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민족이 드디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이야기를 오늘 살펴보게 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가나안 땅을 주셔서 여리고성을 차지하는 것을 시작으로 해서 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되었는데요. 이렇게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제일 우선적으로 생각해 본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그 옛날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 그리고 그 아들 이삭과 야곱을 향해서 계속해서 반복하면서 약속해 주셨던 그 약속을 하나님께서 정말 지키셨구나,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잊지 아니하시고 정말 이루셨다고 하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라 하겠습니다. 거짓말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 신실하신 그 하나님께서 정말 그 약속대로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주셨다고 하는 그런 의미가 되겠습니다. 냉정하게 살펴본다고 한다면 사실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 민족과 더불어서 싸워서 이길 만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민족이었습니다. 아무런 힘이 없었던 민족인 것이죠. 지금 현재 가나안 땅에서 진을 치고 있는 그 민족들에 비하면 너무나도 전술적으로 또는 전략적으로 전력을 본다고 한다면 그만큼 큰 국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닌데,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이스라엘 민족이 쉽게 여리고성을 차지하고 또 다른 성들을 차지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는데요.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게 됐는가? 인간 편의 연약함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죠.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신다고 하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모습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원주민의 입장에서 본다고 한다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가나안 땅에 이미 정착해서 몇백 년 동안 살고 있었던 이 가나안 민족 원주민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어떤 의미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심판하셨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어느 날 잘 살고 있는데 날벼락을 맞은 것처럼 억울하게 자신들의 땅이 빼앗겨 버린 억울한 입장이 아니라, 사실 영적으로 본다면 이렇게 여리고성이 무너진 것, 그리고 가나안 민족들이 무너졌다고 하는 것 — 이 모든 것은 사실 그들의 죄가 너무나도 심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셨다고 하는 의미라고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하나님은 누군가 죄를 지으면 심판해버리고 끝내버리시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라, 길이 참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죄악을 범해도 당장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참고 또 참고 또 참고 하면서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께서 참고 또 참고 또 참으셔도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만큼 죄가 너무나도 심각했기 때문에 이제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들어 쓰셔서 가나안 민족을 심판하신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가나안 민족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누구에게도 해당이 되죠 이스라엘 민족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잘 정착하고 살고 있었지만 그러나 계속해서 이스라엘 민족들이 죄를 짓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정말 타락이 심각해져 버려서 더 이상 하나님께서 참으실 수 없을 때 이제는 누구를 들어서 이스라엘 민족을 심판하십니까? 바벨론 민족을 들어서 심판하시는 거죠 저 바벨론 민족도 좋은 민족은 아니지만 그들도 악한 민족이기는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 바벨론 민족을 하나님의 사자처럼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도구처럼 사용하셔서 이스라엘 민족을 심판하시는 이야기가 나중에 기록되어 있는데요. 그와 마찬가지로 이 가나안 민족이 멸망한 것은 그냥 어쩌다 보니까 재수 없어서 어쩌다 보니까 억울하게 잘 살고 있었는데 이렇게 망하게 된 것이 아니라 사실은 참고 참고 또 참다가 그들의 죄악이 차고 넘치고 흘러서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들어쓰셔서 심판하셨다고 하는 것을 이해 해야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이스라엘 민족이 쳐들어와서 결국 망할 수밖에 없었던 그 가나안 민족들 특별히 여리고성 이야기를 우리가 살펴보게 되었는데요. 그 여리고성에서 모두가 다 망해가 버릴 때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그 가정이 있었는데요. 바로 그 가정이 누군가 오늘 우리가 살펴볼 라합이라고 하는 여인과 그의 가족들은 이스라엘 민족의 공격 가운데 죽임을 당하고 멸망을 당한 것이 아니라 그 가정만은 살아남았다고 하는 것을 오늘 우리가 살펴보려고 하는 것이고요.
그냥 살아남은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놀랍게도 그 라합이 누굽니까? 다윗 왕의 조상이 되었고, 예수님의 조상이 되는 망할 수밖에 없는 가나안 민족이었던 라합이 놀라운 구원의 은총을 누리게 된 이 엄청난 이야기를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여리고성에 살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서 살아날 수 있었던 그 사람, 라합이라고 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서 이 라합이라고 하는 사람은 살아날 수 있었겠습니까? 그나마 여리고성 내에서 그나마 의롭고 그나마 사람이 괜찮고 그나마 이 라합이라고 하는 사람은 그 여리고성에서 정말 의로운 사람이었기 때문에 살아난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 기생 이 라합이라고 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가? 성경은 기록하기를 이 라합은 기생이었다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죠. 다시 말하자면 그 여리고성에서도 가장 멸시받아 마땅하고 정말 손가락질 당할 말 해도 아무 할 말이 없는 그 성에 있어서 정말 자격이 없는 사람을 꼽으라고 한다면 이 라합을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정말 구원받을 만한 그런 이유가 단 하나도 없었던 사람이 누구였는가 바로 라합이라고 하는 여인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의 은혜가 누구에게 임했는가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라합이라고 하는 이 여인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다고 하는 것이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만일 이 성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그나마 거룩한 사람을 찾으라고 하고 그나마 의로운 사람을 찾으라고 한다면 그 사람들을 구원해 주시겠다고 하셨다고 한다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아무도 구원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무도 살릴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이죠. 다 한 가지로 타락해버려서 그 누구도 구원받을 만한 자격이 없었던 상황이었던 것이에요. 하지만 하나님의 은총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가? 그런데 그 가운데서도 라합이라고 하는 이 여인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부어졌다고 하는 것이 놀라운데요. 왜 하필이면 라합일까요? 왜 하필이면 기생 라합일까요? 그 성 가운데서 왜 하필이면 라합이라고 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은총을 베풀어 주시고 그 여인을 구원해 주신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더 나쁜 짓을 해야 부모가 내준다고 하는 그런 의미가 아니고 하나님의 은총이 너무나도 커서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수 없을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고 하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최악의 사람을 선정해 준 겁니다. 만일 우리 가운데 좀 근사한 사람, 만일 우리 가운데 그런 대로 성공한 사람, 만일 우리 가운데 그런 대로 정말 뛰어난 사람을 하나님께서 구원하셨다고 한다면 그러면 사람들이 이야기를 할 겁니다. 맞아. 저 사람은 그래도 좀 나은 사람이지 그러니까 구원을 받았지 맞아 저 사람은 그런 대로 똑똑한 사람이야. 그런 대로 거룩한 사람이야. 그런 대로 의로운 사람이야. 그러니까 구원을 받았지 나 같은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하지만 라합의 구원을 보면서 우리가 무엇을 생각할 수 있습니까? 라합이 구원받았어 아니 그 사람도 구원받았단 말이야. 저 나쁜 사람이 저렇게 악한 사람이 구원을 받았다고 그럼 나도 구원을 받을 수 있겠네 나 같은 사람도 저 사람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나도 구원을 받을 수 있겠구나라고 하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어쩌면 가장 자격 없는 사람들 중에서도 최악의 사람을 선정해서 그 사람에게 구원을 베풀어주신 이야기가 오늘 여호수아서에 나와 있는 이야기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서 라합은 구원을 얻게 되었는가 한번 살펴보았으면 좋겠는데요. 모세의 뒤를 이은 여호수아는 여리고성을 점령하기 전에 먼저 스파이들을 파견했습니다. 간첩들을 보낸 것이죠. 첩자를 보낸 겁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상대를 알아야 전쟁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스파이들이 여리고성에 잠입해서 하필이면 눈을 피해서 도망 다니다가 피신하게 된 것이 기생 라합의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들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라합은 어떤 선택을 할 수가 있었을까요? 라합에게는 두 가지 선택의 길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 선택의 길은 스파이들을 당국에 신고하고 나라로부터 포상금을 받는 방법 그렇죠 간첩 신고하면 오늘날에도 많은 포상을 해주는데 이때에도 아마 간첩 신고하면 아마 많은 포상금을 주었을 수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라합은 스파이를 당국에 신고하고 포상금을 받는 선택을 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 라합에게는 또 다른 선택지가 있었는데요. 바로 그 스파이들을 숨겨주고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그리고 나중에 자신을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선택이었습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고 한다면 만일 우리에게 이런 상황이라고 한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죠? 신고하고 그래야죠. 국가에 충성하는 게 옳을 것이죠. 하지만 이 순간에 라합은 이 스파이들을 살려주는 숨겨주는 선택을 하게 되었는데요.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다고 하는 사실을 이제 임박했다고 하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냥 괜찮은 사람들이 아니라 이제 얼마 있으면 망하게 되었구나 우리가 다 죽게 되었구나 우리는 한 사람도 살아날 수 없다고 하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죠. 그 심판이 다가왔다고 하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라합은 이 첩자들을 숨겨주게 된 것입니다.
여호수아서 2장 8절에서부터 13절의 말씀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그들이 눕기 전에 라합이 지붕에 올라가서 그들에게 이르러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주민들이 다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나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니라.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 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도록 여호와로 내게 맹세하고 내게 증표를 내라. 그리고 나의 부모와 나의 남녀 형제와 그들에게 속한 모든 사람을 살려주어 우리 목숨을 죽음에서 건져내라. 그렇게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이죠.
이 라합은 스파이들을 보면서 이 스파이가 내 적이구나라고 생각한 게 아니에요. 이 라합은 스파이들을 보면서 어떻게 생각했습니까? 적이 아니라 나를 살려줄 수 있는 유일한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될 수가 있겠구나 나의 구세주가 될 수 있구나, 나의 도움을 주는 자, 나의 헬퍼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들을 적으로 본 것이 아니라 나를 도와주는 사람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죠. 라합이 지금 이스라엘 민족이 진군해 오고 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나만 들은 것이 아니라 여리고성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들은 거예요. 그리고 우리 민족이 망하게 될 거라고 하는 사실을 다 깨달았어요. 왜 이스라엘 민족이 저 큰 나라 애굽 나라도 무찌르고 튀어나왔고, 홍해 바다도 갈라버렸고, 요단강도 갈라버렸고, 그리고 그 오는 길에 있는 모든 민족들을 다 물리치는 그런 엄청난 큰 민족이 다가오고 있다고 하는 사실은 이제 우리도 곧 죽게 되겠구나라고 하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죠.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우리들이 이제 망했구나라고 하는 사실을 깨달았는데 망할 거라고 하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을까요? 중요한 선택이 있는 겁니다. 무엇을 선택하는 것이죠? 살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죠. 라합은 그래서 스파이를 살리고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그 스파이들을 보면서 그 스파이들이 내 적이 아니라 나를 죽이는 사람이 아니라 나를 살리는 사람으로 바라보게 된 겁니다. 놀랍게도 이 스파이들이 라합에게 구원을 약속하게 된 것이죠. 이제 곧 전쟁이 일어나게 될 텐데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될 텐데 너희 집에 빨간 줄을 매달아 놓으면 붉은 줄을 매달아 놓으면 그러면 너희 우리가 공격하러 와서 이 집을 살려주겠다고 그랬습니다.
왜 빨간색 줄일까요? 붉은색 줄을 외단 이유가 뭘까요? 그냥 눈에 잘 띄는 생기니까 그렇게 한 겁니다. 눈에 잘 띄는 색을 띄게 달아놓아서 그래서 그 심판의 날에 전쟁의 날에 목숨을 건지라고 이야기한 것이죠. 결국 나중에 이스라엘 민족이 여리고성을 무찌르게 될 때에 라합의 가정은 이 붉은 줄을 매 놓았기 때문에 구원을 받고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들어가게 되었고 결국 믿음의 조상 안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죠.
이 이야기를 보면서 저는 어떤 생각을 했냐면 그 옛날 이스라엘 민족이 유월절을 지냈던 그 밤과 비슷하다 아주 유사하다고 하는 사실을 생각해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 옛날 하나님의 사자가 애굽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초태생들을 죽이러 다닐 때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너희 집에 양을 잡아서 문설주에 피를 발라서 그래서 그 죽음을 피하라. 정말 그날이 되었을 때 유월절 날이 되었을 때 여호와의 사자가 애굽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각 가정들의 초태생들을 다 죽이는데 붉은 그 피를 칠해 놓은 그 집은 그 사자가 가지 아니하고 그냥 지나쳐서 결국 이스라엘에게는 아무런 해를 입지 아니하고 구원을 얻은 일이 있었는데 바로 그와 마찬가지로 지금 하나님의 심판이 여리고성에 임박하게 되었을 때 어떻게 그들이 살아날 수가 있겠는가 살아날 수가 있었는가 그들이 라합의 가정이 붉은 줄을 매달아 놓아서 살아나게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오늘 본문의 이야기입니다.
아주 이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하루 아주 오래된 이야기인데요. 그런데 사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오늘 우리들이 발견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를 말해주고 있기 때문인데요. 오늘 우리가 이 본문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깨달아야 될 것이 있다고 한다면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에게 소망이 없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여리고성 사람들이 이스라엘 민족이 공격해 온다고 하는 사실을 들었을 때, 아, 이제 우리는 죽었구나. 우리는 소망이 없구나. 우리는 망하게 되었구나라고 하는 사실을 깨닫고, 그리고 그 라합이 그 상황 가운데서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무엇일까에 대해서 생각하며 스파이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것처럼 오늘 우리들이 깨달아야 될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에게 소망이 없다고 하는 사실을 깨달아야 되는 거예요.
내게 소망이 없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는 게 소망을 발견하는 첫 걸음이 되는 겁니다. 내게 문제가 있구나 내가 문제가 있다고 하는 사실을 깨달아야 문제를 치유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나는 문제가 없는데 이 세상이 문제야 나는 괜찮은데 내 주변에 있는 모든 환경의 문제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아무런 소망이 없습니다. 아무런 해결책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고칠 수 있는 것은 나 자신밖에 없는 것인데 내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하는 걸 알지 못하고 오로지 내가 고칠 수 없는 자신 밖에 있는 것들에 대해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런 해결책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소망이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나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는 거예요. 우리 가정이 왜 문제인가? 내가 문제가 있는 거예요. 왜 우리들에게 어려움이 있는가 다른 데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에게 문제가 있다고 하는 것 나에게 소망이 없다고 하는 사실을 깨달아야 그래야 거기서 새로운 소망이 발견되게 되는 겁니다. 라합이 무엇을 깨달았는가 나에게는 아무런 소망이 없다고 하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래서 도움을 요청하게 된 것이죠.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말 오래 삽니다. 오래 사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건강 진단을 빨리빨리 하고 그래서 치료를 잘 받기 때문이에요. 예전에는 병 들면 죽었어요. 저희 아버지도 제가 중학교 때 돌아가셨는데 중학생 때 돌아가셨는데 심장이 좋지 않아서 돌아가셨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다 고칠 수 있는 거예요. 지금 생각해 보면 요즘에 살아계신다고 한다면 다 치료받을 수 있어요. 요즘에는 웬만한 질병들 다 치료하고 암도 다 치료하고 오래오래 사는 모습들을 다 봐요. 그렇게 오래 사는 이유가 무엇인가 요즘에는 우리의 문제를 진단하고 그 문제를 치료하고 그래서 그것을 문제를 해결해서 그래서 오래 살게 되는 것인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영적인 문제를 진단하지 않는 것이죠. 내게 영적으로 문제가 있구나 나에게 소망이 없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는 게 치료의 첫걸음인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게 문제인 것이죠. 라합은 어땠는가? 라합은 자신의 상황이 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하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리고 이제 우리의 소망이 무엇인가 그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 우리의 소망은 그 자비를 요청하는 것밖에 없다고 하는 것을 깨달은 것이죠.
우리 자신을 스스로 속이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는 어 개인적인 종말이든 우주적인 종말이든 파국을 향해서 달려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눈앞에는 무엇이 있는가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인데요. 하나님의 심판이 없다고 의도적으로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심판이 없어지는 게 아니에요. 개인적인 종말이 없어지는 게 아니고 우주적인 종말이 없어지는 게 아니죠. 우리의 몸에 건강에 문제가 있는데 건강 검진을 하지 않고 나는 건강하다라고 스스로에게 퇴뇌시키면서 나는 괜찮아라고 얘기하면 그냥 괜찮은 거죠. 아니에요. 제가 지금 건강 검진을 잘 안 받아서 그게 문제인데 이번에 한 번 받으려고 합니다.
자동차 카메라가 저 앞에 있는데 없을 거야 없어 그렇게 자기 스스로를 세뇌시키면서 그냥 과속으로 달려버리면 벌금이 안 나오나요? 아니요. 내가 부인한다고 해서 문제가 사라지는 게 아니에요. 내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앞에 있는 심각한 문제들을 우리가 먼저 발견하고 내게 소망이 없다고 하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지름길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합격되고 무사 통과할 사람이 있는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는 것이죠. 그런대로 괜찮아 보이는 사람도 청문회의 대상이 되기만 하면 온갖 문제들이 쏟아져 나오는데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고 한다면 우리 가운데 단 한 사람도 괜찮은 사람이 없을 만큼 그만큼 절망적이라고 하는 사실을 깨달아야 되는 것이죠. 그런데 그 순간 라합은 어떻게 했는가 스파이들에게 자비를 구했습니다. 스파이들을 적으로 간주하고 적대시하고 그래서 그들을 물리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스파이들을 향해서 마음을 열고 그분들이 나를 구원해 줄 구원자라고 생각하면서 그들에게 도움을 구하게 되었을 때 놀랍게도 구원의 소식이 라합과 그 가정 가운데 들려지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를 향해서 예수님께서 찾아오십니다. 그 옛날 스파이가 라합의 집에 문을 두드리며 들어갔던 것처럼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들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시는 것이죠. 요한계시록 3장 20절의 말씀에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말씀해 주셨습니다. 문을 두드리면서 이리 오너라 말씀하시는 그 주님의 음성에 사람들은 마음의 문을 닫아버립니다. 종들은 주인이 오면은 싫어요. 나를 더 힘들게 할까 나를 더 고통스럽게 할까 마음의 문을 꼭 닫아버리고, 왜 귀찮게 나에게 찾아오는가 왜 귀찮게 나를 힘들게 하는가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고 문을 열어주지 않는 것이죠.
힘들기 때문에 저 사람이 와서 나를 힘들게 할까 봐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는 것이죠. 하지만 문을 열면 어떻게 되는가 열면 그 주님이 와서 우리를 힘들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잔치를 베풀어 주신다 말씀하고 있는 거예요. 누가복음 12장 36절 37절의 말씀에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 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떼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와 수종 들리라. 이것이 주님의 놀라운 모습이에요.
이 세상의 주인은 이 세상의 우상들은 우리를 향해서 도움을 달라고 생각하고, 그 우상들이 우리가 원하는 것들이 나를 잘 좋게 해줄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것들을 우리의 마음속 가운데 받아들이지만, 돈을 우상으로 섬기고, 권력을 우상으로 섬기고, 명예를 우상으로 섬기면서 그것들이 나를 행복하게 해줄 거라고 생각하면서 우리가 받아들이지만 그 우상들은 내게 와서 우리를 군림해버리고 우리를 종으로 삼아버립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어떻게 오셨는가? 예수님은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열고 주님을 받아들이면 주님께서는 우리를 향해서 군림하시는 주님으로 오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는 띠를 띠고 우리 앞에 무릎을 꿇고 상을 베풀어 주시는 주님으로 오시는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어서 우리를 생명을 살리는 주님으로, 우리에게 무릎 꿇으시는 주님으로 오시는 것이죠.
안타깝게도 수많은 사람들은 주님을 적으로 생각했습니다. 헤롯 왕은 예수님이 태어났을 때 예수님을 죽이려고 달려들었고,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보면서 비난하기 시작했고,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무시했고,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해 버린 것이죠. 하지만 우리의 소망이 어디에 있는가 사실은 심판하시는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심판자만이 아니라 우리들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죄인들을 심판해 버리고 끝내버리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을 우리들을 사랑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에 하나님이 세상을 우리들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래서 예수님을 우리 위에 내어주셨고 그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살아날 수 있게 하신 것이죠.
스파이들이 이야기를 합니다. 이제 곧 전쟁이 있을 텐데 빨간 줄을 매달아 놓으면 이 집을 멸하지 아니할 거다. 구원자로 올 거다 말씀해 주시고 계시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해 주신 약속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영접하라. 예수님을 받아들이라고 말씀 주시는데 예수님을 받아들이라고 하는 그 말은 그냥 믿는다고 하는 그 정도가 아니라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해주신 말씀들에 순종하는 삶을 살라는 말씀이에요.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해 주시는 말씀은 우리를 살리는 말씀이에요. 우리를 힘들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파괴시키기 위해서 이 말씀을 하시는 게 아니에요.
내가 주님의 말씀대로 살면 죽어요. 어떻게 원수를 사랑해요? 어떻게 우리가 억울한 일이 있는데 그걸 참아요. 그러다가 세상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해요.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 우리가 망할 것만 같은데 아니에요. 그것 그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외면해 버릴 것이 아니라 저기 적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 옛날 라합이 스파이들을 보면서 적이 아니라 나를 구원할 구원자로 받아들이고 그 스파이들을 영접해 주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그대로 받아들일 때 그 말씀이 우리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것이고, 하나님의 은총이 우리를 살리는 그 놀라운 은총이 된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오늘 또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우리 주님의 그 은총을 받아들이며 믿음으로 승리해 나가는 하나님의 귀한 백성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