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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음을 품으라 (빌 2:5-11)

2011년 4월 22일 금요일 필라델피아 사랑의 교회에서 전한 메시지

오늘은 성 금요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재판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그 운명하신 날을 기념하는 날이 바로 오늘 Good Friday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빌라도의 법정 가운데서 수치와 멸시를 당하시고 재판을 당하시고 또 십자가에 못 박히신 이후에 그리고 오후 3시경에 예수님께서 운명하신 그날을 오늘 우리가 지금 고난주간 가운데서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그 모습을 우리가 바라볼 때에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이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마는 그중에 하나 우리가 심각하게 기억해야 될 것이 있다면. 내가 지은 죄가 내가 지금 범하고 있는 그 잘못들과 허물들이 얼마나 심각하고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을 우리가 발견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아무런 마음속에 죄책감이 없이. 아무런 마음속에 생각이 없이 마음껏 잘못을 저지르는데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하는 그 바로 그 잘못의, 그 결과가 얼마나 크고 심각한가에 대해서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깊게 묵상해 보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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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을 저지르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자신은 재미있을지 모르고 자신은 너무나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그 사람과 관련되어 있는 아내와 그리고 그 가족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끼쳐 주고 있는가? 또한 그 상대의 가족들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죽음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가에 대해서 우리가 분명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내가 도둑질을 한다면. 내가 그것을 가지고 얻는 이득이 조금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미치는 그 어마어마한 영향력에 대해서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내가 사람을 죽인다면 그 살인이 얼마나 그 가족들에게 큰 슬픔과 고통을 가져다 줄 것인가? 우리가 분명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필라델피아 유학생 가운데 아주 초창기 유학생 중에 오인호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길을 가다가 여러 사람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고 돈을 빼앗겼는데 청소년들한테 돈을 빼앗긴 거죠. 돈을 빼앗기고 그리고 맞아서 칼에 찔려서 죽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들이 취해 간 것은 얼마였냐면 댄스장 파티에 들어가기 위해서 결국 겨우 작은 몇 페니(penny) 얻기 위하여 그 적은 돈을 얻기 위하여 사람을 죽였고. 그들은 그 이득을 취해서 자신들의 이익을 가지고 즐거움을 삼았을는지 모르지만 큰 꿈을 가지고 미국에 왔던 그 청년과 그 가족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는가에 대해서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 심각한 죄들 불륜이나 도둑질이나 살인과 같은 그런 심각한 죄들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다반사로 짓고 있는 그 어마어마한 죄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셨습니까? 지금 내가 미워하고 있는 그 미움이 그 상대방에게 줄 수 있는 그 엄청난 스트레스와 파괴력에 대해서 생각해 보셨습니까? 내가 외면하고 있는 그 외면 하나가 얼마나 그 수많은 사람들에게 아픔을 주고 상처를 주는가를 생각해 보셨습니까? 내가 하는 그 말 한마디가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말을 던지고 나는 그 말이 충고라고 생각하고 한 말을 던졌지만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뒤집어 놓고 밤잠을 자지 못하게 만들고 속상하게 만들고 있다고 하는 그 사실에 대해서 생각해 보셨습니까?

욥이라고 하는 사람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그 고통으로 인하여 자식도 잃고 그리고 아내도 떠나고 자신의 몸은 온갖 질병으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친구들이 와서 사랑의 충고를 해줍니다.말 한마디 한마디로 말을 하는데 자신들은 그것이 충고라고 생각해요. 그것이 그 사람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는지 모르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그 말 한마디를 듣고 얼마나 큰 고통과 슬픔 가운데 지내야만 했는지.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그 욥에게 더 큰 상처를 안겨주는 그 모습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인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 우리가 행동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 그리고 내가 행동하는 그 눈길 하나하나가 얼마나 많은 아픔과 상처를 주는지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를 지셨냐고요?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 위에서 피와 물을 다 쏟으시며 그 엄청난 고난을 당하야만 했는가? 바로 내가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냥 자연스럽게 나오는 그 어마어마한 그 죄들 때문에.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그런 죄들 때문이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해 보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그 죄약과 우리들의 그 잘못들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다고 하는 사실을 생각해 보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죄에 대한 매력이 있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그 나무의 실과를 먹을 때에 사탄이 하와를 유혹하면서 그것을 먹으면 보암직하고 먹음직스러운 그 선화가를 먹으면 자신들의 눈이 밝아질 것이고 하나님처럼 될 것이고 좋은 좋은 결과들만을 가져올 것이라고 그 하와를 유혹하고 속였지만, 그것이 가져오는 그 심각한 결과에 대해서는 전혀 말해주지 않았던 것처럼 오늘 우리들은 죄에 대해서 아무런 생각 없이 죄를 짓습니다.

그저 내가 하는 이 조그마한 거짓말 하나 조그마한 속임수 하나 조그마한 말 한마디 하나가 아무런 것도 아니라 생각하고 죄를 짓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못 박혀 죽으시는 그 죽음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내 죄가 얼마나 심각한 죄가, 내가 하는 그 행동 하나가 얼마나 큰 죄가 되었는가에 대해서 우리가 분명하게 인식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성 금요일을 맞이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해서 오늘 하루 종일 묵상해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피 흘려주시고 벌거벗은 몸으로 우리가 흔히 유화에서 보는 그림에서 보는 그 수치스러운 부분을 가려놓은 예수님의 모습이 아니라 수치스러운 그 모습 그대로 상처당하고 벌거벗은 몸으로 십자가 위에서 한없이 나약하게 죽으신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오늘 저와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한 가지 생기는 그 소망이 하나 있다고 한다면 죄에 대한 실증이 유발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바라보면서 이것이 얼마나 큰 결과를 가져왔는가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죄라고 하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죄에 대한 실증들이, 디스테이스트(distaste)가 우리들의 마음속에 생겨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은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하며 주님께서 나를 위하여 죽으신 그 놀라운 은혜를 발견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엄청나게 타락하여서 완전히 구제 불능인 인간이 되고야 만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선행으로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종종 착각하기를 내가 이만큼 선행을 했기 때문에 내가 이만큼 착한 일을 하고 이만큼 내가 종교적으로 열심을 내고 내가 이만큼 노력을 하고 이만큼 이루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를 받아주실 것이라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내가 지은 죄에 대해서는 아무런 감각이 없고.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는 까마득하게 잃어버린 채 그저 내가 했던 조그마한 그 착한 일들 내가 했던 조그마한 열심들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나를 받아주실 것이라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것은 우리의 죄가 너무나도 심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좀 더 열심히 신앙생활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좀 더 열심히 선한 일을 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그래서 그 보혈의 피를 우리가 힘입는 것 밖에는 우리들에게 아무런 소망이 없음을 오늘 이 시간에 다시 한번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 우주에 가기 위해서 우리가 아무리 장대 높이 뛰기를 열심히 연습한다 한들 그 우주에 갈 수는 없는 겁니다. 아무리 건장한 체력을 가진 올림픽 금메달 선수 수라고 할지라도 그가 높이 뛸 수 있는 높이는 겨우 몇 미터 밖에 안 됩니다. 우리가 우주에 갈기 위해서는 우주선이 우리에게 필요하듯이 오늘 우리의 죄로 그 심각한 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 지신 그 놀라운 사랑에 은혜밖에 없음을 오늘 이 시간에 저와 여러분들이 다시 한번 기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 6절과 7절에서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갖춰 사람들과 같이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죄악으로 인하여 멸망당할 수밖에 없을 때에.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입니다 저 높고 높은 하늘 위에서 만왕의 왕이시오. 주 되신 우리 주님께서 이 세상에 인간의 몸을 가지고 오셔서 어린아이의 몸으로 태어나 사람으로 사시고 사람의 고통을 당하셨다고 하는 그 사실에 우리가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수준을 낮춰서 밑으로 내려가는 것처럼 어려운 것은 없습니다.

제가 다른 나라를 여행해 보니까 그것이 어렵더라고요. 미국이라고 하는 세계 최고의 선진국에서 살다가 제3 세계에 가게 되면 그렇게 불편한 게 많아요. 멕시코에 갔더니 화장실이 너무나도 불편해요. 나는 세상에 가면 모든 화장실은 다 미국의 화장실과 같을 거라 생각하고 갔는데 화장실에 앉을 수 있는 그 뚜껑이 없어요. 그냥 사기로 된 그 부분만 있고 사기 위에 얹어 놓아야 될, 우리가 앉을 수 있는 그 부분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화장실에 가서 큰 일을 보려고 하면 볼 수가 없어 가지고, 계속 밖에서는 꼭 참고 지내다가 겨우 호텔로 돌아와서 겨우 일을 보고야 말았다는… 실컷 돈 내고 들어갔는데요. 그 공중변소인데. 돈 내고 들어가야 돼. 돈 내고 들어가야 되는 데. 아, 들어가서 큰 일은 보지도 못하고.

온두라스에 갔더니 얼마나 너무나도 힘들게 사는지 모릅니다. 정말 옛날 우리 대한민국이 6.25 시절 때 어려운 그 모습 그대로 그대로 가지고 있는 그 모습 세상에 이렇게 힘든 것도 있구나. 미국에 살다가 다른 나라로만 가도 심지어 한국만 가도. 여전히 불편한 것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공중 화장실에 대는 제일 힘든 게. 아무튼 화장실이 제일 힘든데. 어느 곳에 가든지 정말 자신의 수준을 낮춰서 내려가는 것이 어려운데 우리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위해서 하신 것이 있다고 한다면 만왕의 왕 되신 그 주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사람으로 사셨다고 하는 것이고 사람으로 사실 뿐만 아니라 십자가 위에서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셨다고 오늘 본문의 말씀 가운데서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이 오늘 저와 여러분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고,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해 주신 그 놀라운 사랑에 표현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오늘 고통을 바라보면서. 주님의 고통을 바라보면서.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가? 우리 어머니들이 우리를 위하여 수많은 고생을 하신 것처럼 아버지의 사랑 어머니의 사랑과 같이 우리를 품으시는 그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들이 예수님으로 인하여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그 놀라운 특권을 우리가 받았다고 한다면 이제 우리에게 놓여져 있는 하나의 과제가 있는데 이 마음을 품으라 오늘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구원을 받았으니 이제는 내 공로가 아니라 주님의 공로로 인하여 천국에 갈 수 있게 되었으니 이제는 마음껏 살아도 좋겠다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우리가 무엇은 우리의 능력으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우리가 천국에 가기 때문에 이제는 내가 아무렇게나 살아도 괜찮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으니 이제는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자답게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이 마음을 품으라 말씀하시는 그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인생을 살아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십자가의 그 은혜가 오늘 나의 마음속에서 그리고 내 행동에서 하나하나 하나님을 닮아가게 하는 그 열정으로 바꾸어지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가짜입니다. 1만 달란트를 탕감받은 자가 100데나리온 용서하지 못하는 그 모습을 가지고 있다면 그 용서받은 것 가짜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을 권면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 권면하시는 이 말씀을 저와 여러분들이 깊이 묵상하면서 주님의 마음 닮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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