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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행하고 (고후 5:1-7)

제가 마술을 하나 배웠는데요. 그래서 오늘 설교는 마술을 하나 보여드리고 시작할까 싶습니다. 여기 물이 한 컵 있습니다. 떨어지면 안 되는데, 그런데 제가 어설퍼서 실수하더라도 잘 봐주시길 바랍니다. 물컵이 있는데, 여기에 제가 수건을 한번 씌우고, 한번 마술을 걸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 둘, 셋. 제가 무엇을 한 걸까요? 이 수건 밑에서 제가 색소를 섞은 걸까요? 무엇을 한 걸까요? 물감을 탄 것일까요? 다시 한번 마술을 또 걸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 둘, 셋. 성공한 것 같습니까? 이 마술의 비밀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고, 조그마한 색종이입니다. 색종이를 어제 만들어 가지고, 준비를 했는데요. 색종이를 넣었다 뺐다 하면, 색깔이 변하는 것이죠. 그냥 물인데, 색종이 하나 넣으면, 칼라가 바뀌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사실은 마술이 대단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눈속임에 불과한 것이죠.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어쩌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도, 정말 많은 마술들이 벌어지고 있는 세상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우리가 있는 이 세상은 사탄이 마술을 부리고 있다고 이야기를 할 수 있겠는데요. 정말 우리가 잘못 보게 만드는 것이죠. 그냥 투명한 물인데, 빨간 물인 것처럼, 변하게 보인 것처럼, 보이게 그렇게 만들 듯이, 사탄은 우리들로 하여금 우리들의 눈을 현란하게 만들어서, 현혹시켜서,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을 잘못 보게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다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고,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다 절망스럽게 만들어 버리고, 그렇게 절망스럽게 보이도록 만들어 버리고, 뿐만 아니라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이 정말 중요한 것인 양, 우리로 하여금 착각하게 만드는 기술을 사탄이라고 하는 마술사는 가지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 사탄이 부리는 이 악한 마술에 우리가 속아 넘어가지 않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창세기에 보면 선악과의 이야기가 있는데 이 선악과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들이 정말 많이 있습니다. 선악과가 무엇인가요? 선악과가 어떤 과일일까요? 그 선악과라고 하는 과일은 과일의 왕이 아닙니다. 과일의 왕은 두리안이죠. 아니면 요즘 나오는 복숭아가 훨씬 더 맛있을 것 같아요. 선악과가 무엇인가? 정말 맛있어서, 정말 먹을 만한 정말 탐스럽고, 정말 우리가 가져야 될 그런 과일인가? 반드시 얻어야 될 과일인가 하면, 그게 아니라, 그냥 수많은 과일 가운데 하나밖에 안 되는, 그저 평범한 과일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하지만 사탄은 아담과 하와를 향해서, 이 선악과야말로 정말 탐스러운 것이다. “이 선악과야말로 정말 중요한 것이다”라고, 그렇게 속이게 된 것이죠. 가장 탐스러운 것이라고 보이게 만들었고,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면서까지, 이 선악과를 반드시 먹어야만 되겠다고 하는, 그런 욕심을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 넣어준 것입니다. 결국 안타깝게도, 아담과 하와는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 하나님의 그 따뜻한 명령, 나와 함께 영원히 에덴동산에서 잘 살 수 있게 하시겠다고 하는, 그 하나님의 따뜻한 명령을 거부해 버리고, 그 선악과를 먹음으로 말미암아, 이 타락의 길로 걸어가고, 에덴동산에서부터 쫓겨나게 되는 비참한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 안타까운 결과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그런데 이러한 사탄의 행동은, 오늘날에도 우리들에게 똑같이 작용하고 있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탄은 우리들을 향해서 끊임없이 별거 아닌 것이 정말 중요한 거라고 속이고 있습니다. 별거 아닌 것인데, 그것이 정말 가치인 것인 양 보이게 만들고 있는 것이죠. 투명한 물인데, 빨간불로 바뀌어버린 것처럼, 이것이 정말 대단한 것인 양 우리들을 속여 나가고 있는 것인데요. 따라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사탄의 이러한 속임수에 쉽게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되는 것이고, 사탄이 우리들에게 보여주는 방식대로 살아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우리에게 느껴지는 대로, 그냥 보이는 그대로 살아갈 것이 아니라, 정말 무엇이 중요한 것인가? 이것이 정말 무엇인가? 정말 믿음으로 우리가 살아가야 한다고 하는 그런 교훈을 우리가 받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 가운데서 고린도후서 5장 7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다.” 우리가 살아갈 때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가? 보이는 대로, 내 눈에 보여지는 대로, 그냥 그 보이는 것에 따라서 살아갈 것이 아니라,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된다. 보이는 것에 의해서, 우리가 넘어질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에 의해서, 좌절하고 보이는 것에 의해서, 절망하고, 보이는 것에 의해서 낙담할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탄은 항상, 우리로 하여금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이, 정말 중요한 것인 양 만들고, 정말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되어서, 그것이 없어지게 되면, 절망하게 만들기도 하고, 낙담하게 만들기도 하고, 여러 가지 어려움 가운데 빠지게 만드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제가 예전에 한번 썼던 시인데요. 제가 시인은 아니고, 몇 개, 몇 개의 시를 썼는데 한 7년 전에 제가 한번 소개를 한 바 있는데, 시간도 많이 지났고, 또 들어보지 못한 분도 있을 것 같아서, 다시 한 번 소개를 한번 해볼까 싶습니다. 무슨 시냐면 “딱지”라고 하는 시예요. “딱지.” 한때 너는 나의 전부였다. / 모든 종이는 / 딱지가 되어야 했고 / 너는 나의 자존심이었고 / 너는 바로 나였다. // 어느 순간 / 너는 내 삶에서 사라졌다. / 배설물처럼 사라졌다. / 그렇게 소중했던 네가 // 너는 진화했다. / 딱지에서 게임기로 / 게임기에서 돈으로 / 돈에서 명예와 권력으로 / 그래도 너는 여전히 딱지다. // 지금은 / 또 다른 딱지를 모은다. / 언젠가 다 사라져 없어질 것이 뻔한 딱지를 / 그래도 지금은 그 딱지가 전부이니까 / 그게 나를 지탱해 주니까 / 그게 나니까 // 나는 갈망한다. / 사라지지 않을 것을 / 그 어느 것으로도 대치될 수 없는 것을 // 괜찮아 보입니까?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 별로 가치가 없는 것들, 별로 의미가 없는 것이 정말 소중한 것인 양, 그것이 제일 중요한 것인 양 우리를 속이게 되는데요. 우리는 그래서 어렸을 때는 딱지가 최고인 줄 알았어요. 그것이 최고인 줄 알고, 그거 한 장 더 모으기 위해서, 그거 한 장 더 따기 위해서, 그렇게 화를 내고 싸우고, 불쾌해하고, 조금 더 따면 너무나도 기쁘고 했는데, 지금 커서는 그 모든 것들이 다 사라져도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죠.

 

그런데 계속해서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 썩어질 것들 없어질 것이 마치 소중한 것이며, 그것이 없어지면 우리의 문제가 정말 심각한 것이고, 우리가 아무 의미가 없는 삶이 되는 것인양, 우리를 속이고 있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분명하게 기억할 것이 있다고 한다면,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딱지와 같은 것이죠. 다 사라져 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고, 없어져도 무방한 것이고, 우리가 한때 목숨을 걸었지만, 사실은 목숨을 걸 게 아니었던 허무한 것이었다고 하는 점을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이죠. 우리 앞에 보이는 것은 무엇입니까? 지금은 소중해 보이지만, 사실은 그게 정말로 소중한 것이 아니라고 하는 점을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오늘 우리가 읽은 고린도후서 5장 1절 말씀에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이 세상에 장막집이 무너지면, 그걸로 끝이 아니라 하늘에 영원한 집이 있다 말씀해 주고 계시는 겁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땅에 있는 장막 집이라고 하는 게 무엇일까요? 땅에 있는 장막집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아마도 제 생각에는 이것은 우리의 육신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우리가 육신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우리는 이 육신이라고 하는 집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육신의 집이 언젠가는 무너질 때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천년만년을 사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우리의 목숨이 끊어질 때가 있는 것이고, 더 이상 호흡할 수 없게 되는 때가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땅에 있는 장막집이 무너진다고 하는 것은 가장 절망적인 순간을 이야기할 겁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절망적인 게 무엇일까요? 죽음이죠. 죽음으로써 모든 것이 다 끝장나버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 말씀에서 우리를 향해서 권면해 주고 있는 내용이 무엇이냐면, 만일 우리의 땅에 있는 장막집이 무너진다고 할지라도 괜찮다는 거예요. 그것이 끝난다고 할지라도 괜찮다고 말씀해 주시고 계시는 것이고,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에게는 하늘에 소망이 있다고 말씀해 주고 계시는 것이며, 우리에게 무엇이 있는가? 하늘에 있는 집이 있는 것이고, 그 집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이며, 그것은 영원히 무너질 수 없는, 우리에게 영원히 준비되어 있는, 하늘에 소중한 집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결론은 무엇입니까?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라.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다고 할지라도 낙망하지 마라. 아무리 힘든 일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렇게 좌절할 게 아니라고 말씀해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 땅에 있는 장막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육신만이 아니라, 우리가 갈망하는 그 모든 것을 다 의미해도 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간절히 소망하던 것, 정말 우리의 열정을 다 쏟아부었던 것을 의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다 걸었던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의 건강을 의미할 수도 있겠고, 우리의 성공을 의미할 수도 있겠고, 내가 취업하는 것을 응징할 수도 있겠고, 내가 성공하는 것, 그리고 내가 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겠고, 우리 자녀들을 의미할 수도 있겠고, 우리가 정말 소망하고 갈망하던 그 모든 것을 가리켜서 땅에 있는 장막집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할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그것이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할 때가 있다는 거예요. 무너질 때가 있다는 거예요. 우리가 살아가는 가운데 어떤 일이 있는가 실패가 있습니다. 성공은 아주 극소수인 반면에, 실패가 아주 만연하게 일어나게 되는데요. 그런 실패는 어디에서부터 오는가? 실패는 우리가 최선을 다하지 않는 데서부터 오는 경우도 있지만, 정말 최선을 다해도, 정말 내 열정을 다 쏟아부어도, 모든 노력을 다 한다고 할지라도, 나는 아무 문제가 없고, 나는 정말 성실하게 살았고, 나는 정말 최선을 다했다고 할지라도, 안타깝게 우리 가운데 실패가 다가올 수가 있는 것이죠. 우리가 간절히 소망하던 것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 때가 있는 것이고, 우리가 아무리 수고하고 애를 썼지만, 아무런 열매가 없이 그냥 허무하게 끝나버리는 경우가, 우리들의 삶 가운데서 너무나도 많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죠. 나는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는데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인해서 내가 교통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나는 아무런 죄가 없는데 다른 사람의 사악한 범죄의 대상이 되어서, 내 모든 것이 빼앗겨버리는 경우도 생기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오늘 고린도후서 5장의 말씀은 무슨 말씀을 해주고 있습니까? “이 세상에 장막집이 무너지면 끝이다”가 아니라, 그것이 가장 소중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고, 그리고 그것이 무너지면 우리의 인생이 끝일 것처럼 생각되지만, 그게 아니라, 하나님의 그 소망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지으신, 영원한 집을 바라보며, 소망을 가지고 믿음 가운데 믿음으로 살아가라고 가르쳐 주는 줄로 믿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무너진다고 한다면, 그것으로 우리의 인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하늘에 집이 있을 뿐만 아니라, 더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이 우리를 위한 우리를 위해서 준비되어 있고, 하나님의 더 놀라운 계획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그러면서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우리는 눈에 보이는 대로 그냥 좌절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눈앞에서 딱지가 사라져 버렸다고 해서 좌절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졌다고 해서 좌절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건강이 무너져 버리고, 우리가 소망을 걸었던 것이 다 없어져버리고, 내가 성실하게 수고하고 애썼던 것들이 다 사라져 버린다고 해서, 절망 가운데 있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눈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것이라고 믿는데요. 사실 좌절해야 한다고 한다면 성경에서 요셉과 같은 인물이야말로 가장 좌절해도 무방한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채색옷을 입고 부모로부터 엄청난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던 요셉의 삶 가운데,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이 다 무너져 버렸습니다. 채색옷은 뺏겨버리고 찢어져 버렸습니다. 노예로 팔려가게 되었습니다. 감옥에 갇혀버리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에 자기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들을 다 빼앗겨버리고, 모든 것들을 다 잃게 되는 그 순간에 절망하려고 한다고 하면 충분히 절망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란 말이에요. 요셉이 노예로 팔려갔다고 하는 게 전부가 아니고, 감옥에 들어간 게 전부가 아니고,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사용하셔서, 온 인류를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애굽의 총리로 세우시고, 가족을 살리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요셉의 삶을 통해서 벌어지고 있는 그 모습을 우리가 믿음의 눈으로 바라봐야 되는 것이죠. 우리의 눈앞에는 그것이 보이지 않고 그저 내 눈앞에 보이는 것만 보이기 때문에, 그래서 절망적인 것 같고, 내 모든 것을 다 빼앗겨버렸기 때문에, 이제는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되나? 지금 내가 의지하는 것을 다 잃어버렸기 때문에, 내가 간절히 소망했던 것이 무너져버렸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가? 그런 상황에 있을 때, 그것 때문에 우리가 좌절할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가지고 계시는 놀라운 계획이 있고,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우리는 보이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의 상황이 무엇입니까? 지금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이 무엇입니까? 지금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져 버렸습니까? 우리의 계획이 망가져 버렸습니까? 우리가 세워놨던 그 계획들이 다 흐트러져 버렸습니까? 눈에 보이는 것을 보면, 아무런 소망이 없고, 이제는 다 끝났다고 생각되는 그런 일들이 우리들 가운데 있는 거예요. 하지만 그것 때문에 목숨을 내던질 게 아니고, 그것 때문에 절망할 게 아니고, 눈에 보이지 않는, 그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바라보며, 우리는 눈에 보이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왜 우리는 이 세상에서 눈에 보이는 대로가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까? 왜냐하면 이 세상에 그 어느 것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의 계획보다 훨씬 더 뛰어나고 훨씬 더 크고 훨씬 더 놀랍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전에 어떤 영상을 하나 보았는데요. 호랑이가 자기 새끼를 데리고 이렇게 있다가 물속에 빠뜨려버리더라고요. 조그마한 조그마한 호랑이 새끼를 호랑이 엄마가 빠뜨려버리는 그런 영상을 봤어요. 그러니까 이 호랑이 새끼가 죽겠다고 막 난리를 치는 거예요. 근데 그 호랑이 엄마가 물속에 빠진, 그 새끼를 탁탁탁탁 치면서 입으로 물어가지고 다시 건지고 또 빠뜨리고 나를 죽이는 것 같았지만, 강하게 살아남기 위해서 훈련하기 위한 호랑이 엄마의 마음이 아니었을까요?

우리의 인생 가운데서 우리가 그런 어려운 일을 당하면 우리는 절망하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욥이라고 하는 사람은 나중에 그걸 알았어요. 자신의 모든 것들이 다 털려버리고, 아이들은 다 죽어버리고, 나에게 더 이상 소망이 없다고 생각되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욥에게 주신 놀라운 은총을 깨닫게 된 요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욥기 23장 10절 말씀에 그가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나는 내가 왜 이 길을 가는지 몰라요. 내 인생 가운데 왜 이런 일이 닥치는지 몰라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시고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아오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저와 여러분들은 우리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조그마한 일들을 바라보면서, 좌절할 게 아니고, 장막집이 무너지는 것처럼 보이는 그런 상황 가운데서도, 우리가 무너져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저희들에게 갖고 계시는 놀라운 은혜와 사랑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건지시기 위해서 하나밖에 없는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하신 놀라우신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갖고 계시고, 가장 안전한 길로 가장 선한 길로, 그리고 결국 우리의 유익을 위한 영적인 유익을 위한 길로, 우리를 인도해 주실 거라고 하는 사실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우리의 삶 가운데서 늘 주님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저 아프리카에 가면 임팔라라고 하는 그런 사슴과에 속한 동물이라고 하나요? 그런 임팔라라고 하는 그런 동물이 있는데, 그 임팔라라고 하는 그 동물은 높이를 어떻게 높이 뛰냐면, 3 9m까지 뛰어오르는 그런 뛰어서 저 멀리 뛸 수 있는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는 동물이 임팔라라고 하는 동물이라고 해요. 그런데 그 임팔라 농장에서 그 임팔라를 기를 때, 이렇게 막을, 우리를 만들어 놓는데, 그 우리의 높이가 몇 미터냐 하면, 1m 높이의 우리를 만들어 놓고 그 안에 가두어 논다고 합니다. 그러면 3m를 뛰고 최대 9m도 뛸 수 있는 이 임팔라가 그 우리를 뛰어넘어서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충분히 능력이 있어요. 충분히 능력이 있는데, 놀랍게도 1미터 담장을 보고 뛰지 못한다는 거예요. 자신이 눈으로 봤을 때 아무것도 없으면, 장애가 없으면, 그냥 뛰어서 3m, 9m를 뛸 수 있는데, 자기의 눈높이보다 조금 높이 있는 1m 높이의 장애물을 보고, 한 발자국도 밖에 나가지 못하고, 그 안에만 갇혀서 산다고 하는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저와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 우리가 보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우리를 무너뜨리고 있습니까?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까? 절망 가운데 아무것도 못하게 우리를 잡아매고 있습니까? 그러나 오늘 주님께서 주시는 이 말씀을 기억하면서 우리가 눈으로 보이는 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믿음으로 승리해 나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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