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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여성 안수의 문제는 무엇으로 판단해야 하는가?

문제는 과연 여성에게 안수하여 성직자로 세우는 것이 성경에서 가르치는 교훈에 반하는가 하는 것이다. 아무리 상황이 변화되고, 우리 안에서 변화의 기류가 있고, 현실적인 필요성들이 강하게 제기된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요소들이 여성 안수를 결정할 이유일 수는 없다. 우리 교단은 무엇보다도 성경을 최고의 기준으로 삼는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신앙과 본분(本分)에 대하여 정확무오(正確無誤)한 유일(唯一)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1

따라서 여성에게 안수 여부는 무엇보다도 성경을 석의(釋義)하는 것을 통해서 결론지어져야 한다. 성경 앞에서 교단의 헌법도 판단받아야 하고, 성경 앞에서 우리가 신봉하는 신조도 판단받아야 한다. 2 그것이 성경을 최고의 기준으로 삼는 교단의 입장이다. 아무리 현 상황의 필요가 있다고 하더라도, 성경에서 금하고 있다면, 여성 안수는 불가하며 더 나아가 교회 내에서 관행적으로 용인됐던 여성 사역자의 사용 문제는 심각하게 재고해보아야 한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가르침이 무엇인가가 제일 중요하다. 이것이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의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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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본 논문은 과연 성경이 여성 안수와 관련하여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조사하고자 한다. 그래서 정말 성경이 여성의 안수를 금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유교적인 색안경을 끼고 성경을 읽어서 과도하게 여성의 역할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성경을 읽었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한동안 과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은 천동설의 세계관 속에서 성경을 읽었고, 그래서 성경이 천동설을 지지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과학의 발달과 함께 지동설이 정설로 자리를 잡으면서 성경에 표현된 것이 천동설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문학적인 표현이며 지구 중심의 표현법일 뿐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었다. 노예 제도가 당연하다고 생각되던 시기에는 성경에 노예 제도와 관련된 규정들이 있기 때문에 노예 제도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한 때가 있었다. 또한, 주5일제를 시행하려고 할 때, 교회는 창조질서를 운운하면서 주5일제는 성경적 가르침에 위배된다고 반대하기도 했었다. 3 사형제도도 성경에 있기 때문에 사형을 시행하는 것이 성경적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었다. 4 우리는 과거의 문화와 관습의 안경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뜻이 과연 무엇인지 진지하게 다시 묻고 또 물어야 한다. 그래서 개혁 교회는 항상 성경 말씀에 의거하여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 secundum verbum dei).

우리는 성경을 문자적으로만 해석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여성이 머리에 수건을 써야 하는 규정이나 인사할 때 입을 맞추라고 하는 명령은 그것이 문화적인 상황에서 주어진 것이기에 굳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문자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주일성수의 개념도 요즘에는 예전에 비해서 많이 바뀌었다. 이러한 변화가 가능했던 것은 새로운 상황 속에서 성경을 다시 살펴보면서 과거에 읽었던 관점이 과거의 문화의 틀에 얽매였던 것임을 인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성 안수의 문제는 어떠한가? 여성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남성에 종속된 것으로 보던 옛날 유교적 관점에서 벗어나, 이제는 여성의 가치를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서 동등한 인격체라는 점이 인정된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때, 이 문제는 새로운 이해를 요구하고 있는가? 아니면 여성에게 안수하는 것은 오늘날의 사조에 휩쓸려 성경의 가르침을 무시하려는 위험한 시도인가?

우리 교단이 여성의 안수를 금해온 것은 다음과 같은 성경구절에 근거해서이다. 박아론 교수는 “우리가 여성목사 안수를 반대할 수 있는 유일하고 충족한 변론은 성경이 이를 금지하기 때문”이라는 수잔 포의 말을 사용하여 여성안수를 반대하고 있다. 5 딤전 2:11-15, 고전 14:34-35, 38, 고전 11:3-16이 주로 여성의 사역을 제한하는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구절들을 해석하는 방법으로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 방법은 철저한 문자적인 해석의 방법이다. 즉 여성이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은 것은 문자 의미 그대로 여성의 역할을 제한하는 것으로 이해하면서, 이 가르침이 당시에만 적용되었던 규정이 아니라 지금도 유효한 것으로 해석하는 방법이다. 두 번째 방법은 이 구절들은 당시의 특수한 환경 속에서 주어진 말씀으로 초대교회의 상황에서는 적용될 수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해석이다. 과연 이 두 가지 해석 중에서 어떤 해석을 선택할 것인가?

성경은 성경 전체(tota scriptura)의 관점에서 해석해야 한다. 한두 구절에만 의존하는 해석은 잘못될 수가 있어서, 개혁주의적 성경해석의 원리는 성경 전체의 가르침에 비추어서 해석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그래서 우리가 신봉하는 신도게요서에서는 “성경 해석의 정확 무오한 법칙은 성경 자체이다. 그러므로 의미가 여럿이 아니고 단 하나인 어떤 성구의 참되고 온전한 뜻에 관해서 문제가 일어날 때에는 더욱 더 명백하게 말하는 다른 곳들에 의해 그 뜻을 찾아 알도록 해야 할 것이다”고 규정하고 있다. 6 사실 성경에는 여성이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사용되었다는 내용도 있고, 반면에 가르치는 것을 금하고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금하는 말씀도 있다. 이렇게 두 가지 상반된 것 같은 말씀이 있는 경우, 자신이 선호하는 구절들에만 의존하여 해석할 것이 아니다. 성경 전체에서 가르치는 교훈이 무엇인가를 발견해야 하고, 동시에 그러한 전체적인 가르침과 상반되어 보이는 구절들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여성 안수를 찬성하는 입장에 서 있든지, 반대하는 입장에 서 있든지 똑같이 요구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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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 신학의 관점에서 본 여성안수>에서 모든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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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1.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 헌법. 신조 1.[]
  2.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 헌법. 신도게요서 10.[]
  3. 안연용, “주5일 근무제 성경적인가 비성경적인가” <기독신문> (2001.9.10.) http://www.kidok.com/news/articleView.html?idxno=21501[]
  4. 이상원, “사형제도의 전면적인 폐지는 성경적이 아니다” <기독신문> (2006.4.11.) http://www.kidok.com/news/articleView.html?idxno=41378[]
  5. 박아론, “여성의 목사안수에 관한 여권주의자들의 주장과 우리의 견해” <신학지남> 63(3) (1996.9), 43.[]
  6.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 헌법. 신도게요서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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