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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admin

절대 권력은 반드시 타락한다

온 나라가 최순실 게이트로 시끄럽다. “권력은 타락한다. 절대 권력은 반드시 타락한다.” 영국의 정치가 액튼 경이 한 말(Power corrupts; Absolute power absolutely corrupts)이 생각난다. 이 말은 성경에서 그리고 있는 인간관에 근거하고 있다. 성경은 사람은 절대적으로 타락한 존재로 선을 행할 능력이 없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우리는 착각한다. 사람들 중에는 악한 사람도 있지만 선한 사람도 있을 것이라는 착각 말이다. 그리고 선한 사람만 있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헛된 소망을 품는다. 인간은 타락한 존재이기 때문에, 교회가 바른 길로 가기 위해서는 목사 한 사람에게 모든 권한이 주어지면 안 된다. 절대 권력을 쥐게 되면 타락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로교 시스템은 성경적인 시스템이다. 한 사람에게 모든 권한이 주어지는 것보다, 복수(複數)의 사람이 교회를 다스리게 하는 것이 안전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개교회의 잘못을 바로집아 주는 노회(=장로회)가 있다. 노회(=장로회, Presbytery) 중심으로 교회를 운영하기 때문에 장로교회(Presbyterian church)라고 부른다. 장로교회는 장로(elder)들 중심의 교회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은 노회(=장로회) 중심의 체제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개인이든 어느 집단이든 권력을 독점하는 순간 반드시 타락하게 되는 것은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고 또한 우리가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민주주의는 성경의 가르침에서 시작되었다. 미국의 정치제도는 장로교 시스템을 벤치마킹하여 만든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권력을 누가 독점하지 않도록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대통령이라도 의회의 견제를 받고 의회도 다시 견제를 받게 만들어, 그 어느 개인이나 단체가 절대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절대 권력의 위험은 북한 체제에서 분명하게 우리가 보았다. 최고의 권력자가 무한대의 권력을 행사할 때 얼마나 타락할 수 있는가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최순실 게이트로 시끄러운 것은 그만큼 누군가에게 절대 권력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인들은 맹목적인 절대 지지를 받는 순간 타락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그것을 견제할 수 있어야 하는데, 언론도 종교도 사법부도 그리고 각 위치에 있는 개인도, 권력을 견제하기 보다는 권력에 빌붙어 그 당근을 먹으며 썩는 것을 방치한 책임이 크다. 사람은 누구나 타락할 수 있다. 그가 잘하든 잘못하든 절대적 지지를 보내는 사람들을 배경으로 독버섯은 자라게 되어 있다. 시끄럽긴 하지만 뒤늦게라도 바로잡으려는 모습이 그래도 소망이 있다고 자위해 본다. 아파도 도려내야 병이 낫는다. 이 시점에 타락한 정권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바른 성경적인 생각이 아니다. 원글링크: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06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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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게 ‘바보’라 말하면 지옥불에 떨어질까?

예수님은 다른 사람을 “바보”라 말하는 자는 지옥불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 말씀하셨다(마 5:22). 헬라어 “모레”는 “바보같은, 어리석은, 미련한”이란 의미를 가지는 형용사다. 마 5:22에서는 호격 명사처럼 사용된다. “바보야!”라고 부르는 자는 지옥불에 들어갈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마 23:17을 보면, 예수님께서 직접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해, “바보같은 맹인들아!”라고 부르고 계신 것을 볼 수 있다. 마 5:22 사용 단어와 마 23:17 사용 단어는 정확하게 같은 단어다. 다른 사람을 바보같은 사람이라고 경멸하면 지옥불에 던져질 것이라 경고하신 예수님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향해 “바보 같고 눈이 먼 너희들아”라고 부르는 것은 자가당착처럼 보인다. 놀랍게도 성경은 여기저기서 죄를 짓거나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을 바보라 부르고 있다(시 14:1; 갈 3:1; 고전 15:36).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성경 해석의 제1원리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항상 문맥 안에서 본문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산상수훈에서 형제에게 바보라 말하는 사람은 지옥불에 던져질 것이라고 하신 것은 살인을 직접 저질러야만 죄가 아니라, 이미 마음에 다른 사람을 향한 미움이 있는 것부터 잘못임을 지적하는 문맥에서 사용됐다. 바보라 말하기만 해도 지옥불에 떨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에게는 겉으로 나타난 행동보다도 그 마음의 태도가 중요함을 말씀하시는 맥락에서 이 말씀을 하셨다. 자신만 바라보고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해 주는 사랑스런 애인에게 “이 바보야!”라고 사랑스럽게 말했다면, 지옥불에 떨어질 죄를 지은 것이라 할 수 없다. 자신을 돌보지 않고 오로지 자녀의 행복만을 위해 갖은 고생을 하는 어머니를 향해, “엄만 바보야!”라고 말한다고 잘못된 것은 아닐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다른 사람을 존중하며 그들을 저주해서는 안 된다(약 3:9-12)는 게 산상수훈에서 다른 사람을 바보라 부르지 말라고 한 이유다. 이에 반해 예수님이, 그리고 성경에서 일단의 사람들을 향해 바보라 부르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로 돌아올 것을 강력히 촉구하는 데 있다.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인이나 갈라디아 교인을 향해 어리석은 사람이라 부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상대를 죽여 버리고 원수를 갚아야겠다는 마음의 태도에서 나오는 표현이 아니다.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으로, 정말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른 길로 돌아오기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전할 때 사용된 표현이다. 우리는 성경에서 모순이나 자가당착적 표현을 보게 된다. 비판하지 말라고 하셨던 예수님께서 비판하시는 모습이라든가, 온유해야 한다고 하신 주님께서 화를 내시는 모습 등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 천편일률적인 잣대를 들이밀며 자가당착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성경 한 구절에만 근거해 무조건 정죄하는 일을 해서도 안 될 것이다. 원글링크: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07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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