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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예수님과 비유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셨다

– 이국진

예수께서 이러한 많은 비유로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대로 말씀을 가르치시되,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 (막 4:33-34)

1.1.1 비유가 아니면

나사렛이란 무명의 도시 출신의 예수님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 주위로 몰려들었다.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는 말처럼, 아무도 고칠 수 없는 병을 예수님께서 기적적으로 고쳤다고 하는 소문은 이미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에게까지 널리 알려졌기 때문일 것이다(마 4:23-25).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만나 뵙고 자신의 병을 고침을 받을 수 있을까 하며 예수님에게로 모여들었는데, 예수님은 그들에게 “하늘나라”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예수님이 “하늘나라”를 설명하기 위해 주로 사용한 방법은 “비유”(parable)였다. 비유를 선택한 것은 예수님이 가르치고자 했던 주제가 지닌 특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늘나라”라고 하는 영적이고 난해한 주제를 이 세상의 것들에 대한 경험만을 가지고 있는 인생들이 이해하는 것은 처음부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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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천기(天氣)는 분별할 수 있었다. 농사를 짓기 위해서 그들은 하늘을 살펴야 했고, 날씨를 예상하고 거기에 맞는 대응을 했다. 오랜 경험 속에서 사람들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다음 날에는 날이 좋을 것이라 예견할 수 있었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날이 궂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었다(마 16:2-3). 하지만 이들에게 영적인 분별력은 없었다. 영적인 것은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무런 지식도 없는 그들에게 어떻게 영적인 진리, 하늘의 이야기를 설명할 수 있을까? 이들에게 “하늘나라”라고 하는 영적인 진리를 설명하는 것은 쇠귀에 경 읽기가 될 수도 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영적인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때 비유가 필연적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것에 빗대어 설명한다면, 그나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유의 목적은 설명하고자 하는 것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려는 것이다. 알아들을 수 있게 표현하는 문학적 방식이 비유이다(막 4:33). 1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않으셨다고 보도한다(막 4:34). 하지만 이 표현은 문자적인 의미에서 예수님의 말씀 전체가 비유였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 표현은 일종의 과장법적 표현(hyperbole)으로, 그만큼 비유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음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실제로 예수님은 비유가 아닌 직접적인 권고의 형식의 말씀도 많이 하셨다.

비유는 아주 편리하고 좋은 문학적 도구이다. 화자(話者, speaker)가 무엇인가를 설명하려 하려고 하는데, 그 설명을 듣는 청자(聽者 listener)가 그 대상에 대한 선이해(先理解, preunderstanding)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아무리 설명을 해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화자와 청자 사이에 이해를 위한 접촉점(a point of contact)이다. 화자는 이미 청자가 알고 있는 것을 비유로 사용하여 설명함으로써, 청자의 이해를 촉진시킬 수 있다.

아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비유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한다면, 그 사람은 청자로부터 쉽게 동의를 얻어낼 수 있다. 예수님이 비유를 사용하여 자신의 주위에 몰려든 팔레스타인 군중들에게 이야기를 했던 것은 어쩌면 예수님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특성에 의한 필연적인 것이었다. 이 세상의 것만을 잘 알고 있는 청중들에게, 하늘의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 세상의 것의 유비를 통해서만이 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땅의 이야기로 하늘의 이야기를 들려주신 것이다. 2

성경은 비유로 가득 차 있다. 하나님을 설명하기 위해서, 성경은 수많은 비유를 사용한다. 하나님은 종종 용사(출 15:3), 의원(출 15:26), 반석(신 32:4), 아버지(신 32:6), 독수리(신 32:11), 그림자(시 19:1), 목자(시 23:1), 빛(시 27:1), 샘(시 36:9), 재판관(시 50:6; 72:7; 사 33:22; 사 66:16), 방패(시 84:11), 태양(시 84:11), 피난처(시 119:114), 망대(잠 18:10), 사자(사 31:4), 왕(사 33:22), 어린 양(사 53:7), 남편(사 54:5), 신랑(사 61:10), 암탉(마 23:37), 건축자(히 11:10), 불(히 12:29), 성전(계 21:22), 횃불(계 21:23), 그리고 계명성(계 22:16) 등등과 같다고 비유된 바 있다. 영이신 하나님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어쩌면 이 세상의 물질을 빗대어 설명할 때, 우리는 어렴풋하게나마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세상에 발을 붙이고 사는 인간들에게 영적인 진리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비유가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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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1. 김득중,『복음서의 비유들』(컨콜디아사, 1988), 25.[]
  2. 물론 비유를 뜻하는 히브리어 “마샬”이나 헬라어 “파라볼레”는 우리가 생각하는 비유를 포함할 뿐만 아니라, 속담, 풍자, 조롱, 비아냥, 빈정거림, 수수께끼 등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는 단어이다. cf. 로버트 H. 스타인,『예수님의 비유: 해석원리와 적용』(새순출판사, 1988), 15-21. 하지만 이 책에서는 파라볼레 또는 마샬이 의미하는 모든 것들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흔히 이해하는 대로의 비유 그 자체(parable per se)만을 다룰 것이다. 즉 이 책에서는 땅의 이야기로 하늘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으로서의 비유만을 다룰 것이다.[]

1 Comment

  1. 허인욱

    귀한 사역을 축복합니다. 어제 캐나다총신에서 하신 강의를 듣고 왔습니다.
    AI 가 읽어주는 것인가요 ? 성경의 책이름과 장,절을 아주 재밌게 읽어주네요… 감사합니다.
    혹시 기회가 되시면 카톡방에 올린 질문에 대해서 설명해주세요
    Koreanbenhur@gmail.com
    1. 이 세상을 천국가기 위한 로 보는 것에 문제가 없는지 ?
    2. 죽은후에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늘의 뭇별들중에 하나를 통치하도록 맡겨주실 것같다….는 생각에
    신학 이나 교리에 문제가 없는지 ? …. 근거는 타락한 천사가 뭇별들 위에 자기를 높여 하나님을 대적하려함.
    3. 한가지 더 추가하고 싶은 질문은 …. 맷돌질을 하던 2여자중 하나는 데려가는 데, 다른 하나는 못간다 ? …
    못데려가면 구원받지 못하는 것인가 ? … 죄를 짓고 회개할 시간이 없어서 ?… 구원의 완성을 위해서는 항상 회개하고 깨끗하고 거룩함을 유지해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인가 ?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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