도 한참 모르는 분들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마치 무엇과 같으냐면 연애와 같은 것이죠. 두 남자가 있는데 한 남자는 한 여성을 만나서 연애를 시작하는 겁니다. 그 여성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꽃도 사다 주고 선물도 사다 주고, 그래서 이 여성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해서 수 년 동안 그렇게 공을 들이다가, 그래서 겨우 이제 승낙을 받고 결혼을 해서 결혼에 꼴이 나게 됐습니다. 근데 이 남성의 다른 친구는 애인이 없어요. 혼자 살아요. 솔로로 평생 살다가 느지막이 그때 누구 소개로 인해서 어떤 여성을 만나게 됐고, 만나자마자 좋아졌는지, 몇 달 만에 결혼을 하게 됐어요. 음악 소리를 들으면서 결혼을 하는 거죠. 그런데 그 모습을 본 이 친구가 자기 친구를 향해서 뭐라고 얘기하겠습니까? “야, 너는 어떻게 그렇게 빨리 결혼을 하니? 나는 5년 6년 동안 공을 들이고, 공을 들여서, 이렇게 수많은 세월을 애를 써가지고, 이렇게 결혼했는데, 너는 그렇게 쉽게 결혼을 해? 아이고 억울해 죽겠네.”라고 그렇게 말할까요? 아니요. 그 사귀는 그 기간이 행복하고, 함께 걸어가는 그 길이 너무나도 행복한 것이고, 그게 사랑의 행복을 아는 사람들의 고백이라고 말할 수가 있을 겁니다.

복음성가 중에 이런 복음서가 일가가 있어요. 행복이라고 하는 복음 성가가 있는데, “이것이 행복, 행복이라오. 세상은 알 수 없는 하나님 선물, 이것이 행복, 행복이라오.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행복이라오.”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은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주님과 걸어가는 그 길이 행복한 거예요.

성도의 유익이 무엇인가? 내가 직분을 받아 섬기는 그 유익이 무엇인가? 내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용되고, 주님과 함께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하는 것이 그것이 행복이고, 유익이 된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다른 질문을 던지고 있는데요. 5절에서부터 8절 말씀에 보면 바울 사도는 또 하나의 질문을 던집니다. 만일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불의를 행하는 것도 괜찮은 것 아니겠는가라고 하는 그런 질문에 대해서, “그렇지 않다”라고 대답을 하는 것이죠.

이것은 하나의 궤변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도대체 이런 궤변을 누가 말하는 것일까요? 이런 궤변을 말하는 사람이 정말 있을까요? 생각을 할 때가 있지만,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궤변을 말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가롯 유다 같은 경우 말입니다. 가롯 유다 같은 경우는 예수님을 팔아버렸습니다. 은 30냥에 예수님을 팔아버렸고,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고, 그래서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지게 된 거죠. 만일 예수님을 가롯 유다가 팔아먹지 않았다고 한다면,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졌을까요? 그렇게 질문을 던지면서, 결국 가룟 유다도 우리의 구원에 엄청난 역할을 한 것이고, 가룟유다야 말로 우리에게 좋은 일을 한 것이라고, 그렇게 궤변을 늘어놓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저는 종종 만나봤습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오늘날에만 있는 궤변이 아니라, 벌써부터 오래된 궤변이에요. 몇 년 전에 3, 4세기경에 문서가 하나 발견이 됐는데요. 그래서 그것을 해독해서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냐 하면 유다복음서라고 하는 문서입니다. 3, 4세기 경에 만들어진 그 문서의 내용이 무엇이냐면, 열두 제자 가운데 유일하게 가롯 유다가 예수님의 마음을 진정으로 이해했고, 그래서 예수님을 팔아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룟 유다야말로 진짜 제자라고 하는 그런 괴변 같은 복음 문서가 발견이 됐는데요. 당시 그런 이단들의 문서인 것이죠.

그에 대해서 예수님은 뭐라고 대답하고 있습니까? 마태복음 26장 24절 말씀에 보면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무엇이 있으리로다?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우리가 분명하게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종종 기독교 역사가는 분석을 하기를, 한국교회가 수많은 분열과 분쟁이 있었는데, 그 분열과 분쟁이 결국에는 교회의 부흥과 성장으로 귀결되었다고 분석하는 역사학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옛날 분열과 분쟁이 없었다라고 한다면, 교회의 성장과 부흥도 없었을 것이다라고 하는 그런 말로 받아들여질 수가 있겠는데요. 그러니까 분열도 괜찮았던 것이죠? 교회가 싸우는 것도 괜찮았다는 말인가요> 그게 아닌 것이죠.

요셉이 애굽의 총리 대신이 되어서 7년 기간 동안에 수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그런 구원자의 역할을 감당했는데, 요셉이 총리 대신이 될 수 있었던 것이 무엇입니까? 그 사이에 형제들이 그 요셉을 팔아버렸고, 보디발의 아내가 모함을 해서 요셉을 감옥 속에 집어넣는 일이 없었다라고 한다면, 총리가 되지 못했을 겁니다. 그러니까 형제들이 이 요셉을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해서 팔아버린 것이 괜찮은 일이었던가요? 보디발의 아내가 모함에서 이 사람을 감옥에 집어넣은 것이 괜찮은 일인가요? 아닌 거죠.

오늘 본문의 말씀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겁니까?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모든 일을 다 종합해서 이야기하면, 우리가 성도로서 살아가고 있는 것, 그것이 유익한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행하며 살아가는 것이 유익하고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된다고 하는 말씀을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배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것은 손해가 아니라 기쁨이에요.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것은 억울한 일이 아니라, 내 시간을 빼앗기는 일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라, 행복한 일이에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그 길이 참된 행복이요. 기쁨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우리들의 삶 가운데서 주님을 믿고 신뢰하며 주님과 동행하는 가운데 주께서 주시는 놀라운 은혜가 넘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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