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국진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은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준다. 도대체 여기서 말하는 양식은 무엇을 지칭하는 것일까?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어준다는 말일까? 아니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물들을 가지고 이웃들에게 선을 베풀며 살아야 한다는 것일까? 이렇게 질문할 필요는 없다. 여기서 양식은 단순히 그 종에게 주어진 임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준다는 것은 청지기의 임무를 제대로 잘 수행하는 것을 상징하는 하나의 대유법적 표현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을 잘 수행하는 것 정도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각각 독특한 사명을 주어서 이 세상에 보내셨다. 이러한 사명은 사람들마다 각각 다르다. 우리들은 모두가 똑같이 찍어낸 상품이 아니라, 각각 독특하게 창조된 하나님의 걸작품(masterpiece)이기 때문이다. 어머니에게는 어머니로서의 사명이 있고, 아버지에게는 아버지로서의 사명이 있다. 내가 가진 재능과 위치와 상황에 따라 각각 다른 사명들을 가지고 우리는 태어난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에 보내신 이유를 찾아야 한다. 마치 에스더가 왕비의 위치에 올라간 것이 자기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서였음을 깨달은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이러한 모습으로 창조하시고 이런 상황 속으로 인도하신 그 이유를 발견해야 하고, 그 사명에 맞게 살아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주는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될 것이다.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주는 것과 대비되는 행동으로 다른 종들을 때리고 먹고 마시고 취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성경적인 리더십이란 섬김의 리더십일진대, 포악한 지배자의 모습을 하고서 다른 종들을 때리는 모습은 우리가 가진 권한을 남용하는 것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혹시 우리가 이런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나님께서 내게 물질을 맡겨 주셨는데, 그 물질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고 착취하고 있지는 않은가? 내게 주어진 모든 재능과 소유와 위치는 섬김을 위한 것이지, 다른 사람들을 억압하는 도구로 사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악한 종이 먹고 마시고 취했다고 해서, 우리도 양식을 먹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악한 종이 먹고 마시고 취했다는 표현은 그가 해야 할 사명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자신의 쾌락만을 위해 살았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지, 정당한 식사마저도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종종 노아의 때에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면서 멸망당했다는 표현 때문에(마 24:38-39), 종말의 때가 되면 금식하거나 결혼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이 일상생활을 하되 다가올 홍수를 준비하지 않았다는 점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지, 일상생활 자체가 문제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악한 종은 음식을 먹고 마셨기 때문에 문제가 아니다. 먹고 마시는 것은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도 그랬을 것이다. 문제는 악한 종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수행하지 않았고, 주인의 뜻에 배치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주인이 돌아오기까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계속했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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