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법과 본성 (롬 2:12-16)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 (롬 2:1-11) +++ 뭣이 중헌디? (롬 2:17-29)

질문을 하나 던져보고 싶습니다. 가장 쉬운 질문인데요. 우리가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을까요? 한번 대답 한번 해주실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해야 우리가 구원을 받죠?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받습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야만 구원을 받고, 예수님이 아닌 다른 길로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 하는 것은 우리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여러분 그걸 믿습니까? 예수님만이 구원의 유일한 길이다! 예수님만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라고 하는 것은 우리 기독교의 핵심적인 교리라고 할 수가 있겠는데요. 우리들은 이 교리를 잘 아멘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 교리는 이해할 수 없는 교리이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들을 때, 질문을 던집니다. 만일 예수님을 믿는 것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고 한다면, 다른 길로서는 도무지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고 한다면, 그렇다고 한다면,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기회조차 받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라고 하는 질문입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들어보지도 못하고, 예수님에 대해서 전혀 듣도 보도 못한 그 사람들은 어떻게 예수를 믿을 수 있겠는가?”하는 그런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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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늘 던지는 질문이 무엇이냐면, 그 옛날 시대에 살던 사람들, 다시 말하자면 세종대왕 같은 사람들이나, 이순신 장군 같은 그런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전혀 들어보지도 못한 사람입니다. 전혀 예수님이 있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 전혀 알지도 못하는 그런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고 하는 이유로 지옥에 간다고 한다면, 이것처럼 억울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아니, 들려주고, 예수님에 대해서 설명해 주고, 예수님에 대해서 알려주고, 믿었냐 믿지 않았느냐를 물어본 다음에, 그런 다음에 그 사람들이 거부했기 때문에 지옥에 간다면, 그래도 이해가 되겠는데, 전혀 들어보지도 못했어요. 예수님에 대해서 전혀 알지도 못한 그 사람이, 당신의 죄가 무엇인가? 예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지옥에 간다고 하면, “이것처럼 억울한 일이 어디에 있겠느냐?”라고 하는 질문입니다. 그런 질문들을 많이 받아보셨습니까? 아마 많이 받아보았을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런 질문을 던지는 이유가 무엇이냐면, 이런 질문이 나오는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복음에 대해서 제대로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질문이 나오는 겁니다. 복음에 대해서,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이 복음에 대해서, 어렴풋하게는 알고 있지만 제대로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질문들이 나온다고 하는 것입니다.

먼저 분명히 해야 될 것이 하나가 있는데요. 만일 우리가, 만일 어떤 사람이 지옥에 간다면, 만일 어떤 사람이 영원한 심판을 받아서 영원한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태로 빠지게 된다면, 그 사람은 왜 지옥에 가는 것이며, 왜 그 사람은 영원한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겠습니까? 왜, 만일 어떤 사람이 영원한 멸망을 받고 영원한 심판을 받아야만 한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 크리스천들은 종종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건 예수님 안 믿어서 그래요”라고 대답을 할 것입니다. 그 대답은 어느 정도는 맞는 말입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대답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대답을 해야 하는 것을 알려드린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법이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데 그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고, 악하게 살았기 때문에 지옥에 갈 만큼 나쁜 짓을 하고 악하게 살았기 때문에, 그는 지옥에 가는 겁니다. 영원한 심판을 받는 겁니다. 그게 끝입니다.

만일 아무개가 지옥에 간다면, 그 사람이 왜 지옥에 가는가? 죽어서 영원한 멸망을 당한다면, 그 사람이 왜 영원한 멸망을 당하는가? 악하게 살았기 때문에 멸망당하는 겁니다. 그게 끝입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마치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유는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명령하셨고, 그 명령을 지켜야만 하는데, 지키지 않고 거부했기 때문에, 그 에덴동산에서 쫓겨 나갈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우리 가운데 어떤 한 사람이 죽어서 영원한 멸망으로 가게 된다고 한다면,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죄를 지어서 그렇습니다. 악하게 살아서 그렇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2021년에 살던 어떤 사람이 지옥에 갔다, 영원한 멸망을 받았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는 죄인이기 때문에 영원한 멸망에 들어가는 겁니다. 착하게 살지 않았고, 하나님의 법칙에 따라 살지 않았고, 악하게 살았기 때문에 영원한 멸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에 이스라엘에 살던 어떤 사람이 영원한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악하게 살았기 때문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이고, 그는 착하게 살지 않았기 때문에 멸망하게 되는 겁니다. 만일 지금부터 천 년 전에 살던 한국의 어떤 사람이 지옥에 간다면, 그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악하게 살았기 때문에 멸망을 받는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3천 년 전에 저 아메리카 대륙에 살던 어떤 원주민이, 그 사람이 죽어서 지옥에 간다면, 그 사람이 영원한 멸망을 받게 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악하게 살았고, 하나님의 법을 어기며 살았고 죄악을 저지르며 살았기 때문에 지옥에 가는 겁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누가 지옥에 가는가? 누가 영원한 멸망을 받는가? 악하게 산 사람들이 멸망을 받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만일 이순신 장군이, 만일 세종대왕이 지옥에 갔다고 한다면, 이건 제가 가정으로 말씀드리는 겁니다. 누가 천국에 갔다. 누가 지옥에 갔다고 하는 말을 우리가 함부로 재단에서 말할 것이 아닙니다. 누가 천국에 갔다. 누가 지옥에 갔다고 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에게 달린 것이지, 우리가 쉽게 우리가 표면적으로만 보는 그것만 가지고 저 사람은 천국에 갔을 것이다. 저 사람은 지옥에 갔을 것이라고 함부로 말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우리는 짐작을 할 겁니다. 아 이 사람이 구원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많다. 이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고 추측할 수는 있겠지만 단정해서 말하는 것은 아주 교만한 일이고, 어설픈 일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인데요. 아무튼 만일 이순신 장군이 지옥에 가고, 만일 세종대왕이 영원한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면, 가정으로 말한다면, 왜 그런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착한 일도 많이 하고, 위대한 일도 많이 했겠지만, 그들의 삶 전체가 그들의 삶이 완벽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이죠. 그들이 죄악을 저질렀기 때문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했기 때문에, 그래서 영원한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어느 누구가 영원한 멸망을 받게 되었을 때, “나 억울해요.” “내가 천국에 가야 되는데, 왜 내가 지옥에 왔어요?”하면서, 억울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없어요. 왜냐하면 자기가 지은 죄가 낱낱이 드러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모두가 다 죄악을 저질렀고, 악하게 살았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어긋나게, 완벽하지 못하게 삶을 살았기 때문에, 그래서 영원한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된 것이고,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 내가 억울하게 지옥에 왔다. 억울하게 영원한 멸망을 받게 되었다고 항변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어야만 구원을 받고,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고 하는 말은 그다음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고,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고 말하는 그 의미가 무엇이냐면, 영원히 멸망을 받게 된 우리가 어떻게 그 멸망을 받을 수 있는 상황 가운데서 빼내질 수 있겠는가? 우리가 죄를 지어서 악하게 살아서 영원한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는데, 그 상황 가운데서 누가 우리를 빼내 줄 수 있겠는가? 어떻게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는가? 어떻게 이 지옥의 영원한 멸망 가운데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는가?라고 할 때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이 그 영원한 심판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형수가 있다고 합시다. 그 사형수는 정말 포악한 죄를 저질러서, 너무나도 악한 죄를 저질러서 사형 언도를 받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사형수는 반드시 사형 집행을 당할 수밖에 없는 상태인데요. 이 사형을 받게 되어 있는 이 사람이 사형을 받지 않고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일까요? 그것은 대통령이 사면령을 내리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사면령에 서명을 해서, 아무개는 사형수지만, 내가 특별 사면을 내리니까, 사형을 면제시키고 석방한다고 하는 그 사면령에 서명을 대통령이 하면, 그러면 그 죽음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대통령의 사면을 받는 것은 은총입니까? 권리입니까? 그것은 은총이죠. 내가 당연히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것이 아니고, 내가 대통령을 향해서 “사면해 줘! 내가 사면받을 자격이 있다”라고 말할 수가 없는 겁니다. 사형수가 대통령을 향해서, “나 사형수인데, 나 빨리 사면 안 하고, 뭐 해?”라고 대통령을 향해서 항의할 수 있느냐면, 항의할 수 없어요. 사면해 줄, “사면을 받는 것이 내 권리야”라고 주장할 수가 없어요. 죽으면서 내가 억울하게 죽었다고, 사면을 해,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는데, 그런 사면을 받을 권리를 못 받아서, 내가 억울하게 죽었다고 말할 수가 없는 겁니다. 왜? 그 사람이 죽는 것은 자기가 지은 죄 때문에 죽는 것이지, 사면이라고 하는 것의 권리를 받지 못해서 죽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옆 사람은 대통령이 사면해 주었는데, “왜, 나는 사면하지 않았느냐?”라고 항의할 수 있냐면, 항의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만이 우리가 구원을 받는 유일한 길이라고 하는 이 복음은, 그것에 전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 전제가 무엇이냐면, 모든 사람이 다 죄를 지어서 다 영원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된 그 사람들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받아들이는 자만이, 그 은총을 받아들이는 자만이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이지, 아무 잘못도 안 한 사람인데, “너 예수 안 믿었으니까 지옥 가”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조폭들이 서로 싸우고 있다고 가정을 합시다. 조폭들 두 파가 나뉘어서, 한 허름한 창고 건물 안에 서로가 그 안에 들어가서 문을 잠가놓고 서로 두 패로 나뉘어서 막 싸우고 있습니다. 조폭들이 막 때리고, 막 하면서, 두 파가 치고받고 죽기 살기로 싸우고 있는 가운데 한쪽 조폭에서 화가 나가지고,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였어요. 그래서 그 창고 건물에 불이 막 나기 시작한 겁니다. 조폭들이 그 안에 갇혀 있고, 그 문은 닫혀 있는데, 그 창고 건물에 불이 나서 이제 그 안에서 싸우던 조폭들이 다 죽임을 당하게 된 겁니다. 마약 때문에, 서로 화가 나서, 막 싸우고 있는 그 조폭들이 불이 나서 막 죽게 되어 있는 그 순간에, 때마침 지나가던 어떤 한 사람이 불이 난 것을 보고, 그 창고 건물로 달려가서 문을 부수기 시작했어요. “저 안에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면, 큰일 났겠구나.”해서 그 사람이 그 문을 다 부수고, 문을 열어보니까, 그 안에서 서로 죽는다고 막 난리가 났습니다. 큰일 났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아이고” 그 안에서 지금 죽게 된 그 사람을 살려내기 위해서, 그 사람이 그 불길 속으로 들어가, 한 사람을 꺼내서, 쓰러져 있는 사람 꺼내 가지고 와서 살려내고, 또 들어가서 또 한 사람 살려내고 하다가, 그 사람이 결국 그 구원하던 사람이 그 속에 들어가서 질식해서 죽게 됐습니다 한 몇 사람은 살리고, 그런데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살리지 못하고, 자기도 그 안에서 죽어버렸다고 한다면, 그 죽은 사람은 자기를 구원해내지 아니하고, 죽어버린 그 사람에게 “왜, 나는 구원해 주지 못했느냐?”라고 책임을 전가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어요! 그건 자기 잘못으로 죽은 거예요. 조폭들이 사악한 마음으로 서로 싸우다가, 불내고 싸우다가, 자기 잘못으로 죽은 거예요.

그런데 살아난 사람은 왜 살아났는가? 아무 관계도 없는 지나가는 사람이 불쌍하게 여겨서, 뛰어들어가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고, 그 사람들을 살려서 그 사람들이 살아난 거예요. 복음이 무엇이냐면, 바로 이런 모습입니다.

우리 인류는 어떤 사람들인가? 우리는 모두가 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했어요. 하나님의 법칙대로 살지 못했어요. 하나님의 법칙대로 살지 못했기 때문에, 다 멸망하게 되어 있는 겁니다. 다 망하게 되어 있는 겁니다. 다 영원한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을 구원해 주셨고, 누구든지 예수님의 구원의 은총을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구원을 받게 되는 놀라운 기회가 주어지는 것인데, 그런 기회를 못 받았다고 “나는 왜 그런 소식도 못 들었느냐?”라고 항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망하게 된 사람들이 따질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왜 나한테는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들려주지 않았느냐를 따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들이 항변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무엇이냐면, “나는 하나님의 법에 대해서 들어본 적도 없다.” 하나님의 법을 나에게 알려주었다고 한다면, 내가 그 하나님의 법대로 살았을 텐데, 나는 하나님의 법에 대해서 전혀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래서 악을 행한 것이고, 그래서 그 성경 말씀을 나에게도 주셨다고 한다면, 이 성경 말씀은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준 것이지, 저 아프리카에 있는 사람들이나, 저 아메리카의 대륙에 살던 사람들이나, 아니면 이 아시아에 살던 사람들은 전혀 그 성경 말씀에 대해서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순신 장군이나 세종대왕이나 이런 사람들은 전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래서 내가 행동하지 못했다고 항변할 가능성은 있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가능성에 대해서 오늘 성경 말씀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까? 로마서 2장 12절 말씀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무릇 율법 없이 범죄 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 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심판을 받고 망하는데, 심판을 받고 망하는데, 어떻게 망하는가? 이스라엘 민족은 율법을 받았어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율법을 주었기 때문에, 그 분명하게 기록된 그 율법을 보면서 그 율법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에 망하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율법을 받지 않은 그 사람들은 어떻게 망하는가? 율법을 받지 않았으니까, 우리는, “법이 없으면 죄도 없으니까, 우리는 무죄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 아니라는 거예요. 율법을 받지 않았어도, 그 율법을 받지 않은 사람들도 망한다. 왜 망하는가? 14절에서부터 15절 말씀에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분명한 율법을 받았지만, 하나님의 율법을 받지 않은 다른 나라 사람들, 이방인들, 전혀 구약 말씀을 받지 못한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 율법을 받지 않아서 하나님의 법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본성에, 인간의 본성 가운데 하나님의 법을 심어 놓았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성경을 받아 들어서 읽지 않아도, 우리는 무엇이 선한 일이고 무엇이 악한 일인가를 자동으로 압니다. 선한 일을 행하면, 기뻐요. 사랑을 하면, 좋아요.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면, 기분이 좋아요. 왜? 우리의 본성에 사랑을 베풀면 행복하게 되어 있어요. 자비를 베풀면, 오히려 기쁨이 넘치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우리들의 마음을 옹졸하게 하고 악을 행하고, 다른 사람들을 미워하고, 용서하지 않고 남의 것을 훔치고 사람들을 못살게 굴면,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불편함이 있어요. 찜찜해요. 두려워요. 왜? 성경이 말하지 않아도, 성경이 주어지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이미 우리들의 마음속에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법을 우리들의 마음속에 새겨놓았기 때문에, 모두가 다 하나님의 법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저 인디언들도, 원주민들도 하나님의 법을 모르냐 하면, 알아요.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 거 알고 있고, 거짓말하면 나쁘다는 거 알고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서 편취하면 안 된다는 거 알고 있고, 간음하면 안 된다고 하는 사실을 알고 있고,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데,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런 말씀에 따라 사느냐 하면 그렇게 살지 못하기 때문에, 모두가 그 법에서부터 본성의 법에서부터 불합격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다 영원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을 받았지만, 율법을 받았기 때문에 자동으로 구원받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종종 착각하기를 우리가 설교를 들으면 우리는 저절로 착한 사람이 되는 줄로 생각해요.

그렇지 않아요. 설교를 하면, 그 사람은 자동으로 착하게 되는 사람인 줄로 착각을 해요. 아니에요. 설교를 하든, 설교를 듣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든, 하나님의 말씀을 듣든, 듣거나 전하는 사람이 자동적으로 착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오늘 성경 말씀은 무슨 이야기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율법을 듣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그래야 그 사람이 선한 사람이 되는 것인데, 이방인들은 그 율법을 받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무엇이 선한 일이고 무엇이 악한 일이라고 하는 것을 아는 것인 것이고,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다 죄를 범하여, 다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 우리들의 가장 근원적인 문제입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서, 예수님이 필요한 겁니다. 예수님이 왜 이 세상에 오셔야 했는가? 만일 우리가 열심히 착하게 살아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면, 예수님께서 오실 이유가 없어요.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살지 못하기 때문에, 모두가 다 죄악을 저질러서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있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죄를 범하여서, 영원한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 가운데서, 우리는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우리는 어떻게 살아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지금이라도 착하게 살면 지금부터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잘 살면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이것이 가장 널리 퍼져 있는 생각이고, 가장 그럴듯한 생각인데 안타깝게도 그런 방법으로 성공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착하게 살 수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으로 선하게 살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아, 선하게 살아야지! 착하게 살아야지! 사랑하며 살아야지!” 그런 마음이 들지만, 그런데 됩니까? 안 됩니까? 안 돼요. 설교 듣고 나가면서 싸우잖아요. 안 되는 게 우리들의 문제예요. 제가 전하고, 제가 전한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게 보이잖아요? 안 되는 게, 문제인 거예요.

그 문제가 어디에 쓰여 있습니까? 로마서 7장 21절에서부터 24절 말씀 가운데 쓰여 있어요.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선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게 아니에요. 정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게 아니에요. 우리는 그렇게 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착하게 살고 싶어요. 그런데 그게 마음뿐이에요. 원수를 용서한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도 좋은 생각이에요. 정말 멋진 생각이에요. 그런데 나에게 원수가 생기면, 그런 생각이 안 떠올라요.

그런데 이 세상의 모든 수많은 종교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냐 하면, “지금이라도 열심히 살라”라고 말하는 것이 이 세상 종교의 가르침입니다. “좀 더 착하게 살아봐라” “좀 더 열심히 도를 닦아라.” 더 열심히 도를 닫고, 더 열심히 노력하게 된다면, 언젠가는 당신도, 언젠가는 당신도 도의 경지에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는 열심히 살다 보면, 당신도 부처의 반열에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는 당신도 열심히 노력하면, 경지에 올라갈 수가 있을 테니까, 그러니까 열심히 열심히 도를 닦고, 열심히 노력하고, 열심히 선하게 살면, 언젠가는 당신도 올라갈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욕심을 끊어버리세요. 마음을 비우세요. 가족관계의 인연을 끊어버리고 저 산속에 들어가 보세요. 돈을 다 내버리고 무소유로 살아보세요. 쾌락을 버려보세요. 선을 행하고, 그리고 신에게 돈을 많이 바치고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당신이 지금은 나쁘지만, 점 점 점 점 올라가서, 결국에는 정말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을 테니까, 열심히 노력하면, 당신도 올라갈 수 있을 겁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이 세상 종교의 가르침입니다.

근데 그게 되냔 말이에요? 안돼요! 착하게 살게 되기는커녕, 우리는 살도 못 빼요! 살도 못 빼는 인생이 어떻게 착하게 살겠다고 결심해서 착하게 살아요? 이 세상 그 어떤 종교로도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놓여 있는 겁니다.

그런데 성경은 새로운 길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오셔서, 구렁텅이에 빠진 우리를 건져 주시는 겁니다. 우리의 힘과 우리의 능력으로 빠져나올 수 없는 그 절망의 구렁텅이 속에 있는 우리를, 우리 주님께서 건져주시었다고 하는 것이 복음인 것이고,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성탄절이 되는데, 예수님께서 왜 이 세상에 오셨는가? 그것은 우리가 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종종 저는 동물들이 잡혀있는, 덫에 걸리거나, 또는 여러 가지 가시에 걸리거나 해서, 빠져나가지 못하는 그 동물을 구조해주는 그 영상을 흥미롭게 보는 적이 있는데요. 그 영상을 보면, 사슴이 다니다가 덫에 걸려서 빠져나가지 못하는 거예요, 어떤 짐승이 수렁에 빠져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거예요. 근데 어떻게 하면 살아날 수 있습니까? 그때부터라도 열심히 노력해서, 그래서 내가 몸집을 키우고, 힘을 키워서 빠져나갈 수 있는가? 몸부림치면 몸부림칠수록, 더 깊은 수렁에 빠져가는 것이 그 동물의 모습이고, 사슴의 모습이고, 더 다칠 수밖에 없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정말 마음씨 착한 한 사람이 등장해서, 그 불쌍한 짐승을 살려주기 위해서 다가가는 겁니다. 다가가서 낚싯줄을 끊어주고, 덫을 끊어주고, 그 동물을 해방시켜주려고 하는데, 자기를 해치려고 하는 줄 알고, 그 자기를 도와주는 사람을 물어버려요. 뿔로 받아버려요. 독수리가 찍어버려요.

근데 바로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시고, 저 높고 높은 곳에서부터 낮고 천한 이곳에,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 될 수밖에 없다고 하는 이 사실을 오늘 또 기억하면서, 늘 감사하며 “이 사랑을 받은 우리가 이제는 주님의 뜻대로 살겠습니다”라고 하는 그런 감격과 결단들이 우리 가운데 넘쳐나야 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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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진노 (롬 1:18-23)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롬 1:16-17) +++ 내버려두사 (롬 1:24-32)

바울 사도는 예수님이야말로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기쁜 소식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야말로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기쁜 소식이요, 복된 소식, 다시 말하자면 복음이라고 소개하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18절 말씀에서는 갑자기 그 톤을 바꾸어서,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18절에서부터 23절 말씀까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데요. 18절 말씀을 보니까 이렇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죠. 이렇게 바울 사도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하는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가 이 로마서를 쭉 읽어나가고 있는데, 복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이제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하고 있는데, 왜 바울 사도는 이렇게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복음의 전제가 하나님의 진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왜 우리들에게 복음이 필요한가? 왜 우리가 복음을 받아들여야 되는가? 왜 우리가 예수님이 필요한가? 예수님을 왜 우리가 믿어야 하는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바로 하나님의 진노라고 하는 대답입니다.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 있어서, 다 멸망받을 수밖에 없는 아주 비참한 상태, 아주 심각한 상태에 있기 때문에, 예수님이 필요한 거예요. 우리가 다 멸망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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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우리가 멸망당할 처지에 놓여 있지 않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있지 않다고 한다면, 예수님이 필요합니까? 필요하지 않습니까? 필요하지 않아요.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있지 않다고 한다면, 우리를 구원해 줄 필요가 없어요.

여기 획기적인 약이 하나 있습니다. 이건 제가 복용하는 약인데요. 이 약은 비싼 약이고, 그리고 좀 구하기도 좀 힘이 들고, 그런데 아주 효과가 좋은 약입니다. 그래서 이 약을 제가 여러분들에게 드린다고 한다면, 여러분 이 약을 드시겠습니까? 안 드시겠습니까? 대부분 관심이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병에 걸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무리 비싼 약이고, 효과가 좋은 약이라고 할지라도, 내가 그 병에 걸려야 그 약을 먹는 것이지, 병에 걸리지 않았는데 그 약을 먹을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궁금하시죠? 이게 도대체 무슨 약인지? 이 약은 알러지 약입니다. 저는 평상시에는 괜찮지만, 봄이 되고 가을이 되면 알레르기가 매우 심합니다. 특별히 봄철에 꽃가루로 인해서, 그리고 봄가을에 날씨가 차가워졌을 때 훌쩍훌쩍거리면서, 코를 많이 흘리게 되는데요. 콧물이 나게 되는데요. 특별히 앞에서 설교해야 되는 저로서는 굉장히 곤란한 것이 아닙니다. 특별히 새벽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강단 위에 섰는데, 그래서 설교하기 시작했는데, 콧물이 줄줄 나오기 시작해가지고, 제가 설교하기가 정말 곤란한 적들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약이 너무나도 신기해요.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알약을 새벽에 복용하면, 몇 분이 지나지 않아서 콧물이 딱 그쳐버리는 겁니다. 아주 대단한 약이죠. 여러분 이 약을 제가 드리면 복용하시겠습니까? 아니요. 알러지 알레르기 없는 사람은 복용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아무리 제가 좋은 약이라고 이야기를 해도 시큰둥한 겁니다. 1부 예배 때, 제가 이 얘기를 해드렸더니, 교인들이 예배 마치고 나가시면서, 대부분 그냥 아무 관심 없이 나가버렸어요. 그런데 몇 분이 제게 다가와서 묻는 겁니다. “목사님, 그게 무슨 약입니까?” “나도 좀, 나도 알레르기가 있는데, 나도 좀 복용하고 싶다”라고 하는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됐습니다.

약이라고 하는 것이, 건강한 사람에게는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인 것처럼, 알러지 약이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지 아니한 사람에게는 아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인류를 향한 복음이다, 기쁜 소식이라고 하는 것, 모든 믿는 자에게, 유대인이나 헬라인에게나 예수님이 모두가 다 기쁜 소식이라고 말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면, 왜 예수님이 모든 인류에게 복된 소식이냐 하면, 바로 모든 인류가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 놓여 있어서, 그래서 우리는 영원한 죽음을 죽을 수밖에 없는 아주 영적으로 심각한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면, 복음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내가 정말 심각한 상태에 있는, 영적으로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는,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심각한 죄인이라고 하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면, 예수님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로 인해서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심각한 상태에 있다고 하는 것을 이해해야만, 예수님이 나의 구주가 되신다고 하는 그 사실이 감사하고, 그 사실이 우리들에게 아주 크게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나이가 점점 들어가기 시작하니까, 약에 의존하는 그것이 점차 늘어나게 됐습니다. 그래서 영양제들을 많이 챙겨 먹어야 하는 나이가 되었는데요. 제 아내가 영양제를 얼마나 많이 챙겨주는지 모릅니다. 영양제를, 이런 영양제, 저런 영양제, 많이 구해가지고, 그래서 매일매일 그 영양제를 먹으라고 저에게 강요합니다. 그런 아내가 있다고 하는 것이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죠. 제 몸을 챙겨주고, 저에게 그런 약을 권유하는 아내가 있는 것이 감사한 일입니다. 그런데 제가 그 약을 잘 먹느냐 하면, 잘 먹을까요? 잘 안 먹을까요? 잘 안 먹어요. 그리고 약을 먹으라고 하면 고맙다고 할까요? 어떻게 할까요? 투덜거려요. 제가 약을 보면서 투덜거립니다. ‘도대체, 이 약을 이렇게 왜 크게 만들어 가지고, 마시면 목에 걸려서 안 넘어간다’고. 약이 이만해요. 너무나도 커요. 그 약을 먹으려고 하는데, 그것도 한 4개 5개 되는 약을 먹으라고 하니까, 먹는 게 너무나도 불편해서 먹을 때마다 제가 왜 이렇게 약이 크냐고 투덜거리면서, 잘 안 먹을 뿐만 아니라, 옆에서 말하지 않으면 그냥 걸러버리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몸에서 느끼는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금 현재 내가 불편한 것이 아무것도 없고, 그 약을 먹음으로써 내가 나아졌다고 하는 그런 느낌도 없는데, 그런데 먹으라고 하니까, 잘 못 먹는 거예요. 전혀 불편함이 없는 것 같은데, 약을 먹으라 하고, 그리고 약을 먹어서 내 몸이 좀 더 슈퍼맨이 된다거나, 뭔가 대단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먹으나 안 먹거나 똑같은 그 약을, 목에 걸리는 그 약을 먹으라고 하니까, 너무나도 힘들어서, 자꾸만 걸러버리는 겁니다. 아마 그 약을 먹는 게 좋겠죠. 심각한 상태에 있는 것을 제가 모르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복음을 거부하는 이유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왜 예수님을 믿지 않느냐? “예수님 믿으세요.” “복음을 받아들이세요.” “교회에 나오세요”라고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시큰둥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제가 약을 안 먹는 이유와 똑같습니다. 따라서 복음을 전하려고 하면, 그냥 아무에게나 ‘예수님 믿으세요’ ‘교회 다니세요’라고 이야기하기보다, 우리 자녀들에게 그냥 ‘교회 다녀라’고 이야기하는 것보다, 복음을 말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면, 우리가 얼마나 심각한 죄인인가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정말 우리가 영적으로 타락한 존재여서, 생각하는 것이 악하고, 이기적이고, 탐욕적이고, 너무나도 영적으로 타락한 인생이라고 하는 사실을 실감해야만, 그래야만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하다고 하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고요. 만일 그렇게 심각한 사실을 모르는 사람에게 ‘예수 믿으세요’라고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의 반응이 무엇이겠습니까? ‘너나 믿으세요’ 하는 거죠. ‘나는 필요 없어요.’ ‘예수님 필요 없다’고 하는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겁니다.

하지만 이 복음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얼마나 심각한 죄인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정말 죄악 가운데 있어서, 정말 위선적인 삶을 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법에서부터 멀리 떠나 있고, 이기적이고, 탐욕적이며, 늘 거짓말을 하고, 정말 그 어느 것 하나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없는, 그런 더러운 품성을 가진 우리라고 하는 사실을 자각하게 될 때, 그때서야 비로소 이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 있는 내가 어떻게 구원받고 받을 수 있겠는가? 그때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왜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데요. 그렇기 때문에 바울 사도는 예수님이라고 하는 복음을 소개하면서, 그다음 단계로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있어서, 모든 사람들이 영원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하는 것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있습니까? 18절 말씀에 보면 경건하지 않은 사람과 그리고 불의를 행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있을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요. 이것은 두 종류의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경건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진노가 있고, 불의한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진노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같은 사람이죠. 불의 한 사람이 곧 경건하지 않은 사람이고, 경건한 하지 않은 사람이 바로 불의를 행하는 사람인데, 바로 그러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있어서, 엄청난 그 심판을 당할 수밖에 없고, 영원한 형벌을 당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사실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진노를 받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겠습니까? 하나님의 진노가 있다고 지금 설명하고 있는데요. 하나님의 진노를 받지 않아도 되는, 그 형벌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누가 있을까요? 생각해 보면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을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첫째는 깨끗하고 의롭고 아무런 죄를 행하지 아니한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것입니다. 두 번째 피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있는데요.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 있냐면, “나 몰랐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미워하시는 줄,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이라고 하는 줄을 내가 몰랐다.” “만일 나에게 그 법을 알려주셨다라고 한다면, 내가 행했을 텐데, 하나님께서 나에게 그 법을 공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런 법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나에게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몰라서 못 했습니다”라고 하는 사람은, 그 하나님의 진노에서부터 피할 수 있을 겁니다. 두 종류의 사람이 피할 수 있는 것이죠.

첫 번째는 아무런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을 것인데. 그 문제에 대해서는 로마서 뒷부분에서 이야기할 것이고요. 오늘 본문에서는 핑계댈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칙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법칙을 나에게 알려주고 그 법칙대로 살아라라고 우리들에게 말씀해 주셨다고 한다면, 내가 행했을 것인데, 하나님께서 안 알려주셨으니까, 그런 법이 있는 줄도 몰랐기 때문에 나는 못했습니다”라고 그렇게 핑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데, 그 가능성에 대해서 오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9절과 20절의 말씀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의 법칙이 모든 사람들에게 다 알려져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하나님, 나 몰랐습니다”라고 핑계가 불가능한 거죠.

만일 내가 정말 몰랐다고 한다면, 정상 참작의 여지가 있을 겁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법을 만들 때, 그리고 시행령을 만들 때에는, 바로 단속하는 것이 아니라, 계도 기간이라고 하는 것을 둡니다. 법을 제정하고 시행령을 제정했지만, 그러나 그 시행령과 법을 그대로 즉각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계도 기간을 둡니다. 그래서 그 계도 기간에는 처벌하지 않아요. 교통법규가 바뀌었지만, 범칙금이 바뀌었지만, 그 계도 기간에 범하면 “아, 나, 몰랐습니다. 그런 법이 새로 만들어진 줄 몰랐습니다.” 그러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계도 기간 가운데는 처벌하지 않습니다. 그 법을 집행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계도 기간이 지나고 나면, 이제 모든 사람들이 다 이 법에 대해서 충분히 숙지했을 거라고 생각이 되면, 그다음부터는 변명할 수가 없는 것이죠.

하나님의 법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법을 만들어 놓으셨는데요. 그 하나님의 법을 사람들에게 알려주셨는데, 어떻게 알려주셨는가? 확실하게 알 수 있도록, 알려주신다고 하는 겁니다. 따라서 우리 인생들 가운데 죄를 범해 놓고, 하나님 앞에 가서 “나, 하나님, 몰랐습니다”라고 변명할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마치 우리들에게 법을 알려주실 때, 어떻게 알려주셨냐면, 등기 우편을 보내서 수취인 확인을 한 것과 비슷하게,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법을 알려주셨기 때문에, “하나님, 나, 그 법에 대해서 통보받지 못했어요. 몰랐어요.”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들에게 법을 알려주셨습니까? 양심의 수취 확인을 하게 만들어 주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비록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그 누구도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개명을 우리가 직접 귀로 들은 사람이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들의 양심 가운데 수취 확인이 되도록, 하나님에 대해서 알려주셨고, 하나님의 법칙에 대해서 우리들의 양심에 이미 알려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시다고 하는 사실을 부정하려야 부정할 수 없고, 하나님의 법칙을 몰랐다고 무시하려야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이미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양심 가운데 새겨져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난 주 수요일에 어떤 한 청년이 제 방에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청년이 제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는데요. “하나님이 계시다고 하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라고 하는 질문을 제게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제가 C. S. 루이스의 대답을 그 청년에게 들려주었습니다. C. S. 루이스가 무슨 이야기를 했냐면, 우리가 태양이 떴다고 하는 것을 어떻게 하느냐? 그것은 우리가 집 밖에 나가서 태양이 떴나 하고, 하늘을 쳐다보고 태양이 있는 것을 눈으로 확인해야만, 태양이 하늘에 떴다고 하는 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다른 물체를 보고 사람을 볼 수 있는 것을 통해서 ‘태양이 떴구나.’ ‘아침이 밝았구나’ 하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직접 눈으로 보아야만,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있는 만물을 바라보게 될 때, 하나님이 만드신 존재가 있구나라고 하는 것을 보게 될 때, 하나님이 계시다고 하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라고, C. S. 루이스가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나님을 우리가 직접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마치 태양을 보기가 쉽지 않은 것처럼요. 우리가 공기를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숨 쉬고 살 수 있는 것처럼, 살 수 있기 때문에 공기가 존재한다고 하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을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만드신 온 천하 만물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이 계시구나’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들을 알게 되는 것이죠.

자동차 부품들을 다 하나도 빠지지 않고 다 모아서 한 자리에 모아 놓으면 100년이 지나거나, 천 년이 지나거나, 수만 년이 지나거나, 수억 년이 지나면 자동으로 그 부품들이 이리저리 조합해서 우리가 탈 수 있는 자동차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휴대전화 부품들을 다 모아서 한 상자 안에 넣어놓으면 10년이 지나고, 100년이 지나고, 수천 년이 지나고, 수억 년이 지나면 그 휴대전화 부품들이 저절로 조합이 돼서 우리가 쓸 수 있는 휴대폰이 만들어질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자동차보다도, 휴대전화보다도 훨씬 더 복잡한, 우리 인생들이 어떻게 만들어질 수가 있겠는가? 인생은 생각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자녀를 낳을 수 있는 그런 존재입니다. 양심의 가책를 느낄 수 있는 존재입니다. 사랑을 하기도 하고, 증오를 하기도 하고,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존재가 우리 인간인데, 어떻게 이런 인간이 만들어질 수 있겠는가? 아미노산과 칼슘과 그리고 단백질과 여러 가지 우리 인체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그 요소들을 다 한 자리에 모아 놓는다고 해서 사람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우리가 이렇게 살며 기동 하며 이 세상이 움직이는 모습을 바라보게 될 때, 자연이 변하는 모습을 보게 될 때, ‘아, 창조주 하나님이 계시는구나’라고 하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고,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듣지는 않았지만, 우리들의 양심 속에 심어져 있는 하나님의 법이 있습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거짓말하면 그것이 잘못이라고 하는 거, 도둑질하며 우리들의 얼굴이 후끈후끈 거리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드는 거, 살인을 하게 되면 우리가 견딜 수 없고, 음행을 하면 부끄러울 수밖에 없는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들의 양심의 법에 그 모든 것들을 알려놓았기 때문에,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도덕관념이 생기고, 하나님에 대한 개념들이 생길 수 있는 거예요. 그냥 저절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마음에 심어 놓으셨기 때문에, 그 누구도 “내가 하나님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거짓말하면 안 되는 줄 몰랐습니다. 미워하면 안 되는 줄 몰랐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법칙을 만들어 놓으신 줄 몰랐다고 핑계 댈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이고, 모두가 다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종종 던지는 질문 가운데 어떤 질문이 있냐하면, “목사님, 예수님이 전해지기 전에 살던 사람들은 어떡합니까?”라고 하는 질문을 던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온 것은 조선시대 말기에 예수님이 전파되었는데, 그 이전에 살던 사람들 예수님이 전해지기 전에 살던 조선시대 사람들, 고려 시대 사람들, 고구려 백제 신라 시대 때 사람들은 예수님이 전해지지 않았는데, 그 사람들은 억울한 것 아니겠습니까?”라고 질문을 던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분명하게 깨달아야 돼요. 뭐냐 하면, 예수님은 심판의 이유가 아니라, 구원의 이유인 것이고, 심판, 하나님의 진노의 이유, 하나님의 형벌의 이유가 무엇이냐면, 그것은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이미 고조 시설 시대에 살던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법은 새겨져 있어요. 그들의 양심 가운데 새겨져 있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라고 하는 그 양심의 법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등기우편으로 다 배달되어 있어서 한 사람도 빠짐이 없이 그 하나님의 법칙을 다 알고 있는 건데, 그 법칙에 따라 살지 아니한 거예요.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심판을 당하게 된 것이고, 그래서 우리가 망하게 되는 이유, 하나님의 진노를 받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 심판의 이유인 것이고, 예수님은 치료제입니다.

영원히 멸망받을 수밖에 없는 인생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영원한 치료제를 만들어주셨는데, 그 치료제 때문에 우리가 그 예수님 때문에 그 영원한 진노의 형벌 가운데서 치료받고 구원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법을 알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법을 모른다고 자신의 양심을 억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난 몰라. 모른다. 나는 하나님 안 믿는다.” “하나님의 법칙, 나 모른다”라고 하면서 자신의 양심을 억눌러서 하나님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고 그렇게 우기는 사람들이 종종 있어요.

그런데 사실, 등기 우편도 일부러 안 받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예전에 우리 교회가 저쪽에서 이쪽으로 이사 오면서 보증금을 받아야 되는 상황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주인이 보증금을 다 준 게 아니라 500만 원은 안 주고 나머지만 준 거예요. 그래서 “나머지 500만 원도, 잔금을 다 주세요. 보증금 다시 돌려주세요.” 하는데 안 돌려주는 겁니다. 곤란하게 됐습니다. 500만 원, 안 주니까, 그걸 어떻게 받아내야 되는가? 굉장히 곤란한 상황이 되어서, 할 수 없이 법률적인 행위를 들어가게 됐습니다. 어떻게 해야 됐을까요? 등기 우편을 보낸 겁니다. “맨날 며칠 며칠까지 잔금을 채무 채무를 갚으십시오.”하고 편지를 등기우편으로 보냈어요. 그러니까 그분이 등기우편을 접수를 해야 되는데, 안 받아버려요. 수취 거부를 해버려, 어떻게 해야 됩니까? 수취 거부. 그런데 다 해결됐어요. 수취 거부를 한다고 해서 모르는 게 아니에요. 알고 있으면서도 억누르는 거죠.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 그런 겁니다. 하나님의 양심의 법이 우리 모든 사람들에게 새겨져 있고, 하나님이 계시다고 하는 사실이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는데, 사람들이 그 양심을 누르면서, 하나님이 없다고 이야기하고, 하나님의 법칙을 모른다고 이야기하고, 수취 거부를 하고 있지만, 성경에서 분명하게 가르쳐주는 바가 무엇이냐 하면 그 누구도, 단 한 사람도 하나님을 몰랐다고 핑계 댈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의 법칙을 몰랐다고 핑계 댈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수취 거부해봤자, 그것은 핑곗거리가 되지 않는다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이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는 우리들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자로 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착하게 살아서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하지만 이 세상에 착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고 하는 것이 우리가 알게 된 사실입니다. 목사님은 괜찮은 줄 알았더니, 순 엉터리에요. 오히려 성범죄도 저질러요. 저 스님들은 괜찮은 줄 알았더니, 순 욕심꾸러기예요. 저 정치인은 깨끗한 줄 알았더니, 뒤로 뇌물을 받아먹어요. 저 사람은 깨끗한 줄 알았더니, 저 사람이 뒤에서 나쁜 짓을 하고 있어요. 우리 가운데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당당하게 서서 나는 아무 죄가 없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고,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 있기에, 심지어 이제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그 예쁜 꼬마 아이들의 마음 가운데도 자기 형을 미워하고, 죽이도록 미워하는 그 마음이 그 꼬마 아이의 마음속에 들어 있고, 엄마 아빠의 말을 몰랐다고 거짓말하는 그 악한 심정이 우리 꼬마 아이들의 마음 가운데 있고, 이 세상에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법에 완벽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다 하나님의 법에서부터 멀리 떠난, 진노 가운데 있기 때문에,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 당당하게 나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할 사람이 없는 겁니다.

그런데 놀라운 소식이 있습니다. 알러지에게 알레르기 병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 이 약을 먹으면 알레르기에서 낳을 수 있다고 하는 그 증상을 줄일 수 있다고 하는 그런 놀라운 소식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있는 우리를 위하여,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가 당할 하나님의 진노를 그 몸에 대신 지심으로 말미암아, 십자가 위에서 피 흘려 주심으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들이 구원받은 줄로 믿습니다.

11월은 감사의 달인인데요. 우리는 무엇을 감사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종종 물질적인 것, 이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 이 세상에서 누리는 것을 헤아려보고, 그것이 있으면 기뻐하고, 그것이 없으면 절망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로 기뻐해야 될 것, 우리가 정말로 감사해야 될 것이 있다고 한다면, 영원한 진노에서부터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볼 때, 늘 감사와 기쁨이 넘쳐야 될 줄로 믿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귀신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오직 너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아 생명을 얻게 된 것,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원을 얻게 된 것 자체가 감사한 일임을 기억하면서, 늘 감사하는 우리 모두가 다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그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사랑이 우리 주변의 이웃들에게,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 사랑이 전달되고,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믿음의 결단들이 있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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