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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금 향로 (계 8:3-4 [8:1-9:21])

우리가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계속 살펴보는 가운데, 오늘은 요한계시록 8장과 9장의 말씀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지금 요한계시록을 가지고 시리즈로 매 주일마다 말씀을 전하고 있는데,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고 또 더 많은 은혜를 받으시기 원하신다면, 성경의 내용을 좀 더 잘 확인하고 미리 읽어보시고, 설교를 듣는다고 하면 훨씬 더 유익할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주보를 미리미리 참조하셔서 읽어보시면 좋겠고요.

우리는 지난 시간에 여섯 번째 인을 떼는 것까지 살펴보았는데,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계시록 8장과 9장 말씀은 일곱 번째 인을 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에 대해서 아주 자세하게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그 하나님의 오른손에 들려 있던 그 두루마리에 7개의 인이 찍혀 있었는데, 그 인을 하나씩 하나씩 뗄 때마다, 어떠한 일들이 일어나는가에 대해서 살펴보다가, 여섯 번째 인까지 살펴보았는데, 오늘은 일곱 번째 인을 떼는 그 모습을 우리가 살펴보려고 합니다.

일곱 번째 인을 떼니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한 30분 동안 적막만 흐르고, 조용하게 있다가, 갑자기 일곱 천사가 나타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주보 안에 있는 그림을 참조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일곱 천사가 갑자기 나타나는데, 그 일곱 천사는 모두 나팔을 다 가지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또 다른 천사가 나타나는데, 오늘 읽은 성경 말씀에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그 또 다른 천사가 제단 곁에서 금향로를 가지고 나아가서 쏟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금향로에 있는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성도들의 기도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불과 함께 쏟으니까, 우레가 나고, 음성이 들리고, 번개가 치고 지진이 일어나는 그런 장면을 보게 되는데요.

그 후에 일곱 천사들이 하나씩 하나씩 순서에 따라서 나팔을 불기 시작합니다. 첫 번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까 피가 섞인 우박과 불이 땅에 쏟아지는데, 3분의 1의 땅이 소멸되고 불에 타고, 수목의 3분의 1이 소멸되고 불에 타고, 푸른 풀도 다 타버리는 그런 엄청난 재앙이 내리는 장면을 목격하게 됐습니다. 이번에는 두 번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까, 불붙은 산이 바다에 던져지게 되고, 바다의 3분의 1이 피로 변할 뿐만 아니라, 생명의 3분의 1이 죽어버리고, 선박의 3분의 1이 파손되는 그런 끔찍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세 번째 천사가 나타나서 또 나팔을 부니까, 이번에는 횃불과 타는 횃불같이 타는 큰 별이 떨어지게 되는데, 하늘에서부터 떨어져서, 강의 3분의 1과 여러 물샘에 떨어져 버리고, 그 별의 이름은 쓴 쑥이라고 하는 이름을 가지고 있어서, 그 물이 써져 버려서 그 물을 마실 수가 없어 사람들의 3분의 1이 죽어나가는 그런 모습을 보게 되는 겁니다. 출애굽 할 때 이스라엘 민족이 쓴 물을 만났으나, 모세가 가지를 던져서 쓴 물이 단물로 변해서 살아난 것과는 정반대의 현상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죠.

또 네 번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까, 또 해와 달과 별의 3분의 1이 타격을 받고, 낮과 밤의 3분의 1이 비추지는 것이 없어져 버려서, 큰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다시 독수리가 날아가면서 이야기를 합니다.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화로다. 화로다. 화로다. 지금 나팔을 세 천사가 불었는데, 아직도 나팔을 불 천사가 세 천사나 더 남아 있다고 그렇게 이야기하는 그 장면이 8장 말씀에 기록돼 있습니다.

이제 9장으로 한번 넘어가면, 9장에서는 어떠한 일들이 일어나는가에 대해서 또 제가 그림을 그려봤습니다. 다섯 번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까,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이 있는데요. 그 별이 무저갱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무저갱이 무언가요? 연양갱 같은 게 아니고, 무저갱이라고 하는 것은 “무저” 바닥이 없는 그런 깊은 심연, 그러니까 그 속으로 들어가면 끝도 없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그런 지옥을 상징하는 것이 무저갱입니다. 그 무저갱의 문이 열리게 되는데, 그 무저갱을 여니까 거기서부터 연기가 솟아오르고, 해와 공기가 어두워질 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황충이 같은 것들이 나오는데, 그 황충은 꼭 전갈과 같은 권세를 가지고 있어서, 이마에 인침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을 모두 해할 뿐만 아니라, 그 사람들을 괴롭히는데, 다섯 달 동안 죽이지는 않고 괴롭히는 모습이 등장하게 되는 겁니다.

그 황충들의 모습은 어떻게 생겼냐면, 마치 말 모양과 같고, 머리에 금관을 썼고, 사람의 얼굴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철 호심경을 가지고 있고, 날개를 달고 있어서 전쟁터로 가는 그런 모습, 전갈의 꼬리, 쏘는 살을 가지고 있어서 수많은 사람들을 해하는 일들이, 정말 힘든 모습들이 나타나게 되는데, 그 별의 이름들을 가리켜서 아바돈, 아블루온, 무저갱의 사자다. 그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제 여섯 번째 천사가 나타나서 나팔을 부니까, 금 제단 네 뿔에 서서 음성이 들리는데, 네 천사를 놓아줘라. 그런데 그 네 천사가 나타나서 사람의 3분의 1을 죽이는데, 또 마병대가 등장합니다. 얼마나 많은 마병대가 등장합니까? 이만만이니까, 한 2억 명의, 2억의 마병이 등장하게 되어서, 그 말을 탄 사람들을 보니까, 불빛 자줏빛 유황빛 호심경을 가지고 있고, 사자 머리를 하고 있는, 머리는 사자 머리고, 입은 불과 연기가 나오고, 유황이 나오는 그런 모습을 한 그런 군대가 등장하고 있는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어마어마한 재앙들이 닥치고 있는데도, 남아있는 자들은 회개를 하지 않으면서, 계속해서 우상에게 숭배하고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둑질 같은 것들을 계속 자행하고 있는, 계속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들이 일어날 거라고 하는 그 이야기가 요한계시록 8장과 9장 말씀에 기록돼 있습니다.

어느 정도 좀 그림이 그려지십니까? 예. 그려지시는 것 같아요. 한마디로 요약하면, 천사들이 나타나서 나팔을 불 때마다, 어마어마한 재앙들이 닥치게 될 거다 이겁니다. 이제가 요한 계시록을 설명하면서 늘 몇 번에 걸쳐서 강조해 드렸습니다마는, “도대체 이런 일들이 언제 일어날 것인가?”라고 질문을 던지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가 않습니다. 목사님들 가운데는 요한계시록을 설명하면서, 이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일들이 언제 일어날 거라고, 아니면 지금 일어나고 있다고, 그렇게 설명하시는 그런 분들이 많이 있는데요. 한마디로 다 엉터리라고 보시면 됩니다. 어떤 분을 설명하기를, 이런 지금 요한계시록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 무엇을 나타내는 거냐면, 핵폭탄을 의미한다. 생화학 무기를 의미한다. 2천 년 전에 그 당시에는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원자 폭탄이 만들어져서, 그래서 마치 무저갱의 열쇠가 열린 것처럼, 원자 폭탄이 쏟아져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버린 그 일을 예언하고 있는 것이라고 그렇게 설명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다 어거지 해석이라고 생각하시면 맞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요한계시록에 대한 이런 설명을 들으면, 제 마음 가운데 가슴이 뛰는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수천 년 전에, 그 옛날 환상을 본 그 이야기가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 그 예언의 말씀대로 원자폭탄이 터졌구나. 그 예언의 말씀대로 생화학 무기가 만들어졌고, 2차 대전이 일어났고, “그런 일들을 그 2천 년 전에 다 예언해 놓았구나”라고 하는 그 사실을 생각하면서, 제 가슴이 막 뛰고 “와 정말 맞구나”라고 그렇게 생각한 적도 있었으나, 가만히 성경을 연구해 보면, 잘 맞지가 않아요. 들어맞지가.

성경에 기록된 그 이야기들을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일에 하나씩 하나씩 꽤 맞추는 것은 어떻게 보면, 그럴듯해 보이기도 하지만, 엄격하게 말하면 다 억지로 꽤 맞춘 것이고, 어거지에 불과한 것이지, 이게 언제 일어날 것이다. 아니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라고 그렇게 설명하는 것은, 제대로 된 설명도 아니고, 더 나아가서 요한 계시록을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실 때 주신 목적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그런 해석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우리가 이 요한 계시록에 오늘 8장과 9장의 말씀을 살펴보면서, 주목해야 될 말씀이 있는데요. 그것이 무엇이냐면 요한계시록 9장 4절의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 9장 4절 말씀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땅에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시더라.”라고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다섯 번째 천사가 나타났을 때, 하나님께서 그 천사에게 하시는 말씀이 무엇이냐 하면, 그리고 그 무저갱에서 나온 전갈들, 황충들에게 해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이냐 하면, 너희가 이 세상을 완전히 초토화시켜도 괜찮다. 너희가 이 세상을 박살 내도 좋다. 그런데 무엇을 하지 말라?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에게만 그렇게 하라”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시는 것이죠. 여기서 이마에 인 하나님의 인을 맞았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어떠한 인을 우리들의 이마에 맞아야 된다고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어떤 목사님이 나타나서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 내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인을 여러분들의 이마에 쳐줄 테니까, 여러분들이 이런 인을 맞으면, 여러분들은 안전할 겁니다라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순 엉터리예요. 이것은 하나님의 인을 이마에 맞았다고 하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고 하는 의미이지, 실제로 이마에 무엇인가를 우리가 꼭 찍어야 된다고 하는 그런 의미의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는 어떻게 됩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가 어떻게 되는 것이죠? 어떻게 됩니까?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소유가 되는 거예요.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만 하면, 이미 우리는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인을 임하여 받으신 분들입니까? 아닌 분들입니까? 받은 분들이에요. 왜? 하나님의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미 우리들의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확신하셔도 괜찮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 가운데서 해 주시는 말씀이 무엇이냐 하면, 이런 어마어마한 재앙들이 일어나고 땅이 초토화되고 엄청난 재난들이 발생한다고 할지라도, 누구에게 일어날 것인가? 오로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것이지, 우리 성도들에게는 이런 상황이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9장 4절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이 있다고 한다면, 첫 번째로는 이 마지막 재난과 환란들이 계획 없이 아무런 목적 없이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통제하시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겁니다. 아무리 공포스러운 상황이 발생한다고 할지라도, 그 공포스러운 상황이 통제 없이 막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컨트롤 속에서, 계획 가운데서 섭리 가운데서 그렇게 발생하고 있는 것이지, 그런 통제 없이 무한대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먼저 기억해야 되는 것이고, 두 번째로 기억할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런 재난이 무차별적으로 닥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자들에 대한 심판일 뿐이지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옛날 6.25 때, 저는 6.25 때 태어나지 않아서 모릅니다마는 그런 얘기를 들었어요. 6.25 전쟁이 일어났을 때 낮이면 미군 비행기가 떠가지고 폭격을 하는 겁니다. 폭탄을 쏟아붓고 기관총을 발사하는 그런 일이 있었는데, 미군 비행기가 전투기가 뜨면 북한 군인들이 혼비백산에서 막 도망갔다고, 그래서 숨어야만 했다고 그래요. 따라서 미군 비행기가 출격하고 뜬다고 하는 이야기는 공포스러운 일입니까? 공포스러운 일이 아닙니까? 공포스러운 일이죠. 미군 전투기가 떠서 폭탄을 투하하고, 기관총을 쏟아부을 때, 북한 군인들은 너무나도 무서워서 막 도망가야만 되는 혼비백산의 그런 상황이 된 겁니다. 하지만 미군 비행기가 뜰 때 만세를 부른 사람이 있어요. 누가 만세를 불렀을까요? 남한 사람들은 만세를 부르는 거예요. “우리를 구하러 왔구나”라고 하는 그 사실 때문에 만세를 부를 수가 있는 것이죠. 그런 상황으로 우리가 이해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와 비슷한 것이죠.

마지막 날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요한계시록 8장 9장에서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은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넣을 엄청난 재난들이 닥치게 될 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천사가 나팔을 불 때마다, 어마어마한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겁니다. 공포스러운 일이 발생하게 될 겁니다. 그런데 그 공포스러운 일이 누구에게 일어날 것인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자들에게 일어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두려워할 필요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아무리 재앙이 내린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미군 폭격기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물론 미군 폭격기는 잘못 투하해가지고 또 잘못 피해서 아군의 사상자도 내기는 했지만, 하나님의 심판은 한 치의 오차가 없는 심판, 그런 심판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결국은 믿지 않는 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될 자들에게 내려지는 심판일 뿐이지, 성도들은 두려워할 것이 아니고,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해야 할 것이라고 하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경의 예를 찾아본다고 한다면 애굽 땅에 살던 이스라엘 민족은 10가지 재앙이 애굽 땅에 일어나는 모습을 직접 목격해야 했습니다. 애굽 땅에 내린 그 10가지 재앙들은 정말 무시무시한 재앙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재앙들이 내릴 때 이스라엘 민족들은 두려워 할 필요가 있었습니까?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습니까?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이 살고 있는 그 고센 땅은 보호하시고, 그곳에는 재앙이 내리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간섭해 주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재앙이 어디로만 향했느냐? 오직 애굽 땅에만 이집트 사람들에게만 내렸다고 하는 것이 열 가지 재앙인 것이고, 그 재앙을 바라볼 때 이스라엘 민족들은 두려워한 것이 아니라, 기뻐하고 감사한 거예요. 살려주시는 그 하나님, 구원하시기 위해서 베풀어주시는 그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 있었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마지막 날에 어떠한 일들이 있을 것인가? 요한계시록은 말하기를 마지막 날에 어마어마한 재앙들이 재난들이 닥치게 될 거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7년 대 환란이 오든, 무슨 일이 일어나든 우리 성도들은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감사하며 주 안에 있다고 하는 사실 때문에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살펴볼 말씀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계시록 8장 3절과 4절의 말씀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이죠.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재단 곁에 서서 금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그 금 재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사도 요한이 본 환상이 무엇이냐면, 천사가 금향로를 가지고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데, 그 향연과 연기와 기도가 합쳐져 하나님 앞으로 올라간다고 하는 그 장면을 보게 된 것이죠.

금향로라고 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기도가 마치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게 되어 있는 것처럼,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 앞에 올라간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그림인 것이죠. 우리가 기도할 때 제일 힘든 게 무엇이죠? 기도하면서 제일 답답한 게 무엇입니까? 그것이 무엇이냐면, “과연 내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실까?”라고 하는 확신이 없을 때 제일 답답해요. 그게 제일 괴로운 것이죠. 내가 기도하기는 하는데, 하나님께서 들어주시는 것 같지 않고, 내가 기도하기는 하는데 , 허공에 그냥 혼잣말하는 것 같고, 아무 의미 없는 일을 내가 하고 있는 것 같은, 혼잣말하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가장 힘들고 어려운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오늘 요한에게 보여준 그 환상이 무엇이냐면, 그 천사들이 금향로를 가지고 재단에 불을 담아 가지고 올라가는 것이고, 우리 성도들의 기도가 그냥 아무 의미 없이 땅에 떨어져 버리고, 발에 밟히는 그런 하찮은 쓰레기 취급당하는 것이 아니라, 천사들의 그 손에 붙들려서 그 기도가 하나님 앞으로 상달되고 있다고 하는 것, 그리고 그 향로를 재단에 불에 담아 땅에 쏟을 때, 어떠한 일들이 일어나는가? 우레가 터지고, 번개가 나고, 음성이 나고 지진이 나는 그런 온 세상을 뒤집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하는 것이 요한 사도에게 보여준 환상의 모습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이 있다고 한다면, 우리가 하는 그 기도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전혀 신경도 쓰지 않고, 그냥 콧방귀 뀌어버리고 귀를 닫아 버리시는 분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선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고 하는 이 사실을 저희들이 믿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하나님은 우리의 영적인 아버지세요. 하나님은 이웃집 아저씨가 아니에요. 하나님은 그냥 아무런 감정이 없는 경찰이 아니에요. 하나님은 그냥 학교 선생님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누구냐면 우리의 아버지이신 것이죠. 아버지는 누구냐? 우리 어머니, 우리 부모님이 누구냐? 부모님이 누구냐면, 우리 자녀가 원하는 것이 있어서, 부모님에게 무엇인가를 말하면, 그 말이 그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 게 부모의 마음이에요.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자녀가 뭘 먹고 싶다고 말하면, 우리 자녀가 뭘 갖고 싶다고 말하면, 그 말이 여러분들의 마음에서 그냥 없어져 버리나요? 아니요. 그게 마음속에 꽉 박혀요. 우리 아이가 말합니다. 아빠 오늘 직장 갔다가 회사 갔다가 집에 올 때, “아이스크림 좀 사 와”라고 말하면, 그냥 맨손으로 들어갑니까? 맨손으로 들어가요? 그 말이 가슴속에, 내가 집에 갈 때 우리 아이에게 줄 아이스크림 사 가지고 오늘 집에 가야 되겠구나. 그게 내 마음을 꽉 족쇄를, 그 아버지의 마음에 심어주는 거예요.

우리 아이가 말합니다. 아빠 오늘은 좀 빨리 와서, 나랑 같이 밥 먹자 말하면, 그 말이 내 삶을 꽉 붙들고 있어서, 오늘은 내가 일찍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거예요. 제 아버지도 그랬어요. 제가 우리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셔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많지 않습니다. 우리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많지 않은데, 기억에 많이 남는 것이 뭐냐면 아주 무서운 분이었어요. 엄청 두드려 패고 엄청 화를 많이 내고 정말 무섭게 굴었던 분이에요. 좋은 느낌이 있을 수가 없죠. 그런데 그 아버지가 어느 날 제게 바나나를 사준 거예요. 바나나를. 지난번에 한번 말씀드렸죠. 그 바나나가 1970년대에 바나나는 우리나라에 수입도 안 되던 시기였고, 제주도에서만 겨우 나서 팔았는데, 바나나 하나가, 한 손 전체가 아니라 바나나 하나가 그 당시에 얼마였냐면 500원이었어요. 500원 라면이 20원 30원 하던 그 시절에, 바나나, 이거 이거 하나 이게 500원이에요. 얼마나 비쌉니까? 오늘날로 치면 얼마에 얼마 정도 가치에 해당한다고 알 수 있나요. 한 5만 원, 칠만 원 그 정도 되는 가치였을지 몰라요. 그거 딱 바나나 하나 근데, 이 잘 모르는 제가 그 바나나를 보고 저거 먹고 싶다고, 사줬을까요? 안 사줬을까요? 사줬어요. 돈이 별로 없는 우리 아버지가 그걸 저에게 사줬어요. 그리고 그게 제 마음에 남아 있어요. 우리 아빠는 사줬다. 그런데 그게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인 것이죠.

우리가 기도하면, 그냥 외면해버리는 하나님이 아니라, 성도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향로의 연기와 함께 올라가서, 하나님 앞에 쏟아 놓을 때, 번개가 치고, 우레가 치고, 지진이 일어나는 천지개벽의 역사가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신다는 것이죠.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게 되었는가? 어린양 예수의 피로 가능하게 된 것이죠. 원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었으나, 우리는 영원히 심판받아야 될 사람들이고, 우리는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들이었으나, 예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고, 십자가 위에서 하나밖에 없는 그 아들이 하나님을 향해서 울부짖는 겁니다. “하나님 나 죽겠어요” 하는데,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 그 아들의 울부짖음을 외면하심으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들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시고, 그 기도에 귀를 기울이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대한 이 환상은 어쩌면 오늘 우리들의 어떤 분들의 마음 가운데는 이게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가? 도대체 우리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이야기인가라고 하는 그런 느낌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먼 훗날의 이야기이고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떤 분들에게는, 이 요한계시록의 그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 이야기가 먼 훗날 어떤 나와는 상관없는 시기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사실 지금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이야기를 그림 언어로 그려 놓은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받으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제가 예전에 2017년에 나왔던 2017년 말에 나왔던 <신과 함께>라고 하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요. 차태현 하정우 주연의 <신과 함께>라고 하는 영화를 보면서, 그 영화가 뭐냐면 사람이 죽은 후에 어떻게 심판을 받는가? 지옥의 이야기들을 기록하고 있는데, 그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제 마음 가운데 들었던 생각이 무엇이냐면, 이 영화가 죽은 이후에 심판의 모습 지옥의 모습을 그려주고 있는데, 근데 사실 영화관을 나오면서 느끼는 느낌이 무엇이었냐면, 그런데 바로 이 세상이 지옥과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어떤 사람에게는 생존 경쟁을 위해서 무한히 달려가야 되는 바로 이 세상이 지옥과 같고, 그런 이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어쩌면 이 요한계시록 8장 9장에 기록되어 있는 이 이야기들이 어쩌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처럼 느껴지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정말 고통스럽고 견디기 어려운 그런 일들을 당하고 있는 상황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이 코로나 사태든 아니면 개인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그런 심각한 일들을 만나는 경우가 있을 텐데, 그런데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사랑하는 우리 자녀들에게 들려주시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이냐 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쫄딱 망하게 되는 것 같은 상황이 발생하고, 그리고 엄청난 재난과 아픔들이 우리들에게 다가온다고 할지라도, 첫 번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이고, 두 번째는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의 기도를 전혀 외면치 아니하시고 우리가 보기에는 응답되는 것 같지 않아서 답답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의 뜻이 우리와 달라서, 하나님께서 어떠한 방식으로 주시는지 우리가 종종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귀 기울이고 계시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믿음으로 승리하는 그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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