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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함이 주는 독

세상 참 편해졌다. 불과 10년이나 15년 전만해도 꿈도 꾸지 못할 기발한 문명의 이기들을 우리들이 누리며 산다.

16년 전 내가 처음 미국으로 유학을 갔을 때, 미국에서 한국으로 전화를 걸려면 1분에 약 3,000원의 돈을 지불해야 했었다. 10분만 통화해도 3만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미국에 있는 두 딸과 통화하는데 거의 돈이 들지 않는다. 불과 10년 전만해도 낯선 곳을 찾아가려면, 지도를 펴놓고 사전에 미리 숙지해야만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친절한 네비게이션이 어느 곳이든지 가장 빠른 길로 안내해 준다.

예배를 드릴 때도 그렇다. 예전에는 OHP라는 것을 사용해서 복음성가 가사를 보여주는게 고작이었는데, 지금은 컬러가 가미된 멋진 디자인의 스크린이 예배를 돕고 있어서 아주 편하다. 예전에는 성경을 찾느라 시간이 흐르고, 찬송을 찾느라 시간이 흘러서 예배의 흐름이 매끄럽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예배를 시작하면, 거의 그냥 보내는 짜투리 시간이 없을 정도로 매끄럽게 예배가 진행된다. 그러다 보니 요즘에는 성경 찬송을 가지고 교회에 올 필요를 거의 느끼지 않을 정도까지 되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을 보면서 점점 내 마음이 불편하다. 마치 다 큰 아이에게 엄마가 좇아다니면서 그 입에 밥을 넣어주는 격이라고나 할까? 아이 스스로 숟가락을 잡고 밥을 먹게 만드는 것이 제대로 된 어머니이고 아이의 미래와 장래를 생각하는 어머니일 것이다. 처음에는 왜 밥을 먹여주지 않느냐고 울고 불고 하겠지만, 매를 들어서라도 스스로 밥을 먹게 만들어야 진짜 어머니라 할 수 있다.

편함에는 독이 있다. 언제까지 엄마가 주는 밥숟가락에 의지하여 밥을 먹을 것인가? 이제 조금 성장하여 두세살이 되기 시작하면 그때부턴 스스로 밥을 먹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장성한 사람으로 이 세상을 책임지고 이끌어갈 인재가 될 수 있겠는가?

이제 앞으로는 우리의 편함을 조금 줄여나가고 싶다. 성경책을 스스로 펴서 읽게 하고 찬송가도 스스로 펴서 찾아 부르는 것이 불편하긴 해도 필요한 훈련이라 생각하고, 앞으로는 스크린으로 보여주지 않으려 한다. 몇번 사전 공지한 후에 말이다.

내가 아는 어떤 목사님의 컬럼에 “현대교회 성도들이 핍박보다 무서워하는 것이 불편함이라고 한다. 불편한 교회, 춥고 더운 교회, 주차가 힘든 교회는 절대 가지 않는다”고 써 놓은 것을 보았다. 조그마한 불편함 때문에 힘들어할 교우들이 있을 지 모르겠다. 하지만 편함에 너무 익숙해지면 우리는 영적으로 위험해질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우리 교회는 육신이 편해서 좋은교회가 아니라, 좋기 때문에 마음이 편한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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