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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안수

[스크랩] 바울과 여성 – 최갑종

바울과 여성 -여성 안수문제를 중심으로- 최갑종(백석대학교 총장, 바울신학전공) 1. 서론 기독교가 태동된 주후 1세기 헬라-로마-유대사회는 남존여비사상(男尊女卑思想)이 팽배한 가부장적(家父長的) 사회였다. 정치, 경제, 문화, 교육, 예술, 종교, 사회의 모든 영역들을 남성이 주도하였으며, 여성들은 이들 영역들로부터 철저히 배제되었다. 여성들은 존재론적(存在論的)으로 남성들보다 하위급에 속한 자로 간주되어 성차별이 당연시되었으며, 남성이 있는 대중 앞에 나설 수도, 말할 수도 없었고, 거리를 나설 때는 얼굴조차 함부로 노출하지 않아야만 했다. 하지만 기독교운동이 시작되면서 남성위주의 헬라-로마-유대사회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다. 예수는 남녀노소(男女老少) 빈부귀천(貧富貴賤)을 구별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였다. 여성들을 찾아갔고, 여성들을 만났으며, 여성들에게 이적을 베풀었고, 여성의 질병을 고쳐주셨으며, 그들을 자신의 하나님의 나라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시켰으며, 그들을 부활의 첫 증인들로 삼았다. 예수에 의해 시작된 기독교운동을 헬라-로마사회에까지 확장시킨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는 인종적, 신분적, 성적 차별이 있을 수 없다”(갈 5:17),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누구든지 새로운 피조물이다”(고후 5:17)는 혁명적인 선언을 하면서, 당시 사회와 가정에서 소외되었던 여성들을 초기 기독교운동에 적극적으로 불러들였으며, 여성들을 교회의 지도자나 자신의 동역자로 삼았다. 여성에 대한 예수와 바울의 자세와 가르침을 그 당대사회구조면에서 본다면 참으로 놀랍고 혁명적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기독교는 초기 시절부터 당대의 가부장적 사회와 문화를 뛰어 넘어 여성을 남성과 똑같은 인격으로 간주하였으며, 여성들을 존중하고 그들에게 새로운 도전과 기회를 제공하였다. 구원의 은총과 은사와 교회의 제반사역에 있어서 여성을 차별하지 않았다. 여성들도 남성들과 똑같이 교회의 구성원이 되었으며, 남성들과 함께 성령의 은사들을 받았으며, 함께 예배를 드렸으며, 함께 기도하고, 함께 찬송하고, 함께 말씀을 읽고, 듣고, 그리고 말씀을 가르쳤다. 하지만, 남존여비사상과 가부장적구조가 여전히 지배적인 사회구조 안에서, 어떤 여성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성차별의 자유를 지나치게 확대시킴으로 인해 가정과 교회에 무질서를 초래하였고, 그로 인해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이해와 선교의 장애를 불러일으키게 되었을 경우에는 그들의 자유가 일시 제재를 받기도 하였다(고전 14:34-35; 딤전 2:11-15). 그렇지만 남녀의 동등한 인격과 역할을 지향하고 있는 기독교복음자체가 축소되거나 바꾸어진 것은 아니었다. 기독교 복음은 가는 곳마다 여성들에게 새로운 자기인식과 자유와 도전과 기회를 제공하였다. 따라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남녀평등과 여성의 인권이 보장된 오늘의 평등과 민주사회가 형성되기까지 기독교의 지대한 역할과 공헌이 있었다는 것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한국사회만 하더라도 일백여년 전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여성의 위치와 역할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다. 근세기 한국 기독교지도자들은, 당시 유교의 남존여비사상과 가부장적 사회구조 안에서도, 선교사들과 함께 여성을 교회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여성을 교육시키고 개화시키는데 앞장을 섰다. 이화학당, 호수돈 여고, 정신여고, 배재학당 등은 여성 교육과 여성 지도자 배출의 산실이 되었다. 따라서 오늘 날 한국사회에서 남녀평등과 여성들의 인권이 법으로 보장되기까지 한국 기독교의 지대한 공헌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 결과 오늘날 정치, 경제, 과학, 문화, 교육, 예술 등 사회전반에 걸쳐 여성들의 진출과 활동은 과히 놀랄만하다. 여성과학자, 교수, 정치인, 기업인, 기술자, 교사, 군인, 의사, 법조인 등 남성이 관여하는 모든 영역에 여성들이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다. 여성 장관, 여성 국회의원은 물론, 여성이 대통령으로 선출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초기의 한국교회가, 주후 1세기의 기독교가 헬라-로마-유대사회에서 그랬던 것처럼, 여성들의 인권과 자유와 역할을 확장시키는데 있어서 사회보다 항상 앞장을 섰었던 것에 반해, 오늘날의 한국 기독교는 여성의 문제에 있어서 한국사회를 선도해가고 있기보다도, 오히려 사회보다 뒤떨어져 가고 있는 경우가 있다. 이점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교회 안에서 여성의 성직 안수(예를 들면, 여성목사와 장로직분)를 비롯한 여성의 역할을 제한하고 있는 문제이다. 여성의 성직 안수문제는 이미 지난 반세기 이후부터 한국 기독교 안에서 가장 열띤 논쟁의 대상이 되어 오고 있는 문제 중의 하나이다. 어떤 교단 교회들은 이 기간 동안 교단의 금기사항으로 간주되어 왔던 여성안수문제를 허용하여 교회 안에서 여성들의 위치와 역할을 적극적으로 확대한 반면에, 어떤 교단 교회들은 여성안수문제를 교단의 신학 및 정체성과 결부시켜 계속해서 반대의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다. 왜 한국 개신교 교회 안에서 여성의 위치와 역할 문제를 두고 이와 같은 양극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가? 더 심각한 문제는, 여성안수문제를 포함하여 교회 안에서 여성의 위치와 역할을 더욱 확대하려는 교회나 신학교 교수들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 여성의 안수 문제만은 어떤 일이 있어도 결단코 용납될 수 없다고 하는 교회나 신학교 교수들까지도, 똑같이 자신들의 주장의 근거를 초대 기독교 공동체와 신약성경의 가르침에서 찾고 있다는 점이다. 여성안수를 반대하는 교단이든, 찬성하는 교단이든, 여성안수를 반대하는 교단의 소속교수이든, 여성안수를 지지하는 교단의 소속교수이든, 다 같이 여성의 위치와 역할에 관한 자신들의 주장의 신학적 근거를 주로 바울서신에서 찾고 있다. 예를 들면, 여성안수를 반대하는 교수들은 고린도전서 11:3의 남자는 여자의 머리임을 가리키는 본문, 고린도전서 14:34의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 하라는 가르침, 디모데전서 2:12의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않는다는 가르침 등에 근거하여, 바울은 여성의 안수를 반대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에 여성의 안수를 지지하는 교수들은, 갈라디아서 3:28의 남자와 여자는 그리스도 하나이라는 가르침, 고린도전서 11:1-12의 주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않다는 가르침, 바울이 자신의 선교와 목회현장에 브리스길라, 뵈뵈, 순두게 등 여러 여성 사역자들을 참여시킨 점 등에 근거하여, 바울은 여성의 안수를 반대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왜 동일한 초대 기독교 공동체나 신약성경을 두고 이처럼 서로 상반된 주장들이 나오고 있는가? 초대 기독교 공동체나 신약성경 자체가 이중적인 가르침을 주고 있기 때문인가? 아니면 동일한 공동체나 성경에 대한 이해와 해석이 서로 다르기 때문인가? 만일 이해와 해석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그 주된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이 글의 주된 목적은,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서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사도 바울의 교회 안에서 여성 위치와 역할에 관한 주요 가르침을 헬라-로마-유대사회의 문맥과 관련하여 살펴봄으로써, 한국 개신교 교회 안에서 오랫동안 토론되어 온 여성들의 위치와 역할 문제, 특별히 여성의 성직안수문제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히는데 있다. 어떠한 연구도 전제와 방법론 없이 시작할 수는 없다. 여성의 안수문제도 예외가 아니다. 나는 여성의 위치와 역할에 관한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접근함에 있어서 다음과 같은 해석학적 전제를 가지고 접근하고자 한다. 첫째, 바울의 서신들은 모두 영감(靈感)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시대와 문화와 환경을 초월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권위를 가진 메시지를 지니고 있다. 둘째, 바울의 서신들은, 영감(靈感)된 하나님의 말씀임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시대와 문화와 환경에 살았던 저자가, 그 시대와 문화와 환경에 살던 사람들에게 직접 주는 독특하고 개별적인 메시지를 지니고 있다. 예를 들면, 바울이 고린도교회 여 성도들을 향해 예배 때에 “머리에 수건을 쓰라”고 한 교훈이나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고 한 교훈이나, 디모데에게 “드로아 가보아의 집에 둔 겉옷과 가죽종이에 쓴 책을 가져오라”는 부탁이나, 빌레몬에게 “나를 위해 처소를 예비하라”는 부탁 등은, 특정한 시대와 문화에 살던 사람들이나 개인에게 주어진 말씀이다. 이들 본문들은 “서로 사랑하라”, “성령의 인도를 따르라”는 본문처럼 모든 시대의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직접 적용되어야 하는 규범적인 권위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없다. 셋째, 바울 서신에 대한 올바른 해석은, 해석자가 자신의 어떤 주장을 전제한 다음, 특정한 본문에 자신의 주장을 가지고 가서 그 본문으로부터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내용을 끌어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특정한 본문으로부터 저자가 그 본문을 통하여 자신의 독자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본래 의도나 메시지를 끌어내는 것이다. 특정한 본문에 대한 해석은 그 본문의 상황적 적용보다 선행되어야 한다. 2. 바울의 콘텍스트(Context)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주후 1세기 헬라-로마-유대 사회 안에서 형성되었으며, 신약성경, 특별히 바울의 서신들은 일차적으로 그 시대에 살고 있는 헬라-로마-유대사람들을 대상으로 기록되었다. 초대 기독교와 신약성경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예수와 바울도 유대인으로 출생하여 헬라-로마-유대 사회와 문화의 틀 속에서 성장하고 생활하였으며, 동일한 문화권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선교활동을 하였다. 따라서 여성의 위치와 역할에 관한 바울의 가르침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예수와 바울 당대 헬라-로마-유대 사회에서의 여성의 역할과 위치를 살펴보는 것이 요구된다. (1) 헬라 사회 고대 헬라 사회에서 남성은 그 신분과 존재에 있어서 원천적으로 여성보다 우월하며, 따라서 여성은 남성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남성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등 여러 영역에 자유롭게 관여하여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던 반면에, 여성은 이와 같은 남성의 영역에 관여할 수 없었고, 여성의 위치와 역할은 주로 가정에 제한되어 있었다. 여성들이 공회에 참석하여 투표를 하거나 말을 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주전 4세기의 아덴에서 여자들은 자신의 가까운 친척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얼굴까지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아야만 했다. 심지어 처녀는 결혼하는 신랑이 자신의 얼굴을 보는 첫 번째 사람이 되도록 하여야만 했으며, 결혼한 후에 남편이 자기 아내의 얼굴을 대중 앞에 노출시키게 될 경우, 그는 바로 자신의 얼굴을 욕되게 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고전적인 아덴의 법에 따르면, 아내 된 여자가 가정을 떠나 대중들 앞에 나서게 되는 경우, 그 여자는 자신의 남편으로부터 부정한 여인으로 간주되어 이혼을 당할 수도 있었다. 일반적으로 고대 헬라 세계에서 정숙한 여자들은 결혼 전에는 자기 아버지의 허락을 받지 않고는, 그리고 결혼 한 후에는 자기 남편의 허락을 받지 않고는 일체 집을 나서지 않았다. 결혼한 정숙한 여자들의 경우 남편이 정치적이든, 사회적이든, 혹은 개인적인 유흥을 위해서든 집을 나설 때 따라가는 것은 금기사항이었다. 부인이 남편이 참석한 파티장소에 동행하여 술을 마시게 될 경우, 그것은 남편과 자신에게 다 같이 수치스러운 것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창녀들만이 남자들과 함께 술을 마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결혼하기 전에는 가정에서 아버지의 권위 아래 복종하면서 생활하여야 했고, 결혼한 다음에는 남편에게 복종하면서 가사 일에 매여야 했고, 아이를 낳아 양육하여야 했다. 그리고 집안에서도 외부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도록 거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여인의 방’으로 불리는 별채에 머물러야만 했다. 주전 4세기 중엽에 살았던 아폴로도루스(Apollodorus)가 남긴 다음과 같은 말은 그 당시 사회 구조가 얼마나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종속되어 있었는가를 보여 준다: “우리[남성]는 우리 자신의 쾌락을 위하여 젊은 여인들과, 매일 매일 몸을 돌보아 줄 하녀들과, 그리고 아이를 낳아 양육하고 가사 일을 맡길 수 있는 아내를 두고 있다.” 일종의 고급 창녀로 불리어질 수 있는 ‘젊은 여인들’은 남자들의 저녁 파티에 참석하여 남자들을 시중들고 성적으로 그들을 즐겁게 해주는 역할을 담당하였으며,–이러한 파티에 아내들은 참석할 수 없었다– 하녀들은 집안에서 주인 남자와 주인 여자를 시중들고 그밖에도 여러 가지 가사 일을 담당하였으며, 그리고 아내들은 아이를 낳아 양육하고, 남편의 부재중에도 집안에서 가사 일을 전담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여자들이 부득이 집을 나서게 될 경우, 남자들에게 일체 말을 하지 않아야만 했다. 유리피데스(Euripides)는 “결혼한 여자[혹은 여성]가 젊은 남자와 함께 서있는 것은 수치스러운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 여자, 특별히 결혼한 여자가 거리에서 젊은 남자와 함께 있거나 말을 하고 있을 경우, 수치스러운 일을 하는 여자나 창녀로 취급될 수 있었다. 1세기의 헬라 작가 플루타르크(Plutarch)는 [신부와 신랑에게 주는 충고]라는 책에서 ‘결혼한 여자는 집안에 머물러야 하며, 손과 발과 얼굴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신체도 일반 사람들에게 노출시키지 않아야 하며, 밖에서 말을 하지 않아야 하며, 매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여야 한다’라고 쓰고 있다. 여자가 밖에서 묻거나 말을 하고 싶을 경우 자기 남편에게만 하거나 남편을 통하여 말을 하여야 하며, 직접 밖에서 말을 하는 경우 그것은 자신의 벌거벗은 몸을 드러내는 수치스러운 것이나 남편을 욕되게 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2세기 초엽에 디오 크리소스톰(Dio Chrysostom)은 거리를 나설 때 얼굴은 물론 몸 전체를 가리고 나서는 여인들을 자기 남편을 욕되게 하지 않는 정숙한 여인으로 칭찬을 하고 있다. 이처럼 고대 헬라 사회에서 여인들의 언행은 자신들은 물론 자기 남편들의 수치/체면과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었다. 물론 바울 당대에 마게도니야의 여성들은, 우리가 사도행전 16:14-15과 빌립보서 4:2-3에서 엿볼 수 있는 것처럼, 고대 헬라 지역의 여성들보다도 더 많은 자유를 누렸으며, 집안일은 물론 장사를 포함하여 시의 관리나 중요한 민중제사와 국가제사의 여사제로 일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여종들이나 여자 노예들은 일반 여자들에게 적용되는 사회적 규범이나 제약에 매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들은 집안에 있는 여주인들을 대신하여 외부세계에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대중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샘에서 물을 길어오거나 기타 다양한 심부름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골에서 자기 남편들과 함께 농사를 지어야 하는 가난한 농부들의 아내들에게도 이와 같은 규범들이 엄격하게 적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대다수 헬라 여자들은 철저하게 남자들에게 예속되어 있었으며, 남자들이 하는 일에 함부로 관여할 수 없었다. 헬라 세계에서 여자들을 남자들에게 종속시키게 된 배경에는, 우리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것처럼 여자들은 존재론적으로 남자들에 비해 불완전하고 하급 존재에 속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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