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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의 진압(삼하 20:14-26)

세바만 잡으면 되는데, 왜 성을 무너뜨릴까? 세바를 잡으면, 나머지는 어떻게 돼도 괜찮은 것일까?

세바의 반역(삼하 20:1-13) +++ 복수의 법(삼하 2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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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 우리는 세바가 반란을 일으킨 그 이야기를 살펴보았습니다. 다윗의 생애 가운데 칼이 끊이지 않고 고통이 끊이지 않고 계속해서 위기가 계속해서 다윗의 삶 가운데 있었는데, 이 세바의 반란은 다윗에게 아주 큰 위협이 되는 엄청난 반란이고 쿠데타였습니다. 그래서 그 세바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서 다윗이 맨 처음 보낸 사람이 있는데 누구를 보냈죠? 혹시 기억나십니까? 아마사를 보냈습니다. 기억이 안 나는 겁니까? 대답하기가 귀찮은 겁니까? 웃기만 하십니까? 예. 아마사를 보냈습니다. 아마사를 보내서 그 세바의 반란을 진압하도록 했는데, 소식이 없으니까 다윗은 이제는 요압과 아비새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요압 장군은 세바의 반란을 진압한 것이 아니라, 같은 편이라고 할 수 있는 아마사를 죽이는 그런 충격적인 이야기를 지난 시간에 우리가 살펴보았습니다.

같이 힘을 합해서 쿠데타 세력을 진멸하는 일에 함께 동참해야 되고, 같이 힘을 합해서 이 위기를 타개해 나가야 되는 것인데, 오히려 내부에서 서로 싸우면서 같은 편이라고 할 수 있는 그 아마사를 죽인 것은 정말 비극적인 일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만일 어떤 한 공동체의 어떤 단체의 내부에서부터 투쟁이 일어나고, 서로가 내부적으로 싸움이 일어나게 된다고 한다면, 하나가 되지 못하고 서로 물고 먹으면 결과가 어떻게 될까요?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외부의 침입에 의해서 우리가 망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침입에 의해서 무너지기 전에 항상 무너진 공동체는 어디서부터 넘어졌는가? 안에서부터 썩어 문드러지고, 안에서부터 서로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먼저 무너지게 되어 있는 것이 역사의 법칙이라고 하면 법칙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 세바의 반란이 일어났을 때, 그 세바의 반란을 진압하러 가야 되는 바로 그 다윗의 장수들끼리 서로 죽이고 그렇게 싸우는 그런 내분이 일어났다고 하는 것, 이것은 좋은 사인이 아니라, 아주 불길한 일이고, 아주 비극적인 일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사울이 망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지금까지 우리가 사무엘서를 살펴보면서, 사울이 왜 멸망했는가? 여러 가지 영적인 이유도 진단해 볼 수가 있겠고, 여러 가지 측면에서 진단해 볼 수 있겠지만, 그 가운데 한 원인이 무엇이냐 하면, 사울은 사람들을 내 편으로 함께 동지가 되어서 같이 힘을 합친 것이 아니라, 적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에 진 겁니다. 다윗을 나의 편으로 만들어서, 함께 동지가 되고 함께 같은 나라를 만들어 갈 수 있다고 한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하지만 사울은 다윗을 적으로 생각했고, 적을 죽이려고 하는 그런 일만 몰두하다가, 결국 사울 왕은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사무엘서에서 살펴볼 수가 있었는데, 그렇게 사울이 멸망한 것과 같은 바로 그러한 비슷한 현상이 다윗의 진영 안에서 일어났다고 하는 것이 정말 안타까운 일이고, 너무나도 슬픈 일이라고 말할 수가 있을 겁니다.

만일 다윗의 왕조의 신하들 사이에서 이렇게 네 분이 계속 일어나고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난다고 하면, 다윗도 곧 멸망할 수밖에 없었을 그런 아주 위험한 일을 요압이 했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그렇게 해서 다윗의 진영이 패한 것이 아니라, 놀랍게도 다윗의 진영이 승리하게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오늘 본문에 말씀 가운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바라고 하는 사람이 “벧마아가 아벨”이라고 하는 지역으로 들어가게 되었을 때, 요압은 그 성을 에워싸고, 그 성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공격하려고 했습니다. 그때 그 지역에 있던 어떤 한 지혜로운 여인이 나타나서, 요압과 단판을 벌였습니다. 협상을 이끌어냈습니다. 그래서 이 세바만 넘겨준다고 한다면 성을 멸하지 않겠다고 하는 그런 약속을 받아냈고, 결국 이 여인이 그 마을에 있는 사람들을 다 설득해서, 그래서 세바의 머리를 치고, 그리고 결국 이 요압이 세바의 반란을 진압하게 되었다고 하는 그 이야기가 오늘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앞에는 좀 히터를 좀 꺼주세요.)

이야기가 전개되어 나가는 그 과정을 보면, 분명히 다윗의 진영 안에서 내분이 일어났고, 그래서 다윗의 진영이 아주 위험해 처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결과를 보면 다윗의 진영이 진 것이 아니라, 세바의 반란을 완벽하게 진압을 해 버릴 수 있었다고 하는 것은 아주 놀라운 결과입니다. 어떻게 다윗은 이런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게 되었을까요? 그 다윗이 이 세바의 반란을 완벽하게 진압할 수 있었던 원인들, 이유들을 하나씩 하나씩 분석해 본다고 한다면, 여러 가지로 진단을 내릴 수가 있을 겁니다.

훌륭한 요압이라고 하는 장군을 두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고, 지혜로운 여인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었겠고, 아니면 세바가 잘못 그곳을 찾아갔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었겠고, 여러 가지 원인들을 찾아서 이 다윗이 이길 수밖에 없었던 그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려면 설명할 수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시간에 한번 주목해보고 싶은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사무엘하 7장 14절에서부터 1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나단 선지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인데요. 다윗에게 전하라고 주셨던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여기서 그는 다윗의 아들을 의미합니다.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내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이게 누가 누구에게 주시는 말씀이라고요?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에게 주셔서, 그래서 다윗에게 들려주라고 했던 말씀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다윗이 마음속의 소원이 무엇이었냐면,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자 하는 소원이 다윗의 마음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성전을 짓겠다고 하는 이야기를 나단 선지자에게 이야기했을 때, 나단 선지자는 너무나도 기뻐했고 그렇게 하라고 이야기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날 밤 나단 선지자에게 말씀하시기를, “다윗은 성전을 짓지 못할 것이다.” 말씀하시면서 해 주셨던 말씀 가운데 하나가 이 말씀입니다. 그 말씀의 내용이 무엇이냐 하면, 다윗의 아들이 성전을 건축하게 할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그 다윗의 아들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보존해 주시겠다고 약속을 그때 하셨어요. 이게 무슨 말입니까? 다윗의 왕조뿐만 아니라, 다윗의 왕권뿐만 아니라, 아니 그 아들의 왕권, 그 아들의 아들의 왕권 해서 그 다윗의 왕조가 영원히 계속될 거라고 하는 그 약속을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해 주셨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결국 예언의 말씀이 솔로몬에게, 솔로몬에게 와서 완전히 성취되기도 하고, 또 이 예언의 말씀이 바로 예수님에게 성취되기도 하는 것인데, 그 속에 있는 내용을 우리가 들여다보게 된다면, 결국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그 다윗의 왕권이 영원히 손상되지 않고 계속되게 만들어주겠다고 하는 그 약속을 하나님께서 해 주셨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다윗이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쿠데타들이 자꾸만 일어나고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다윗의 생애 가운데 생기고는 있지만, 그러나 그러한 일들이 있다고 해서 다윗이 완전히 멸망해 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약속하시기를 뭐라고 약속해 주셨냐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겠고 내 왕위를 영원히 물러나지 아니하도록 계속 보호해 주겠다고 하는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해 주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다윗의 범죄만 생각한다고 하면 다윗은 완전히 멸망을 받아야 할 사람입니다. 간음을 저질렀을 뿐만 아니라, 그 남편을 최전방에 보내어서 교살한 죄까지 정말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너무나도 사악한 죄를 저지른 사람이 다윗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다윗을 심판하셔야 한다고 한다면 심판해도 아무런 항변도 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일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고, 그 왕위를 영원히 계속하게 할 것이라고 하는 그 약속을 해주셨기 때문에, 다윗을 쫓아내신 것이 아니라 다윗을 보존하시고, 결국 이 전쟁 가운데서도 승리하게 만들어 주셨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볼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들에게 소망이 있다고 하면 무엇이 소망일까요? 다윗에게 소망도, 역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다윗에게 소망이 있었던 것처럼,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소망이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은혜만이 우리에게 소망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은혜를 주시옵소서.” “매일 매 순간 저희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베풀어 주옵소서.” 기도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최근 우리나라 정가에 보면 성추행 성폭행 사건으로 인해서 서로가 서로 당을 비난하는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최근에 정의당 대표가 성추행했던 일 때문에, 대표가 사퇴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걸 두고서 이당 저당 내에서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고 아주 욕하는 그런 모습을 보고 있는데, 그 모습을 보는 게 참 가관이에요. 왜냐하면 누가 누구에게 욕할 처지가 아닌데, 다 똑같은 사람들끼리 서로가 욕을 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죠. 그런데 바로 이 다윗의 문제나 다른 사람들의 문제나 다 마찬가지예요. 우리도 다윗과 똑같이 범죄 할 수 있고, 우리도 똑같이 넘어질 수 있고, 우리가 기회가 생긴다고 한다면, 우리들에게 그러한 악한 일을 행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생기게 된다고 하면, 우리도 넘어질 수 있는 그런 상황이고, 그래서 우리도 완전히 넘어질 수밖에 없는 것인데, 그래서 우리에게 소망이 무엇이냐 하면 내가 완벽하게 깨끗하게 잘 살아서, 그래서 내가 떳떳하게 살 수 있는, 그것이 우리들에게 소망이 아니라, 우리가 바람 한 번만 불면 우리가 잘못 한 하면 금방 넘어질 수밖에 없는 그런 연약한 사람들인데, 우리에게 소망은 우리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악한 다윗도 불쌍히 여기셔서 그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고 하셨던 그 약속 때문에 그 다윗의 왕조를 보호해 주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다고 하는 그 사실 하나 때문에, 우리를 다시 한번 회복시켜주시고 다시 한번 일으켜 세워주시는 것밖에는 우리에게 소망이 없는 것임을 알아서, 우리가 날마다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며 사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압이 성을 공격할 때 어떤 지혜로운 여인이 나타남으로 말미암아서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때 요합에게 나타났던 여인의 이름이 누구죠 모릅니다. 왜 모릅니까? 성경에 기록이 안 돼 있습니다. 그냥 뭐라고 표현이 돼 있냐면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어떤 지혜로운 여인이 나타나서 요압의 앞길을 막았던 겁니다. 지금 요압은 성을 공격해서, 그래서 완전히 성을 무너뜨리려고 하고 있는 그 상황 가운데서 이 지혜로운 여인이 나타나서 그래서 요압을 설득하게 되었고 그래서 결국 그 설득함으로 말미암아 성을 멸망시킨 것이 아니라 그 세바의 머리만 베어다가 그래서 요압에게 건네주고, 그 성이 무사하게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문제를 해결했습니까? 이 여인은 이 위기의 순간에 요압과 맞닥뜨려서 대화로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요압의 목적이 무엇이죠? 요압의 목적, 요압의 목적은 세바의 반란을 진압하는 겁니다. 세바를 잡아가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요압이 하려고 했던 것이 무엇입니까? 지금 세바가 숨어 들어간 그 성 전체를 완전히 무너뜨리려고 하는 작전을 쓰고 있는 거예요. 지금 요합은 이 세바 한 사람만 잡으면 되는데, 그 세바 한 사람을 잡기 위해서 선택한 작전이 무엇이냐? 성 전체를 둘러서 가지고 그 성을 완전히 무너뜨려서, 그래서 그 세바를 잡겠다고 하는 작전을 세우고 있는 겁니다.

만일 이 요압의 작전이 성공한다면 세바를 잡을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잡을 수 있을 겁니다. 성을 무너뜨린다고 한다면 세바를 완전히 죽일 수가 있을 겁니다. 그런데 세바만 잡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결과까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까? 세바가 아닌 다른 주민들까지 함께 몰락당하게 되는 함께 죽임을 당하게 되는, 아무 죄 없는 사람들의 희생까지도 따를 수 있는 그런 방법을 지금 요압이 사용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그때 이 여인이 나타나서 성 사람들은 하나도 다치지 않고, 세바라고 하는 목적이, 당신의 목적이 세바니까, 당신의 목적인 이 세바만 당신에게 넘겨준다고 한다면, 그냥 가십시오. 그렇게 대화를 통해서 그 문제를 해결함으로 말미암아 결국 전쟁에서 승리하기도 하고, 또 이 성도 무너뜨리지 않고, 그 성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목숨도 하나도 다치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다 원만하게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었던 것이 이 여인의 지혜라고 할 수가 있을 겁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들은 문제가 있으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 문제 해결의 방법을 동원하는데요. 그런데 그 방법이라고 하는 것이 종종 요압이 썼던 방법처럼 엉뚱한 방법일 경우가 많습니다. 한번 생각해보세요. 지금 우리가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여러 가지 문제들을 만나면서 삽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고 직장에서도 마찬가지고 그리고 가정에서도 마찬가지고 우리는 늘 문제들을 직면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까를 우리가 고민하는데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냐면, 성을 무너뜨리는 방법을 사용하는 거예요. 성을 지금 세바를 잡아야 되는데 우리가 채택하는 방법이 무엇이냐 하면 세바가 숨어 있는 그 성 전체를 무너뜨려서, 세바도 잡지만 그 성 안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든 말든, 세바 한 사람을 잡기 위해서라고 한다면, 성을 무너뜨려야 한다고 하는 것이 보통 우리가 쓰는 그런 잘못된 방법이 많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코로나 문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코로나 상황이 1년이 넘게 진행이 되고 있는데, 이 코로나라고 하는 전염병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 위험한 겁니다. 누구든지 걸릴 수 있는 겁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어떤 형편에 있든지 우리가 확진자와 같은 공간 안에 있었다고 한다면, 같이 밥을 먹든 같이 대화를 하든 아무튼 같이 스치기를 하든 누구든지 걸릴 수 있는 것이 코로나라고 하는 위험한 전염병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무엇이겠습니까? 사람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성을 무너뜨려야 한다고 대답을 합니다. 성을 무너뜨리면 세바를 죽일 수가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성을 무너트려놓고 세바를 잡았으니까, 잘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 성을 무너뜨리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냐면, 아무 잘못이 없는 성 안에 무죄한 백성들이 함께 죽는 거예요. 함께 희생을 당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 희생당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세바를 잡았기 때문에 우리는 정당했다고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겁니다.

부작용이 너무나도 큰 것이고, 그 부작용이 엄청나게 무서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루고자 하는 그 목적이 너무나도 커 보이면, 그런 부작용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안 쓰는 것이 우리들의 생각인 것이죠. 코로나 상황이 지금 1년 넘었는데요.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래 지속될지는 그 누구도 모릅니다. 백신이 나오면 금년으로 상황 끝일까요? 작년에 우리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겨울만 지나면 이제 봄이 되고 여름 오면 코로나 상황 끝나겠지라고 생각을 했지만, 아니요. 우리들의 예상과는 달리 더 많이 퍼졌습니다. 이제 숫자가 어느 정도 줄면 이제 잡았겠거니 생각했는데, 아니요. 또 어디선가 곪아 터져 가지고, 또 확장이 돼버렸어요. 백신이 나타나면 코로나가 완전히 잡힐 수 있을까 잡힐 수도 있겠지만, 변이 바이러스에 대한 이야기들은 결코 우리로 하여금 소망을 갖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코로나를 잡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리들은 성을 무너뜨리면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안 모이면 되는 거죠. 예배도 안 드리면 되는 것이고, 안 모이면 코로나 안 걸리니까, 뭐 까짓것, 1, 2년 2년 3년 한 10년 예배 안 드리고, 코로나 안 걸리면 되죠. 그렇게 생각한 거예요. 그런데 그때 성을 무너뜨렸을 때 엄청난 희생자들이 나오는 것은 그 누가 책임을 집니까? 나의 가족의 건강을 위해서 그냥 이렇게 있을 때, 우리 아이들의 신앙생활은 정말 망가져 버리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사라져 버리고, 불신앙의 길은 더욱더 확고하게 우리 사이에 자리 잡고, 코로나는 분명히 잡을 수도 있었겠지만 성도 같이 무너뜨려 버린 결과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때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우리의 목적이 무엇인가? 성을 무너뜨리는 것이 목적인가? 세바를 잡는 것이 목적인가? 질문을 던져야 하고 세바를 잡는 것이 목적이라고 한다면, 성을 무너뜨려서도 세바를 잡을 수 있지만, 그 성을 무너뜨릴 경우에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할 수밖에 없으니, 그 성을 무너뜨리지 않고 세바를 잡을 수 있는 방 법이 무엇일까를 고민해야죠. 그냥 안 모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코로나를 걸리지 않기 위해서 조심해야 되겠지만, 조심하는 그 방법을 가지면서도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에 대한 예배를 드릴 것이며, 어떻게 믿음을 계속 간직해 나갈 것이고, 우리 자녀들이 세속적인 생활로 빠져가고 있는 그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정말 믿음을 심어줄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죠. 고민.

가정의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을 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함께 같이 살아가는 동안에 여러 가지 문제들이 발생합니다. 때로는 성격 차이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때로는 재정적인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또는 부모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크고 작은 여러 가지 문제들이 많이 발생해 버립니다. 가정을 이루고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늘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는 그 순간에 우리는 그 문제들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해결하려고 합니까? 성을 부숴버리면, “문제없겠구나.” 성을 부숴버려서, 헤어져 버리면, 더 이상 골치 썩을 일도 없을 것이고, 완전히 끝장 내버리면 초가집 태워버리고 나면, 빈대 다 사라질 테니까, 더 이상 고통받을 일 없다고 생각하면서, 쉽게 태워 버리자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로 인해서 고통을 받을 우리 자녀들은 생각도 안 하고, 그것으로 인해서 가져오게 되는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도 않고, 문제가 무엇이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그리고 그 부작용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지, 성격 차이라고 한다면 그 성격 차이를 맞추어 가는 걸 통해서 더 좋은 가정을 만들어갈 수 있는 더 좋은 길이 있는데, 재정적인 문제가 있으면, 그 재정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통해서 더 아름답고 멋있는 가정을 만들어갈 수 있는 그런 기회가 있는데, 그 문제가 생기면 생각하기 귀찮고 괴롭고, 그냥 너 죽고 나 죽자 우리 자녀들 죽이고 나 죽고 그런 성을 무너뜨리는 것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해 버리려고 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교회에서도 문제들이 생겨납니다. 교회는 문제가 없는 완벽하고 좋은 공동체가 아니라, 교회는 죄인들이 모인 곳이고, 죄인들이 모였기 때문에 여러 가지 크고 작은 문제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데, 그런 문제가 생겼을 때 우리가 해결한다고 내놓는 가장 쉬운 대답이 무엇입니까? 성을 무너뜨리는 것이죠. 나는 더 이상 예수님 믿지 않겠다고 신앙을 져버리거나, 교회를 떠나버리거나, 여러 가지 극단적인 선택을 통해서, 더 이상 골치 아픈 일을 내가 경험하지 않게 되면서, 나는 해결했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죠. 그게 정답이 아니라 우리는 성을 무너뜨리지 않으면서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로운 방법을 저와 여러분들이 추구할 수 있도록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돼요. “하나님, 지혜를 주시옵소서.” 문제를 만나면, 어려운 일 만나면 기도하며 엎드려야 돼요. “하나님, 지혜를 주시옵소서.” 세바의 목만 자르면 되는 것인데, 성을 무너뜨리려고 하는 그런 마음이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서 불쑥불쑥 솟아나고 있습니다. 이런 사악한 우리들의 마음을 제거해 주시고 지혜를 허락해 주셔서, 성을 무너뜨리지 않고 처리할 수 있는 그런 지혜를 저희들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지혜를 주시옵소서. 날마다 날마다 기도하며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근데 그게 바로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향해서 행하신 방법입니다. 문제가 무엇입니까? 문제는 인간의 타락이죠. 하나님을 배반하고 죄에 빠진 그 인간들 이 인간의 문제, 죄에 빠진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 무엇입니까? 다 쓸어버리고 다 멸망시켜버리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 하나님께서는 그 방법 성을 무너뜨리는 방법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하나밖에 없는 그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들을 살리시기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려주셨습니다.

우리는 사탄의 속임수에 넘어가면 안 됩니다. 사탄의 속임수는 세바를 없애려면 성을 무너뜨려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사탄의 속임수입니다. 사탄의 속임수는 우리가 살려면 적의 목을 베어야 한다는 것이 사탄의 속임수입니다. 하지만 성령님의 음성은 무엇입니까? 적을 만들 것이 아니라 동지를 만들어야 된다고 하는 음성이고, 성을 없앨 것이 아니라 성을 살리는 선택을 하라는 것이 성령님의 음성인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는 늘 기본적으로 사탄이 우리들을 향해서 속삭이는 그 유혹에 넘어가기가 너무나도 쉽기 때문에, 매 순간순간마다 하나님 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특별히 분노가 내 마음 가운데 가득 차 있을 때, 분노에 차서, 분노라고 하는 것은 내 마음의 열쇠를 사탄에게 넘겨준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그래서 사탄이 내 마음을 장악해서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대로 그 사탄의 요구대로 끌려가면서 성을 완전히 박살 내버리고 완전히 모든 것을 그르쳐 버리는 그런 선택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에 우리들의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게 해 주시고, 성령님의 음성을 듣게 해 주시고, 그래서 우리 가정이나 우리 직장이나 우리 교회나 정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런 좋은 결과를 만들어 주옵소서. 회복의 은혜가 있게 하여 주옵소서. 기도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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