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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진노 (롬 1:18-23)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롬 1:16-17) +++ 내버려두사 (롬 1:24-32)

바울 사도는 예수님이야말로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기쁜 소식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야말로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기쁜 소식이요, 복된 소식, 다시 말하자면 복음이라고 소개하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18절 말씀에서는 갑자기 그 톤을 바꾸어서,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18절에서부터 23절 말씀까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데요. 18절 말씀을 보니까 이렇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죠. 이렇게 바울 사도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하는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가 이 로마서를 쭉 읽어나가고 있는데, 복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이제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하고 있는데, 왜 바울 사도는 이렇게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복음의 전제가 하나님의 진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왜 우리들에게 복음이 필요한가? 왜 우리가 복음을 받아들여야 되는가? 왜 우리가 예수님이 필요한가? 예수님을 왜 우리가 믿어야 하는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바로 하나님의 진노라고 하는 대답입니다.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 있어서, 다 멸망받을 수밖에 없는 아주 비참한 상태, 아주 심각한 상태에 있기 때문에, 예수님이 필요한 거예요. 우리가 다 멸망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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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우리가 멸망당할 처지에 놓여 있지 않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있지 않다고 한다면, 예수님이 필요합니까? 필요하지 않습니까? 필요하지 않아요.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있지 않다고 한다면, 우리를 구원해 줄 필요가 없어요.

여기 획기적인 약이 하나 있습니다. 이건 제가 복용하는 약인데요. 이 약은 비싼 약이고, 그리고 좀 구하기도 좀 힘이 들고, 그런데 아주 효과가 좋은 약입니다. 그래서 이 약을 제가 여러분들에게 드린다고 한다면, 여러분 이 약을 드시겠습니까? 안 드시겠습니까? 대부분 관심이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병에 걸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무리 비싼 약이고, 효과가 좋은 약이라고 할지라도, 내가 그 병에 걸려야 그 약을 먹는 것이지, 병에 걸리지 않았는데 그 약을 먹을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궁금하시죠? 이게 도대체 무슨 약인지? 이 약은 알러지 약입니다. 저는 평상시에는 괜찮지만, 봄이 되고 가을이 되면 알레르기가 매우 심합니다. 특별히 봄철에 꽃가루로 인해서, 그리고 봄가을에 날씨가 차가워졌을 때 훌쩍훌쩍거리면서, 코를 많이 흘리게 되는데요. 콧물이 나게 되는데요. 특별히 앞에서 설교해야 되는 저로서는 굉장히 곤란한 것이 아닙니다. 특별히 새벽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강단 위에 섰는데, 그래서 설교하기 시작했는데, 콧물이 줄줄 나오기 시작해가지고, 제가 설교하기가 정말 곤란한 적들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약이 너무나도 신기해요.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알약을 새벽에 복용하면, 몇 분이 지나지 않아서 콧물이 딱 그쳐버리는 겁니다. 아주 대단한 약이죠. 여러분 이 약을 제가 드리면 복용하시겠습니까? 아니요. 알러지 알레르기 없는 사람은 복용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아무리 제가 좋은 약이라고 이야기를 해도 시큰둥한 겁니다. 1부 예배 때, 제가 이 얘기를 해드렸더니, 교인들이 예배 마치고 나가시면서, 대부분 그냥 아무 관심 없이 나가버렸어요. 그런데 몇 분이 제게 다가와서 묻는 겁니다. “목사님, 그게 무슨 약입니까?” “나도 좀, 나도 알레르기가 있는데, 나도 좀 복용하고 싶다”라고 하는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됐습니다.

약이라고 하는 것이, 건강한 사람에게는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인 것처럼, 알러지 약이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지 아니한 사람에게는 아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인류를 향한 복음이다, 기쁜 소식이라고 하는 것, 모든 믿는 자에게, 유대인이나 헬라인에게나 예수님이 모두가 다 기쁜 소식이라고 말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면, 왜 예수님이 모든 인류에게 복된 소식이냐 하면, 바로 모든 인류가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 놓여 있어서, 그래서 우리는 영원한 죽음을 죽을 수밖에 없는 아주 영적으로 심각한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면, 복음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내가 정말 심각한 상태에 있는, 영적으로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는,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심각한 죄인이라고 하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면, 예수님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로 인해서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심각한 상태에 있다고 하는 것을 이해해야만, 예수님이 나의 구주가 되신다고 하는 그 사실이 감사하고, 그 사실이 우리들에게 아주 크게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나이가 점점 들어가기 시작하니까, 약에 의존하는 그것이 점차 늘어나게 됐습니다. 그래서 영양제들을 많이 챙겨 먹어야 하는 나이가 되었는데요. 제 아내가 영양제를 얼마나 많이 챙겨주는지 모릅니다. 영양제를, 이런 영양제, 저런 영양제, 많이 구해가지고, 그래서 매일매일 그 영양제를 먹으라고 저에게 강요합니다. 그런 아내가 있다고 하는 것이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죠. 제 몸을 챙겨주고, 저에게 그런 약을 권유하는 아내가 있는 것이 감사한 일입니다. 그런데 제가 그 약을 잘 먹느냐 하면, 잘 먹을까요? 잘 안 먹을까요? 잘 안 먹어요. 그리고 약을 먹으라고 하면 고맙다고 할까요? 어떻게 할까요? 투덜거려요. 제가 약을 보면서 투덜거립니다. ‘도대체, 이 약을 이렇게 왜 크게 만들어 가지고, 마시면 목에 걸려서 안 넘어간다’고. 약이 이만해요. 너무나도 커요. 그 약을 먹으려고 하는데, 그것도 한 4개 5개 되는 약을 먹으라고 하니까, 먹는 게 너무나도 불편해서 먹을 때마다 제가 왜 이렇게 약이 크냐고 투덜거리면서, 잘 안 먹을 뿐만 아니라, 옆에서 말하지 않으면 그냥 걸러버리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몸에서 느끼는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금 현재 내가 불편한 것이 아무것도 없고, 그 약을 먹음으로써 내가 나아졌다고 하는 그런 느낌도 없는데, 그런데 먹으라고 하니까, 잘 못 먹는 거예요. 전혀 불편함이 없는 것 같은데, 약을 먹으라 하고, 그리고 약을 먹어서 내 몸이 좀 더 슈퍼맨이 된다거나, 뭔가 대단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먹으나 안 먹거나 똑같은 그 약을, 목에 걸리는 그 약을 먹으라고 하니까, 너무나도 힘들어서, 자꾸만 걸러버리는 겁니다. 아마 그 약을 먹는 게 좋겠죠. 심각한 상태에 있는 것을 제가 모르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복음을 거부하는 이유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왜 예수님을 믿지 않느냐? “예수님 믿으세요.” “복음을 받아들이세요.” “교회에 나오세요”라고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시큰둥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제가 약을 안 먹는 이유와 똑같습니다. 따라서 복음을 전하려고 하면, 그냥 아무에게나 ‘예수님 믿으세요’ ‘교회 다니세요’라고 이야기하기보다, 우리 자녀들에게 그냥 ‘교회 다녀라’고 이야기하는 것보다, 복음을 말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면, 우리가 얼마나 심각한 죄인인가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정말 우리가 영적으로 타락한 존재여서, 생각하는 것이 악하고, 이기적이고, 탐욕적이고, 너무나도 영적으로 타락한 인생이라고 하는 사실을 실감해야만, 그래야만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하다고 하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고요. 만일 그렇게 심각한 사실을 모르는 사람에게 ‘예수 믿으세요’라고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의 반응이 무엇이겠습니까? ‘너나 믿으세요’ 하는 거죠. ‘나는 필요 없어요.’ ‘예수님 필요 없다’고 하는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겁니다.

하지만 이 복음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얼마나 심각한 죄인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정말 죄악 가운데 있어서, 정말 위선적인 삶을 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법에서부터 멀리 떠나 있고, 이기적이고, 탐욕적이며, 늘 거짓말을 하고, 정말 그 어느 것 하나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없는, 그런 더러운 품성을 가진 우리라고 하는 사실을 자각하게 될 때, 그때서야 비로소 이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 있는 내가 어떻게 구원받고 받을 수 있겠는가? 그때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왜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데요. 그렇기 때문에 바울 사도는 예수님이라고 하는 복음을 소개하면서, 그다음 단계로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있어서, 모든 사람들이 영원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하는 것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있습니까? 18절 말씀에 보면 경건하지 않은 사람과 그리고 불의를 행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있을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요. 이것은 두 종류의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경건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진노가 있고, 불의한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진노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같은 사람이죠. 불의 한 사람이 곧 경건하지 않은 사람이고, 경건한 하지 않은 사람이 바로 불의를 행하는 사람인데, 바로 그러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있어서, 엄청난 그 심판을 당할 수밖에 없고, 영원한 형벌을 당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사실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진노를 받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겠습니까? 하나님의 진노가 있다고 지금 설명하고 있는데요. 하나님의 진노를 받지 않아도 되는, 그 형벌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누가 있을까요? 생각해 보면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을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첫째는 깨끗하고 의롭고 아무런 죄를 행하지 아니한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것입니다. 두 번째 피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있는데요.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 있냐면, “나 몰랐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미워하시는 줄,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이라고 하는 줄을 내가 몰랐다.” “만일 나에게 그 법을 알려주셨다라고 한다면, 내가 행했을 텐데, 하나님께서 나에게 그 법을 공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런 법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나에게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몰라서 못 했습니다”라고 하는 사람은, 그 하나님의 진노에서부터 피할 수 있을 겁니다. 두 종류의 사람이 피할 수 있는 것이죠.

첫 번째는 아무런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을 것인데. 그 문제에 대해서는 로마서 뒷부분에서 이야기할 것이고요. 오늘 본문에서는 핑계댈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칙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법칙을 나에게 알려주고 그 법칙대로 살아라라고 우리들에게 말씀해 주셨다고 한다면, 내가 행했을 것인데, 하나님께서 안 알려주셨으니까, 그런 법이 있는 줄도 몰랐기 때문에 나는 못했습니다”라고 그렇게 핑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데, 그 가능성에 대해서 오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9절과 20절의 말씀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의 법칙이 모든 사람들에게 다 알려져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하나님, 나 몰랐습니다”라고 핑계가 불가능한 거죠.

만일 내가 정말 몰랐다고 한다면, 정상 참작의 여지가 있을 겁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법을 만들 때, 그리고 시행령을 만들 때에는, 바로 단속하는 것이 아니라, 계도 기간이라고 하는 것을 둡니다. 법을 제정하고 시행령을 제정했지만, 그러나 그 시행령과 법을 그대로 즉각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계도 기간을 둡니다. 그래서 그 계도 기간에는 처벌하지 않아요. 교통법규가 바뀌었지만, 범칙금이 바뀌었지만, 그 계도 기간에 범하면 “아, 나, 몰랐습니다. 그런 법이 새로 만들어진 줄 몰랐습니다.” 그러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계도 기간 가운데는 처벌하지 않습니다. 그 법을 집행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계도 기간이 지나고 나면, 이제 모든 사람들이 다 이 법에 대해서 충분히 숙지했을 거라고 생각이 되면, 그다음부터는 변명할 수가 없는 것이죠.

하나님의 법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법을 만들어 놓으셨는데요. 그 하나님의 법을 사람들에게 알려주셨는데, 어떻게 알려주셨는가? 확실하게 알 수 있도록, 알려주신다고 하는 겁니다. 따라서 우리 인생들 가운데 죄를 범해 놓고, 하나님 앞에 가서 “나, 하나님, 몰랐습니다”라고 변명할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마치 우리들에게 법을 알려주실 때, 어떻게 알려주셨냐면, 등기 우편을 보내서 수취인 확인을 한 것과 비슷하게,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법을 알려주셨기 때문에, “하나님, 나, 그 법에 대해서 통보받지 못했어요. 몰랐어요.”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들에게 법을 알려주셨습니까? 양심의 수취 확인을 하게 만들어 주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비록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그 누구도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개명을 우리가 직접 귀로 들은 사람이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들의 양심 가운데 수취 확인이 되도록, 하나님에 대해서 알려주셨고, 하나님의 법칙에 대해서 우리들의 양심에 이미 알려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시다고 하는 사실을 부정하려야 부정할 수 없고, 하나님의 법칙을 몰랐다고 무시하려야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이미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양심 가운데 새겨져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난 주 수요일에 어떤 한 청년이 제 방에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청년이 제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는데요. “하나님이 계시다고 하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라고 하는 질문을 제게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제가 C. S. 루이스의 대답을 그 청년에게 들려주었습니다. C. S. 루이스가 무슨 이야기를 했냐면, 우리가 태양이 떴다고 하는 것을 어떻게 하느냐? 그것은 우리가 집 밖에 나가서 태양이 떴나 하고, 하늘을 쳐다보고 태양이 있는 것을 눈으로 확인해야만, 태양이 하늘에 떴다고 하는 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다른 물체를 보고 사람을 볼 수 있는 것을 통해서 ‘태양이 떴구나.’ ‘아침이 밝았구나’ 하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직접 눈으로 보아야만,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있는 만물을 바라보게 될 때, 하나님이 만드신 존재가 있구나라고 하는 것을 보게 될 때, 하나님이 계시다고 하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라고, C. S. 루이스가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나님을 우리가 직접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마치 태양을 보기가 쉽지 않은 것처럼요. 우리가 공기를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숨 쉬고 살 수 있는 것처럼, 살 수 있기 때문에 공기가 존재한다고 하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을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만드신 온 천하 만물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이 계시구나’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들을 알게 되는 것이죠.

자동차 부품들을 다 하나도 빠지지 않고 다 모아서 한 자리에 모아 놓으면 100년이 지나거나, 천 년이 지나거나, 수만 년이 지나거나, 수억 년이 지나면 자동으로 그 부품들이 이리저리 조합해서 우리가 탈 수 있는 자동차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휴대전화 부품들을 다 모아서 한 상자 안에 넣어놓으면 10년이 지나고, 100년이 지나고, 수천 년이 지나고, 수억 년이 지나면 그 휴대전화 부품들이 저절로 조합이 돼서 우리가 쓸 수 있는 휴대폰이 만들어질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자동차보다도, 휴대전화보다도 훨씬 더 복잡한, 우리 인생들이 어떻게 만들어질 수가 있겠는가? 인생은 생각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자녀를 낳을 수 있는 그런 존재입니다. 양심의 가책를 느낄 수 있는 존재입니다. 사랑을 하기도 하고, 증오를 하기도 하고,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존재가 우리 인간인데, 어떻게 이런 인간이 만들어질 수 있겠는가? 아미노산과 칼슘과 그리고 단백질과 여러 가지 우리 인체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그 요소들을 다 한 자리에 모아 놓는다고 해서 사람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우리가 이렇게 살며 기동 하며 이 세상이 움직이는 모습을 바라보게 될 때, 자연이 변하는 모습을 보게 될 때, ‘아, 창조주 하나님이 계시는구나’라고 하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고,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듣지는 않았지만, 우리들의 양심 속에 심어져 있는 하나님의 법이 있습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거짓말하면 그것이 잘못이라고 하는 거, 도둑질하며 우리들의 얼굴이 후끈후끈 거리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드는 거, 살인을 하게 되면 우리가 견딜 수 없고, 음행을 하면 부끄러울 수밖에 없는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들의 양심의 법에 그 모든 것들을 알려놓았기 때문에,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도덕관념이 생기고, 하나님에 대한 개념들이 생길 수 있는 거예요. 그냥 저절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마음에 심어 놓으셨기 때문에, 그 누구도 “내가 하나님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거짓말하면 안 되는 줄 몰랐습니다. 미워하면 안 되는 줄 몰랐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법칙을 만들어 놓으신 줄 몰랐다고 핑계 댈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이고, 모두가 다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종종 던지는 질문 가운데 어떤 질문이 있냐하면, “목사님, 예수님이 전해지기 전에 살던 사람들은 어떡합니까?”라고 하는 질문을 던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온 것은 조선시대 말기에 예수님이 전파되었는데, 그 이전에 살던 사람들 예수님이 전해지기 전에 살던 조선시대 사람들, 고려 시대 사람들, 고구려 백제 신라 시대 때 사람들은 예수님이 전해지지 않았는데, 그 사람들은 억울한 것 아니겠습니까?”라고 질문을 던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분명하게 깨달아야 돼요. 뭐냐 하면, 예수님은 심판의 이유가 아니라, 구원의 이유인 것이고, 심판, 하나님의 진노의 이유, 하나님의 형벌의 이유가 무엇이냐면, 그것은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이미 고조 시설 시대에 살던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법은 새겨져 있어요. 그들의 양심 가운데 새겨져 있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라고 하는 그 양심의 법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등기우편으로 다 배달되어 있어서 한 사람도 빠짐이 없이 그 하나님의 법칙을 다 알고 있는 건데, 그 법칙에 따라 살지 아니한 거예요.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심판을 당하게 된 것이고, 그래서 우리가 망하게 되는 이유, 하나님의 진노를 받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 심판의 이유인 것이고, 예수님은 치료제입니다.

영원히 멸망받을 수밖에 없는 인생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영원한 치료제를 만들어주셨는데, 그 치료제 때문에 우리가 그 예수님 때문에 그 영원한 진노의 형벌 가운데서 치료받고 구원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법을 알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법을 모른다고 자신의 양심을 억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난 몰라. 모른다. 나는 하나님 안 믿는다.” “하나님의 법칙, 나 모른다”라고 하면서 자신의 양심을 억눌러서 하나님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고 그렇게 우기는 사람들이 종종 있어요.

그런데 사실, 등기 우편도 일부러 안 받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예전에 우리 교회가 저쪽에서 이쪽으로 이사 오면서 보증금을 받아야 되는 상황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주인이 보증금을 다 준 게 아니라 500만 원은 안 주고 나머지만 준 거예요. 그래서 “나머지 500만 원도, 잔금을 다 주세요. 보증금 다시 돌려주세요.” 하는데 안 돌려주는 겁니다. 곤란하게 됐습니다. 500만 원, 안 주니까, 그걸 어떻게 받아내야 되는가? 굉장히 곤란한 상황이 되어서, 할 수 없이 법률적인 행위를 들어가게 됐습니다. 어떻게 해야 됐을까요? 등기 우편을 보낸 겁니다. “맨날 며칠 며칠까지 잔금을 채무 채무를 갚으십시오.”하고 편지를 등기우편으로 보냈어요. 그러니까 그분이 등기우편을 접수를 해야 되는데, 안 받아버려요. 수취 거부를 해버려, 어떻게 해야 됩니까? 수취 거부. 그런데 다 해결됐어요. 수취 거부를 한다고 해서 모르는 게 아니에요. 알고 있으면서도 억누르는 거죠.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 그런 겁니다. 하나님의 양심의 법이 우리 모든 사람들에게 새겨져 있고, 하나님이 계시다고 하는 사실이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는데, 사람들이 그 양심을 누르면서, 하나님이 없다고 이야기하고, 하나님의 법칙을 모른다고 이야기하고, 수취 거부를 하고 있지만, 성경에서 분명하게 가르쳐주는 바가 무엇이냐 하면 그 누구도, 단 한 사람도 하나님을 몰랐다고 핑계 댈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의 법칙을 몰랐다고 핑계 댈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수취 거부해봤자, 그것은 핑곗거리가 되지 않는다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이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는 우리들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자로 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착하게 살아서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하지만 이 세상에 착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고 하는 것이 우리가 알게 된 사실입니다. 목사님은 괜찮은 줄 알았더니, 순 엉터리에요. 오히려 성범죄도 저질러요. 저 스님들은 괜찮은 줄 알았더니, 순 욕심꾸러기예요. 저 정치인은 깨끗한 줄 알았더니, 뒤로 뇌물을 받아먹어요. 저 사람은 깨끗한 줄 알았더니, 저 사람이 뒤에서 나쁜 짓을 하고 있어요. 우리 가운데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당당하게 서서 나는 아무 죄가 없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고,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 있기에, 심지어 이제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그 예쁜 꼬마 아이들의 마음 가운데도 자기 형을 미워하고, 죽이도록 미워하는 그 마음이 그 꼬마 아이의 마음속에 들어 있고, 엄마 아빠의 말을 몰랐다고 거짓말하는 그 악한 심정이 우리 꼬마 아이들의 마음 가운데 있고, 이 세상에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법에 완벽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다 하나님의 법에서부터 멀리 떠난, 진노 가운데 있기 때문에,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 당당하게 나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할 사람이 없는 겁니다.

그런데 놀라운 소식이 있습니다. 알러지에게 알레르기 병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 이 약을 먹으면 알레르기에서 낳을 수 있다고 하는 그 증상을 줄일 수 있다고 하는 그런 놀라운 소식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있는 우리를 위하여,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가 당할 하나님의 진노를 그 몸에 대신 지심으로 말미암아, 십자가 위에서 피 흘려 주심으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들이 구원받은 줄로 믿습니다.

11월은 감사의 달인인데요. 우리는 무엇을 감사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종종 물질적인 것, 이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 이 세상에서 누리는 것을 헤아려보고, 그것이 있으면 기뻐하고, 그것이 없으면 절망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로 기뻐해야 될 것, 우리가 정말로 감사해야 될 것이 있다고 한다면, 영원한 진노에서부터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볼 때, 늘 감사와 기쁨이 넘쳐야 될 줄로 믿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귀신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오직 너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아 생명을 얻게 된 것,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원을 얻게 된 것 자체가 감사한 일임을 기억하면서, 늘 감사하는 우리 모두가 다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그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사랑이 우리 주변의 이웃들에게,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 사랑이 전달되고,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믿음의 결단들이 있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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