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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서원 (삿 11:2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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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사사기 11장의 말씀을 함께 읽었는데요. 오늘 이야기는 아주 충격적인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바로 입다라고 하는 사사가 암몬 족속과 전쟁을 하러 가면서 하나님 앞에 서원하고 기도하였는데, 그 서원의 내용이 무엇이냐면, 하나님 제가 암몬 족속과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도와주신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전쟁에서 승리하게 해주신다고 한다면, 승리하고 돌아올 때 우리 집에서 마중 나오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제일 먼저 반기며 나오는 자가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이 누구든지 간에 그 자가 누구든지 간에,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겠다고 하는 서원이었습니다.

번제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죽여서 불로 태워서 하나님 앞에 바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서원이라고 하는 것이 굉장히 위험한 서원이었는데요. 결국 이 입다라고 하는 사사가 이끈 군대가 암몬 족속과의 전쟁 가운데서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그 전쟁 가운데서 승리하고 기쁜 마음으로 돌아오는데, 자기 집에서 제일 먼저 나와서 환영하고 기뻐하고 반겨주는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누구냐면 입다에게 가장 사랑스러운 딸이었습니다. 그것도 어떤 딸인가? 무남독녀 외동딸이 입다를 축하하며 환영하며 맞이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입다의 마음은 무너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너무나도 괴로웠습니다.

서원은 하나님에게 한 것이기 때문에, 그 서원을 변개할 수 없다고 하는 그런 강한 믿음 강한 확신이 있었는데요. 그런데 그 서원의 내용을 지키게 된다고 한다면,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딸을 죽여야 하는, 그리고 번제로 태워버려야만 하는, 그런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 그런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가운데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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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간에 여러분들이라고 하면 어떤 선택을 하실 수가 있겠습니까? 이 두 가지 가치는 모두가 다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하나님께 서원한 것이라고 한다면 변개하지 않고 그대로 지켜야 된다고 하는 것도 아주 중요한 원칙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딸을 죽일 수 없는 것도 하나의 중요한 원칙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데, 이 두 가지 명령이 서로 충돌하게 된다고 하면, 여러분은 무엇을 선택하실 수가 있겠습니까? 아마 이 자리에 앉아 계신 분이라고 한다면, 입다처럼 자신의 딸을 죽이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만일 오늘날 그런 일을 했다고 한다면, 당장 텔레비전 뉴스에서 헤드라인 뉴스를 장식하게 될 것이고, 이런 종교적인 맹신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에 의해서, 이런 어처구니없고 황당한 일이 일어났다고 당장 비난이 들끓게 되는 그 사건일 거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 같으면, 하나님의 약속을 하나님과의 약속을 포기해 버리고, 자신의 딸을 죽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이 되는데, 놀랍게도 오늘 성경 말씀을 우리가 다 읽지는 않았습니다마는 이 입다는 자신의 딸을 하나님 앞에 번제로 드립니다. 이 딸은 자기 아버지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하나님과 서원하셨다고 한다면, 하나님과의 그 약속을 지키십시오. 다만 제가 처녀로 죽음으로 인하여, 잠시 시간 좀 주신다고 한다면, 그 잠시 잠깐 동안의 시간을 가진 이후에, 제가 번제단 위로 올라갈 테니, 나를 죽여 달라고 이야기를 했고 결국 입다는 그 딸을 번제물로 바쳤다고 하는 이야기가, 어쩌면 참 끔찍한 이야기가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 본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얻어야 할 교훈이 있다고 하면 무엇일까요?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이 이야기를 성경 속에 기록하시면서, 우리들로 하여금 어떤 교훈을 얻기를 원하시는 마음으로 하나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기록해 놓고 있겠습니까? 전통적으로 본다고 한다면 서원이라고 하는 것은 아무리 손해가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파괴할 것이 아니라,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하는 교훈을 얻는 것이라고 해석해 오곤 했습니다.

우리가 종종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도 하고, 또 기도하면서 서원하는 일을 많이 하게 되는데요. 사람들의 얄팍한 마음이 무엇이냐면, 급할 때는 하나님 앞에 서원도 하고 기도를 하지만, 그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내가 언제 그런 서원을 했냐는 듯이 다 잊어버리고, 그 서원을 지키지 않는 경우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 화장실을 갈 때와 화장실을 다녀온 다음에 마음이 다르다고 하는 것처럼, 정말 다급할 때는 하나님 앞에 간절히 메어 달려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 병에서만 낳게 해준다고 한다면 전 재산을 하나님 앞에 바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병에서만 낫게 해주신다고 한다면, 제가 하나님의 사역을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일꾼이 되겠습니다.”라고 서원하기도 하고, 정말 힘들고 어려운 일 다급한 일이 있을 때는 하나님 앞에 간절히 서원하면서 기도하는데, 막상 그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언제 그런 서원을 했느냐는 듯 다 잊어버리고, 그런 서원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이 있는데, 성경 전체의 가르침을 본다고 한다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원을 했다고 하면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것이 성경적인 원칙일 것입니다.

시편 15편 4절 말씀에 보면, 누가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있을 것인가?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않는 자가 하나님에게 갈 수 있는 것이고,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자격이 있는 사람이 누군가? 서원을 했다고 한다면, 그것이 해롭다고 할지라도 절대로 변하지 않고 그대로 지키는 자만이 하나님 앞에 상달될 수 있을 것이라고 시편 15편 4절 가운데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서에 보면 한나라고 하는 한 여인이 나오는데, 이 여인은 아기가 없어서 자식이 없어서 하나님 앞에 울부짖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 앞에 뭐라고 기도했냐면, “하나님, 하나님께서 만일 내게 자식을 주신다고 한다면, 이 자식을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그렇게 서원하면서 기도했고, 하나님께서는 놀랍게도 그 한나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그러자 이 한나는 그 아이를 안고, 그 아이를 잘 기르다가 젖을 떼고 난 다음에는, 눈물의 이별을 하면서 그 아이를 엘리 제사장에게 맡기고, 그래서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길러질 수 있도록, 그렇게 서원을 지켰다고 하는 이야기가 사무엘서의 말씀 가운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이야기에 비추어 본다고 한다면, 입다의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정말 이런 교훈을 주기 위한 것,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선언을 했다고 한다면, 그 서원을 반드시 지켜야만 한다고 하는, 정말 이렇게 강한 정말 손해가 나는 그리고 정말 마음 찢어지는 일이 있다고 할지라도, 서원을 지켜야 하는 그런 교훈을 받는 이야기로 해석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에는 약간의 문제가 따르는데요. 어떤 문제가 따르냐면, 하나님이 누구신가라고 하는 그 문제에 있어서의 난점입니다. 하나님은 정말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사람을 죽여서라도 하나님 앞에 바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실까 하는 그런 질문이죠. 성경 전체의 가르침을 본다고 한다면,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니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잔인하고 무자비한 독재자, 잔인하고 무자비한 폭군과 같은 하나님이어서, 우리의 것을 다 빼앗아가 버리고, 우리를 괴롭게 만들고, 우리를 향해서 진노하시는, 그런 폭군과 같은 하나님이라고 성경에서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성경 전체를 통해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무엇이냐면, 사랑이 많으시고, 그리고 인자하시고, 긍휼이 넘치시는, 정말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해서 모든 것을 다 해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이 성경에서 가르쳐주고 있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은 우리의 것을 빼앗아 버리고, 우리의 그 행복을 짓밟아 버리고, 우리를 괴롭게 만들고, 그리고 그것을 빼앗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혼자 만족케 하는 그런 신이 결코 아닌 것입니다. 사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참된 하나님과 우리가 이 세상 거짓 종교에서 말하는 미신에서 말하는 그 신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이 세상 거짓 종교, 미신에서의 신은 어떤 신입니까? 사람을 사랑하는 신이 아니라, 능력은 있지만 마음을 닫아 놓은 신입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가르쳐주고 있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가? 예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배우기를 원하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냐 하면,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와 같은 하나님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그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사람을 죽여서, 우리 자식을 죽여서 하나님께 바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인가 하면, 하나님은 결코 그런 것을 원하시는 분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아브라함에게 한때 시험하신 적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시험하시면서, “네 아들 네 독자 이삭을 내게 번제로 바치라.”라고 시험하시기는 하셨지만, 그러나 정작 아브라함이 그 이삭을 죽이려고 칼을 빼어들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말리시면서 허락지 아니하시고, 살려주신 하나님이 바로 성경 속에서 나와 있는 하나님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 본문의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가 이 말씀의 교훈을 제대로 이해하려고 한다면, 좀 더 깊이 묵상을 해야 하고, 성경 전체의 가르침을 통해서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고 계시는가에 대해서 깊이 살펴보아야 합니다. 제일 먼저 우리가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이 있다고 한다면, 이 입다라고 하는 사람이 했던 그 서원이 결코 바른 서원이 아니었다고 하는 점, 잘못된 서원이었다고 하는 점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성경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가롯 유다 같은 사람, 가인과 같은 사람, 사울 왕과 같은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게 아니라 정말 성경에 좋은 사람들이 있는데, 예를 들자면 다윗과 같은 사람, 사도 바울과 같은 사람, 베드로와 같은 사람, 이런 사람들은 다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리고 나쁜 사람은 그들이 행한 행동은 무조건 다 나쁜 것이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좋다고 말씀하신, 그런 주인공과 같은 사람들의 행동들은 다 무조건 다 좋은 것이라고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우리가 이 입다의 이야기를 보면서, 입다가 하나님의 손에 사용된 사사였고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는 데 사용된 하나님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입다가 하는 행동은 다 옳은 행동이고, 입다에게서 무조건 배울 것만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경향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사기의 내용이 무엇이냐면, 사사기를 특징짓는 내용이 있다고 한다면, 사사기 시대 사람들은 그 시절에 왕이 없어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던 사람들입니다. 거룩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식으로 삶을 산 것이 아니라, 그 당시 사람들은 전부 자기 마음대로 행했다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자기 생각에 좋은 대로, 내가 속에 내 소견에 좋은 대로, 그냥 자기 마음대로 행동해 버린, 하나님의 뜻과는 멀리 떨어진 사람들의 모습이 사사기서의 말씀 가운데 기록되어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입다라고 하는 사람이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사사이기는 했지만, 그가 행한 모든 행동들이 다 배워야 될 점, 우리가 모범으로 삼아야 될 내용들이 아니라, 사실은 실수도 있었고 잘못한 것도 있었고, 여러 가지 우리가 평가해 보아야 될 그런 문제들이 있다고 하는 것을 바라보아야 되는데요.

이 입다의 문제가 무엇이냐면, 하나님 앞에 잘못된 서원을 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서원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서원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약속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 서원을 하는 이유, 서원을 하는 그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해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도 크기 때문에, 그 사랑을 입은 자가 너무나도 고맙고 너무나도 감사해서, 그래서 하나님 앞에 약속하는 겁니다. 하나님 은혜가 너무나도 크다고 하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하나님 이런 사랑을 내게 주시니 너무나도 감사하고, 너무나도 기쁩니다. 그러니 이제는 내가 죄를 짓지 않으며 살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나도 크니, 이제는 내가 주님의 뜻대로 살겠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에 반응해서, 이제는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고 하는 결심과 다짐을 하고, 약속을 하는 것이 바로 서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잘못된 서원은 무엇인가? 잘못된 서원은 그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약속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하나의 흥정 대상으로 보고, 내가 무엇인가 하나님에게로부터 얻어낼 것을 위해서 하나님과 흥정하는 방식으로 서원을 하는 겁니다. 하나님 내 소원이 이건데, 내 소원을 들어주시기만 한다면, 하나님 앞에 내가 돈을 드리겠습니다. 하나님 내가 복권의 1등 당첨만 된다면, 그러면 내가 십일조를 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축복만 해주신다고 한다면, 그러면 내가 하나님 앞에 거나하게 한 턱 써줄게요 하나님과 흥정하는 방식으로 서원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요. 이것은 철저하게 잘못된 서원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런 방식이 잘못된 이유가 무엇이냐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의 대상으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하나의 수단으로 전락시켜 버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가 잘 되고, 내가 성공하고, 내가 이익을 얻기 위해서, 평상시에는 찾지 않다가, 하나님에게 무엇인가 있다고 하니까, 하나님에게 가서 하나님 것을 빼앗기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 하나님이 관심을 가질 만한 것을 내가 드리면서, 서로 물물교환을 하고, 흥정하는 식으로 하나님에게서 무엇인가를 빼앗기 위해서, 서원하는 것이야말로 잘못된 서원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만홀히 여김을 받기를 원하지 않으셔요.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정말 마음을 다해서 사랑하기를 원하시고,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하기를 원하시는데,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가서 하는 말이, “하나님, 나한테 100만 원 주면, 내가 10만 원 줄게요. 하나님, 나한테 천만 원 주신다고 한다면, 내가 100만 원 줄게요.” 서로 흥정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더 많이 받아내기 위해서, 하나님을 하나의 흥정 대상으로 그냥 수단으로만 전락시켜버린다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공경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수단으로 전락시켜버린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성경에 보면 또 다른 서원이 나오는데요. 야곱이 했던 서원이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곱은 자기 아버지 이삭의 집에서부터 도망 나와서, 이제는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밧단 아람으로 피난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정말 너무나도 괴롭지 않았겠습니까? 자기 집에서부터 떠나서 정처 없이 낯선 곳을 향해서 가야 되는, 그 야곱이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힘들었을 때, 하나님 앞에 서원한 이야기가 창세기 28장 20절부터 22절의 말씀 가운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오.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10분의 1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면서 서원을 했습니다. 이 서원을 보면 사실 입다가 했던 서원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입다도 하나님 앞에 말하기를, “하나님, 이 전쟁에서 승리하게 해 주신다고 한다면, 우리 집에서 제일 먼저 나오는 자를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라고 서원했는데 야곱의 서원도 똑같아 보입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무사히 돌아오도록 만들어주신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해 주시고, 내가 아버지의 집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만 있게 해주신다고 한다면, 내가 이 돌을 하나님의 성전으로 만들 것이고, 십일조도 드릴 것이고,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섬기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니까, 그 표면적으로 보면 두 개의 서원이 다 똑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야곱은 그 서원을 하기 전에 하나님으로부터 놀라운 약속을 들었습니다. 피난길을 가다가 벧엘이라고 하는 곳에 들어서 잠이 들었는데, 그때 천사들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아래에서부터 위로 사다리를 타고, 오르락내리락하는 그 황홀한 광경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시는 그 소리를 야곱이 듣게 됐어요. 그때 하나님께서 무슨 약속을 해주셨냐면, “야곱아, 네가 지금 어디로 가든지, 내가 너를 지킬 것이다. 너를 이끌어 반드시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다. 내가 너를 떠나지 않고 너를 보호해 주실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먼저 말씀해 주셨어요.

그 약속을 들은 야곱이 잠에서 깨어나서 그게 너무나도 감사한 거예요. 나와 같은 연약한 사람, 거짓말도 잘하고 속이기도 잘하고, 내놓을 것이 아무것도 없는 나를 하나님께서 사랑해 주셔서, 나를 지켜 보호해 주실 뿐만 아니라, 무사히 돌아오게 만들어 주시겠다고 하는 그런 엄청난 약속을 들었던 그 야곱이 하나님 앞에 고백한 말이 무엇이냐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 말씀대로 정말 내게 해 주신다고 한다면, 주님 저는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겠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고, 이 성전이 하나님의 성전이 되고, 내 소유가 하나님의 것이 될 것이며, 하나님 앞에 고백하는 것인데 그것은 흥정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야곱이 정말로 하나님이 나를 그렇게 사랑해 주신다고 하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이 정말로 그렇다고 한다면, 하나님 이제는 내가 나쁘게 살지 않겠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이제는 주님의 뜻대로 살겠습니다.”라고 다짐하고 결심하면서 하나님 앞에 서원을 했던 것이죠.

하지만 입다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입다는 흥정부터 하는 겁니다. 흥정부터 입다가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만나자, 그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흥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너희들을 대표해서 저 암몬 족속과 싸워서 이기게 된다고 한다면, 너희들은 나를 어떻게 대우해 주겠느냐? 내가 너희들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겠느냐?”라고 질문을 던졌고, 그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말하기를 우리들의 우두머리가 되어 달라고 하니까, “좋다. 약속한 거야. 내가 이기고 그리고 내가 이긴다고 하는 그 선물을 전쟁에서 승리한다고 하는 선물을 이스라엘에게 줄 테니까, 너희들은 나를 우두머리로” 삼으라고 흥정을 하고, 그다음에 하나님 앞에 나가서 흥정을 하는 겁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내게 전쟁에서 승리하게 해 주시게 된다고 한다면, 하나님 뭘 원하세요? 우리 집에서 제일 소중한 것이라도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입다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사랑의 대상 예배의 대상 경유의 대상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얻어내기 좋은 무섭지만 힘이 많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 하나님의 마음을 얼르고 달래서, 그래서 내가 얻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서원을 하게 될 때, 그 서원은 처음 출발부터 잘못된 서원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입다와 같은 그런 잘못이 우리가 흔히 빠지기 쉬운 함정입니다. 평상시에는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찾지도 않다가, 급한 일이 있으면 하나님을 찾는 겁니다. 하나님이 사랑스러워서 하나님이 너무나도 좋아서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얻고 싶은 것이 있어서 하나님 앞에 나와서 엎드리는 것이죠. 그런데 그런 행위가 누구 어떤 행위냐면, 바로 사울 왕이 했던 행위랑 똑같습니다.

사울 왕은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립니다. 전쟁에 앞서서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는데, 왜 제사를 드렸습니까? 하나님을 너무나도 사랑하기 때문에, 제사를 드리고 싶고, 예배를 드리고 싶어서 제사를 드린 것이 아니라, 전쟁에서 승리해야 되는데 그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군사들이 있어야 되고, 그 군사들이 흩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려야 되겠다고 하는, 그 생각 얄팍한 생각 때문에 하나님을 이용해 먹기 위해서 제사를 드린 거예요.

바리새인들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그 명령들을 하나도 빼지 않고 다 지켰는데, 그 지킨 이유가 무엇인가? 그런 내 공로를 통해서, 내가 이렇게 하나님 앞에 이렇게 나간다고 한다면,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을 기대하면서, 그런 행동들을 한 것이죠.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그런 입다를 책망해 버리시고 짓밟아 버리시는 것이 맞을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입다를 통해서도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해 주셨고, 그리고 그런 입다에게 전쟁에서 승리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개선 행렬 가운데 제일 먼저 마중 나온 사람은 그 집안에 가장 건장한 노예가 마중 나온 것이 아니라, 그 집 안에 어떤 다른 어떤 것이 나온 것이 아니라, 가장 사랑하는 딸이 환영하며 나오는 그 모습을 보게 된 겁니다. 여기서 입다가 혼란스러운 거죠. 하나님께, 무서운 하나님께 약속을 했는데, 그 서원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데, 그런데 자신의 딸이 나오는 모습을 바라본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내가 잘못했구나”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길로 나가야 되는,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생각하지 않고, 흥정의 대상으로 생각한 자신의 죄를 회개하면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 구해야 되는, 하나님을 마치 힘 있는 조폭처럼 생각해서 그 조폭에게 무엇인가 뇌물을 바치면, 그 조폭이 나를 보호해 줄 거라고 하는 그런 생각과 비슷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갔었다고 한다면, 이 모습을 보면서 당장 하나님 앞에 엎드려 회개해야 되는데, 안타깝게도 입다는 그렇게 하지 않고, 완고함 속에서 잘못된 생각 속에서 자신의 딸을 제물로 바치는 그런 불행한 일을 겪고야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있어서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과연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성경 전체는 하나님이 누구신가에 대해서 말씀해 주고 있어요. 하나님이 누구시냐? 하나님이 나에게 어떤 하나님이냐를 묻고 계시는 많은 사람들이 착각을 합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인데, 우리의 아버지가 아니라, 그 마음의 문을 닫아놓고 있어서, 그 돈 많은 하나님 능력이 많은 그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빼앗기 위해서는, 얻어내기 위해서는 우리가 무엇인가를 커다란 것을 하나님 앞에 바쳐야만, 그래야 우리가 무엇인가를 조금 한 것을 얻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성경적인 관점이 아니라, 미신의 관점이고 이방신의 관점인 것이죠. 그런데 안타깝게도 교회 안에서 성경의 하나님을 가르치기보다는 미신의 하나님을 가르칠 때가 너무나도 많아요. 그것이 너무나도 널리 퍼져 있어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기도하라 하나님이 너희의 아버지이시다.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이시기에, 우리의 기도 소리를 들으실 뿐만 아니라,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시기 원하시는, 그 하나님 앞에 인격적으로 나아가고, 자녀가 아버지를 향해서 안기듯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라고 권고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우리의 필요를 아실뿐만 아니라, 내가 아는 것보다 나를 더 잘 아시고, 그리고 내게 가장 무엇이 좋으신가를 아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입다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자신의 딸을 이용해 버리고 말았지만, 하나님께선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라고 한다면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우리 위에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로마서 8장 32절의 말씀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라고 묻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고 주님 앞에 나올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 아들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를 보호하시고 지키시고 가장 선하고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신다고 약속해 주고 계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우리들의 기도는 서원이어야만 하는데,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을 얻어내기 위한 서원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도 고맙기 때문에, 하나님 이제는 악한 길로 가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서원합니다. 다짐합니다. 이제는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이제는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는 것이 아니라, 원수까지라도 용서하며 살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으니 이제는 이웃들에게도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며 널리 알리며 살기를 서원합니다. 그런 믿음의 고백과 결단들이 우리들의 삶 가운데서 무한히 넘쳐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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