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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지 아니하면 (갈 6:7-9)

우리나라 속담에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뭐가 난다고 그러죠? 팥이 난다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당연한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심은 것을 거두는 것이지,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법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 현재 우리가 만나는 상황, 그 모든 것들을 볼 때에, 다른 사람 탓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흔히 잘 되면 내 탓이고, 안 되면 조상 탓을 한다고 하는데요. 남 탓을 할 것이 전혀 아니라고 하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좋은 것을 거두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만큼 내가 좋은 것을 심었기 때문일 것이고, 만일 우리가 좋은 것을 거두지 못하고 나쁜 것을 거두었다고 한다면, 그만큼 우리가 좋은 것이 아닌 나쁜 것을 심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현재 만나고 있는 모든 상황들, 현재 괴롭고 슬프고 또한 외롭고 아프다고 하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 때문이 아니라, 사실은 내 자신이 그런 씨앗들을 심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런 일을 당할 때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향해서 원망하기보다는, 그리고 화풀이 대상을 찾아서 분노를 표출하기보다는, 우리 자신을 다시 한번 돌아보는 것이 성숙한 사람의 모습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특별히 아직 어린아이들, 성숙하지 못한 아이들은 무엇이 잘못될 때마다, 망칠 때마다, 누구 탓을 합니까? 부모님 탓을 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무심코 내뱉는 말이 무엇이었던가요? “이거 다 엄마 탓이야!” “이거 다 아빠 때문이야!”라고 하는 그런 말들을 해댈 때가 많습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부모님들의 마음은 굉장히 아프죠. 하지만 아이들은 그렇게 말할 수 있다고 할지라도, 성숙한 어른이라고 한다면 언제나 자기 자신을 탓하게 됩니다. 자녀들에게 무슨 문제가 생기면, 그게 다 내 잘못 같아요. 우리 아이들에게 내가 제대로 밥을 먹이지 못했고, 우리 아이들에게 제대로 사랑을 표현해 주지 못했고, 내가 더 신경 쓰지 못해서 우리 아이들이 이런 상태가 된 것은 아닐까? 성숙한 어른이라고 한다면, 사랑이 많은 부모님이라고 한다면, 늘 가지게 되는 마음이, 나 때문에 이런 것은 아닐까? 늘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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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원인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있다고 하는 사실을 아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우리 집 밭에는 왜 팥이 나지 않고 콩만 날까요? 그것은 우리가 팥을 심지 않고, 콩을 심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런 간단한 원리를 망각해 버릴 때가 많은데요. 이 간단한 원리를 한 번 더 기억할 수 있다고 한다면 좀 더 성숙한 모습을 보여줄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말씀을 보면, 우리나라 속담과 아주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갈라디아서 6장 7절과 8절 말씀에 이렇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말씀합니다. 우리나라 속담과 아주 비슷한 논조의 메시지라고 할 수가 있겠는데요. 우리는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지, 심지 않은 것을 거두지 못한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 읽은 성경 말씀은 우리나라 속담에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러니까 우리가 심는 것을 거두게 되어 있으니까, 우리가 무엇을 심어야 할 것인가? 결국 썩어버릴 것을 심지 말고, 영생을 얻을 수 없는 것을 심지 말고, 정말 우리가 진정으로 심어야 될 것이 있다고 한다면, 영생을 거둘 수 있는 성령을 위하여 심어야 한다고 오늘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목적대로만 살다가는 결국 썩어질 것을 거두기 때문에, 결국은 멸망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는 영생을 위하여 심어야 한다는 것이 오늘 성경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이 하나 생깁니다. 도대체 육체를 위하여 심는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이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다고 하는 것은 어떤 것을 가리키는 말씀일까요? 도대체 어떻게 해야 성령을 위하여 심는 것이 되는 것이고, 어떻게 하면 육체를 위하여 심는 것이 되는 것일까요?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이 추상적인 표현들을 깊게 생각해 보지 않은 채 그냥 지나갈 때가 너무 많은데요. 특별히 이 추상적인 표현을 볼 때마다 이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한 번 더 깊게 생각해 보지 않으면 안 됩니다. 도대체 육체를 위해서 심는다는 말이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 성령을 위하여 심는다고 하는 말이 도대체 무슨 말일까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말씀을 이렇게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육체를 위해서 심는다고 하는 말은, 그러니까 이 세상에 일을 하는 것, 세속적인 직업을 가지고 돈을 벌기 위해서 먹고 살기 위해서 일하는 것은 육체를 위하여 심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성령을 위해서 심는 것이라고 하는 것은, 주님의 일을 하는 것, 신앙적인 일을 하는 것, 다시 말하자면 교회를 위해서 일하고 헌신하고 봉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이해할 때가 많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세상에 일만 할 것이 아니라, 시간을 내서 영적인 일을 해야 하고, 시간을 내서 선교도 하고 전도도 하고 신앙적인 일을 해야 된다고 하는 결론을 내리기가 쉽습니다.

우리는 종종 성속이원론(聖俗二元論)으로 구분해서, 우리가 이 세상에 하는 일들은 다 무가치하고, 의미 없는 일인 반면에, 우리가 종교적인 일, 영적인 일, 신앙적인 일을 하는 것은 거룩한 일이라고 생각하기가 쉽지만, 그러나 오늘 본문의 말씀은 단순히 그런 차원에서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을 위해서 심는다고 하는 것이 그러면 과연 무슨 의미일까요? 그 의미를 우리가 발견하기 위해서는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면 문맥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성령을 위하여 심는다고 했는데, 그 성령을 위하여 심는 것이 무엇일까? 문맥을 좀 더 살펴보면 좋겠는데요. 9절 말씀에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여기서 무슨 힌트를 발견하지 않으셨습니까? 8절 말씀에서 말하기를, 너희가 육체를 위해서 심을 것이 아니라, 성령을 위해서 심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바로 그다음 9절에서 말하기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이 문맥을 보면서, 성령을 위하여 심는다고 하는 것은 곧 선을 행하는 것이로구나라고 알 수가 있겠습니다.

성령을 위해서 심는다고 하는 것은 선을 행하는 것, 선한 일을 행하는 것이죠. 그렇다고 한다면 육체를 위하여 심는다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선을 행하는 것이 아닌 모든 것을 가리킬 것입니다. 악을 행하는 것은 물론이고, 단순히 먹고사는 것 그런 것들이 다 육체를 위해서 심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조금 전에 제가 이것이 아니라고 말씀드릴 때 무슨 말씀을 드렸냐면, 육체를 위해서 심는 것은 우리 나 자신을 위해서 이 세상의 일을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성령을 위해서 일한다, 심는다고 하는 것은 종교적인 것 신앙적인 일을 하는 것 그렇게 볼 게 아니라고 말씀드렸는데요. 그것이 완전히 틀렸다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좀 더 확대해서 봐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한번 도표를 한번 보았으면 좋겠는데요.

도표를 보시면 아마 좀 더 이해가 쉬울 겁니다. 육체를 위하여 심는 일이 무엇이냐 하면, 나 자신을 위해서 하는 일만이 육체를 위해서 심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선한 일이 아닌 모든 것들이 다 육체를 위하여 심는 것이죠.

그러면 영을 위하여 심는 일은 무엇이냐? 단순히 종교적인 일, 신앙적인 일, 선교하고 봉사하고, 교회를 위해서 일하고, 그것만 성령을 위하여 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아니라 모든 선한 일, 우리가 긍휼을 가지고 사람들을 대하고, 사랑으로 사람들에게 대하고, 용서하고 인자하게 대하고 하는, 그 모든 선하고 착한 모든 일들이 다 영을 위하여 심는 일이라고 이해하시면 좋겠습니다.

6장 8절에서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고 우리 한국 말 성경에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마는 사실은 성령이라고 번역하는 것보다는 단순히 영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러울 겁니다. 헬라어 단어가 여기에 있는데요. “영”(프뉴마)이라고 하는 단어만 써도, “성령”(프뉴마 하기온)으로 번역할 수도 있고 “영”(프뉴마)으로 번역할 수도 있기 때문에, 번역자가 “영”(프뉴마)이라고 하는 단어만 보고도, “성령”(프뉴마 하기온)이라고 번역을 했습니다마는, 아마도 육체와 대비되는 “영”을 위하여 심는 것으로 번역하는 것이 훨씬 맞을 거라고 생각이 드는데, 그러니까 육체를 위해서 하는 일, 영을 위해서 심는 일이 무엇인가? 모든 선한 일, 종교적이든 종교적이 아니든, 신앙적이든 신앙적이 아니든, 모든 선한 일을 가리켜서, “영”을 위하여 심는 일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고, 육체를 위하여 심는 일이라고 하는 것은, 선한 일이 아닌 모든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성경 말씀의 가르침이 무엇이냐면, 우리가 육체를 위해서, 그러니까 나 자신을 위해서, 또는 악을 행하면서 그렇게 살면, 결국 썩어질 것만 얻게 될 것인데, 어떻게 해야 되는가? 우리는 선한 일을 해야 된다. 신앙적인 선한 일뿐만 아니라, 이 사회에서 살아가면서도, 선한 일, 아무튼 모든 선한 일을 해야 한다고 하는 말씀인데요. 그런데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냐면 6장 8절에서 그렇게 영을 위하여 심으면, 선한 일을 하게 되면 어떤 결과가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무엇을 거둘 것이다. 영생을 거둘 것이다! 썩지 않을 영생을 거둘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두 가지 질문이 떠오르게 되는데요. 도대체 영생을 거둔다고 하는 말이 무슨 말일까요? 우리가 알고 있는 영생의 길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하면 우리가 구원을 받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까? 우리가 착하게 살아서 구원을 받습니까?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것이 정통 기독교의 교리입니다. 성경 전체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교훈이 무엇이냐면, 우리가 구원을 얻는 것은 내 공로로, 내 의로, 내 선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것이 성경 전체의 가르침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갈라디아서 6장 8절에서는 다른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영생을 거둘 것인가? 우리가 선을 행하면, 영을 위하여 심으면 영생을 거둘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까요? 성경의 전체의 가르침은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 것이 정통 기독교의 가르침인데,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는 너희가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얻는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영을 위하여 심어야, 다시 말하자면 선을 행해야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데, 도대체 이렇게 말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사실은 주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주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그냥 내가 입으로만 “내가 예수님 믿습니다”라고 말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종종 우리 한국교회 성도들은 구원파의 오류에 빠지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구원파라고 들어보셨을 거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시내버스에다가 광고를 하면서 대형 집회를 하면서, 수많은 크리스천들을 미혹하고 있는 이단 집단이 구원파라고 하는 이단 집단입니다. “죄사함 거듭남의 비밀”이라고 하는 그런 것을 붙여놓기도 하고요, 그러면서 수많은 크리스천들을 유혹하고 있는 그런 구원파가 가지고 있는 잘못이 무엇입니까? 그런데 사실 그 구원파만 잘못된 것이 아니라, 우리 기독교를 신앙을 정통 기독교 신앙 가운데 있는 사람들 중에도, 구원파처럼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어요.

구원파에 있어서, 구원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면 “천국 입장권을 얻는 것”입니다. 지금 이게 천국 입장권이라고 합시다. 그런데 우리가 이 천국 입장권을 어떻게 얻는가? 구원파에 의하면, 어떻게 말하냐면 당신이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 그러면 천국 입장권을 얻을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맞는 말처럼 보이는데, 그런데 그 뒤가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천국 입장권을 가지고 있으면, 다른 것은 그 어떤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고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믿어서 천국 입장권을 내가 획득하기만 하면, 죽을 때까지 내가 아무렇게나 살아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겁니다. 거짓말을 하고 도둑질을 하고 살인을 하고 음란하게 살고 온갖 나쁜 짓을 하며 살아도, 마지막에 천국 입장권, 천국 문 앞에 가서 너 예수님 믿느냐? 예수님 믿습니다라고 하는 그 입장권만 보여주면, 이 사람이 무슨 잘못을 해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이 구원파의 오류입니다.

천국에서 무엇을 묻는가? 당신이 얼마나 착하게 살았는가? 당신이 얼마나 의롭게 살았는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믿느냐만을 묻는 것이고, 그런데 그 천국 문 앞에서, 나 예수님 믿습니다라고 하는 천국 입장권만 보여주면, 무슨 악한 일을 하면서 살았어도, 엄청난 죄인이라고 할지라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이 구원파의 오류이고, 그러한 구원파의 오류를 우리 성도들이 많이 그런 식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아주 성경을 크게 오해한 겁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입으로만 내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것이 무엇이죠? 지난주에 우리가 배웠는데, 예수님을 영접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마음의 왕좌 가운데, 예수님을 나의 주로 모셔드리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마음에 왕좌에 들어오신다고 한다면, 우리는 이제부터는 예수님께서 명령하시는 대로 살아야 합니다. 따라서 입으로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을 하는데, 그런데 예수님의 뜻과는 정반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에요. 예수님을 마음의 왕자에 모신 사람이 아니에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이고,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예수님을 마음속에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는 사람이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 것인데, 그런데 내 행동이 예수님과는 전혀 딴판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정말로 예수님을 믿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과의 결혼의 관계로 들어가는 것과 같아요. 결혼의 관계라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두 사람이 결혼식을 하고, 혼인증명서 그래서 혼인관계 증명서만 발급받을 수 있으면, 결혼 관계에 들어갔다고 말할 수가 있나요? 아니요. 결혼했으면 어떻게 해야 돼요? 같이 살아야 돼요. 다른 사람은 쳐다보지 않아야 돼요. 두 사람이 함께 사랑하며 살아가야, 그게 결혼 관계인 것이지, 결혼식은 했어요. 혼인관계 증명서는 만들 수가 있어요. 그런데 따로 살아요. 딴 여자랑 살고, 딴 남자랑 살고, 그러면 그게 결혼한 거예요? 결혼한 게 아니죠.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주님과 결혼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을 우리들의 왕으로 모시는 겁니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님을 왕으로 모신다고 한다면,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고, 주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죠.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이 우리 안에 있어서, 우리가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그것이 바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입으로 말하는 것이 그 사람의 믿음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떻게 살고 있느냐가 그 사람의 믿음이 진짜인가 가짜인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2장 14절에서 무슨 말씀을 하냐면,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라고 물었습니다. 믿음이 있다고 말을 하는데, 그런데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삶을 살지 않고, 그 행함이 없는 사람,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삶을 살지 않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까? 없다는 얘깁니까? 없다는 얘기예요. 그 행함이 없는 믿음이 구원을 할 수 있겠느냐? 없다는 얘기예요.

왜 구원을 하지 못합니까? 왜냐하면 그 믿음이 가짜 믿음이기 때문에, 그 믿음이 죽은 믿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야고보서 2장 26절의 말씀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말씀해 주셨습니다. 따라서 만일 우리 교회 가운데 예수님을 믿는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교회 공동체 안에 들어와 있지만, 그런데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의 삶을 살지 않고, 의도적으로 악한 일을 저지르며, 온갖 죄악을 저지르면서, 그렇게 주님의 이름을 먹칠하고, 죄를 그렇게 과감하게 범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을 어떻게 해야 된다고 성경은 교훈하고 있습니까? 고린도전서 5장 13절 말씀에 이렇게 표현합니다. “밖에 있는 사람들은” 여기서 말하는 밖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하는 것은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인데,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이 죄를 짓고 나쁜 짓을 할 경우에는 누가 심판하실 것이다?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이 약한 사람은” 이 약한 사람은 누구를 가리킵니까?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데,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을 하고 있는데, 그런데 그러나 그 사람의 행실이 악을 행하고, 도둑질을 하고, 나쁜 짓을 하면서, 계속 음란한 짓을 하는 그런 나쁜 사람이 너희들 가운데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했으니까, 그냥 교회 안에 내버려 두라가 아니라, 그 사람은 “너희 중에서,” 교회 중에서 내어 쫓아버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러니까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가 죄가 하나도 없이 완벽하고 거룩하게 살아야만, 그래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누군가 우리는 늘 넘어질 수밖에 없는 존재이고, 늘 실수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는, “아, 이제는 겸손하게 살아야 되겠다.” “이제는 용서하며 살아야 되겠다.” “이제는 사랑하며 살아야 되겠다.” 마음속에 결심을 하지만, 그러나 교회 문을 나서면서부터, 깨져버리는 게 우리들의 모습이죠. 금세 분노하고, 용서하지 못하고, 금새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이고, 우리를 위해서 우리의 죗값을 치러주셔야만, 우리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이죠.

하지만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완벽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가 죄를 지었다고 한다면 그것이 너무나도 마음 아픈 거예요. 죄를 짓는 것이 너무나도 슬프고, 자신이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애통해하면서, 주님의 뜻대로 살고 싶은 거룩한 욕망을 가지고 있는 자가 바로 그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지, 그게 아니라 전혀 마음의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으면서, 악을 계속해서 살아가는 사람은, 그런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오늘 갈라디아서 6장 8절 말씀에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육체를 위해서 심을 것이 아니라 영을 위하여 심어야 하는 것이고, 영을 위하여 심는 자가 구원을 거둘 것이라고 하는, 영생을 거둘 것이라고 하는 말씀은 바로 그런 의미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예수님을 마음속에 영접한 사람이 되어서 이제는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구원의 합당한 삶을 계속해서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의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게 될 때, 두 번째 질문이 하나 더 생기는데요. 그것은 오늘 말씀에 우리가 영생을 위하여 심으면, 성령을 위하여 심으면 영생을 거둘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둘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해 주셨는데, 그런데 우리가 실제로 거두는 것이 별로 없다고 느껴질 때가 많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선을 행하면 거둘 것이라고 하고 있는데, 거두고 있습니까? 거두는 것이 느껴집니까? 거두고 있는 그런 보람을 느끼고 계십니까? 안타깝게도 많은 성도님들이 실제로 우리가 많은 노력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열매도 거두지 못한 채 빈털터리와 같은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특별히 오늘은 2021년에 마지막 주간이 됐습니다. 한 해 동안 살아왔는데, 그리고 열심히 노력하고 수고하고 땀을 흘렸는데, 그런데 아무런 결과도 없고 아무런 변화도 없고 아무런 소득이 없는 것처럼 빈털터리와 같이 그렇게 느껴지시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아무런 소망도 발견하지 못하는 것 같은 그런 상황을 만나게 될 겁니다.

그러면서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질문이 떠오르는 거죠. 과연 이렇게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일까? 기도해도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는 것 같고, 믿음의 길을 걸어도 여전히 우리들의 삶은 힘들고, 아무리 사랑의 수고를 해도 도무지 변하지 않는 것 같은 우리 가정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내가 수고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질문이 생길 수가 있을 겁니다. 그런 우리들을 향해서 해주시는 말씀이 갈라디아서 6장 9절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이번 한 주간 살아가는 동안에,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서 지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참 마음이 조급해요. 그래서 한 번 두 번 기도해보고, 응답이 없는 것 같으면 하나님 정말 살아계신 것 맞습니까? 하나님 내 기도를 들어준다고 한다는 것 맞습니까?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낙망이 생길 때가 있어요. 우리 자녀들의 문제를 놓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정말 내가 사랑을 베풀기도 하고 수많은 노력을 했는데,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 같을 때 낙망하기가 쉬워요. 내가 믿음으로 열심히 산다고 살았지만, 그러나 아무런 결과를 얻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 그런 상황 가운데, 우리들의 마음이 흔들리기가 쉬워요. 그래서 우리들은 늘 조급하고 늘 불안하면서, 과연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맞는 것인가라고 하는 그런 질문을 던질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은 무슨 말씀을 하냐면 우리가 선을 행하되 무엇을 하지 말라. 낙심하지 말라. 선을 행하고 있다고 한다면 낙심하지 마세요. 그거 잘못된 거 아닙니다. 선을 행하고 있다면 지금 열매가 안 보여도 낙심하지 마세요.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 같아도 포기할 게 아니에요. 결국 선을 행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면, 너희가 썩지 않을 영생을 거두리라 약속하고 계십니다.

우리들은 너무나도 조급해서, 하나님의 때에, 우리가 우리의 때만 생각하고 하나님의 때를 생각하지 아니하고, 그렇게 조급하게 생각하다가, 제풀에 꺾이고 넘어질 때가 너무나도 많아요. 사실 다른 사람의 얘기가 아니라, 저의 이야기죠. 저는 본드를 붙일 때마다, 늘 실패하는데요. 본드를 붙일 때 본드를 쫙 붙여놓고 붙여야 되는데, 디렉션이 뭐라고 돼 있냐면 좀 마르면, 본드를 칠해놓고 좀 기다렸다가 어느 정도 마르면, 붙이면 딱 붙는다고 하는 그런 설명이 돼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본드를 칠해놓고 지금 붙여야 되나 하면서 딱 붙였는데, 안 붙고 그냥 쭉 떨어져요. 너무 마음이 급해요. 그런데 그게 우리들의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믿음의 길에서도 우리가 얼마나 너무나도 쉽게 좌절하고 절망하는지 모릅니다. 우물에서 숭늉을 찾는 것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우리가 바라봐야 됩니다. 너희가 선을 행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하나님의 약속이에요. 그 약속을 바라보면서, 지금 우리는 1년이 지나간다고 해서, 마음이 두렵고 당황스럽고, 이러다가 망하는 거 아닐까? 이러다가 큰일 나는 거 아닐까? 조급한 마음들이 들 때, 오히려 주님 앞에 엎드리면서, 주님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살기를 소원합니다. 지금 당장 내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도, 주님께서 원하시는 그 길을 걸어가기 원합니다. 결심하면서 다짐하면서 믿음으로 승리해 나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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