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닫기

저주가 된 언약궤(삼상 5:1-2)

1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빼앗아 가지고 에벤에셀에서부터 아스돗에 이르니라. 2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가지고 다곤의 신전에 들어가서 다곤 곁에 두었더니 3 아스돗 사람들이 이튿날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러져 그 얼굴이 땅에 닿았는지라 그들이 다곤을 일으켜 다시 그 자리에 세웠더니 4 그 이튿날 아침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또다시 엎드러져 얼굴이 땅에 닿았고 그 머리와 두 손목은 끊어져 문지방에 있고 다곤의 몸뚱이만 남았더라. 5 그러므로 다곤의 제사장들이나 다곤의 신전에 들어가는 자는 오늘까지 아스돗에 있는 다곤의 문지방을 밟지 아니하더라. (삼상 5:1-2)

이스라엘 민족으로부터 언약궤를 탈취한 블레셋 사람들은 그 전리품을 자신들의 신인 다곤의 신전에 두었습니다. 그런데 전쟁에서 아무런 힘도 발휘할 수 없었던 것처럼 보였던 그 언약궤를 그곳에 놓자, 하나님께서는 블레셋 민족을 심판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처음에는 다곤 신상이 그 앞에 엎드려져 있는 채 발견되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세워놓았더니, 그 다음 날에는 머리와 손목이 부러진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아스돗 사람들에게 독한 종기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가드로 옮겼더니 거기서도 독종이 발발했고, 급기야 에그론으로 옮겼더니 그곳 사람들이 난리법석을 피웠습니다. 자신의 지역에 언약궤를 들여놓을 수 없다고 반대 투쟁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통해서 블레셋 사람들이 섬기는 다곤 신은 참된 신이 아니라 사람의 수공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다곤이 블레셋 사람들을 지키고 보호해주는 것이 아니라, 정 반대로 블레셋 사람들이 그 다곤 신을 일으키고 옮기고 보존해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열국의 우상은 은금이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그들의 입에는 아무 호흡도 없나니 그것을 만든 자와 그것을 의지하는 자가 다 그것과 같으리로다.”(시 135:15-18)

블레셋 민족들은 자신들이 다곤 신을 의지했기 때문에 그 다곤 신이 자신들을 보호해주었고 이스라엘로부터 자신들을 구원해주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우상이 사실상 아무런 힘도 능력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미신적인 신앙이 계속되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경험들 때문입니다. 다곤 신에게 제사를 드리고 전쟁터에 나갔는데 정말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면, 다곤 신이 자신들을 지켜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전쟁에서 지게 되면, 그것은 다곤 신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이 무엇인가 잘못한 것이 있기 때문에 다곤 신이 진노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혹시 제물에 성의가 없었던 것은 아닐까? 혹시 다곤 신이 노여워할만한 일을 하지는 않았을까? 그래서 다음번에는 좀 더 정성을 다해 제사를 드리는 방향으로 신앙이 강화되곤 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다곤 신이야말로 가장 뛰어난 신이라고 믿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생각을 뒤집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전쟁에서 패하도록 만드셨지만, 그것은 여호와의 손이 짧아서 구원하지 못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사 59:1-2). 이스라엘 민족이 전쟁에서 패배하게 하심으로 이스라엘의 죄악을 깨닫게 하셨다면, 이제 블레셋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이며 우상은 순 엉터리일 뿐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영광을 얻으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은 반드시 사람을 통해야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흔히 우리 크리스천들이 잘 되어야 하나님께서도 영광을 받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누리실 것이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존(自尊)하시는 하나님이시며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으신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만 그때에서야 비로소 영광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전쟁에서 패배하고 언약궤를 빼앗기는 비참한 결과를 가져오면 하나님의 영광이 무너지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그 영광을 취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다곤 신전 안에서 다곤을 치심으로 스스로 영광을 취하셨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특히 한국교회를 생각할 때 그렇습니다. 한국교회의 현실은 사무엘 시대의 상황과 어쩌면 그렇게 꼭 닮아 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쟁을 하러 나갔는데 이스라엘은 무참히 패배하였고 그래서 블레셋 사람들이 오만한 말로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했던 것처럼, 한국교회는 지금 엉터리 믿음과 잘못된 신학으로 엉터리 길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고 타락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어서 세상 사람들로부터 모욕을 당하고 있습니다. 목회자들의 성적인 타락과 재정적인 비리들의 소식들이 넘쳐납니다. 하나님의 교회라고 하는데 사실상 자신의 교회인 양 버젓이 세습하면서도 떵떵 거리고, 정치세력과 교회가 야합하여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기 보다는 악취를 진동시키고 있고, 수많은 교회들이 분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고, 강단은 기복주의 신앙으로 점령당한지 오래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고 교회를 비난하는 시대입니다. 과연 이러한 한국 교회에 소망이 있을까요? 그런데 이러한 현실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영광을 얻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도 같은 맥락에서입니다. 사람들에게 소망이 없을 때,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 있는 우리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러한 하나님의 영광의 클라이맥스입니다. 완전히 실패한 것 같았는데, 하나님께서 승리를 선언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주일은 바로 그 승리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우리들은 절망하지 않아야 합니다. 전쟁에서 지고 엘리 제사장과 그 아들들을 다 죽고 언약궤는 빼앗겼고, 또한 아비와 어미 없이 고아로 자라야 할 상황에서 태어나는 것 같지만, 소망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기 블레셋의 심장부에서 하나님께서는 다곤을 물리치시고 승리하신 것처럼, 우리에겐 하나님께서 이루신 놀라운 승리가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이전 글 읽기 – 이스라엘을 떠난 하나님(삼상 4:12-22)

다음 글 읽기 – 언약궤의 저주(삼상 5:6-12)

Loading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