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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가족 (막 3:31-35)

한 번은 예수님께서 말씀을 가르치고 계실 때 예수님의 가족들이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와 그리고 예수님의 동생들, 누이들이 예수님을 찾아오게 됐습니다. 오늘 마가복음에 보면 예수님의 동생들이 찾아왔다고 그렇게 표현하고 있는데요.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동생들이 아니라 형제들이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말에는 촌수 관계가 아주 명확한 것이 특징인데요. 그래서 형이 있고, 동생이 있고, 사촌이 있고, 이렇게 구분하는 표현법이 아주 발달된 언어가 우리나라 언어이지만, 영어를 비롯해서 헬라어 같은 언어들은 그런 촌수 구별이 불분명한 언어들이라서, 형 동생이 구분되지 않습니다. 영어에서 brother 그러면 형을 의미할 수도 있고 동생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brother를 번역하려고 하면, 형제라고 번역해야 되는 것처럼, 오늘 마가복음 3장에 예수님을 찾아온 동생들이 있다고 한 이 표현도 헬라어 원문은 동생들이 아니라, 그냥 형제들이라고 하는 표현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로부터 예수님께서 첫 번째 아들이니까, 마리아에게 다른 아들들이 있다고 한다면, 다른 딸들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동생들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번역하는 자가 형제들이라고 번역하기보다는 동생들이라고 의역해서 번역해 놓은 것입니다.

아무튼 예수님께서 한참 사역을 하고 계실 때, 말씀을 전하기도 하고, 또 병자들을 고치기도 하고, 정말 아침부터 저녁까지 엄청난 그 사역에 집중하고 있는 그 상황 가운데, 예수님의 가족들이 예수님을 찾아온 겁니다. 천주교에서는 마리아에 대해서 신격화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지금도 그런지 어쩐지는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천주교를 연구하는 사람도 아니고, 천주교를 잘 모르기 때문에 정확하게 그 입장이 오늘날에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천주교 쪽에서는 마리아를 신격화시키는 일들이 많이 있어서, 성경에 없는 내용까지 마리아에게, 이렇게 마리아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요. 그 가운데 하나가 무엇이냐면, 천주교에서는 마리아가 평생 동정녀로 살았다고 하는 주장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낳았지만, 예수님을 낳은 이후에도 평생 동정녀로 지냈다고 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요. 이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고, 성경적인 지지를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일 뿐만 아니라, 성경에서는 전혀 지지하고 있지 않은 과도한 주장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마태복음에 보면 예수님을 낳기 전까지 동침하지 아니하였다고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아마도 예수님을 낳은 이후에는 요셉과 마리아가 정상적인 부부로서의 삶을 살았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러운 해석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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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예수님을 찾아온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예수님의 형제들 동생들 그리고 누이들이 찾아왔다고 했는데, 이 동생들이나 누이들은 예수님의 사촌일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왜냐하면 헬라어 자체가 촌수가 불분명한 언어이기 때문에, 사촌일 수도 있겠다고 말하면 그렇게 전혀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가장 자연스러운 해석은 예수님의 친 형제들이 찾아왔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울 거라고 생각이 됩니다.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은, 너희들은 예수님을 찾아왔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운 집에 있어서 예수님에게 접근하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접근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말을 해서 어머니가 왔다고 하는 사실 형제들 너희들이 왔다고 하는 사실을 예수님에게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예수님께서 오늘 말씀을 해 주시는 것이 기록되어 있는데요. 예수님의 대답은 참으로 놀라운 반응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의 어머니가 오셨다고 하는 소식을 듣고 형제들이 왔다고 하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 대뜸 주변의 사람들을 보시면서 질문을 던졌습니다. “누가 내 어머니며, 누가 나의 형제들이냐?” 어머님이 오셨다고 하는 소식, 형제 누이가 왔다고 하는 그 소식을 들은 그 예수님께서 던지시는 질문이 “누가 나의 어머니냐? 누가 나의 형제냐?”라고 질문을 던지셨고, 그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스스로 대답하시기를 34절 35절의 말씀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둘러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예요. 어머니이니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내 어머니가 누구냐? 내 형제가 누구냐? 물으신 다음에, 혈연관계에 있는 자가 나의 어머니 나의 형제라기보다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자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이 나의 어머니요. 나의 형제요 자매라고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동양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로는 정말 좀 당황스러운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머니를 무시한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만일 저의 어머니께서 우리 교회를 방문하셨다고 한다면, 저는 어떻게 할 것 같습니까? 저는 자랑스럽게 소개할 것 같아요. 지금은 연세가 많으셔서, 정말 모든 것들이 다 볼품이 사라져 버렸고, 이제는 매력적인 것들이 다 사라져버린 어른이시지만, 여전히 저를 사랑해 주시는 어머니이시기 때문에, 저는 만일 우리 어머니께서 우리 교회에 방문하신다고 한다면, 자랑스럽게 소개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는 어머니가 오셨다고 하는 이야기를 듣고, 형제 누이들이 왔다고 하는 소식을 들은 후에, 이런 말씀을 해 주시는 것일까요?

이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들은 약간의 불편함을 느낄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꼭 기억해야 될 중요한 원칙이 하나 있다고 한다면, 성경을 해석할 때 아주 중요한 원칙이 하나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성경을 어느 한 부분 어느 한 구절 어느 한 표현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성경 전체의 말씀을 살펴보아야 한다고 하는 원칙입니다. 이것을 라틴어로 “토타 스크립투라”(tota scriuptura)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토타”라고 하는 것은 라틴어로 “전체”라고 하는 말이고, “스크립투라”라고 하는 것은 라틴어로 “성경”이라고 하는 말인데, 우리가 성경을 해석하는 아주 중요한 원칙 가운데 하나가 무엇이냐면, 부분만 볼 게 아니라 전체를 봐야 된다는 사실, 성경만이 아니라 사실 우리들의 모든 대화도 마찬가지죠. 어떤 대화나 문맥이나 흐름을 벗어난 어느 한 표현 어느 한 구절에 그것만 똑 떼어내서 말한다고 하면 오해받기 십상입니다. 전체적인 맥락에서 이해를 해야 되는 것이고, 전체적인 흐름 가운데서 그 말이 차지하는 그 의미를 파악하지 아니하면, 오해하기가 쉬운 것이 당연한 것인데요. 성경을 해석할 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구약이 39권 신약이 27권 도합 66번의 방대한 성경 말씀이 있는데, 그 성경 가운데서 어느 한 구절만 뽑아서, 그것만 생각한다고 한다면 우리는 잘못될 가능성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되냐 하면, 그 말씀이 어떤 흐름 가운데서 나왔는지 어떠한 맥락에서 나왔는지를 살펴보아야 되는 것이고, 성경 전체의 가르침에 비추어서 그 말씀을 살펴보아야 하는 것이 성경 해석의 아주 중요한 원칙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따라서 오늘 마가복음 3장의 말씀을 우리가 오래간만에 살펴보게 됐는데요. 이 말씀을 우리가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 전체에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교훈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는 것이 우선일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가족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가족에 대해서 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까?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가 먼저 살펴보아야 될 말씀이 있다고 한다면, 첫 번째로 먼저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고르반”이라고 하는 제도를 악용해서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것에 대해 엄격하게 비판하신 것을 기억해 볼 수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아주 좋은 소나 양들이 있으면 그것으로 부모님을 공경해야 됨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하나님께 바쳤다라고 선언해버립니다. 하나님께 바친 것이라고 선언하는 말이 “고르반”이라고 하는 말인데요. 그렇게 “고르반”이라고 선언을 하게 되면, 아무도 건들 수가 없는 겁니다. 부모님에게 드리지 않아도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유대인들의 마음에 부모를 공경하는 것을 좀 등한시해도 되는 것에 면죄부 같이 “고르반”이라고 하는 제도를 활용하고는 했는데요. 그러한 유대인들을 향해서 예수님께서는 강하게 책망하셨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느냐?” “하나님께서는 내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셨거늘, 왜 하나님께서 주신 그 말씀을 거역하면서,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이유로 부모님을 등한시하느냐?”라고 예수님께서 강하게 책망하셨던 것을 우리가 분명하게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못 박혀 돌아가실 때, 그 십자가 위에서 가상 칠언의 말씀을 하셨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총 7번의 말씀을 하시는 가운데 했던 한 말씀이 무엇이냐면, 제자 요한에게 부탁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가 저 십자가 아래에서 울고 있는 그 모습을 보신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그 어머니를 부탁하시는 말씀을 하신 것이죠. “요한아, 네 어머니라.” 말씀하셨어요. 이제부터는 네가 자식처럼 마리아를 어머니로 모시고 그를 돌봐 줄 것을 지니 부탁하신 것이죠. 그래서 제자 요한은 평생 그 마리아를 잘 모시고, 마치 자신의 어머니처럼 모시게 된 계기가 가상칠언에서 해주셨던 예수님의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디모데전서 5장 8절 말씀에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돼 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무슨 이야기입니까? 가족을 돌보는 일차적인 책임이 우리 가족에게 있다는 거예요. 부모는 자녀를 돌봐야 하는 것이고, 형제들을 돌봐야 하는 것이고, 부모를 돌봐야 하는 것이고, 가족에 대한 책임을 가족들이 져야 된다는 거예요. 내가 신앙생활을 아무리 잘한다고 할지라도, 우리 가족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참된 신앙이라고 할 수 없고, 오히려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라고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 성도들 가운데는 종종 가정을 내 팽개쳐 버리면서 신앙생활을 더 열심히 하겠다고 하는 그런 균형 잡히지 못한 극단적인 광신적인 모습을 보이는 성도들이 종종 있을 때가 있습니다. 내가 주의 일을 한다고 하는 그 핑계로 자녀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는 그 핑계로 가족을 제대로 살펴보지 않는 그러한 잘못을 범할 때가 너무나도 많이 있는데, 성경에서 가르치는 말씀이 무엇이냐면, 가족을 돌보지 않는 자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겁니다.

물론 성경에는 정반대되는 말씀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마태복음 37절의 말씀에 보면,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않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자녀들을 사랑하기는 사랑해야 되겠지만, 하나님보다 우리 주님보다 더 사랑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말씀인데요. 이 말씀은 우리 한국교회 성도님들이 종종 오해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우리 가족을 얼마만큼 사랑해야 되는가? 최선을 다해서 사랑해서는 안 되고, 조금 못하게 사랑해야 된다. 하나님보다는 덜 사랑해야 된다. 주님보다는 덜 사랑해야 된다라고 하는 그런 생각으로 오해하시는 분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래서 누구를 제일 사랑하는가? 하나님이 제일이고, 아내는 그다음이고, 하나님을 제일 사랑하고, 남편은 그다음이고, 하나님을 제일 사랑하는데, 자녀들은 그다음이라고 하는 그런 생각을 가질 때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사실은 그런 의미의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그러니까 우리가 가족을 덜 사랑해도 괜찮다고 하는 말씀이 아니고, 덜 사랑해야만 한다고 하는 그런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가족을 돌보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는 그런 말씀이 아닙니다. 가족은 어떻게 사랑해야 되는가? 정말 사랑해야 돼요. 최선을 다해서 사랑해야 돼요. 그런데 주님께서 해주시는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이냐면, 자칫 잘못하다가는 가족이 우상의 자리로 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자녀를 사랑한다고 하는 것이, 배우자를 사랑한다고 하는 것이, 부모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이, 우리 가족을 돌본다고 하는 것이 때로는 우상이 되어 버려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반하면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배반하면서까지 사랑하게 되는, 그런 잘못된 길로 갈 가능성이 있는 것을 경계하시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 좋은 모든 것들이 다 우상이 될 가능성들이 있는 것이죠. 예를 들자면 돈이라고 하는 것은 쉽게 우리들의 우상이 될 수가 있습니다. 자녀들도 마찬가지로 자녀들이 나의 우상이 될 가능성이 있겠고요. 심지어 정치도 우리들의 우상이 될 가능성이 많이 있습니다. 우상이 된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그러니까 우상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미워해라라고 하는 그런 의미의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가 돈을 벌지 않아야 되는 것이냐? 그렇지 않아요. 돈을 벌어야 돼요 열심히 수고하고 땀을 흘려서 최선을 다해서 눈물로 씨를 뿌리며 수확을 거두기를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하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하지만 언제 우상이 되느냐? 우상이 되는 단계가 무엇이냐면,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면서까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면서까지, 잘못된 방식으로 돈을 벌거나, 우리 자식을 사랑한다고 하는 그 방식이 잘못된 방식으로, 우리 자녀를 사랑하거나, 정치를 좋아하되, 잘못된 방식으로 가짜 뉴스를 퍼뜨리면서까지 그렇게 해서 지나치게 우상화해버리는, 참된 진리의 길이 아닌 가짜 잘못된 길을 따르면서 사랑하는 것은 곧 우상이 되어 버리는 것인데,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우리 가족들이 우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의미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 전체에서 들려주시는 가족에 대한 교훈이 있다고 한다면 사랑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죠. 최선을 다해서 사랑하는 것이 당연할 겁니다. 그런데 왜 오늘 예수님께서는 그런 가르침과는 어긋나는 것처럼 보이는 행동을 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어머니가 오시고, 그리고 형제 자매들이 왔는데, 예수님께서는 마치 무시하는 것처럼, 누가 나의 어머니냐? 누가 나의 형제냐? 물으시면서, 이 말씀을 해 주시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예수님께서 예수님의 친 형제자매들 가족을 무시한다고 하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우리들도 예수님의 가족이라고 하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 말씀을 해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 주님에게 있어서 우리는 누구냐? 우리 하나님에게 있어서 우리는 누구냐? 우리는 의인이 아니에요. 우리는 지나가는 나그네가 아닌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시라는 거예요. 지금 예수님 주변으로 몰려든 그 수많은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께서 품으시고,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하는 사실을 말씀하시기 위해서, 누가 나의 어머니고, 누가 나의 형제들이냐? 바로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이고, 여러분들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하나님의 가정이라고 하는 사실을 말씀하시기 위해서, 이 말씀을 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가족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가족은 아무 때나 찾아올 수 있는 것이 가족이죠. 가족은 아무 때나 필요할 때 전화할 수 있는 겁니다. 아무런 상황 가운데서도 마음대로 들어가는 거죠. 우리 아이들이 꼬마였을 때 제가 교회에서 회의를 하고 있으면, 우리 꼬마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쪽쪽쪽 걸어 나옵니다. 걸어 나와서 “아빠.” 그게 되는 거예요. 물론 제 아내가 “야, 그러지 말라”고 했긴 했지만, 그러나 아버지에게는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거예요. 정말 필요하면 그 모든 것들을 다 중단해 버리고, 그 자녀를 사랑하기 위해서 가는 거예요. 내가 아무리 중요한 일을 하고, 내가 아무리 정말 엄청나게 중요한 그 순간에 있다고 할지라도, 그 순간에 자녀들이 무엇인가 도움을 요청하면, 그 모든 것들을 다 중단해 버리고, 자녀를 위해서라고 한다면, 갈 수 있는 것이 그게 부모의 마음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해 주시는 말씀이 무엇이냐면, 하나님 앞에 우리가 바로 자녀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로마서 8장 14절에서부터 17절의 말씀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우리가 하나님 앞에 누구냐?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사실을 믿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누구냐?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는 거예요.

바로 이 점이 이 세상의 거짓된 잘못된 종교와 성경적이고 참된 종교의 차이점이라고 할 수가 있겠는데요. 이 세상 거짓 종교에서는 하나님이 어떤 존재입니까? 옥황상제. 이런 사람, 이런 존재가 어떤 존재입니까? 아무런 마음의 감정도 없고 동정심도 없는 무심한 심판관이죠. 악을 행하면 심판해버리고 선을 행하면, 상을 줘버리는 공평한 신이 이 세상의 거짓 종교의 신인 겁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가? 공평하신 하나님, 공의의 하나님이시기도 하지만,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실패하면, 쳐내버리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시는,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라고 한다면, 하나밖에 없는 아들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하신 하나님. 양 한 마리를 살리려고 99마리의 양을 내버려두고, 그 양을 찾기까지 달려가서 마침내 찾을 때까지 헤매는 목자와 같이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들을 사랑하시는 아버지라고 하는 사실을 믿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우리의 아버지이신 것이죠. 우리를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시며, 우리가 실패하면 그냥 “실패자구나” 하고 차갑게 심판해 버리시는 그런 분이 아니라, 우리를 살리시기 위하여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가족들이 찾아왔을 때, 가족들은 그 바쁜 순간에 메시지를 보내서 가족이 왔다고 하는 사실을 알릴 수 있을 정도로, 당당하게 예수님 앞에 나올 수 있는 그런 자격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내 어머니 내 형제들만 그런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다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다 하나님의 가족이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이고,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시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어떻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기도하라. 옆집에 가서, “소금 좀 주세요.” 두렵고 떨린 마음으로 창피한 마음으로 옆집에 가서 소금을 달라고 하러 그렇게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꼬마 아이들이 집에 문을 열고 확 들어오면서, 엄마 배고파하듯이, 우리의 문제를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갈 수가 있는 거예요.

“아빠, 힘들어.” 하면 되는 거예요. 왜? 우리의 아버지이시까요. 안타까운 것은 예수님의 진짜 친 가족들은 예수님의 가족이라고 하는 특권을 누리지 못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족이 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엄청난 특권인데,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더 잘 만날 수 있고, 누구보다도 더 예수님과 근접 거리에서 예수님을 볼 수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도 않았고 신뢰하지도 않았습니다. 마가복음 3장 21절 말씀을 보니까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죠. 그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었고, 그 누구보다도 예수님의 말씀을 더 자주 들을 수 있었고, 그 누구보다도 예수님에 대해서 더 확인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님과의 관계를 그 관계의 유익을 누리지 못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저와 여러분들은 주님께서 자녀로 불러주셨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자녀를 입양하게 되었는데, 그 자녀를 입양해서 이제는 “내가 네 아빠야.” “이제는 네 엄마야.” 그러니까 엄마처럼 아빠처럼 그렇게 부르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그 입양 온 자녀가 그렇게 못하는 거에요. 눈치를 보고 혹시라도 나를 쫓아낼까, 내가 잘못하면 나를 버리지는 않을까, 그래서 열심히 청소도 하면서, 쫓겨나지 않으려고 하고, 열심히 내가 착하게 살아서, 바른 행동을 해서 쫓겨나지 않으려고 하는 그런 행동을 보일 때 부모로서의 너무 마음이 아팠다고 하는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런데 하나님 앞에 저와 여러분들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너희들이 바로 내 형제요. 자매라고 말씀해 주시는 그 주님의 말씀을 듣고, 우리가 주님의 존전 앞에 나아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다른 기준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곧 나의 어머니요. 형제요. 자매라.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것을 요구하시는 것이지, 이 세상처럼 이 세상의 조건들을 물어보지 않습니다.

너희들이 가진 돈이 얼마나 있느냐? 너희들이 공부를 어디까지 했느냐? 니 키가 얼마나 크냐? 내 몸무게가 얼마나 나가느냐를 따지지 아니하시고, 오로지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가 주님 앞에 나아가면, 우리를 영접하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이신 줄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 말씀에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우리의 참된 가족이 되어 주시고 계시는데, 우리가 그 가족 됨을 의심하면서 외롭고 쓸쓸하게 그렇게 살아오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이 세상에 가장 어리석은 자가 누굽니까? 의심하는 자가 가장 어리석은 거예요. 의심하는 자가 가장 바보스러운 거예요. 우리는 의심할 게 아니고,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라고 하는 사실을 믿고, 그 아버지 되심을 누리는 것이 필요한 거예요. 저분이 나의 아버지실까? 진짜 맞을까? 저분이 정말 나를 사랑하나? 의심하면서 다가가지 않고, 그 특권을 누리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생을 살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가족들처럼 미치는 것이 아닐까?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의심하면서 다가가지 않는다고 한다면, 아무것도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께서 우리의 참된 구주시고,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의 참된 아버지라고 하는 사실을 믿고, 매 순간순간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은혜의 특권들을 받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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