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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배의 결실 (막 4:1-9)

예수님의 가족 (막 3:31-35) +++ 등경 위의 등불 (막 4:21-25)

오늘 우리는 아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비유를 읽었습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로 알려져 있는 비유인데요. 농부가 나가서 씨를 뿌리게 될 때, 그 씨를 씨가 좋은 밭에 떨어진다고 한다면,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는 주님의 말씀을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씨앗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 작은 것입니다. 정말 작은 그 씨앗이 한 번 땅에 심기게 된다고 한다면, 그리고 싹이 나고 자라고 열매가 맺히게 된다고 한다면, 그 수확이 정말 대단합니다. 예수님께서는 30배 60배 100배라고 말씀하셨지만, 제가 보기에는 100배가 아니라 수천 배의 열매를 맺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늘 정원에 올라가시면 우리 문갑열 장로님께서 심어놓으신 아로니아가 있습니다. 아로니아. 아로니아가 있는데, 작년에도 엄청나게 많은 열매가 맺혔는데, 금년에도 엄청난 열매가 맺혔는데, 수천 개의 열매가 맺힌 것 같아요. 원하시는 분 아무나 가서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정말 작은 씨앗 하나가 땅에 심겨서, 그것이 자라고 그리고 열매를 맺게 되면, 30배 60배 100배의 결실만이 아니라, 엄청난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하는, 너무나도 자명한 자연의 원리를 사용하셔서, 예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교훈해 주시고 계시는 겁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도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심긴다고 한다면, 우리들의 마음이 좋은 옥토와 같이, 좋은 밭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기만 한다고 하면, 엄청난 열매가 맺힐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4장 8절 말씀입니다.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30배나 60배나 100배가 되었느니라.” 하지만 이렇게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을 수 있는 이 씨앗도, 똑같은 씨앗이지만 이것이 좋은 밭에 심기지 아니하고, 길가에 떨어지거나 혹은 돌밭에 떨어지거나, 가시 떨기에 떨어지게 된다고 한다면, 아무런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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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를 맺지 못하게 되는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씨앗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뭐가 잘못됐죠? 밭이 잘못된 것입니다. 좋은 밭이 아니면 아무런 결실을 할 수도 없다고 하는 것이 주님께서 들려주신 비유의 핵심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해 주셨는데요. 예수님께서 오셔서 말씀하시기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마다 수많은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영생의 씨앗을 뿌려주셨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주님께 회개하며 나오는 사람들, 주님 앞에 나와서 은혜를 받는 사람들, 고침을 받는 사람들,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정말 하나님의 나라의 그 복음의 빛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절대로 회개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도 주님을 만나면서 그 앞에서 회개하기 시작했는데요.

대표적인 케이스가 삭개오와 같은 사람입니다. 누가복음 19장 8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기록합니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쭤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삭개오라고 하는 세리장이의 입에서 이러한 고백이 나왔다고 하는 것은 정말 놀라운 고백이죠.

삭개오라고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돈을 제일 사랑한 사람이었습니다. 돈을 하나님처럼 생각한 사람이 바로 삭개오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악착같게 벌기 위해서, 조국도 팔아버리고, 신앙도 팔아버렸던, 그런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받는 사람이 바로 삭개오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그 순간에 그의 마음이 완전히 열리게 되었고,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래서 그의 삶 가운데 열매가 맺히기 시작하는데, 우리 주님께서 이 삭개오를 보시며, 너도 이스라엘 민족이라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수가 성 여인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이 사람은 남편을 다섯씩이나 갈아치운 여인이었습니다. 사람들 앞에 쉽게 나설 수 없는 너무나도 부끄러운 인생을 살았던 여인이었던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그 여인도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그 순간에 그의 마음이 열리게 되었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을 향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요한복음 4장 29절의 말씀을 보니까 이렇게 기록합니다.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이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은 자신이 더러운 죄를 지었던 그런 부끄러운 인생이었지만,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그 순간에 마음이 열리게 되었고, 그리고 그의 삶이 변화가 되었고, 전에는 슬픔과 어두움 가운데 지냈다고 한다면, 이제는 기쁨으로 그의 인생이 변화되는 엄청난 변화의 역사가 이 수가성 여인에게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예가 성경에 무수하게 나옵니다. 앉은뱅이가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에 일어나게 되었고, 죽은 자가 살아나게 되었고, 문둥병자가 깨끗함을 얻게 되었고, 간질병자나 귀신 들린 자가 고침을 받는 엄청난 놀라운 사건들이 벌어지게 된 것이죠.

하지만 똑같은 예수님을 만났으면서도, 그 시대에 예수님을 똑같이 만났으면서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서 삶이 바뀌고, 정말 그 사람의 관점이 바뀌고 변화가 일어나는 사람들이 있었는가 하면, 예수님을 만났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이 과거와 똑같은 그런 사람들이 있었는데요. 이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으면서도, 깨닫지 못했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귀를 막아버렸고, 눈을 감아버리고 그 은혜로운 말씀을 들었지만,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아니하는 그런 안타까운 모습만을 보여주었습니다. 심지어 이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예수님을 대적하고 죽이려고까지 하는 그런 반응을 보였는데, 어디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예수님의 말씀에 문제가 있습니까? 예수님이 문제가 있습니까? 누구에게 문제가 있습니까? 예수님 예수님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변화가 일어날 텐데, 마음속으로 거부해버리며 받아들이지 않는 이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의 마음은 좋은 밭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만일 우리들의 마음이 좋은 밭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들의 삶 가운데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겁니다. 만일 우리들의 마음이 좋은 밭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겁니다. 하지만 우리들의 마음이 좋은 밭과 같지 아니하고, 길가와 같아서 말씀을 들으나 다 빼앗겨 버리고, 또 돌짝밭과 같아서, 가시떨기와 같아서 우리들의 삶 가운데 일어나는 조그마한 어려움과 고난이 있을 때, 믿음을 잃어버리거나, 또는 여러 가지 재물의 유혹에 우리들의 믿음을 잃어버리는 경우들이 많이 발생하게 되는데, 우리가 분명하게 기억해야 될 것이 있다고 한다면, 우리가 믿음으로 반응하는 것을 방해하고자 하는 영적인 세력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이러한 영적인 싸움 가운데서, 영적인 전쟁 가운데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다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사탄은 우리가 은혜받고, 우리가 깨닫고, 우리가 변화되어, 우리가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죠. 그래서 마치 길가에 떨어진 씨앗을 사탄이 와서, 새가 날아와서 먹어버리듯이,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열매가 맺히지 아니하도록 방해하고 있는 세력이 있습니다. 그 영적인 세력에 대해서 우리가 인식하지 아니하면 속아 넘어가는 것이죠.

사탄은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고 있는데요. 호시탐탐 우리를 노려서,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정말 바라보고 있습니다. 우리의 약점이 무엇인가? 사람들에게는 다 약점이 있는데, 어떤 사람에게는 돈이 약점이고, 어떤 사람에는 명예가 약점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자식이 약점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자존심이 약점이고, 각각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약점이 있는데, 사탄은 그것을 공격해서 우리가 믿음의 열매를 맺지 못하도록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기록합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우리의 믿음을 열매 맺지 못하게 만들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누가 하고 있는가? 사탄이 하고 있다는, 그래서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철저한 대비를 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제가 어떤 농부를 만났는데요. 농사를 짓는 분을 만났는데 그분이 보니까 농사를 열심히 짓더라고요. 열심히 지으면서 이분이 빠뜨리지 않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면, 울타리를 치는 거예요. 울타리를 울타리를 왜 쳤습니까? 그랬더니 농사를 아무리 많이 잘 지어놓은다고 할지라도, 들짐승들이 와서 다 먹어버린다는, 고라니가 와서 먹어버리고, 멧돼지가 와서 다 헤집어 놓고, 그래서 그 모든 수고가 헛수고가 됐기 때문에, 그러한 들짐승들이 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 울타리를 아주 강하게 철저하게 울타리를 다 쳐놓고 그래서 그 식물들을 보호하면서 농사짓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이것을 보면서 영적인 면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우리가 깨어서 근신하지 아니하면 우리의 믿음을 빼앗길 수가 있는 것이고, 결국 열매 맺지 못하고, 헛수고가 될 수밖에 없는 그 사실을 우리가 기억하면서, 날마다 날마다 깨어 경성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 우리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길가와 같고, 돌짝 밭과 같고, 가시떨기와 같고, 좋은 옥토 밭과 좋은 밭과 같은데, 우리의 마음이 왔다 갔다 할까요? 한 번 정해지면 그걸로 계속 똑같을까요? 왔다 갔다 합니다. 왔다 갔다. 우리의 마음이 한 번 좋은 밭이면, 그러면 끝까지 계속해서 좋은 밭일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근데 그렇지 않아요.

종종 어떤 사람은 이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해석하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제가 들은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밭이라고 하는 것은 스스로 변할 수 없는 겁니다. 길가가 스스로를 기경해 가지고, 좋은 밭이 될 수 없고, 돌짝 밭이, 가시떨기 밭이 스스로를 기경해서 좋은 밭이 될 수 없는 것이고, 처음부터 길가는 길가고, 처음부터 돌짝 밭은 돌짝 밭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가시떨기는 가시떨기고, 끝까지 처음부터 좋은 밭은 좋은 밭이기 때문에 사람은 안 변하는 겁니다. 똑같은 겁니다.” 그래서 결국 이 비유는 어떤 비유냐? 밭의 비유가 아니라, “씨를 뿌리는 자”의 비유요 하나님께서 누구를 구원하고 누구를 구원하지 않고 예정해 놓으셨으니까, 그 예정론을 말하는 비유이지, 우리의 마음이 변화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고 그렇게 설명하는 예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혹시 그렇게 들으신 분 계십니까?

그렇게 설명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그게 잘못된 설명입니다. 밭이라고 하는 것은 밭은 스스로 변화될 수가 없습니다. 길이 스스로 변화돼서 좋은 땅이 된다든지, 가시밭이 스스로 가시를 다 걷어내고 좋은 땅이 된다든지, 그렇게 변화될 수 없는 것이 밭의 특성입니다. 하지만 우리 마음은 달라요. 우리 마음은 어떤가? 우리 마음은 때로는 좋은 밭일 수도 있다가, 시간이 지나면 길가와 같은 마음처럼 되기도 하고, 때로는 자갈밭과 같은 그런 마음이 되기도 하고, 우리들의 마음은 상황에 따라서 변하고 또 변하고 또 변하는 것이 우리들의 마음일 수밖에 없어요.

예수님께서 이 비유의 말씀을 해 주신 이유는 뭐냐면, 너희 여러분들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이미 결정됐으니까,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기 위해서 이 비유의 말씀을 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의 마음을 이 좋은 옥토와 같이, 좋은 밭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잘 받아들여서 “열매 맺는 믿음을 가져라”라고 하는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께서 이 비유의 말씀을 해주신 줄로 믿습니다.

위대한 믿음의 영웅들을 보면, 그 위대한 믿음의 영웅들은 항상 그 마음이 좋은 밭과 같은 상태를 유지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때는 참 좋은 밭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조금만 시간이 지난 다음에는, 그 좋은 밭처럼 보였던 사람이 길가와 같은 모습을 보일 때가 있는 것이죠. 왔다 갔다 하는 겁니다. 왔다 갔다. 우리들도 역시 마찬가지인데요.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때로는 마음이 열려서 좋은 밭과 같아서 말씀을 들으면 은혜를 받고, 그래서 정말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기쁨과 감사로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데 어떤 때에는 우리들의 마음이 냉랭해져서, 전혀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오지도 않고, 아무리 말씀을 들어도 기쁨이 없고, 감사가 없고, 오히려 속에서 불평과 불만이 솟아오르면서 그렇게 힘들게 변해버리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사탄이 우리들의 마음을 공격하기 때문에, 때로는 말씀을 들어도 마음속에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빼앗겨버리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고난과 핍박을 당하면서 믿음이 흔들리기도 하고, 때로는 제물의 유혹에 의해서, 우리들의 믿음이 무너져버리게 되는, 그런 결론을 볼 때가 많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깨어 신실하게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할 것이고, “주님, 우리들의 마음을 좋은 밭과 같이 만들어 주시옵소서.” 기도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과연 어떤 상태인가? 길가와 같은가? 아니면 좋은 땅과 같은가? 돌밭과 가시떨기와 같은가? 아니면 좋은 밭과 같은가? 우리 자신을 매 순간순간마다 진단해 보아야 합니다. 그 진단의 방법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아무런 감동도 없고, 아무런 기쁨도 없고, 감사의 마음도 없고, 그렇게 무뎌져 있다고 한다면 아주 위험한 신호일 겁니다. 오히려 내 마음 가운데 불평과 불만이 솟아오르기 시작한다고 한다면, 그건 아주 위험한 신호일 것입니다. 사탄이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서 말씀의 씨앗을 빼앗아버리고,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시기와 질투와 분노와 불만의 마음을 심어놓는다고 한다면, 우리들의 마음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우리가 경각심을 가지고 주님 앞에 되돌아와야 할 것입니다.

요즘 코로나로 인해서 많이 힘들어들 하고 계시는데요. 코로나가 위험한 이유가 무엇이죠? 그것은 그 누구에게라도 걸릴 수 있다는 겁니다. 아주 평범한 평민들에게만 걸리는 것이 아니라, 유명한 사람들에게도 다 걸릴 수 있는 거예요. 조심하지 아니하면, 마스크를 쓰지 아니하면, 거리 두기 하지 아니하면, 걸릴 수밖에 없는 것이 전염병인 것인 것처럼, 이렇게 믿음이 나약해질 수 있는 현상은 누구에게 오는가? 우리 모두에게 올 수 있는 것이고, 우리도 항상 무너질 수 있는 거예요. 목사님이라고 안전하냐? 그렇지 않아요. 이 세상에 안전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죄악의 영향권 아래에 있는 것이고, 우리도 깨어 경성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한때는 좋은 밭과 같아서, 그래서 수많은 열매를 맺었던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어느 순간에 가면 길가와 같은 그런 모습을 보일 수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조심하면서 믿음으로 나아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 예를 우리가 어디서 볼 수 있습니까? 바로 다윗에게서 볼 수가 있습니다. 다윗이라고 하는 사람은 아주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믿음으로 골리앗을 무찔렀던 사람이었고, 믿음으로 사울 왕을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다윗은 매 순간순간마다 하나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전쟁을 해야 되는 그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 앞에 먼저 뜻을 구했습니다. “하나님, 전쟁을 해야 됩니까? 하지 말아야 됩니까?”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면 하고, 하나님께서 멈추라고 하면 멈추고, 늘 하나님과 동행하던 사람이 바로 다윗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좋은 옥토와 같은 마음을 가졌던 그 다윗도 어느 날 은혜가 메말라 버리기 시작하고, 하나님에게서부터 떠나게 되었는데, 그가, 그 신실하던 사람이 간음죄를 저지르고 살인교사죄를 저질렀던 모습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고요. 하나님의 뜻에 합했던 정말 겸손한 사람이 인구조사를 하면서 교만한 마음 가운데 자신을 드러내려고 했던 그런 죄악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다윗도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면, 우리들은 얼마나 더 쉽게 잘 무너질 수 있겠는가를 생각하면서 깨어 경성해야 되는 것이죠. 왕년의 믿음이 좋았다고 자랑할 것이 아니고, 거기에 안주해야 안주할 것도 아닙니다. 에베소 교회는 첫사랑을 잃은 것으로 인해서 주님께서 책망하셨는데, 우리도 처음에는 정말 뜨거운 사랑을 가졌던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믿음이 식어질 수가 있는 것이고, 특별히 코로나 상황을 맞이해서 우리의 믿음이 자꾸만 나태해지고, 하나님 앞에 서려고 하는 그러한 생각들이 점점점 희석되어 가면서, 우리들의 믿음이 나태해질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우리 자신을 진단해보고, 그래서 기쁨과 감격이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면,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아무런 감동이 없다고 한다면, 대신에 불평과 불만들이 자꾸만 생겨나고, 그런 마음들이 생기기 시작한다고 하면, 이것은 아주 위험한 상태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될까요? 첫 번째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나아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 우리의 능력으로 완벽해질 수가 없는 우리의 마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좋은 밭과 같이 되려고 한다고 하면, 내가 좋은 밭이 돼야지 해서 되는 게 아니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해야 돼요. 우리가 할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이고,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피 흘려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해야 되는데요.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셨습니다. 야고보서 1장 5절 말씀에,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말씀해 주셨어요.

그래서 우리가 믿음이 연약해진다고 한다면, 우리들의 모습을 돌아볼 때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기쁨이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면, 감격이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면, 말씀을 들어도 우리들의 마음에 아무런 감격이 없다고 한다면, 성경 말씀을 읽는 가운데 아무런 감동이 없다고 한다면,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해야 됩니다. “하나님, 저희들의 마음을 바꾸어 주옵소서. 좋은 밭과 같이 되게 해 주옵소서.” 기도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될 기도의 제목들 가운데, 우리의 건강을 위한 기도 제목이나, 돈이나 혹은 사업이나 결혼을 위한 그 어떤 이 세상의 것들을 위한 기도보다도, 우리의 마음이 영적으로 깨어 있어서 좋은 밭과 같은 상태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할 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로는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가 서로를 도와주어서, 믿음으로 깨어 있는 일에 함께 협력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신앙생활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신앙생활은 나 혼자 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어디로 불러주셨냐면 교회라고 하는 공동체로 불러주셨습니다. 교회라고 하는 공동체로 불러주신 이유가 무엇이냐면, 교회 안에 완벽한 사람들이 있어서 불러준 것이 아니라, 다 연약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불러주셨는데요. 그 연약한 사람들이 서로가 서로를 도와주고 당겨주면서, 함께 믿음이 성숙해져 나갈 수 있도록, 서로 도와주라고 우리를 교회라고 하는 공동체로 불러주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격려하고 위로해 줘야 됩니다. 우리 주일날 잘 못 뵀는데, 우리 주일날 교회에서 좀 봅시다. 서로 격려해야 되는 거예요. 코로나 시대에 믿음이 나태해지기 쉬운데, 우리 함께 같이 믿음 생활 잘합시다. 서로 격려해야 되는 거죠. 함께 격려하고 나아갈 때, 우리의 믿음이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신 것이죠.

등산을 하게 되면 힘들고 어려운 구간이 있습니다. 처음에 등산하기 시작하면, 재밌어요. 산을 가는구나. 재밌어가지고 산을 올라갑니다. 그런데 올라가는 게 쉽지가 않아요. 조금 올라가다 보면 힘이 딸려요. 그래서 저 정상까지 산을 등산하기로 했는데, 저 정상에 가지 못하고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합니다. 내가 정상에 갈 수 있을까? 힘들다. 그냥 돌아갈까? 그냥 돌아갈까? “에이. 돌아가야 되겠다.”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듭니다. 그래서 중간에 쉬기 위해서 돌 위에 앉아서 쉬고 있으면, 위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이 앉아있는 우리를 향해서 말해줍니다. “얼마 안 남았어요.” “조금만 가면 정상입니다.” 그 말을 듣고 다시 힘을 내는 거예요. “정말 저 위에 갔더니, 정말 상쾌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아, 그래요?” 포기하려고 했다가 그 말 듣고, 다시 일어나서 정상에 올라가는데, 정상이 안 보여요. 아직 멀었어요. 그런데 위에서 내려오는 사람이 하는 말이 “조금만 가면 됩니다.” 그 소리를 듣고 올라가는 거예요. 올라가다가 또 힘들어서 쉬면, 위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이, “저 위에 올라갔더니, 정말 좋아요.” 그러는 거예요. 그 말을 듣고, 또 올라가는 거예요. 만일 나 혼자 올라간다고 하면, 3분의 1이나 올라갔다가 그냥 되돌아올지 모릅니다. 같이 가는 사람이 없으면, 조금 가다가 말지 모릅니다. 하지만 함께 올라가면서, 친구와 함께 올라가는 과정 가운데, 서로 힘이 되어서 같이 올라가요.

제 대학 시절에 설악산 대청봉을 올라간 적이 있습니다. 누구랑 올라갔냐면, 신체장애를 가지고 있는 우리 후배랑 같이 대청봉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래도 같이 올라가면서, 올라가는데 신체장애가 있으니까 너무나도 힘든 후배가 있는 거예요. 못 올라가는 거예요. 어떻게 했을까요? 그럼 못 올라가니까, 스탑 하고 되돌아간 것이 아니라, 거기서 들것을 만들었습니다. 들것을 만들어 가지고, 그 후배를 태우고, 설악산까지 데리고 올라가서, 데리고 올라갔어요. 그게 동료의 힘인 거죠.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는 것인가? 신앙생활은 나 혼자 있으면, 넘어질 수밖에 없어요. 우리들의 마음이 점점 단단해져서 열매 맺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 우리가 함께 신앙생활하면, 서로 격려하고 힘을 북돋우어주면서, “같이 가자” 하는 거예요. “일어나 함께 가자.” 그럴 때 우리들의 믿음이 함께 성장해 나갈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 예수 비전의 성도로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 모두들은 함께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면서 믿음의 길을 함께 가는 가운데 같이 좋은 밭을 향해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옆 사람 보고 한번 얘기합시다. “함께 갑시다.” 네 감사합니다.

세 번째로 사탄은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서 자꾸만 우리를 무너뜨리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그러한 사탄의 영향력들을 제거해 버려야 합니다. 아가서 2장 15절의 말씀에서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으니라.” 포도원을 만들어 놓고, 그 포도원에 꽃이 피며 이제 열매를 맺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 포도원을 허무는 작은 여우가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는 겁니다. 어떻게 하라? 그 여우를 잡으라.

우리가 신앙생활하는 가운데 우리의 신앙을 무너뜨리려고 하는 악한 영향력들이 있습니다. 특별히 불평과 분노라고 하는 것은 사탄이 우리들의 마음을 장악하기 위한 가장 손쉬운 통로가 되겠는데, 코로나보다도 더 전염력이 강한 그런 분노와 불평의 잘못된 영향력들이 우리들의 마음을 무너뜨리기 쉬울 때, 그것들을 우리가 물리쳐 내야 합니다. 우리 신앙의 공동체 가운데 믿음을 무너뜨리는 일들이 있다고 한다면, 거기에 귀를 기울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라 살아가야 되는 것이죠.

출애굽 할 때였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저 애굽 땅에서부터 해방되어서 가나안 땅을 향해 가고 있는 가운데, 그 이스라엘 민족 전체로 하여금 죄를 짓게 만드는 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 어떤 사건이냐면 그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섞여 있던 무리들이 있었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들과 함께 나온 다른 민족들이 있었는데, 그 다른 민족들이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민수기 11장 4절 말씀입니다.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해방이 된 것이 얼마나 큰 기쁨입니까? 노예 생활하다가 해방되어서, 이제 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향해서 가는 그 길 가운데, 감사가 넘치고 기쁨이 넘치고 행복하게 그 길을 걸어가야 되는데, 그 다른 인종들이 섞여 있어서 그 인종들이 뭐라고 하기 시작했냐면, 탐욕을 품기 시작하고 먹을 것이 없다. 고기가 없다고 불평하기 시작했는데, 그래서 그 불평이 전염병처럼 퍼지기 시작해서 온 이스라엘 민족들이 원망하기 시작하게 했던 거죠.

우리의 신앙생활을 무너뜨리는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게 만드는 그런 전염병과 같은 불평과 불만의 원망들의 소리들이 자꾸만 퍼져나갈 때, 거기에 휩쓸려 동화될 것이 아니라, 그러한 작은 여우와 같은 것들은 잡아버리고, 선한 영향력들을 서로가 서로에게 나누어 주면서, 함께 믿음을 같이 세워 나가는 가운데, 우리들이 많은 열매를 맺는 이 무더운 여름 날씨에 이 기간만 지나고 나면, 이제 조금 한 달 뒤면 두 달 뒤면 수많은 열매가 맺히는 것처럼, 지금 우리의 이 삶 가운데서 여러 가지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많이 있다고 할지라도,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 말씀이 우리들의 삶 가운데서 열매 맺기를 사모하면서, 우리들의 삶 모두에게서 선한 열매들이 성령의 열매들이 많이 나타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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