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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설교의 대필

군목으로 제대할 즈음이었다. 당시 수도권 지역에서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어떤 대형 교회의 담임목사로부터 전화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날 두 시간이 넘는 통화를 했는데, 그의 요점은 자신의 교회에 와서 부목사로 일을 해줄 수 있겠느냐는 제안이었다. 누군가 나를 그분에게 추천했고, 그 목사님은 나를 좋게 생각했는지 전화를 하면서 사역을 제안했다. 그때 나는 생전 처음으로 설교 대필을 전문적으로 하는 부목사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분은 언어의 능력이 뛰어난 분이어서 부목사가 설교 한 편을 작성해주면 그 설교문을 자신의 것으로 충분히 소화시켜 설교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제안을 정중하게 거절하고, 자비량 군선교사로 2년간 사역을 하였다. 그 후에 미국으로 유학의 길을 떠났는데, 나는 그때 내 결정이 아주 중요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교회는 지금도 엄청난 성장을 경험하고 있고 그 교회에서 사역한 경험이 있는 목사들은 전국 여기저기에서 담임목사로 잘 나가고 있지만 말이다. 알고 보니 그런 교회가 한 둘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대형교회는 그런 식으로 설교 준비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은 그 일이 있은 후 몇 년 지나지 않아서였다.

과연 설교를 작성하는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얼마 전 가수이자 화가인 조영남씨는 자신의 그림에 돕는 조수를 사용하여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작품인양 판매했기 때문에 사기죄로 피소되는 일이 있었다. 1심에서는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2심과 대법원에서는 무죄판결을 받았다. 미술계에서 조수를 사용하는 것은 일반화된 관행일 뿐만 아니라 작품의 독창성이 조영남 씨에게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그 그림은 다른 사람의 작품이 아니라 조영남의 작품이라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사실 애니메이션 영화를 한 편 만들 때에도 모든 작품을 작가가 다 그리는 것이 아니라 여러 명의 협력 작가들이 주된 작가의 지도하에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든다. 이런 일들이 보편화된 이 시대에 설교도 협력 작업이 가능하지 않을까?

가장 바람직한 설교 작성은 본인이 직접 설교원고를 작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 것을 전혀 배제해야 할 것은 아니다. 사실 설교자는 책을 통해서 지식을 얻기도 하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정보를 얻기도 하고, 또한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봄으로써 여러 가지 재료들을 수집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설교자가 자신의 독특한 설교 플로우(flow)를 가진 채, 즉 설교의 구성이나 전개방법이 자신만의 독특한 것이라면, 거기에 필요한 예화나 또는 여러 가지 정보들을 주변의 돕는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을 합리화할 수는 있을 것이다. 자신을 돕는 사람에게 설교에 사용할 예화를 추천해달라고 부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설교원고가 한 사람의 독특한 창작물이 아니라, 여러 돕는 사람들의 협력으로 이루어진 상태에서 설교자가 그 원고를 가지고 설교하는 것이 가능하려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경우에는 본인이 설교원고를 작성함에 있어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천명할 필요가 있다. 항상 설교할 때마다 언급을 할 필요는 없겠지만, 교회의 의결 권한이 있는 기구 앞에서 고백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고 마치 자신이 모든 것들을 준비한 것처럼 속인다면 그것은 정직하지 못한 일이 될 것이다.

설교에 들어갈 몇몇 예화를 도움 받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다른 사람이 다 쓴 원고를 들고서 설교하는 것은 어떨까? 그것은 정직하지 못한 것이다. 다른 사람의 설교 원고를 자신의 원고인 것처럼 설교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놀랍게도 우리 주변에 그런 목회자들이 많다. 대체로 대형교회 목회자들 가운데서 그렇게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그럴 때에도 그 설교자가 원고를 그대로 읽는 법은 거의 없다. 설교 원고를 전문적으로 작성하는 부목사가 작성한 원고를 받아 든 담임목사는 그 원고를 읽어본 후에 자신이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를 결정한다. 이때 대부분의 담임목사는 그 원고를 그대로 읽는 경우는 거의 없고, 마치 원고 없이 설교하듯 설교한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 쓴 원고를 마치 자신의 것인 양 그대로 읽는 법은 없고, 그저 하나의 자료처럼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원고 없이 설교하는 사람들은 어떤 책을 읽고 자신들이 받은 감동을 기초로 설교를 하기도 하고 어떤 주제에 대해서 설교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원고 없이 설교를 하곤 하는데, 대부분의 대필자들을 사용하는 설교자들은 대필자들이 쓴 설교원고들을 그런 식의 하나의 자료처럼 취급해서 설교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그 설교를 표절이라고 판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설교자는 이런 방법을 사용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 나는 결코 이러한 방법을 권장하지 않는다. 물론 어느 누군가가 이런 방법을 사용한다고 해서 강하게 비난하고 싶지도 않지만 말이다. 하지만 진실한 설교자라면, 본인이 스스로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목회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달하는 것이 최우선의 사명일진대, 성도들에게 가장 잘 준비하여 설교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마치 인스턴트식품을 가져다가 자녀들에게 먹이는 부족한 부모와 같다고 할 것이다. 인스턴트식품은 맛있을 수는 있지만 그것만 먹이면 자녀들이 영양학적으로 건강하게 자랄 수 없다. 그래서 집에서 손수 만든 밥이 필요한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책임 있는 목회자는 스스로 설교를 신실하게 준비하여 제대로 된 설교로 가르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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