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훈과 책망 (잠 9:1-12)
오늘 본문의 말씀 1절에서부터 6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이렇게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지혜가 집을 지었다. 그 집을 짓는데 일곱 기둥을 세우고, 짐승을 잡고 포도주를 혼합하고 잔칫상을 차린 후에 사람들을 초대해서 그 잔치에 참여하라고 부르고 있다고 하는 그런 묘사를 1절에서부터 6절 말씀까지 해주고 있습니다. 마치 지혜가 어떤 사람인 것인 양, 마치 지혜가 어떤 집의 집주인인 양 의인화해서, 그래서 그 지혜가 사람들을 초청해서 지혜가 베풀어주는 그 잔치 자리, 고기도 먹고 포도주도 마시며, 즐거움을 얻으라고 하는, 그렇게 의인화해서 표현을 하고 있는데요. 이렇게 사람이 아닌 것을 사람인 것처럼 표현하는 법을 가리켜서 의인화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마치 사람인 것처럼 표현하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이것을 가리켜서 우화라고도 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솝 우화 같은 경우를 보면, 짐승들이 말을 하고 그렇게 대화를 하는 것이 나오지 않습니까? 실제로 그러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것들을 가정해서, 우화처럼 우리들에게 가르쳐주는 방식이라고 해서, 이런 식의 표현을 우화라고 하기도 하고, 또한 비유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지혜를 어디에다 비유하냐면, 마치 잔치에 초대하는 집주인에 비유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아무튼 1절에서부터 6절 말씀은 지혜를 의인화해서 집주인이 되어, 그가 집을 짓기도 하고 일곱 기둥도 세우고, 짐승을 잡고 포도주를 타고 상을 차려서 사람들을 초대해서 그 사람들로 하여금 즐기도록 초대한다고 하는 그런 이야기를 그려주고 있는데요. 이 우화를 통해서, 이런 식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전해주려고 하는 그 메시지, 우리들에게 주려고 하는 그 교훈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가 지혜를 얻는다고 한다면, 우리가 만일 지혜의 삶을 산다고 한다면, 그 삶이 복된 삶이다, 풍족한 삶이다, 만족스러운 삶이 될 거다라는 것을 교훈해 주기 위해서, 이런 우화, 비유, 이런 의인화의 이야기를 만들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풍성한 음식이 차려진 그 잔칫집에 가게 된다고 하면, 그러면 누구든지 그 집 안에 들어가게 되면 마음껏 먹고, 마음껏 마시고, 그리고 정말 즐거움을 얻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제가 어렸을 때는 동네 잔치가 열리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누구든지 그 집 안에 들어와서 점심을 얻어먹기도 하고, 저녁을 얻어먹기도 하고, 막걸리를 마시기도 하면서 동네잔치가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집에 좋은 경사가 있으면, 혼인식이 있어서 잔치를 벌이거나 여러 가지 좋은 일들이 있어서 잔치를 벌이게 되면, 지나가는 동네 사람들이 아무나 다 들어가서, 그 집에서 맛있게 먹으면서 배부르면서, 흥겹게 아주 즐거운 잔치를 벌이는 그런 경험이 있는데요. 이것과 비슷하게, 지금 지혜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지혜가 지금 우리들을 향해서 잔치를 베푼 것과 같으니까, 만일 누구든지 그 지혜에게로 가서 배운다고 한다면, 지혜에게 귀를 기울이고, 지혜가 하는 말을 듣고, 지혜가 베푼 그 잔치의 자리에 참여하게 된다고 한다면, 우리가 먹을 것을 먹을 때 우리의 육신이 배부른 것처럼, 지혜를 얻게 된다고 한다면 우리가 영육 간에 배부름을 얻게 될 것이다, 우리가 지혜를 얻는다고 한다면 영육 간에 만족함을 얻게 될 것이다라는 그런 의미에서, 이 우화 같은 이야기를 오늘 1절에서부터 6절까지 해주고 있는 겁니다.
본문의 말씀을 읽으면서 그 본문에 묘사하고 있는 세부적인 내용 때문에 너무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자면, 지혜가 집을 짓는데 기둥을 세울 때, 왜 하필이면 일곱 기둥을 세웠을까? 일곱 기둥이라고 하는, 그 일곱이라고 하는 말에는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왜 하필이면 짐승을 잡았을까? 왜 하필이면 포도주를 혼합한다고 했을까? 왜 보낼 때는 남종을 안 보내고 여종을 보낸다고 했을까? 그런 디테일한 것 때문에 그것이 무슨 의미일까 너무나도 고민하신다고 한다면, 그러면 성경이 말하고 있는 큰 그림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 본문의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전해주고자 하는 그 메시지가 무엇인지 큰 그림을 보아야 하는 것인데, 우리가 종종 어떤 사람들은 성경의 표현 하나하나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한 나머지, 숲이 어떻게 생겼는가를 다 잃어버리고 헤매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요. 오늘 이 본문의 메시지는 큰 그림을 봐야 합니다. 구체적인 것, 일곱 개가 무엇을 의미한다라고 하는 식으로 해석의 수렁 속으로 빠져들 것이 아니라, 이것은 마치 어느 잔칫집에 가게 되면 배부른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지혜가 베풀어주시는 그 향연에 참여하게 된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지혜에 우리가 참여하게 된다고 한다면, 영적인 만족감을 누릴 수 있고, 영육 간의 강건함을 누릴 수 있다고 하는 그 메시지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만일 우리가 지혜를 얻게 된다고 한다면 만족함이 있을 거라고 오늘 본문에서 말씀해 주고 있는데, 도대체 어떤 종류의 만족, 어떤 종류의 유익이 있다고 하는 말일까요? 그것은 6절 말씀에서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잠언 9장 6절 말씀 이렇게 표현합니다. “어리석음을 버리고 생명을 얻으라 명철의 길을 행하라 하느니라.” 다시 말하자면, 이 지혜가 주는 잔치, 지혜가 주는 그 풍성한 식탁에 가게 되면 무엇을 얻을 수 있다는 겁니까?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라고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죠. 우리가 음식을 먹어야 육신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지혜를 얻어야, 우리가 지혜롭게 살아야 영적인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 게 바로 오늘 잠언 9장 6절에서 가르쳐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7절에서부터 9절까지는 이제 주제가 약간 바뀌어서 다른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데요. 7절에서 9절까지의 말씀은 우리가 책망해야 될 사람이 누구고, 책망하지 말아야 될 사람이 누구인가에 대해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누구를 책망할까요? 누구에게 징계를 내려야 될까요? 그것을 7절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거만한 자를 징계하는 자는 도리어 능욕을 받고 악인을 책망하는 자는 도리어 흠이 잡히느니라.” 잠언 9장 7절의 말씀을 보시면, 제가 지금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서 설명을 해드렸기 때문에 지금쯤이면 히브리 평행법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익숙해졌을 거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9장 7절에서 보면, 이 거만한 자가 누구라는 겁니까? “거만한 자를 징계하는 자는 도리어 능욕을 받고 악인을 책망하는 자는 도리어 흠이 잡히느니라” 그랬으니까, 거만한 자가 누구라는 얘기예요? “악인”이라고 하는 얘기입니다. 거만한 자가 곧 악인이고, 악인이 곧 거만한 자라고 하는 그 표현, 히브리 평행법적인 표현입니다. 징계한다고 하는 것은 곧 책망하는 것이고, 능욕을 받는다고 하는 얘기는 곧 우리가 흠이 잡히고 우리가 상처를 입게 된다고 하는 말과 똑같은 말입니다. 거만한 자를 잠언 9장 7절에서는 뭐라고 표현하냐면, 그런 사람들이 바로 악인이다라고 표현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 ‘거만한 자’라고 표현한 히브리어 단어가 있습니다. 그 히브리어 단어가 “레츠(לֵץ)”라고 하는 단어인데요. 이 단어가 성경에서 어떻게 번역이 되었는가 하고 제가 살펴보니까, 우리 한국말 성경에서는 대부분 “거만한 자”라고 번역을 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영어 번역을 살펴보니까 영어 번역에서는 주로 ‘scoffers’라고 번역해 놓았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비웃는 자”라고 번역을 해 놓았습니다. 사실 비웃는 자나 거만한 자나 사실은 같은 거죠. 거만하니까 다른 사람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면 듣지 않고 비웃어 버리는 것이죠.
그러니까 그런 거만한 자, 악인, 비웃는 자에게 내가 책망을 하거나, 내가 좀 조언을 하거나, 비판을 하거나, 어떤 징계를 하게 되면, 그 거만한 자가, 그 악인이, 그 비웃는 자가 내 징계나 조언이나 충고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발한다는 것이죠. 나는 이 사람이 좀 잘 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조언을 해주고, 바른 길로 가게 하기 위해서 충언을 해주고, 때로는 징계나 책망을 하며 무엇인가를 교정하기 위해서 가르치기도 했는데,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만일 악인이라고 한다면, 거만한 자라고 하면, 오히려 반발하는 거죠. 조언을 하는 사람을 향해서 오히려 발톱을 드러내는 것이죠.
그래서 오늘 잠언서의 말씀에서는 그런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해야 된다고 하냐면, “징계하지 마라.” 귀가 닫혀버린 사람들에게는 “책망하지 마라”라고 교훈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조언이나 충고를 하려고 하는 그 의도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그 사람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죠. 하지만 거만한 사람은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그것을 순순히 양약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수치를 당하게 하고 상해를 입게 할 뿐만 아니라 8절 말씀에서는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미움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면서, 그래서 그런 사람들에게는 조언을 하지 말라고 오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조언이나 책망하는 일은 누구에게 해야 되는가요? 거만한 자에게 할 것이 아니라 지혜 있는 자에게 하라는 거예요. 9절 말씀이 바로 그 말씀입니다. 한번 같이 읽어볼까요? 시작! “지혜 있는 자에게 교훈을 더하라 그가 더욱 지혜로워질 것이요 의로운 사람을 가르치라 그의 학식이 더하리라.” 여기도 역시 히브리 평행법으로 지혜 있는 자를 무엇으로 표현하고 있습니까? 의로운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는 겁니다. 거만한 사람은 악한 사람인데, 지혜로운 사람은 의로운 사람이라는데, 우리가 충고를 한다면 누구에게 해야 되는가? 악한 사람에게 하지 마라. 그 사람에게 하면 오히려 손해 본다. 오히려 큰 수치를 당하게 될 거니까, 지혜 있는 사람에게 교훈을 더해주고 의로운 사람을 가르치라라고 표현하고 있는 겁니다.
오늘 이 말씀을 생각하게 될 때, 신약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이 생각나시는 분이 혹시 계실 겁니다. 마태복음 7장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마태복음 7장 6절에서 갑자기 개와 돼지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건 바로 우리는 비판이나 충고를 할 때 이 사람이 잘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하는 거죠. 그런데 그것을 알아들을 수 없는 거만한 자, 악한 자는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그런 사람들은 마치 개와 돼지와 같은 반응을 보인다는 거예요. 나에게 들려주는 그 진주와 같은 비판의 소리를 만일 받아들인다고 한다면 우리가 발전할 수 있는데, 오히려 그것을 듣게 될 때 나에게 진주를 주는 상대방을 향해서 오히려 공격하고 화를 내는 개, 돼지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 어리석은 사람이 있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시는데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잠언 9장의 말씀처럼 개에게 그런 교훈을 주지 말라고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안타깝게도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이 주님의 말씀에 따라 자신의 삶을 잘 컨트롤하는 것이 아니라 막무가내로 이야기를 합니다. 들을 귀가 없는 사람들을 향해서 진리를 자꾸만 선포합니다. 왜? 옳은 말은 옳은 것이니까요. 내가 잘못된 말 한 게 아니거든요. 정답을 이야기하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정답은 언제든지 말해도 괜찮다고 하는 어리석은 생각에 빠져 있는 것이죠.
그래서 어떤 열정적인 사람이 법당에 가서, 사찰에 가서 예수님 믿으라고 외치는 겁니다. 저기 지금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불자들이 있는데, 그들이 어리석은 길을 버리고 예수님에게로 돌아오라고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옳은 말을 하는 겁니다. 그러고서 나는 복음을 잘 전했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복음은 언제 어디서나 전해야 한다는 사명 때문에 그러는 것인데요.
그런데 그러한 행동은 성경을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어리석은 처사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듣든지 안 듣든지 막무가내로 가서 전하기만 하면 된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비둘기같이 순전해야 하기도 하겠지만 뱀같이 지혜로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만일 우리가 지혜롭다고 한다면, 내가 이 복음을 전했을 때 저 사람이 내 말을 들을 수 있는 지혜롭고 겸손한 상태에 있는 사람인지, 아니면 진주를 받았을 때 돌이켜 우리를 공격하는 개 돼지와 같은 상태에 있는 것인지를 분별해서, 거만한 자들에게는 가르칠 것이 아니고, 그런 사람들에게는 이야기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고 오히려 우리만 다치게 될 것이라는 잠언서의 말씀과 마태복음 7장의 말씀을 분명하게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복음의 열정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성경에 대해서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채 불당에 가서 예수님 믿으라고 소리친 후에, 자신이 고난을 당하게 되면 복음을 전하다가 고난을 당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이것도 영광이라고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 아주 큰 문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혜롭게 잘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죠.
오해하지 마십시오. 악한 자들이 있다고 한다면 포기해도 된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결단코 아닙니다. 복음은 모든 사람이 들어야 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사실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거만하게 해서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면, 막무가내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롭게 접근해야 돼요! 마음의 문이 열리도록 먼저 만들어야 되는 거예요. 들을 수 있게 만들어 놓고 전해줘야 되는 거예요. 닫혀 있는 사람에게 그냥 진리만 쏟아내 버리면 되는 게 아니라, 마음이 조금씩 열려서 귀를 기울일 상태가 되도록 기다리고, 마음을 풀어주고 해서 결국 그 사람이 귀를 기울이는 상태로 변화되는 모습을 본 다음에 진리를 이야기해 주어야 한다는 겁니다.
팀 켈러(Tim Keller) 목사님이 쓴 《센터 처치》(Center Church)라고 하는 책 가운데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문화 속에서 균형 있게 상황화를 하고, 사람들에게 성공적으로 전도하기 위해서는 문화를 존중하고 상대방의 문화를 존중하고 공감하면서 우리가 그 문화 속으로 들어가야만 합니다. 마치 그 문화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비유한다면, 마치 드릴로 바위를 뚫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가지고 있는 관점이 성경적 진리와 충돌한다면 그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드러내 주어야 하는데, 문화에 맞서야 되는데, 그건 어디에 비유할 수 있냐면 마치 드릴로 바위를 뚫어서 그 안 깊숙한 곳에 폭약을 설치해서 터뜨리는 것과 비슷해서, 그렇게 터뜨릴 때에야 바위가 폭파될 수 있다고 하는 겁니다. 만일 우리가 드릴로 뚫지 않은 채 그냥 밖에서 폭탄을 터뜨리면서 “이 나쁜 놈들” 하고 기독교적인 관점으로 그들을 비난하기만 한다면, 바위가 폭발되는 것이 아니라 거슬리기만 할 건데, 전도하려는 사람들로 하여금 귀를 열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담대하게 말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복음을 영화롭게 하는 데 실패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마음이 닫혀 있는 사람들, 거만해서 우리가 무슨 말을 하면 반발하는 사람들 앞에서 진리가 무엇이다라고 백날 소리쳐 봤자 듣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그렇게 그런 사람들에게 가르치지 말라고 잠언서에서 말하고 있고 마태복음 7장에서도 이야기하고 있는 거예요. 그 얘기는 아예 포기하라는 얘기가 아니라, 그들이 거만함을 내려놓고 귀를 기울일 수 있도록 마음의 문을 열 때까지 사전 작업들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자녀들이 믿음의 길에서 떠나버린 경우, 교회로 인도하고 싶은 부모님들의 안타까움이 많을 겁니다. 그때 우리 부모님들이 주로 하는 것이 무엇이냐면 옳은 것을 윽박지르고 맙니다. “너, 교회 가!” 외치고 끝나는데 아이들의 마음이 거만해서 들리지가 않아요. 오히려 반발해요. 말하면 말할수록 더 반발하는 모습을 우리가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거만하지 않도록 마음의 문을 열게 만들어야 되는 거죠. 커다란 바위에 구멍을 뚫어서 다이너마이트를 집어넣어야 되듯이, 마음을 열게 만들어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우린 너무나도 급해서 우물에서 숭늉을 찾으려고 하고 금세 좌절하고 맙니다.
예전에 제가 사역하던 교회에 어떤 장로님의 따님이 이단에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저를 찾아와서 어떡하면 좋겠냐고 고민을 이야기할 때, 제가 그분들에게 해준 말이 하나 있습니다. “장로님, 권사님, 따님을 한없이 사랑해 주세요.” 저는 진리를 가지고 싸우라고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무엇이 틀렸다고 가르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내린 조언은 무엇이냐면 “사랑 좀 해주세요”였습니다. 이 아이가 내가 어떠한 상황에 들어가더라도 나를 한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무한한 품이 부모님의 품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도록 사랑을 표현해 달라고 했습니다. 결국 돌아왔습니다.
우리 자녀들의 문제가 이단에 빠지는 것만이 아닙니다. 무신론에 빠지기도 하고, 포악한 성격으로 변해가기도 하고, 우울증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아이들 앞에서 정답만 이야기하고 책망을 한다고 한들, 오히려 그들의 마음은 더 닫혀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죠. 이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한국 사회의 마음이 닫혀버린 상황 가운데서 정답만 반복해서 알려주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 지혜를 주시옵소서. 어떻게 하면 닫혀버린 마음을 열 수 있을까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전한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게 지혜를 주시옵소서.” 인내를 배우게 하여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정반대로 우리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배워야 하는 입장에 서기도 합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책망이나 교훈을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우리들에게 조언을 해주는 사람은 남편일 수도, 아내일 수도, 자식일 수도, 직장 동료일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나를 전혀 모르는 지나가는 사람일 수도 있고, 심지어 불신자나 원수의 입을 통해서도 들려오게 될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누가 말했는가를 가릴 것은 아닙니다. 진리는 누가 말을 해도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불신자가 말을 한다고 해서 그 말이 진리가 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입니다. 만일 우리도 거만하게 비아냥거리며 그 조언을 물리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일 겁니다. 지혜는 무엇입니까? 겸손하게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교회라고 하는 공동체로 불러주신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배워야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장로님이라도 평신도에게 배워야 합니다. 목사라고 할지라도 배워야 합니다. 진리라고 한다면 누가 이야기를 해도 다 배워야 해요.
말로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도 가르쳐주고 있어요. 누군가 신실하게 사는 모습을 본다면 그건 우리를 향해서 가르쳐주고 있는 겁니다. 시기하고 질투하며 마음을 닫아버릴 것이 아니라, 그 모습을 보면서 “나도 배워야 되겠구나!” 마음의 문을 열어야 되는 거예요. 잠언 9장 12절 말씀에 “네가 만일 지혜로우면 그 지혜가 네게 유익할 것이나 네가 만일 거만하면 너 홀로 해를 당하리라”고 하신 이 말씀을 기억하면서, 우리가 항상 배워나갈 수 있는 영적인 겸손함이 우리 모두에게 있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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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rls and Scoffers: Reaching Closed Hearts with Wisdom
In verses 1 through 6 of today’s passage, we see a specific description: Wisdom has built a house. She has set up seven pillars, slaughtered her beasts, mixed her wine, and prepared her table. Then, she sends out invitations, calling people to come and participate in her banquet. Wisdom is personified here as a hostess or the owner of a house, inviting people to sit at her table, eat meat, drink wine, and find joy. This literary device—treating a concept like a person—is called personification.
Furthermore, we could call this an allegory. Much like in Aesop’s Fables where animals speak and interact to convey a moral truth, this passage uses a symbolic story to teach us a lesson. We can also view it as a parable, where Wisdom is compared to a homeowner inviting guests to a feast.
Ultimately, the message conveyed through this imagery of Wisdom building a house, setting the table, and inviting guests is this: If we obtain wisdom and live a life guided by it, that life will be blessed, abundant, and satisfying.
When a neighborhood feast was held in the village where I grew up, anyone passing by could come in and receive lunch, dinner, or a drink of rice wine. If there was a wedding or a celebration, the neighbors would gather to eat until they were full and join in the festivities. Similarly, Wisdom has prepared a feast for us. If anyone comes to learn from her, listens to her words, and joins her banquet, they will find satisfaction. Just as physical food fills our bodies, obtaining wisdom satisfies us both spiritually and physically.
While reading this, I encourage you not to get bogged down by the minor details of the description. For example, don’t lose sleep over why there are specifically “seven” pillars, why beasts were slaughtered, or why female servants were sent instead of male servants. If you focus too much on these minute details, you might lose sight of the “big picture.” Some people become so sensitive to every single word in the Bible that they lose their way in the forest because they are staring too closely at a single leaf. The big picture here is that just as you are filled when you go to a feast, you will experience spiritual satisfaction and wholeness when you participate in the banquet of God’s wisdom.
What kind of benefit or satisfaction are we talking about? Verse 6 tells us: “Leave your simple ways and you will live; walk in the way of insight.” In other words, the table of Wisdom provides life. Just as we must eat to maintain physical life, Proverbs 9:6 teaches that we must obtain wisdom and live wisely to possess spiritual life.
Discerning the Scoffer from the Wise
From verses 7 to 9, the theme shifts slightly to discuss whom we should rebuke and whom we should not. To whom should we give correction? Verse 7 says: “Whoever corrects a mocker brings on insult; whoever rebukes the wicked gets abuse.” By now, you are likely familiar with Hebrew Parallelism. In this verse, the “mocker” is equated with the “wicked.” Rebuking them leads to “insult” or “abuse,” meaning you will likely be hurt or slandered in return.
The Hebrew word for “mocker” or “scoffer” is lets (לֵץ). In Korean, it is often translated as “arrogant person,” and in English, as “scoffer.” A scoffer is so full of pride that they refuse to listen and instead mock the words of others. If you try to give advice, criticism, or correction to such a person—even with the best intentions to help them grow—they will not accept it. Instead, they will turn on you.
The lesson here is: Do not rebuke those whose ears are closed. Our intention in giving advice is for that person’s benefit, but a scoffer does not see it as medicine; they see it as an attack. Verse 8 warns that you will only be hated for your efforts.
So, who should receive our correction? Not the scoffer, but the wise. Verse 9 says: “Instruct the wise and they will be wiser still; teach the righteous and they will add to their learning.” Again, through parallelism, the “wise” is equated with the “righteous.” While correcting a wicked person brings harm to yourself, instructing a wise person results in their growth.
This brings to mind the words of Jesus in Matthew 7: “Do not judge, or you too will be judged… Why do you look at the speck of sawdust in your brother’s eye and pay no attention to the plank in your own eye?… Do not give dogs what is sacred; do not throw your pearls to pigs. If you do, they may trample them under their feet, and turn and tear you to pieces.”
Why does Jesus mention dogs and pigs in the context of judgment? Because some people react like animals when offered “pearls” of correction. If we accept wise criticism, we can grow; but there are foolish people who, upon hearing the truth, will only react with anger and aggression. Just as Proverbs 9 suggests, Jesus tells us not to waste such lessons on those who are not ready to hear.
Unfortunately, many passionate Christians ignore this and shout the truth at those who have no “ears to hear.” They believe that because they are speaking the “truth,” they can say it whenever and however they want. They might go into a Buddhist temple and shout at the monks to believe in Jesus. While they think they are fulfilling a mission, this is a foolish act that knows the “letter” of the law but not the “spirit.” Jesus told us to be “as shrewd as snakes and as innocent as doves.” We must discern whether a person is in a humble state to receive the Gospel or in a state where they will simply trample the message.
It is a great problem when people mistake being attacked for their lack of wisdom as “suffering for the glory of the Gospel.” We must be wise. This doesn’t mean we give up on the wicked—everyone needs the Gospel—but it means we must approach them strategically. We must first help them open the doors of their hearts. We shouldn’t just pour truth onto a closed heart; we must wait, show love, and soften the ground so they are in a state to listen.
In his book Center Church, Pastor Tim Keller uses an analogy: To successfully reach a culture, we must respect and empathize with it. He compares this to drilling into a rock. If you just set off an explosion on the surface, the rock won’t break; it will just be a loud, annoying noise that fails to accomplish anything. You must first drill deep into the rock—build a relationship and understand their perspective—and then place the “explosive” truth inside. Only then can the rock of their worldview be shattered.
When children leave the path of faith, parents often try to “yell” them back to church. But if the child’s heart is closed or arrogant, they won’t hear. They will only rebel more. You must “drill” into that rock with love.
I remember an elder whose daughter joined a cult. He asked for my advice, and I told him, “Elder, just love her unconditionally.” I didn’t tell him to argue theology or point out her errors. I told him to make her feel that the parent’s embrace is a place of infinite acceptance, no matter what. Eventually, she returned. Whether it is atheism, a violent temper, or depression, giving “right answers” to a closed heart is useless. We must pray: “Lord, give us wisdom. Help us open closed hearts. Help us be shrewd as snakes and gentle as doves.”
Cultivating Spiritual Humility
Conversely, we must also examine ourselves. How do we react when someone corrects us? Our advisor might be a spouse, a child, or a coworker. It might even be a stranger or someone we consider an enemy. How should we respond?
We should not focus on who is speaking. Truth is truth regardless of the source. Even if an unbeliever speaks a truth, it remains a truth of God. If we dismiss advice out of arrogance, we are the fools. Wisdom is listening with humility. God called us into the community of the church because we are meant to learn from one another. An elder should be able to learn from a layperson; a pastor should be able to learn from the congregation.
Wisdom is taught not only through words but through actions. When you see someone living faithfully, that is a lesson for you. Instead of being jealous or closing your heart, you should think, “I must learn from that.” Proverbs 9:12 says: “If you are wise, your wisdom will reward you; if you are a mocker, you alone will suffer.” We must have the spiritual humility to always keep learning.
Our fallen nature makes it easy to be arrogant and hard to be humble. This is why we need Jesus. We must go before the Lord who bore the cross for our filth, confess our sins, and stand again by His grace.
I pray in the name of the Lord that we may all become blessed people of God who live by His wis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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